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6화 〉 376. 신의 아틀란티스
376. 신의 아틀란티스
“마나를 사용한 기척은 없었는데…, 어떻게 밴시를 쓰러뜨린 겁니까?”
“우리 드워프가 잘 하는 게 뭔지 잊었나?”
“……맥주 마시는 게 무슨 상관입니까? 혹시 밴시의 약점이 맥주였습니까?”
“…….”
나와 데이먼스의 사이에 잠깐 침묵이 내려앉았다. 데이먼스는 이내 입을 벌리고 호쾌하게 웃었다.
“하하. 재밌는 농담이오. 우리 드워프들이 맥주를 좋아하긴 하지. 하지만 정답은 아니오. 정답은 내가 가진 장비들이오. 밴시를 잡을 수 없다면, 잡게 만드는 무기를 만들면 되는 것 아니겠소?”
“그렇군요. 저주가 통하지 않는 것도 사슬 갑옷 때문입니까?”
“그렇소. 밴시의 저주는 강한 편이 아니니 이걸 걸치는 것만으로도 버틸 수 있소.”
“밴시가 사라진 자리에 가루가 남던데. 그 가루는 뭡니까?”
“보는 대로 밴시의 가루요. 이걸 이용하면 검을 보다 날카롭게 만들거나, 그대가 원하는 추위를 막는 망토를 만들 수 있소.”
데이먼스가 병에 담은 가루를 흔들었다. 파란색의 고운 가루다.
“먹으면 어떻게 됩니까?”
“그건 나도 모르겠소.”
“흐음.”
나는 나중에 밴시 가루를 도적이나 죄수들에게 먹여보기로 했다. 어쩌면 헤로인이나 필로폰 이상의 마약일지도 모른다.
이후에 철나무 숲의 안으로 들어갈수록 몬스터가 습격해오는 일이 많아졌다. 바퀴벌레보다 빠르게 기어 다니는 괴물쥐보다 허공을 나는 밴시를 상대하는 게 더 편했다. 밴시는 방심하는 것인지 의외로 민첩하지 않았다.
“그대처럼 뛰어난 실력의 전사가 함께해서 편하군.”
“데이먼스 님도 보통 실력이 아닙니다.”
“빈말이란 걸 알지만 듣기는 좋군.”
밴시가 빙의한 철나무에는 가까이 가지도 않았다. 철나무귀가 보이면 바로 피했다.
“철나무귀는 그냥 내버려둡니까?”
“어차피 밴시도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빙의를 풀고 철나무에서 나올 것이오. 철나무귀를 쓰러뜨리려면 강철 같은 나무를 단숨에 베어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어디 있겠소.”
“불을 지르면 되지 않습니까?”
“철에 불이 붙겠소?”
“…….”
우리는 목적했던 백철나무를 발견했다.
다른 철나무 보다 3배 이상 컸고 새하얗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 질문에 데이먼스는 등허리에 달아놓은 쇠도끼를 손에 쥐었다.
“당연히 수액이 나올 때까지 패야 하지 않겠소. 그뒤에 강철 빨대를 꽂아 넣는 거지. 백철나무는 내가 팰 테니 나를 좀 지켜주시오. 꼭 나무를 팰 때마다 몬스터들이 방해 한단 말이지….”
데이먼스가 향해 걸어가는 순간이었다.
낄낄낄낄.
섬뜩한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백철나무의 날카로운 나뭇가지가 채찍처럼 휘둘러졌다. 데이먼스가 깜짝 놀라 옆으로 피하며 내 쪽을 향해 뛰어 왔다.
“허억! 이런 제기랄!”
“밴시입니까?”
“보통 밴시는 백철나무에 빙의할 수 없소. 밴시퀸이 빙의 한 것이오.”
데이먼스는 백철나무를 사납게 노려봤다. 짜증이 가득 담긴 표정이지만 함부로 달려들지 않았다.
“오늘은 공쳤소. 마을로 돌아갑시다.”
“다른 백철나무는 없습니까?”
“있지만 여기선 너무 멀리 떨어져 있소. 시간이 늦었으니 오늘은 마을로 돌아가고 내일 다른 백철나무가 있는 곳으로 가는 게 낫소.”
몬스터 하나 때문에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돌아가야 한다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데이먼스 님. 아무리 생각해봐도 여기 까지 왔는데 그냥 물러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밴시퀸을 끄집어내서 죽입시다.”
“아까 날 공격하는 나뭇가지를 못 봤소? 저 공격은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빠르고 강력해질 것이오. 거기에 백철나무는 일반 철나무보다 훨씬 단단하오. 밴시퀸이 나오지 않는 이상 백철나무를 패야 하는데…. 어휴. 한숨만 나오는군.”
확실히 저건 나라도 힘들 것 같았다. 저 백철나무를 도끼로 패려면 몇 번… 아니, 최소 몇 시간을 두들겨야 한다. 그것도 백철나무귀의 공격을 피하면서.
“데이먼스 님. 철에 불은 붙지 않지만… 전류는 흐릅니다.”
나는 손아귀에 뇌전을 일으켰다. 데이먼스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런데 그걸로 백철나무를 태울 수는 없을 것이오.”
“이건 그냥 뇌전이 아닙니다. 제 생각에는 백철나무에 빙의한 밴시퀸에게도 통할 겁니다.”
빙의 당한 생물을 죽이면 빙의한 밴시도 함께 죽는다. 이 세계의 밴시의 특징이었다.
백철나무를 향해 뇌전을 던졌다. 시퍼런 번개가 백철나무 몸통에 적중한다. 전류가 나무 전체로 뻗어나갔다.
파즈즈즈즈즈즛!
끼아아아아아악!
뇌전과 밴시퀸의 비명이 겹쳐졌다.
“오옷! 효과가 있소!”
“하하. 제 뇌전의 랭크가 무려 S입니다! 밴시퀸이라고 해서 제 뇌전을 버티겠습니까!”
파즈즈즈즈즛!
꺄아아아아악!
뇌전을 던질 때마다 밴시퀸의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신이 나서 연속으로 뇌전을 던졌다.
성난 밴시퀸이 백철나무의 나뭇가지를 조종했다. 나를 향해 나뭇가지가 뻗어 왔으나 1M 거리에서 멈췄다. 나와 데이먼스가 있는 곳은 백철나무귀의 공격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
“하하하하! 일방적으로 공격하니 아주 재밌는데! 내 취향이야!”
“밴시퀸! 우리를 괴롭히던 골치 아픈 몬스터지! 더 하시오! 더!”
데이먼스의 응원대로 공격은 계속 되었다.
그러다 밴시퀸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는지 스스로 빙의를 풀고 백철나무에서 솟구치듯 나왔다.
일반 밴시 보다 1.5배 정도 컸고, 머리에 금간 왕관을 쓰고 있었다.
끼아아아아악!
밴시가 비명을 내지르며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데이먼스 님!”
“걱정말게!”
데이먼스가 내 앞으로 나가며 망치를 휘둘렀다. 망치는 명중했지만 소리는 없었다. 밴시퀸은 옆으로 날아가는 듯 하더니 곧 방향을 고쳐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파지지직!
손에 뇌전을 일으켰다. 그럼에도 밴시퀸은 물러서지 않았다.
끼아아아악!
고통스런 비명을 내지르며 내 몸에 달라붙더니, 내 몸속으로 쑤욱 들어갔다. 마나를 몸을 보호하고 있었지만 밴시퀸이라 그런 것일까 빙의를 막지 못했다.
「밴시퀸에게 빙의 당했습니다.」
「당신의 뛰어난 정신력이 밴시퀸의 빙의를 저항합니다.」
「밴시퀸의 빙의는 풀리지 않았습니다.」
원래 빙의당한 순간부터 정신을 잃고 육체를 완전히 밴시에게 빼앗긴다.
하지만 지금 나는 정신이 멀쩡했다. 문제는 몸을 내 뜻대로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밴시퀸도 마찬가지였다.
“맙소사! 빙의라니!”
데이먼스는 경악하며 내게서 물러났다. 좋은 판단이었다.
“데, 데이, 데이먼스 님…!”
“헉?! 밴시퀸 이놈!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것이냐!”
“아닙니다! 데이먼스 님! 접니다! 성유진! 밴시퀸은 제 정신을 지배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이오?”
“지금 보고 있지 않습니까! 밴시퀸과 나는 몸의 주도권을 두고 싸우고 있습니다!”
나는 간질에 걸린 환자가 발작하는 것처럼 몸을 떨었다. 팔다리가 기괴하게 움직였다. 내 몸에 빙의한 밴시퀸이 앞으로 걸어가려하면 나는 뒤로 움직였다. 내가 마나를 일으키려 하면 밴시퀸이 방해했다.
“…미쳐버리겠군. 내가 어떻게 해야 하오?”
“그건….”
나도 모르겠다. 빙의를 당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고, 빙의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본 적도 없었다.
「마천의 왕이 1,000AP를 후원합니다.
“도움을 원하나? 조건은 앞으로 100일 간 하루에 한 명씩 죽일 것.”」
마천의 왕의 제안에 짜증이 났다.
“닥쳐!!”
“갑자기 왜 그러시오? 내 목소리가 그렇게 시끄럽소?”
“아, 아닙니다. 데이먼스 님에게 말한 게 아닙니다! 밴시퀸이 주제도 모르고 감히 날 유혹하려 듭니다!”
“저런 사악한! 밴시퀸의 유혹에 넘어가지 마시오!”
「천공의 주인이 10,000 AP를 후원합니다.
“촌극을 언제까지 계속 할 셈이냐. 설마 진짜 밴시퀸 따위에게 당하는 건 아닐 테지?”」
“…….”
나는 머리를 굴렸다. 천공의 주인의 시큰둥한 반응을 보면 난 이미 밴시퀸의 빙의에서 벗아날 방법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성유진! 일단 그대의 다리와 팔을 부수고 마을로 데려가겠소! 마을로 돌아가 다른 천천히 빙의를 해제할 방법을 찾는 것이오!”
“허억!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 미친 드워프가 처돌았나!
“방법은 그것 밖에 없소!”
“아니요! 잠시만! 좀 냉정히 기다리십시오! 뇌전!”
파지지직!
내 몸에서 전류가 흐른다. 육체나 마나의 움직임은 여전히 방해받고 있지만 뇌전은 스킬로 되어 있기 때문에 발동 된 것이다. 내 몸에 전류가 흘렸으나 밴시퀸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 내 몸 자체가 뇌전에 피해를 입지 않기 때문이다.
‘기만(SS)을 이용해 상태창을 천마로 바꿔? 아니, 육체가 바뀌는게 아니니까 통할 것 같지 않은데….’
천마신공이 답인가? 어쩌면 천마지체가 빙의에 대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른다.
‘…천공의 주인의 반응을 보면 방법이 있다! ……아!’
감을 잡았다.
“전광석화(電光石火)!”
‘신의 아틀란티스’ 세계에서 가장 최근에 얻었던 스킬을 발동한다.
내 육체가 전신화(電身化) 한다. 육체가 뇌전으로 바뀌면서 그 형체가 일시적으로 사라졌다.
끼에에엑?!
빙의가 풀려났다. 밴시퀸은 내 앞에서 당황하고 있었다.
“만뢰!”
번개가 밴시퀸의 몸을 찢어 발겼다.
「410 AP를 획득합니다.」
밴시퀸이 사라진 자리에는 가루와 팔찌가 떨어져 있었다.
“대단하오! 설마 그런 방법으로 밴시퀸을 죽일 줄이야!”
전광석화는 3초가 지나자 풀리면서 원래의 몸으로 돌아왔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팔찌와 가루를 챙겼다.
「밴시퀸의 가루
여러 곳에 쓰이는 질좋은 재료다.
한기를 막는 효과가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나게 할 수 있다.
랭크: B」
「밴시퀸의 팔찌
여성만 사용할 수 있다.
마나에 따라 일정시간 동안 하늘을 마음대로 날 수 있다.
마나+5
랭크: A」
밴시퀸의 가루는 아직 잘 모르겠고, 밴시퀸의 팔찌는 꽤 괜찮은 물건이었다. 하늘을 나는 능력도 사용하기 나름이고 마나 능력치를 올릴 수 있다는 효과가 좋다. 비록 여성만 사용할 수 있다는 조건이 있지만 말이다.
‘이건… 선물로 줘야겠군. 누구한테 줄까.’
데이먼스가 다가왔다. 나는 재빨리 팔찌를 뒤로 숨겼다.
“걱정 마시오. 그대의 것을 탐할 생각은 없으니. 몸은 괜찮소?”
“예. 몸은 괜찮습니다.”
“……밴시퀸의 가루는 내게 주면 안 되겠소? 맨입으로 달라곤 안 하겠소. 가격은 쳐줄테니….”
“한 번 생각은 해보겠습니다. 일단 백철나무 수액이나 채취하죠.”
보아하니 밴시퀸의 가루는 꼭 대장장이들만 사용할 수 있는 재료가 아니었다. 도시에서 좀 더 비싸게 팔아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데이먼스는 수액을 채취하면서 물었다.
“밴시퀸의 가루는 팔지 않을 것이오? 가격은 후하게 치르겠소.”
“여기 맥주나 한 병 드십시오.”
“키야아아아! 역시 전투 후에 먹는 맥주는 각별하군!”
???
나는 철나무 숲을 자주 찾았다.
마을에서 의미 없이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것보다 철나무 숲의 서늘한 공기 속에서 천마신공을 수련하는 편이 유익하기 때문이다.
그날도 열심히 괴물쥐와 밴시를 죽이며 수련하고 있을 때였다.
평소와 다른 기척을 감지했다.
‘……뭐지?’
괴물쥐와 밴시보다 훨씬 선명하면서도 어두운 느낌이 드는 기척이었다. 나는 기척이 느껴지는 곳으로 움직였다.
허공에 시커먼 연기같은 것이 남아서 점점 흩어지고 있었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움직였다. 앞으로 걸어갈수록 시커먼 연기는 더욱 진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발견할 수 있었다.
그건 시커먼 연기를 8개의 다리에 감싸고 있는 흑마였다.
「월드 리프(僞)가 당신을 쳐다봅니다.」
움찔.
나는 몸을 멈칫거렸다.
월드 리프. 진명 슬레이프니르.
구역 곳곳에 나타나는 위신이다. 길들 일 수 있는데 전투를 벌여 승리해야 한다. 그리고 설령 길들였다고 하더라도 주인의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면 바로 사라진다.
원작의 강명진은 슬레이프니르를 마주치자마자 죽여 버린다. 그에게는 드래곤이 있었기에 슬레이프니르에 대한 미련이 없었다.
‘…지금 내 실력으로 죽일 수 있나?’
「천공의 주인이 100,000 AP를 후원합니다.
“개먹이의 애마로군. 죽여라.”」
10만 AP.
천공의 주인은 그 어느 때보다 진심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지금 여기서 천공의 주인과 날을 세울 수는 없었다. 나는 만뢰로 번개를 쐈다.
“푸힝.”
슬레이프니르는 가볍게 몸을 틀어 번개를 피하고 나를 비웃더니 하늘을 향해 달려갔다. 쫓으려고 했으나 이미 늦었다. 슬레이프니르는 사라졌다.
「월드 리프(僞)가 당신을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