〈 374화 〉 374. 신의 아틀란티스
374. 신의 아틀란티스
터벅터벅.
신의 아틀란티스 세계에 들어온 나는 거친 산길을 걸었다.
후르르르르르르!
발걸음이 멈췄다. 이상한 울음 소리에 고개를 들어올린다. 새의 머리를 가진 갈색 원숭이가 나무위에 서있었다.
‘테몽키군.’
테몽키라는 이름의 몬스터는 그리 강하지 않다. 지금의 나라면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었다.
파지직.
손아귀에 뇌전을 일으키자 화들짝 놀란 테몽키가 빠르게 도망쳤다. 테몽키는 몬스터 치고 겁이 많았다. 확실하게 적을 죽일 수 있다는 판단이 서지 않으면 이렇게 도망친다.
‘쫓아가서 죽이기에는… 내 갈길이 더 바쁘지.’
동료들을 모아서 나를 습격하려 할 수도 있었으나, 걱정되지 않는다. 테몽키 수 십 마리가 덤벼도 다 쓸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체 마을은 언제 나오는 거야?’
나는 투덜거리면서 계속해서 산길을 걸었다.
몇 분 뒤, 공기가 갑자기 답답해졌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갑자기 눈앞에 마을이 나타났다.
「제 4,523 구역, 철나무 숲에 입장했습니다.」
제 4,523 구역, 철나무 숲. 목적지에 성공적으로 도착했다.
나는 마을 입구에서 함부로 움직이지 않고 마을을 살펴보며 주민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뭔 마을이 이렇게 뒤죽박죽이야?’
마을 내의 건물들은 제각각 개성이 넘쳤다. 어느 것은 직사각형의 레고 블록같은 모양이고, 어떤 것은 삼각형, 원형, 벌집을 떠올리게하는 집 등 똑같은 모양의 집이 단 하나도 없었다. 집의 재질 또한 마찬가지다. 흙, 나무, 철, 돌 등등 전부 달랐다.
‘이건 뭐… 놀이공원이라 해도 믿겠네.’
그러나 이 집들에는 똑같은 공통점이 하나 존재한다. 바로 집마다 굴뚝이 있고, 굴뚝에서 난 시커먼 연기가 하늘로 뿜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결계가 쳐져 있어서 밖에서는 연기가 안 보였지.’
하늘에서 점차 사라지는 검은 연기를 보고 있을 때 누군가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골무처럼 생긴 철투구를 쓰고 있는 드워프였다. 키는 약 1M 정도로 보였고 무릎까지 닿는 긴 검은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견고해 보이는 사슬 갑옷을 입었으며 발에는 끝이 뾰족한 강철 신발을 신고 있다.
내 시선이 향한 곳은 드워프의 허리 부근이다. 자격이 없으면 드는 것조차 불가능할 것 같은 망치를 달고 있다.
“행상인으로는 안 보이는군. 댁은 누구시오? 어떻게 우리 마을을 찾아왔소?”
아주 걸걸한 목소리였다.
“철뿌리 드워프 마을에는 부탁할 것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나는 저자세로 나갔다. 마음 같아선 이 드워프들을 죄다 노예로 삼아 부려먹고 싶으나, 여긴 ‘백환’ 세계가 아니었고, 이 구역의 주인은 따로 있었다.
“부탁할 것? 미안한 말이지만 우린 외부인의 부탁을 듣지 않소. 그리고 외부인을 환영하지도 않지. 우린 물 한 잔도 그대에게 줄 수 없으니 돌아가시오.”
드워프는 허리에 걸린 망치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말을 듣지 않으면 무력까지 동원하겠다는 경고였다.
“아.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전 그녀의 허가증을 받았습니다.”
“허가증? 말로만 하지말고 보여주시오.”
“지금 꺼내려했습니다.”
나는 품에서 편지를 꺼냈다. 푸른색 초승달과 검의 인장이 찍혀 있는 편지였다. 드워프는 망치 손잡이에 얹은 손을 뗐다.
“상인이 아닌 누군가가 찾아오는 건 오랜만이구만.”
드워프는 편지를 받아들고 조심스럽게 인장을 뜯었다.
“나는 데이먼스 언루트. 철뿌리 마을의 드워프요. 대장장이면서 전사지.”
“추방자인 성유진입니다.”
“추방자?”
“네. 왜 그러십니까?”
“추방자가 우리 마을에 방문한 건 처음이라 그렇소. 축하하오.”
“감사합니다?”
나는 눈을 끔뻑거렸다. 저게 축하 받을만한 일인가?
데이먼스는 편지를 천천히 읽어봤다.
허가증이라 불리는 저것은 제국오공 중 한 명인 환상공 엘레나 발데르트가 직접 써준 편지다. 이 구역은 그녀가 지배하는 구역 중 하나로, 그녀의 허가 없이 철뿌리 드워프 부족과 거래할 수 없다.
나는 그녀에게 부탁해서 이 허가증을 얻었다.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알겠소. 공작 각하는 그대가 원하는 걸 만들어 주라 하는군. 일단 날 따라오시오.”
나는 데이먼스를 따라갔다. 데이먼스가 향하는 곳은 마을에서 가장 큰 마을이 있는 곳이었다.
마치 비쩍 마른 겨울나무처럼 생긴 집이었다. 앙상한 수 십 개의 나뭇가지에서 나뭇잎 대신에 검은 연기를 뿜어내 장식한다. 집의 크기는 4층 저택과 맞먹을 정도로 컸다.
“특이하고 멋진 집이군요. 이런 집은 처음 봅니다.”
“우리 부모님이 직접 지은 집이지. 대충 4개월 정도 걸렸소.”
신기한 집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뜨거운 열기가 확 덮쳐 왔다. 반사적으로 숨을 깊게 쉬었다가 낭패를 봤다. 열기가 폐안 가득 채우는 느낌은 썩 좋지 않았다.
화덕 앞에서 일을 하고 있던 5명의 드워프들이 이쪽을 향해 관심을 보였다.
“데이먼스! 그 인간은 누구야?”
“인간을 여기까지 데려와? 보통 인간은 아닌 모양이군.”
“초면에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느낌이 영 좋지 않은 인간이다.”
땅딸막한 드워프들이 내게 관심을 보였다.
저들을 노예로 삼아 부려먹으면 금세 인생이 편해지겠지만, 그랬다간 엘레나가 날 죽이려 할 것이 뻔하기에 포기한다.
“공작 각하의 편지를 가지고 있던 인간이다. 우리는 이 인간한테 물건을 만들어줘야 돼.”
“물건? 무슨 물건?”
“크크크. 인간의 주문을 받아 망치를 두들기게 되는 건 또 오랜만이군.”
“근데 빈손으로 왔나? 실망스럽군.”
드워프들의 반응을 나쁘지 않았다.
“물론 전 여러분에게 드릴 선물도 챙겼습니다.”
인벤토리에서 맥주를 꺼냈다. 드워프들은 맥주를 좋아한다는 흔한 판타지 설정이 이 세계에서도 통했다. 큰 맘 먹고 맥주 10박스를 꺼냈다.
그러나 내가 꺼낸 맥주를 본 드워프들을 고개만 갸웃거렸다.
“이건 또 뭔가?”
“처음 보는 유리병이군. 병안에 물이 들어있나? 물이라면 우리 마을에도 충분하다.”
“맥주입니다. 맥주. 여러분이 맥주를 좋아하신다는 말을 들었는데… 아니었습니까?”
“맥주? 오오오오오!”
“오오오오오오!”
드워프들이 맥주 박스에 달려들어 병맥주를 한 손에 쥐고 바로 입에 물었다.
“우오오오오! 이렇게 맜있는 맥주가 존재 할 줄이야! 지금껏 먹어왔던 맥주랑은 격이 다르구만!”
“키야아아아! 시원하기 까지 하고 딱 좋군!”
드워프들은 난데 없이 술파티를 벌이기 시작했다. 나는 불안감을 느꼈다. 술에 취해 뻗지 않을까.
허나 내 예상가 다르게 드워프들은 과음을 하지 않았다.
“성유진. 고맙소. 이런 맛있는 맥주를 가지고 있을 줄이야. 어디서 만든 맥주요?”
“독일 맥주입니다.”
“독일? 아무튼 맥주 맛이 좋소.”
데이먼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맥주의 출신지는 그냥 한 번 물어본 모양이다.
“근데 술을 많이 드신 것 같은데 제가 원하는 물건은 만들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하하! 맥주 한 병 까먹었다고 인사불성이 되는 나약한 드워프는 존재하지 않소! 우리에게 맥주는 기름이오!”
“예? 기름?”
“바퀴는 기름칠을 해야 잘 돌아가지 않소. 그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맥주칠을 해야 잘 움직이오! 자, 원하는 걸 말씀해보시오! 재료만 충분하다면 총도 만들어 드릴 수 있소!”
이 드워프들의 기술력은 내 생각보다 훨씬 발전해 있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근처에 기계같은 것들이 보인다.
“제가 원하는 건 갑옷과 검, 그리고 망토입니다. 갑옷은 가벼우면서도 단단했으면 좋겠고, 검은 내구도를 제일로 했으면 좋겠습니다. 망토의 경우 추위를 막는 효과가 있어야 합니다.”
“음.”
내 말을 들은 드워프들을 서로를 쳐다보더니 다시 병나발을 입에 물었다.
“에잉. 시시하구만.”
“난 또 도살 마차를 만들어 달라고 할 줄 알고 기대했건만….”
“저번에 온 행상인은 최근에 총이 유행한다고 했는데… 구라였나.”
드워프들은 실망한 것 같았다.
“갑옷과 검이라… 기사였소? 이곳에 직접 보낸 걸 보면 그대는 각하의 신임을 받는 기사겠군.”
“뭐… 비슷합니다.”
나는 대충 말했다. 그들에게 나와 엘레나의 관계를 밝힐 수는 없었다.
“혹시 원하는 디자인이 있소? 최대한 그대의 요구에 맞춰주겠소.”
“어… 일단 간지가 있었으면 좋겠군요. 묵직하면서도 날렵하고, 너무 크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작지도 않고.”
“거 참. 그렇게 말하면 어쩌겠소. 대충 원하는 모양을 그려보시오.”
데이먼스가 내게 종이와 연필을 건네주었다. 나는 연필을 쥐고 종이에 내가 원하는 갑옷과 검의 모습을 그려갔다.
객관적으로 봐도 못 그린 그림이었다. 하지만 대략적인 윤곽이나 형태를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건틀릿의 이건 무엇이오? 암기요?”
“히든 블레이드입니다. 손등에서 나오는 검이죠. 혹시 불가능합니까?”
“불가능한 건 아니오. 단지 실용성은 그리 없을 것 같아서 그러오.”
“일단?간지가 나니 이렇게 만들어주십시오. 실전에서 쓸 일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흐음…, 알겠소. 근데 이 검 말이오. 끝이 뭉툭한 것 같은데 의도한 것이오?”
“아, 제가 잘 못 그려서 그렇습니다. 검은 단단하고 날카롭게 만들어주십시오.”
“검의 이 해골 장식은 꼭 필요하오?”
“멋지지 않습니까? 지존검이라는 느낌이 팍팍 들지 않습니까?”
“아니. 섬뜩하게만 보이오. 이런 검을 가지고 다닌다면 사람들은 그대의 품격을 의심하고, 우리 드워프들의 취향을 욕 할 테니 빼겠소.”
“그러시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검의 장식은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았다.
“망토는?”
“붉은색으로 해주십시오.”
“알았소. 대충 일주일은 걸릴 것이오.”
데이먼스는 종이를 갈무리하고 나를 빤히 쳐다봤다.
“……제게 뭔가 원하는 게 있습니까? 맥주라면 더 드리겠습니다.”
“맥주를 더 준다니… 사양하지 않겠소. 헌데 혹시 사용하고 있는 무기가 있으시오? 있다면 보고 싶소만.”
“제 무기를… 말입니까?”
왜지. 나는 경계심 섞인 눈으로 데이먼스를 쳐다봤다. 슬쩍 주위를 보니 다른 드워프들도 나를 보고 있었다. 설마 이것들이 내 무기를 훔치려고 하는 건가.
“아, 오해하지 마시오. 우리는 이 마을에서 잘 나가지 않다보니 마을 밖에서 만들어진 무기를 볼 기회가 별로 없소. 견문도 넓힐 기회가 좀처럼 없다는 것이오. 보여주기 싫다면 보여주지 않아도 괜찮소.”
“보여주는 것쯤은 괜찮습니다. 제가 마침 무기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는지라 제법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백환’ 세계의 드워프들이 만든 무기를 꺼냈다. 철뿌리 드워프들의 콧대를 눌러줄 생각이었다. 허나 드워프들은 내가 꺼낸 무기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
“잘 만들긴 했소. 근데 대충 만든 티가 나는군.”
“……대충 만들었다고요?”
내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서리 망치 드워프가 이걸 내게 바칠 때 혼신을 다해 만든 검이라고 했었다.
“좋은 검인 건 맞소. 하지만 우리가 봤을 때 이 검을 만든 장인은 더 좋은 검을 만들 수 있는 실력을 가졌소.”
“흠. 우리 보단 못하지만 꽤 괜찮을 실력을 가진 장인이군. 근데 성격은 영 별로인 것 같군.”
“손잡이 부분이 엉성하군. 이걸 만든 대장장이가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실력은 있지만 장인의 정신은 가지지 못했군.”
빠드득.
나는 이를 갈았다.
‘시발. 내가 요새 편하게 대해주니까 노예 드워프 새끼들이 빠져가지고…. 나중에 돌아가면 정신 교육부터 제대로 해줘야겠군.’
드워프들이 나를 쳐다봤다. 이가는 소리가 좀 크게 울리긴 했다.
“…왜 그러시오. 우리가 너무 막말을 해서 화났소? 화났다면 사과하리라. 우리가 너무 막말을 하긴 했소.”
“일종의 버릇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사실 이건 제가 가진 검중 하나일 뿐입니다. 실제로 사용하지도 않죠. 제가 진짜 아끼고, 실전에서 사용하는 무기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나는 화련비도를 꺼냈다. 무시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드워프들은 화련비도를 보자마자 두 눈을 부릅뜨고 입을 벌렸다.
“이건……!”
“이럴 수가.”
“허어…….”
“엄청 나군…….”
드워프들의 놀라는 모습을 본 나는 만족스러웠다.
“하하. 어떻습니까. 이 붉은색의 칼날이 특히나 죽여주지 않습니까? 정말 볼 때마다 가슴이 웅장해지는…….”
“성유진.”
데이먼스가 진지한 표정으로 날 불렸다.
“옙?”
“이 칼에는 악의가 너무 많이 쌓였소. 요도로 변하기 직전이라 할 수 있소. 드래곤의 비늘로 만든 것 같은데…. 인간을 짧은 시간 내에 학살을 하지 않는 이상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텐데…. 이 칼은 위험하오.”
“위험하다니 무슨…. 칼은 칼일 뿐이지 않습니까.”
“장인이 아니면 칼의 상태를 파악하는 건 어려운 일이오. 그대는 칼을 휘두를 때마다 머리가 아프거나, 괜히 살의가 솟구치지 않았소? 자해를 하고 싶은 욕구도 느꼈을 텐데.”
“아뇨. 아무것도 안 느껴졌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