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388 - 388. 신의 아틀란티스 (168/2,000)

〈 388화 〉 388. 신의 아틀란티스

388. 신의 아틀란티스

5명 째의 무희를 따먹자 서서히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

“무희들의 점술은 만족스러웠습니까?”

“그래. 무희들의 점술 실력 뛰어나더군.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만족하셨다면 다행입니다. 저녁과 머물 곳은 있으십니까?”

“이제 찾아봐야지.”

로므렝의 두 눈이 빛난다.

“성유진 감찰관님을 저희 피시앙 가문으로 초대하고 싶습니다.”

“…뭐, 신세 좀 질까.”

“신세라뇨. 감찰관님이 저희 저택에 머물러 주시는 것만으로도 크나큰 영광입니다.”

“다음 무희에게 안내해라.”

“……아, 알겠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최근에 도시로 온 무희가 있습니다.”

나는 무심하게 그를 쳐다봤다. 무희라고 해서 다 똑같은 무희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몇 시간 전,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무희로 안내하는 바람에 내게 갈굼당한 적 있는 로므렝은 긴장감이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미모가 아주 뛰어납니다. 도시내의 건장한 청년들은 물론이고 노인들, 그리고 귀족들까지 그 무희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호오.”

로므렝이 감히 거짓말을 하지 않을 테니 흥미가 갔다.

“다만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

“일반 무희와 다릅니다.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렇다고 해야 하나…. 다른 무희들 보다 훨씬 도도합니다. 몇몇 귀족들이 자신들의 저택으로 초대했는데도 모두 거절했습니다. 그중에는 무희에게 청혼을 한 귀족도 있었습니다.”

내가 겪은 무희와 다르게 쉽게 보지를 벌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 무희가 그렇게 도도한데 무사히 일을 하나?”

“무희의 전투력이 상당히 높습니다. 그리고 워낙 유명해지다보니… 수 천 명이 그녀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쉽게 건들 수도 없습니다.”

“좋아. 그 무희를 보고 싶군. 그 무희는 어디가면 볼 수 있는 거지?”

“저녁마다 광장에서 임시로 만든 무대에서 춤을 춥니다. 귀족이든, 평민이든 일정한 돈만 내면 그녀를 볼 수 있습니다. 안내하겠습니다.”

수 천 명을 홀린 무희라. 어떤 여자일지 상당히 기대가 되었다.

???

수 천 명의 남자들이 무대 위에 올라선 무희를 보며 멍청하게 입을 벌렸다. 그러나 나는 남자들을 비난 할 수 없었다. 남자들의 멍청한 상판이 이해가 갈 정도로 무희의 미모가 뛰어났으니까.

긴 남청색의 머리카락, 깊은 파란 눈동자. 새하얀 피부와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눈매는 약간 치뜬 느낌이 있어서 그녀의 높은 자신감을 표현하는 것 같다.

입고 있는 옷은 몸에 달라붙어 몸매를 드러나게 하는 의상이다. 그러나 보통의 무희들의 옷과 다르게 디자인적으로 선녀의 날개옷을 떠올리게 만든다.

가슴은 봉긋하고 허리는 잘록하다. 둔부의 곡선을 황금률을 포함한 것 같다. 팔과 다리도 최적의 비율을 가지고 있으며 어디 흠잡을 곳이 전혀 없었다.

“오늘도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흔히 말하는 옥구슬이 흘러가는 듯한 목소리였다.

“네에에엡!!”

이곳에 모인 수 천 명의 남자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나는 잠깐 어이가 없었다. 여긴 아이돌 콘스터였나.

“경매를 진행할게요! 오늘 제게 점술을 받고 싶으신 분은 경매에 참가 해주세요! 그럼 100만 페니부터 시작!”

참고로 여기 입장하기 위해선 2만 페니를 내야했다.

2만 페니. 한화로 20만원. 내게는 아무 부담도 되지 않는 가격이지만, 평민들에겐 무희의 춤을 보겠다고 내기엔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뭔가 이해가 안 가는데. 확실히 엄청난 미녀인건 맞아. 허나 다른 사람들이 2만 페니를 내고 공연을 볼 정정도로 예쁜 건 아니야. 춤을 미친 듯이 잘 추는 건가? 이런 많은 사람들 앞에서 스트립쇼를 하는 것도 아닐 테고.’

경매 금액은 순식간에 300만 페니를 넘겼다.

나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로므렝을 쳐다봤다. 로므렝은 사랑에 빠진 남자같은 표정을 짓고는 무희를 계속해서 쳐다보고 있었다.

“저 무희의 이름이 뭐라고?”

“아, 저 무희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특이한 무희군. 경매를 낙찰 받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특별 손님이 되어 무희의 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용하나?”

“아뇨. 용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바로 앞에서 무희를 볼 수 있다는 특권을 가집니다.”

“…….”

나는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경매는 이제 500만 페니로 넘어가고 있었다. 환화로 5,000만 원. 점술가로서 용하지도 않은데 5,000만 원을 내고서 점을 보겠다고? 특별 손님이 그렇게 탐나는 자리인가?

‘상인들도 망설이 없이 돈을 쓰잖아. 부자 상인이 아닌 이상 이런 유희거리에는 큰돈을 잘 쓰지 않으려 하는 게 상인들인데… 바람잡이인가?’

경매의 열기는 700만이 넘어가자 급속도로 식기 시작했다.

“721만 나왔네요! 더 없으신가요?!”

“722만!”

“723만!”

“어림도 없지! 724만!”

“크으…. 제길. 내게 돈이 더 있었더라면…!”

“나도 코앞에서 무희를 보고 싶었는데!”

“750만!”

한 남자가 마지막 쐐기를 박듯이 외쳤다. 콧수염을 기르고 배가 볼록 튀어나온 중년 남자였다. 입고 있는 화려한 붉은 코트를 보니 귀족이 확실했다.

“750만! 더 없으신가요?!”

무희가 주위를 둘러봤다. 기분 탓일까. 나와 두 눈이 마주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외쳤다.

“800만!”

“……!”

느닷없이 50만을 올릴 줄 몰랐는지 좌중이 경악하며 나를 쳐다봤다.

중년 귀족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벌떡 일어나 나를 노려봤다. 마치 커다란 모욕이라도 당한 듯한 태도였다.

중년 귀족이 씹어뱉듯이 말했다.

“801만…!”

중년 귀족은 무언으로 말하고 있다. 여기서 그만두라고. 그만두지 않는다면 후회할 거라고.

나는 그를 비웃으며 외쳤다.

“900만!”

“…….”

중년 귀족이 내 얼굴을 한 번 쏘아보고는 입술을 꾹 닫고 자리에서 앉았다.

“900만! 더 이상은 없으신가요?”

좌중은 조용했다.

“900만을 외치신 분! 무대 쪽으로 나와 주세요!”

나는 남자들의 부러움과 질시어린 시선을 받으며 무대를 향해 걸어갔다.

무대 앞에 있는 스태프에게 돈을 지불하고, 무대 위의 의자에 앉았다.

무희가 성큼 다가왔다.

아찔한 향기가 확 풍겨왔다. 향수는 아니다. 수많은 여자를 품에 안은 나는 일종의 살내음이란 걸 알아차렸다. 설마 옷을 껴입고 있는 여자한테서 이런 냄새를 맡을 줄 몰랐다.

자지에 살짝 반응이 왔다. 무희는 내 고간을 힐끗 보고는 요염하게 웃었다. 나는 그녀를 당장 덮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익숙한 충동이다.

나는 미녀를 볼때 마다 덮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무엇을 알고 싶으신가요?”

“너에 대해 알고 싶은데.”

“우우우우우우우우!”

사방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나는 욱하려다가 무시했다. 저것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날 질투하는 것 밖에 없다.

“호호. 농담도 잘 하시네요.”

“내가 목적을 이룰 수 있는지 한 번 쳐줘.”

“당신의 목적이 뭔가요?”

“…….”

널 따먹는 거라고 말할 수 없었다.

내가 입을 다물자 그녀는 미소 지으며 무대 중앙으로 향했다.

무대 밖에서 연주 소리가 들렸다. 느리면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음악이었다.

무희가 천천히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를 비롯해 모든 남자들은 무희에게 홀린 듯이 쳐다봤다. 무희의 옷은 노출도가 작았다. 기껏해야 종아리와 팔목 일부를 노출하는 것이 전부였다. 허나 보고 있으면 괜히 아래쪽에 힘이 들어가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무희의 춤은 빠르지 않고 느릿했으나 시선을 뗄 수 없는 우아함이 있었다. 그녀의 손짓 한 번에 푸른 하늘을 유영하는 구름이 떠오르고, 그녀의 걸음 걸이에 폭포가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어느 순간부터 무대 위에 물길이 일었다.

무희의 움직임에 따라 물길이 중력을 무시하며 움직였다. 승천하는 용처럼을 하늘을 올랐으며, 회전하는 팽이처럼 빙빙 돌기도 했다.

나와 관중들은 그녀를 멍하니 쳐다봤다.

그리고 어느새 무희의 춤은 끝났다.

땀에 젖은 무희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점술 결과가 나왔습니다! 물이 제게 알려주었지요. 당신의 목적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거 고맙군.”

무희가 말하면서 몰래 내게 건네는 쪽지를 놓치지 않았다.

무희는 무대 중앙으로 가더니 외쳤다.

“오늘의 점술은 이걸로 끝입니다! 내일도 찾아와주세요!”

무희는 망설임 없이 무대 뒤편으로 떠났다. 관중들은 아쉬움을 토로하며 자리에서 흩어졌다. 수 천 명이 광장에서 사라지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손에 쥔 쪽지의 내용을 힐끗 쳐다봤다.

[오전 1시. 서쪽 분수대에서 당신을 기다릴게요.]

‘크흐흐…. 내 재력에 반했나? 아니… 아까 내 고간을 보더니… 내 자지를 보고 반했을 수도 있겠군. 보통 년이 아니야.’

어쩌면 내가 감찰관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네놈!”

배 나온 중년 귀족이 무대 위에 있는 나를 향해 걸어왔다. 난폭한 발걸음으로 자신의 분노를 표현한다. 중년 귀족의 주위에는 칼을 허리에 찬 건장한 체격의 남자들이 있었다. 호위인 모양이다.

그들의 뒤쪽에는 멍하니 앉아있던 로므렝이 헐레벌떡 이쪽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

나는 중년 귀족을 말없이 쳐다봤다.

중년 귀족은 내가 겁먹었다고 생각했는지 거만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네놈! 내가 누군지 아느냐? 내가 이 구역을 지배하는 8기둥 중 하나, 하르통 자작이다! 네놈이 내게 준 모욕! 그냥 넘어 갈 거라 생각하지마라! 최소한 팔 한 짝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

중년 귀족은 주위에 있는 세 명의 호위병들에게 빼액 소리 질렀다.

“뭐하냐! 네놈들에게 돈을 주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느냐! 놈을 잡아!”

“…형씨. 운수가 아주 나쁘구만. 돈은 많은 것 같은데 차라리 돈으로 배상하는 것이 어떻수?”

“호오! 나쁘지 않군! 천 만 페니다! 천만 페니를 배상한다면 나를 모욕했던 일을 잊어주마.”

“선을 넘었군.”

퍽!

중년 귀족의 얼굴에 주먹을 꽂았다. 주먹을 정통으로 맞은 놈이 피와 이빨을 흘리며 바닥을 굴렀다.

채앵!

호위병들이 검을 뽑았다. 그들이 자세를 잡고 내게 달려드려는 찰나, 이쪽으로 달려오던 로므렝이 외쳤다.

“이 자식들! 감히 감찰관님을 해치려드는 것이냐!”

“……감찰관?”

호위병들이 당황했다. 그들은 검을 쥐고서 내게 달려들지 못하며 눈치를 살폈다.

“우, 웃기지 마라! 어디서 거짓말을 하는 것이냐!”

중년 귀족이 내게 벌떡 일어나 내게 삿대질을 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그 얼굴 앞에 엘레나가 준 임명장을 보여주었다. 놈의 얼굴에서 핏기가 싸악 가시는 순간이었다.

“마, 말도 안 돼…! 발데르트 공작의 감찰관이였다고…?!”

“내 팔 한 짝을 내놓아야 한다고 했나? 넌 모든 걸 내놓아야 할 거다.”

나는 멍하니 있는 호위병의 검을 강탈해 휘둘러 하르통 자작의 양팔과 양다리를 잘라냈다.

“끄아아아아아아악!”

포션을 꺼내 비명을 지르며 꿈틀 거리는 하르통 자작에게 대충 부었다. 성질대로 하긴 했으나 죽게 내버려 둘 생각은 없었다.

‘무희 때문에 800만 페니를 쓸 정도면 재산이 많고, 여자를 밝히겠지. 아내가 미인이겠어.’

호위들을 비롯해 아직 이곳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아연히 나를 쳐다봤다.

“서, 성유진 감찰관님!”

“시끄럽다. 로므렝.”

“그, 그는 시의회의 귀족인 하르통 자작입니다!”

“그는 나를 모욕했다. 내 돈을 갈취하려 했으며, 나를 죽이려고 했지. 로므렝. 하르통 자작의 저택으로 날 안내해라. 감찰관의 권한으로 하르통 자작의 모든 것을 감사할 것이다. 또한 하트롱 자작의 죄목이 명확하니, 내일 낮에 하르통 자작의 재판을 열겠다.”

“재, 재판이라니. 감찰관님은 그럴 실 권한이….”

“있다. 하르통 자작을 제외하고도 5인 이상의 귀족이 있을 경우 나는 내 권한으로 재판을 열 수 있다. 판사는 나다. 하르통 자작은 감찰관인 나를 죽이려고 했다는 것을 잊지 마라.”

“…….”

판사역을 맡는 것 까지는 권한이 좀 넘어가긴 한데, 어차피 감찰관은 기간한정 직위니 막지를 생각이다.

‘그리고 천년공과 엘레나가 이딴 놈을 신경 쓸 리 없지. 특히나 천년공은 이런 일에 관심이 없고, 명분은 내게 있다.’

나는 얼빠진 얼굴의 로므렝을 다시 한 번 불렸다.

“로므렝.”

“네, 넵!”

“안내하기 싫다면 하지 않아도 된다. 하르통 자작의 저택에는 내가 찾아가지.”

“아닙니다! 하겠습니다!”

욕심 많은 하르통 자작의 아내는 얼마나 이쁠까. 나는 조용히 입맛을 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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