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390 - 390. 신의 아틀란티스 (170/2,000)

〈 390화 〉 390. 신의 아틀란티스

390. 신의 아틀란티스

재판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판사는 내가 직접 맡았고, 하르통 자작의 변호사는 처음에 사형은 너무 심하다는 말을 하고 난 뒤 침묵을 유지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 재판은 형식적인 일에 불과했다.

증인과 증거는 완벽했고, 시의회의 귀족들 중 누구도 하르통 자작을 구하려 들지 않았다. 하르통 자작은 그들의 동업자인 동시에 경쟁자였다. 내가 귀족들의 뇌물을 받아 귀족들의 죄를 모르는 척 해주는 대신으로 하르통 자작은 처형당한다.

피곤한 얼굴로 앉아 있는 하르통 자작 부인은 하르통 자작의 눈길을 피했다. 그녀는 오늘 아침까지 나와 침대에 뒹굴었다. 그 보지에는 아직도 내 정액이 가득차 있을 것이다.

하르통 자작 부인은 작위와 재산 40%를 받기로 했다. 60%는 내꺼다. 원래는 20%를 남겨주려고 했는데 하르통 자작 부인과의 잠자리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따라서, 하르통 자작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이의 있나?”

재판에 참여관의 자격으로 참석한 5명의 귀족들을 쳐다봤다.

귀족을 처형하는 재판인 만큼 참여관들의 동의가 필요했다. 1명이라도 반대하는 순간 재판은 연기된다. 다만 내가 재판을 열 수 없고, 법관들로 하여금 재판을 하게 된다.

“…….”

귀족들이 침묵을 지키자 초조해진 건 하르통 자작이었다. 팔다리가 없는 그는 의자에 묶인 상태로 고래고래 소리쳤다.

“자네들! 누구 한 명이라도 좋네! 이의를 제기해주게! 내 사례는 반드시 할 테니! 어서! 빨리!”

“…….”

“우리들의 신의가 겨우 여기까지였나?! 우리 함께 잘 해오지 않았나! 앞으로 잘 해낼 수 있어! 제발! 이의를! 이의를 제기해주오!”

“…….”

귀족들은 여전히 침묵했다.

“브리짓!”

그가 자신의 부인을 불렸다.

“넌 내가 갇혀 있을 동안 뭘 한거냐! 어떻게든 날 구하려고 했어야지!”

“흑… 흑흑….”

“울지만 말고 뭐라도 해보란 말이다! 으아아아아아악!”

나는 하르통 자작의 발악을 지켜보면서 나무 망치를 세 번 두들겼다.

땅땅땅!

“아아아아아악! 감찰관님! 한 번만! 한 번만 봐주십시오! 제발! 뭐든지 하겠습니다!”

“병사들. 판결이 떨어졌다. 보고만 있을 거냐?”

병사들이 움직여 하르통 자작을 데리고 광장으로 향했다.

그는 광장에 준비된 교수대에서 목이 매달려 죽었다.

???

재판이 끝나고 나는 내게 몰려드는 귀족들을 상대해야 했다. 귀족들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이 구역에서 백작 이상의 작위를 가진 귀족은 없었기에 나는 마음껏 권력을 부릴 수 있었다.

그들은 속으로 나를 미친놈이라고 욕하겠지만 하르통 자작이 처형된 걸 본 이상 최대한 사리려고 할 것이다.

“감찰관님. 좋은 식당을 알고 있는데 함께 점심 식사를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감찰관님이 무희를 좋아하신다는 말을 듣고 무희를 수소문하고 있습니다.”

“감찰관님께 드리고 싶은 선물이 있습니다. 제게 시간을 내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나는 귀족들의 말을 뿌리치고 로므렝을 불렸다.

“미안하군. 여기 있는 로므렝과 선약이 있다. 다음에 찾아가도록 하지.”

나는 로므렝과 함께 피시앙 가문으로 향했다.

로므렝의 형수는 과연 하르통 자작 부인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미색을 가지고 있었다. 부드러운 갈색 머리카락에 살짝 처진 눈 꼬리. 다정다감한 분위기를 흘리고 있었다.

‘흐흐…. 작업을 시작해볼까.’

어려운 작업은 아니었다. 피시앙 가문의 꼬투리를 잡아 내 권한을 적극 이용하여 로므렝의 형제를 가주 자리에서 끌어내는 것이다. 로므렝의 형수의 경우 가주를 죽이지 않는 조건으로 몸을 요구하면 된다.

‘완벽하군!’

???

저녁이 되었을 때. 나는 리제트를 찾아갔다. 이번에도 내가 특별 손님이 되어 그녀의 덕담을 들었다.

“이번에도 좋은 결과가 나왔어요. 하시는 일이 모두 잘 풀릴 거에요.”

춤이 끝난 후, 나는 그녀와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나와 리제트가 사귀는 사이라는 소문이 도시 전체에 퍼지고 있었다.

스테이크를 썰면서 그녀가 내게 물었다.

“내일, 운명의 미로에 가신다고요?”

도시 지하에 있는 미로. 자신의 운명을 엿볼 수 있다는 미로. 내가 이 도시에 온건 운명의 미로에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원래 오늘 갈 생각이었지만 일이 있어서 내일로 미뤄졌지.”

“감찰관님은 운명을 믿으세요?”

“어.”

여기가 현실이었다면 단호히 고개를 저었을 테지만, 이 세계는 창작물 속 세계다. 소설에는 커다란 줄거리가 있고, 그건 달리보면 운명이나 다름없다.

“의외네요. 운명의 미로에 들어간다고 해서 꼭 운명을 보는 것도 아니라고 들었는데…. 감찰관님이 미로에서 운명을 보길 기원할게요.”

“고맙군.”

짠.

포도주가 담긴 잔이 부딪혔다.

고급 여관으로 그녀를 바래다 준 나는 뒷목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리제트에 대한 정보를 알아냈다. 그녀는 2년 전에 갑자기 나타났다. 추방자가 아닌 대륙인이다.

추방자는 처음 아틀란티스 입장할 때 ‘제 1 구역, 시작의 교당’에 나타난다. 자연스레 추방자는 시작하자마자 기록이 남는다. 그런데 리제트는 기록이 없었다. 그녀가 대륙인이라는 증거다.

‘이름을 바꿨다고 하더라도 저 미모인데 눈에 띄지 않을 리가 없지. 리제트는 2년 전, 갑자기 4,407 구역에 나타났지.

제 4,407 구역, 연초의 초원.

평화롭고 한적한 구역이다. 몬스터도 존재하지 않는다. 구역내에 커다란 호수가 있으며 낚시를 즐기기에 최적이라 한다. 이 구역을 찾는 사람들은 대게 2가지 이유다. 힐링 휴가를 보내거나, 남은 여생을 평화롭게 보내기 위한 것.

‘리제트는 아틀란티스 곳곳을 여행 다닌다는 정보가 있어. 그리고 무희같은 눈에 띄는 일은 전혀 하지 않았지.’

갑자기 이 도시에서 무희로 활동하는 건 왜일까. 돈이 부족해서? 그 가능성은 적다. 이제까지 잘 여행해온 그녀가 갑자기 돈이 부족할 리가 없지 않나.

‘옥정에게 리제트에 대해 물어봤지만, 옥정은 리제트가 누군지 몰라.’

나는 옥정에게 신좌, 먹구름을 부르는 푸른 새와 대화해보라고 했다. 허나 신좌는 옥정에게 신경을 꺼버린 듯 몇 번을 불러도 묵묵부답이라 한다.

‘……억측은 좋지 않아. 하지만 만약 진짜라면….’

입꼬리가 올라가며 미소가 그려졌다.

???

운명의 미로에 입장한 나는 거침없이 움직였다.

운명의 미로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었다.

하나는 다른 누군가의 뜻에 따라 움직여선 안 된다. 길을 정할 때 항상 자신의 의지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싸한 개소리였다.

내가 알고 있는 설정집에 따르면 운명의 미로는 단지 걷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다. 운이 좋고 기회가 된다면 자신의 운명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무서워도 패닉 상태에 빠지지 말고 계속 앞으로 나가라는 것이다. 운명의 미로에는 여러 출구가 있어서 대충 4~5시간 헤매면 결국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된다.

‘우선은 왼쪽을 따라서….’

나는 왼쪽 벽을 따라 계속해서 움직였다. 갈림길이 나오면 당연히 왼쪽을 선택했다. 도중에 사람 몇몇과 마주쳤으나 아는 척 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나왔군. 다섯갈래 길.’

왼쪽에서 4번째 길로 들어섰다. 이번에는 오른쪽을 따라서 움직였다.

‘3개의 길 중에서 2번째 길로 들어가고….’

멈출 줄 모르던 발걸음이 멈칫했다. 시야에 노이즈가 끼는 듯 하더니 생소한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붉은 광경이었다. 무언가가 있는 것 같은데 노이즈가 심해서 뭐가 뭔지 모르겠다.

시야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게 내 운명이라고? 무슨 뜻이지?’

허공을 계속 노려봤지만 아까같은 무언가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포기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2시간 정도 지나서였다.

3개의 길이 나타났다.

첫 번째는 시커먼 길이었다. 한치앞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두운 길. 심연으로 향하는 길이 아닐까 걱정 될 정도다.

‘뭔가 괴물같은게 튀어나올 것 같지만 실상은 아무것도 없어. 어느 순간 미로 어딘가로 공간 이동을 하게 되지.’

두 번째는 벽에 수정이 박혀 있는 길이다. 이 길을 걷게되면 잊고 있던 옛 기억을 아주 생생하게 떠올리게 된다. 그게 어느 정도 수준이냐면 태어났을 때의 기억까지 알 수 있다.

‘출생의 비밀같은 걸 알고 싶을 때 좋지. 내가 들어가면… 현실의 내 기억이 떠오르녀나? 아니면 아바타의 기억?’

조금 흥미가 가지만 시험해볼 생각은 없었다. 내 목적은 이 길이 아니었으니까.

세 번째는 서리가 껴있는 길이었다. 입구에 서있을 뿐인데 온몸이 얼어붙을 듯한 냉기가 느껴졌다. 보통이라면 안에 들어갔다가 바로 나올 것이다. 아무런 대비 없이 들어갔다가는 얼어 죽을게 확실하기 때문이다.

‘나는 준비해왔지.’

인벤토리에서 붉은 망토를 꺼냈다.

「에르미타의 망토

철나무의 성질을 섬유로 변화 시켜 만든 망토.

뛰어난 내구도를 갖추고 있으며 쉽게 더러워지지 않는다.

높은 추위 내성을 가지고 있다.

랭크: A」

이때를 위해서 철뿌리 드워프들에게 이 망토를 만들어달라고 했다.

어깨 위에 망토를 걸치자 추위가 바로 사라졌다.

‘역시 A랭크. 성능 좋구만.’

서리 낀 동굴 속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설정집에 따르면 이 길은 운명의 찌꺼기들이 모인 곳이다.

운명에 저항하려했으나, 결국 좌절하고 운명에 순응한 자들의 사념과 운명 찌꺼기들이 모인 곳.

「끝내지 못한 정의가 당신을 강타합니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망토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쓰면서 냉기를 버텼다.

「운명의 조각이 당신에게 스며듭니다.」

「민첩이 1 상승합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추위가 느껴졌다.

‘A랭크 추위 내성으로는 부족 한 건가… 아슬아슬하게 될거라 생가갰는데.’

내쉬는 숨결이 곧바로 얼어붙었다.

「산산조각 난 야망이 당신의 가슴에 박힙니다.」

아무느낌 없었다.

‘아마도 정신 계열이었던 모양이군.’

정신 내성 특성이 있는 내겐 아무것도 아니었다.

「운명의 조각이 당신에게 스며듭니다.」

「체력이 1 상승합니다.」

「낫지 않는 병이 당신의 몸을 잠식합니다.」

몸의 온도가 확 줄어든 느낌이 있었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뇌전을 일으켰다.

파지지직.

임시방편으로 뇌전의 전열을 이용해 온도를 높였다. 효과는 있긴 했지만 마나가 빠르게 소모되고 있다.

「운명의 조각이 당신에게 스며듭니다.」

「마나가 1 상승합니다.」

「행운이 1 상승합니다.」

이후에도 계속해서 운명의 찌꺼기들이 나를 공격했다. 도중에 마나가 떨어져 고생 좀 했지만 죽지는 않았다.

「오물 속에서 핀 꽃이 당신의 발목을 꿰뚫습니다.」

「갚을 수 없는 속죄가 당신의 목을 낚아챕니다.」

「58번째의 절규가 당신의 귓가에 머무릅니다.」

이것들을 이겨내면 보상을 받았다. 능력치가 10개가 넘게 올랐기에 만족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막다른 길에 도착했다.

‘시발. 손가락에 동상 걸렸네.’

막다른 길에는 찬란하게 빛덩어리가 있었다. 허공에 두둥실 떠있는 그 빛을 향해 동상에 걸려 푸르딩딩한 손을 뻗었다. 손에는 감각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거… 병원에 가면 당장 절단해야한다고 의사가 소리쳤겠지.’

빛덩어리에 내 손이 닿았다. 그러자 빛덩어리가 내 손에 스며들어 사라졌다.

「운명 파괴자가 당신의 몸에 스며들었습니다.」

「운명 파괴자

딱 1번 운명을 파괴할 수 있다.

랭크: EX」

「‘운명 파괴자’ 칭호가 주어집니다.」

「모든 능력치가 1씩 상승합니다.」

‘손에 넣었다!’

주위 공간이 바뀌었다.

얼어붙어 있던 벽과 바닥이 순식간에 녹았으며, 심장까지 얼려버릴 것 같던 냉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동상에 걸린 손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몸안에 가득차있는 마나가 느껴졌다.

「천공의 주인이 감탄합니다.」

「마천의 왕이 당신을 축하합니다.」

운명 파괴자는 보통 힘이 아니었다. 1회용에 불과하지만 어지간한 신좌 하나는 끝장 낼 수 있는 힘이다.

‘제우스같은 최상위 신격에는 전혀 통하지 않겠지만 이게 어디야.’

나는 기분 좋게 출구를 찾아 움직였다.

‘돌아가서 남작 하나 조지고…, 나한테 뇌물 안 준 새끼들도 조지고… 응?’

바닥에 물이 흐르고 있었다. 어디서 나오는지 모를 물은 계속해서 나왔고, 수위가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미로를 걸었다. 물은 어느새 내 발가락이 잠길 정도가 되었다.

‘뭐지? 내가 운명 파괴자를 손에 넣어서? 아니, 설정집에 그런 건 적혀 있지 않았어.’

물은 어느새 종아리까지 올라왔다.

그리고 7명의 남자들이 나를 가로막아 섰다. 손에 단검, 식칼, 망치 같은 조잡한 흉기를 든 남자들이었다.

“아히… 히히… 널 죽이면… 히히….”

남자들은 하나같이 맛이 간 상태였다.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