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8화 〉 378. 신의 아틀란티스
378. 신의 아틀란티스
「달의 꽃이 1대1 채팅을 신청했습니다.」
「채팅을 받아들입니다.」
「먹구름을 부르는 푸른 새: ?」
「달의 꽃: 제안할 것이 있어.」
「먹구름을 부르는 푸른 새: 당신이?」
「달의 꽃: 들어줄 거야?」
「먹구름을 부르는 푸른 새: 어떤 제안인지 말하지도 않았잖아요. 일단 들어보죠.」
「달의 꽃: 한 인간을 죽이고 싶어.」
「먹구름을 부르는 푸른 새: 그 인간은 혹시 올림푸스의 지배자의 계약자인가요?」
「달의 꽃: 알고 있어?」
「먹구름을 부르는 푸른 새: 선계에서 소문이 파다해요. 당신이 인간 남자에게 엄청난 모욕을 당했음에도 제대로 된 보복을 하지도 못한다고요. 몇몇 신좌들은 당신을 비웃어요.」
「달의 꽃: …….」
「먹구름을 부르는 푸른 새: 아무튼 제안이 뭔가요? 그 인간에게 저주를 내리라는 제안을 사양하겠어요. 올림푸스의 주신이 뒤에 있는데 제 저주 따위가 통할 리 없어요. 전 올림푸스의 지배자를 적으로 만드는 멍청한 짓을 하고 싶지 않아요.」
「달의 꽃: 네가 직접 움직여 달라고 할 생각은 없어.」
「먹구름을 부르는 푸른 새: 그럼요?」
「달의 꽃: 네 계약자. 그리고 너의 위신.」
「먹구름을 부르는 푸른 새: 계약자는 둘째 치고 위신은 함부로 움직일 수 없다는 걸 알잖아요.」
「달의 꽃: 네 위신이 있던 구역이 공략되었을 때, 네가 편법을 부려 위신에게 자유를 준 것을 내가 모를 줄 알았어? 시스템은 용인한 모양이지만 이의를 제기하는 신좌가 있으면 바로 심사에 들어갈 거야.」
「먹구름을 부르는 푸른 새: 제안이란 게 협박이었나요? 전 위신으로 한 게 별로 없으니 시스템의 제재도 두렵지 않아요.」
「달의 꽃: 너도 내가 그냥 해본 말인 거 알잖아. 제안은 아직 꺼내지도 않았어. 흥미는 있는 거야?」
「먹구름을 부르는 푸른 새: 흥미는 있어요. 이런 일은 따분한 삶을 버티는 감초가 되어주니까요.」
「달의 꽃: 내 제안을 들어주고, 일을 성공시킨다면 다음 아틀란티스와 다다음 아틀란티스가 진행되는 동안 달의 거울을 빌려줄게.」
「먹구름을 부르는 푸른 새: 그 제안이란 건 혹시 그 인간 남자를 죽이는 일인가요?」
「달의 꽃: 맞아.」
「먹구름을 부르는 푸른 새: 잘못 찾아오신 것 같네요. 제 계약자는 전투가 전문이 아니에요. 그리고 위신을 통해 힘을 발휘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어요.」
「달의 꽃: 전투로 죽여 달라는 건 아니야. 그 인간은 여자의 유혹에 약해. 네가 조금만 지저귀어 준다면 그 인간은 바로 넘어 올 거야. 그 인간이 방심했을 때 죽여버려.」
「먹구름을 부르는 푸른 새: 흐응….」
「달의 꽃: 달의 거울이 어떤 물건인지 알지? 안 할 거라면 다른 신좌에게 제안 하겠어.」
「먹구름을 부르는 푸른 새: 누가 안한다고 했나요. 잠깐 이해득실을 계산했을 뿐이에요. 당신이 달의 거울을 내 놓을 정도면 얼마나 그 인간을 싫어하는 거에요?」
「달의 꽃: 그 인간이 눈앞에 있었다면 바로 찢어 죽였을 거야. 그리고 다시 살려서 다시 죽일 거고. 지금도 그 인간을 죽이고 싶어.」
「먹구름을 부르는 푸른 새: 대체 어떤 모욕을 들었기에 그래요?」
「달의 꽃: 몰라? 선계에 소문났다며.」
「먹구름을 부르는 푸른 새: 자세한 내용까지는 알려지지 않았어요.」
「달의 꽃: …말하기 싫어. 제안은 받아들이는 거지?」
「먹구름을 부르는 푸른 새: 달빛이 비추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볼 수 있는 달의 거울이 걸렸는데 당연히 해야죠. 달의 거울은 다른 세계도 볼 수 있다면서요?」
「달의 꽃: 맞아. 제약이 있긴 하지만.」
「먹구름을 부르는 푸른 새: 기대 되네요. 이 일은 제가 직접 나서야겠어요.」
「달의 꽃: 직접? 위신에 빙의를 하겠다고?」
「먹구름을 부르는 푸른 새: 달의 거울은 그 정도 가치는 있으니까요. 그리고 위신은 우리의 분신이지만 미흡한 부분이 있으니까요. 상대가 올림푸스의 지배자의 계약자이니 전력을 다해 할 수 있는 건부 시도해봐겠지요.」
「달의 꽃: 변명은 됐어. 솔직히 말해봐. 그런 이유가 아니지?」
「먹구름을 부르는 푸른 새: 따분해요. 너무 따분해요. 당신이라면 제 심정을 이해할 것 같은데 아닌가요?」
「달의 꽃: 이해해. 이해하고말고.」
「먹구름을 부르는 푸른 새: 가끔씩 밖으로 산책하는 건 좋은 일이에요. 삶을 보다 싱그럽게 만들어주죠. 뭐… 이후에 제재는 받겠지만요.」
「달의 꽃: 난 네가 성공할거라 의심치 않아.」
「먹구름을 부르는 푸른 새: 저도 그래요. 이후에 약속이나 지키세요.」
「달의 꽃: 우리에게서 약속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너도 잘 알고 있잖아.」
「먹구름을 부르는 푸른 새: 농담이죠? 당신에 대해 알고 있는 신좌 중 당신을 쉽게 믿을 이는 아무도 없어요.」
「달의 꽃: …….」
「먹구름을 부르는 푸른 새: 아무튼 이 채팅은 저장했어요. 일이 끝나고 발뺌할 생각이이라면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에요.」
「달의 꽃: 그럴 생각 없어.」
「먹구름을 부르는 푸른 새: 다행이네요. 그럼 다음에 보죠.」
「먹구름을 부르는 푸른 새가 1:1 채팅에서 나갔습니다.」
???
“왔군.”
집무실 책상에 앉은 엘레나가 서류에서 눈을 떼고 나를 보며 말했다. 살짝 미소 짓는데 사람을 깔보는 듯한 비웃음이다. 문제는 아름다운 얼굴과 너무 잘 어울려서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넘어 계속 보고 싶어진다는 점이다.
“어. 왔어.”
나는 그녀를 편하게 대했다. 그녀와 알고 지낸지 벌써 3개월 째다. 서로 서슴 않고 말을 나누는 관계까지는 발전했다. 문제는 그 이상으로 발전하고 있지 못한다는 거지.
엘레나를 강제로 덮치는 건 불가능하다. 그녀가 나보다 더 강하다. 그리고 여기까지 왔는데 강간을 선택하고 싶지 않다.
“철뿌리 드워프들은 어떻지?”
“솜씨 좋던데. 그리고 잘 지내고 있더라.”
나는 엘레나가 티타임용으로 사용하는 테이블 앞의 의자에 앉았다. 자연스럽게 찻주전자로 손을 뻗었다. 그러나 찻주전자 안에는 홍차 찌꺼기만 남아 있었다.
“홍차가 먹고 싶다면 내오라고 시키지.”
“아니야. 다음으로 내가 할 일은?”
“당분간은 몸을 사려라. 너무 많이 나서는 것도 좋지 않아. 네가 속해 있는 레기온이… 에이플랜이라고 했나? 그쪽에 신경 쓰는 게 어떠냐?”
“에이플랜 레기온은 전력을 보강하고 있어서 앞으로 최소 한 달은 시간이 널널해.”
얼마 전에 에이플랜 레기온의 마스터이자, 원작의 주인공인 강명진이 가진 알에서 청룡이 부화했다. 강명진은 막 태어난 새끼 청룡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천마로서 내가 만든 세력인 마풍단은 아직 도적단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마풍단주인 아마드의 말에 따르면 순조롭게 성장하고 있다고 하니 지금은 그냥 내버려둘 생각이다.
나는 엘레나를 쳐다봤다. 엘레나는 다시 서류를 살펴보고 있었다.
“엘레나.”
“응?”
“바다에 놀러가지 않을래? 내가 괜찮은 숙소를 아는데.”
“그러고 싶지만 여유 시간이 없군. 여기 쌓여 있는 서류들이 보이지 않나?”
“적당히 부하들에게 떠넘기지 그래? 믿을만한 부하는 많잖아.”
‘백환’ 세계의 나는 내 입지가 걸릴 정도로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유리아에게 맡겨 버린다. 유리아는 또 다른 우수한 메이드에게 일을 맡기는 식이다. 이렇다보니 일은 여유롭게 처리하고 있다.
“믿을 만한 부하는 많지. 하지만 정말로 모든 걸 믿을 수 있는 부하는 없다. 넌 자신의 목숨까지 맡길 수 있는 부하가 있나?”
“있는데.”
내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내 대답이 의외인 듯 그녀가 나를 쳐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있다고? 농담으로 하는 거짓말이 아니라?”
“있고말고.”
“…….”
유리아가 그렇다. 다른 메이드들도 믿음직 하긴 하지만 목숨을 맡길 수 있는 건 유리아가 유일했다.
“너는 그 부하에게 가문을 맡길 수 있나?”
“그 정도야 뭐. 지금도 맡기고 있지. 아마 유리아가 아니었으면 망했을 걸.”
“유리아? 여자이름이군. 그 여자에게 가장 큰 비밀과 약점을 알려줄 수 있나?”
“이미 알고 있어.”
“그 여자가 너를 위해 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너의 모든 것을 뺏지 않을 것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하나?”
“아마… 내가 죽으라고 명령하면 죽을 걸?”
실제로 그런 명령을 해본 적은 없어서 확신할 수는 없다.
엘레나는 팔짱을 꼈다.
“네가 그렇게까지 믿는 부하가 있다니…. 한 번 만나보고 싶군.”
“애석하게도 지금 당장 만날 수 없어.”
“……너는 모든 것을 걸고 믿을 수 있는 누군가가 있고, 나는 그런 인물이 없을 뿐이다.”
엘레나가 이야기는 끝났다는 듯이 다시 서류에 고개를 처박았다.
나는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엘레나. 넌 나를 어디까지 믿고 있어?”
“너라면 언제든지 내 등을 찌를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아니면 나를 강간하려 하겠지.”
엘레나는 내 행실을 알고 있었다. 그것도 꽤나 자세히.
“아니. 강간할 생각은 없어.”
“그거 의외로군. 그럼 우선 음탕한 시선으로 날 보고 있는 눈 좀 치워주지 않겠나?”
“난 평소처럼 보고 있는데.”
“평소에도 날 덮치고 싶어 하는 걸 모를 줄 알았나?”
“…….”
엘레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 심심하면 일을 주마.”
“일이라…. 보상은?”
“나의 신뢰도.”
“엄청난 보상이잖아. 지금 바로 할게. 뭘 하면 돼?”
“농담이다. 일의 보상을 그딴 걸로 줄 리가 있나. 기사 작위를 주겠다.”
“무슨 일인데?”
“제 3,008 구역, 백금 호수에서 이상한 소문이 나돈다더군. 가서 진상을 조사하고 돌아와라.”
시시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엘레나의 일을 돕기로 했다. 엘레나의 신뢰를 얻기 위한 목적만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받는 기사 작위. 그게 있으면 보다 편하게 유스티아 제국의 구역을 돌아다닐 수 있으니까. 그 외에도 제국 내에서 여러 혜텍을 누릴 수 있다.
“받아라.”
엘레나가 던져주는 걸 받았다.
“하얀 방패 조각품? 방패에는 나비가 그려져 있네?”
“백금으로 만든 훈장이다. 간단히 발데르트 훈장이라고도 하지. 그걸 가졌다는 건 내게서 기사 작위를 받았다는 뜻이다.”
“…아직 일은 시작도 안 했는데?”
“간단한 일이지 않나. 미리 주는 보상이다. 그리고 그걸 가지고 있는 편이 보다 수월하게 조사할 수 있겠지.”
“고마워. 잘 쓸게.”
“내게 충성을 맹세하지 않나?”
“충성을 맹세합니다.”
내가 장난스럽게 말하자 엘레나는 피식 웃어 넘겼다.
???
제 3,008 구역으로 가는 길. 나는 한 여자와 마주쳤다.
긴 하얀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였다. 키는 150cm 정도로 작았지만 몸의 비율이 좋았다. 가슴도 D컵이고, 골반도 도드라져 여성의 매력을 풍긴다. 입고 있는 옷은 새하얀 천이다. 중국의 무협 드라마에서 나올법한 디자인이다.
그녀는 죽은 갈색말 앞에 서있었는데 곤란한 듯 손을 꼼지락 거렸다.
참새가 어찌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리오. 나는 당장 한 걸음에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무슨 일입니까?”
그녀가 나를 돌아봤다. 하얀 머리카락과 붉은 눈. 그리고 새하얀 피부. 그녀는 어딘가 어벙한 분위기를 흘렸다.
“…가, 갑자기 말이 죽어버렸어요.”
목소리와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녀가 긴장하고 있는게 여실히 느껴졌다.
‘낯선 남자가 다가오니 그럴 수 있지.’
나는 품에서 기사 훈장을 꺼냈다. 여긴 유스티아 제국의 영역이고, 제국내의 인물들은 대부분 훈장을 알아봤다.
“…뭐, 뭔가요?”
“발데르트 기사 훈장입니다. 발데르트 공작 각하께 수여 받았죠.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 꺼냈는데 모르시나보군요.”
“아…. 네. 전 추방자라서…. 죄송해요.”
“하하. 뭘 죄송할 것까지야. 저도 추방자입니다. 이름은 성유진이고 에이플랜 길드 소속이죠. 아가씨는?”
“우왕성 레기온의 옥정이에요.”
옥정이 내 눈치를 살폈다.
우왕성 레기온.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레기온이었다.
“곤란해 보이시던데 무슨 일입니까?”
“그게… 말이 죽어버렸어요.”
나는 말을 쳐다봤다. 옥정에게 시선이 팔려 말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었다.
“……음? 말의 몸에 상처가 전혀 없습니다만….”
“네. 갑자기 죽어버렸어요. 심장마비 같은 게 아닐까요?”
“사람도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을 수 있는데 말도 그럴 수 있죠. 옥정 씨는 말을 계속 보고 있으시던데… 이 말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아뇨, 그게…. 말의 시체를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서요.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 될 것 같고….”
“하하. 그냥 내버려두시면 짐승들이 알아서 처리 할 겁니다. 그런데 혹시 백금 호수로 가는 길이셨습니까?”
“그럼 저랑 함께 가시죠. 저도 백금 호수에 볼일이 있습니다. 기사인 제가 옥정 씨를 지켜드리겠습니다.”
“정말요? 부탁 드려도 될까요?”
“전 기사입니다. 기사. 곤란한 레이디를 돕는 건 당연한 일이지요.”
나는 은근슬쩍 옥정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옥정은 떨떠름하고 어색한 표정을 지었지만 내 팔을 뿌리치지 않았다.
“부, 부탁드릴게요.”
쉬운 년이다.
“맡겨만 주십시오. 제가 옥정 씨의 안전을 책임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