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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1 - 401. 헌터의 이상한 세계 (181/2,000)

〈 401화 〉 401. 헌터의 이상한 세계

401. 헌터의 이상한 세계

현실로 돌아온 나는 문자 메시지를 확인했다.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몰라도 신문기자가 날 인터뷰하고 싶으니 편할 때 연락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오늘 하루만 벌써 3개째. 귀찮게.’

최근 전 세계적으로 헌터의 위상이 올라갔다.

중국에서 발생한 몬스터 재난 때문이다. 낮은 등급의 몬스터는 권총이나 소총으로 충분히 제압할 수 있지만, 몬스터의 등급이 높아지면 총 따위로는 어림도 없다.

폭탄과 미사일.

높은 등급의 몬스터도 처리할 수 있다. 다만 세계가 그 만큼 망가진다. 만약 고등급의 몬스터가 도시내에 나타난다면? 그때도 폭탄과 미사일을 마구잡이로 쓸 수 있을까.

‘헌터는 비교적 깔끔하게 몬스터를 죽일 수 있지.’

헌터는 던전에 들어가 몬스터를 사냥하고, 사냥한 몬스터로부터 얻은 전리품으로 세계를 보다 풍족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던전이 터져서 몬스터가 세계로 쏟아져 나오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우우우우웅.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전화가 왔다.

‘헌터 협회?’

협회 쪽에서 먼저 전화를 거는 일은 드물었다. 약간 긴장하며 협회의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긴장은 곧 풀렸다. 생각했던 것만큼 심각한 내용이 아니었다.

“아뇨. TV에 출현할 생각 없다니까요. 저도 헌터로서 활동해야죠. 전 연예인이 아닙니다.”

협회는 내게 TV 프로그램 몇 개에 출현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지금의 나는 대한민국에서 떠오르고 있는 헌터 중 한 명이다.

중국을 긴급 지원을 명목으로 파견되어 성공적으로 살아 돌아왔으며 1년도 지나지 않아 C등급 헌터가 되었다. 게다가 능력은 자연계인 번개이고 몇 번 방송출현을 한 적있다.

헌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내 이름을 전부 알고 있을 정도다. 심지어 길가다가 사인을 해달라는 사람도 만나봤다.

“후우. 인기인의 삶이란 피곤하군.”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려다가 유희 생활 어플을 켰다.

[성유진

레벨: 57

근력: 51 체력: 51 민첩: 51 지능: 33 정력: 54 마나: 50]

[사용가능 포인트: 0 ]

정력이랑 마나 능력치를 올리고 정신 내성의 레벨도 올렸다.

[정신 내성 Lv.9

정신 이상에 대한 내성이 생깁니다. 정신 간섭에 대한 저항력을 가집니다.]

앞으로 한 단계만 더 올리면 정신 내성의 레벨은 10이 된다.

[1,000포인트를 사용해 정신 내성 Lv.9의 레벨을 상승시키겠습니까?]

문제는 포인트가 갑자기 2배 이상 필요하게 된 것이다.

‘내 직감이지만 정신 내성은 레벨 10이 마스터일 가능성이 높아. 그럼 천마신공을 걱정할 필요가 아예 사라지겠지.’

1,000 포인트.

많아 보이지만 모으는 게 어려운 건 아니다. 이제 곧 퀘스트의 쿨타임이 돌아오고, 다른 세계에서 시간을 보내면 자연히 포인트는 쌓일 테니.

나는 유희 생활 어플을 둘러보다가 최근에 랜덤 뽑기에서 얻은 물건을 생각하며 낄낄 웃었다.

[바퀴벌레의 사랑 물약.

바퀴벌레의 사랑 물약을 복용한 대상에게 ‘바퀴벌레의 사랑’ 저주를 건다. 근처에 있는 바퀴벌레가 저주에 걸린 대상에게 들러붙는다. 바퀴벌레가 대상을 갉아 먹을 수 있다.

가격: 300 포인트

※주의

66일 동안 유지 된다.]

엄지 손가락 크기의 병에 담겨 있는 흑갈색 액체.

마음에 안 드는 놈을 66일 동안 괴롭힐 수 있는 물건이다.

‘당장은 쓸데없는 물건이지. 크크크.’

띵동.

초인종이 울렸다.

나는 바로 현관문으로 달려 나가 문을 열었다.

현관문 앞에는 태닝한 갈색 피부와 금발로 염색한 머리카락의 육덕진 몸매를 가진 갸루가 서있었다. 복장도 엄청났다. 엉덩이를 감싸고 있는 청색 미니스커트는 터질 것 같고, G컵을 검은색 탱크탑은 거대한 풍선 같았는데 중심 부위가 삐죽 튀어나왔따.

요시카와 미사.

일본에서 만든 내 좆집.

“…명령대로 노팬티, 노브라로 왔어요.”

“잘왔어. 들어와.”

쿵.

현관문이 닫혔다.

???

오랜만에 대학교에 왔다. 오늘 입학하는 후배들이 궁금해서였다.

‘신입생 중에 내 타입의 여자가 있을 지도 몰라.’

내 타입이 아닌 이상 섣부르게 손을 댈 생각은 없다. 여긴 현실이다. 중국같은 특수한 상황도 아니었다. 괜히 여자 후배들을 건드렸다가 책 잡히기 싫었다.

헌터과에 들어가자 대학생들이 나를 힐끗 거리며 눈치를 살피며 먼저 내게 다가와 인사까지 했다.

“유진아. 오랜만이다. 최근에 학교에 전혀 안 나오던데… 잘 지냈어?”

“어. 태진아. 내가 요새 좀 바빠서.”

“태진이 아니라 태준이야.”

“그랬나?”

“…….”

그는 얼굴을 붉혔지만 내게 대들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현재 헌터과에서 가장 잘 나가는 건 나와 한하린이다. 우리 둘만이 유일하게 C등급 헌터이기 때문이다. 헌터 세계에선 등급이 곧 계급이었다.

“유진 선배. 주말에 시간 되세요? 같이 던전에 가시지 않을래요? 선배가 함께하면 든든할 것 같아요.”

“주말? 미안하지만 그때 바빠.”

여자 후배가 끼를 부렸다. 은근슬쩍 허리를 앞으로 숙여 가슴을 강조하거나, 애교섞인 눈웃음을 살살 쳤다. 허나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미녀이긴 한데 턱과 눈 쪽에 성형한 티가 났고, 화장이 좀 많이 진하다.

“주말에 뭐하시는데요?”

“하린 선배랑 이것저것?”

“유진 선배는 하린 선배랑 사귄다는 소문이 있던데…. 진짜에요?”

“친구야. 친구.”

대충 상대해주자 알아서 물러갔다. 저들의 목적이야 뻔했다. 무난하게 A등급 헌터가 될 나와 친해지고 싶은 것이다. 그래야 얻어먹을 떡고물이 생기니까.

나는 강의실 끝의 책상에 엎어져 자고 있는 오준혁의 옆자리에 앉았다. 오준혁은 대학교 내에서 가장 친한 친구다. 요즘에는 내가 여자들을 만나느라 바빠서 소원해졌다.

“야. 자냐? 여자한테 차였다며.”

“시끄러. 그 망할년은 꺼내지도 마라.”

오준혁은 이틀 전에 사귀던 여자에게 차였다. 듣자하니 여자 쪽에 다른 남자가 생긴 모양이었다. 그것도 B등급 헌터인 남자가.

“끝내주는 영상 하나 있는데 한 번 볼래? 어제 찍었다.”

“……끝내주는 영상?”

오준혁이 고개를 슬쩍 들었다. 나는 오준혁의 얼굴을 보고 기겁했다.

“오우 쉣. 넌 눈탱이가 왜 그러냐? 밤새 눈물을 질질 짜지 않는 이상 그런 눈은 불가능한데….”

“난 걔가 마지막 사랑인줄 알았지…. 제주도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하와이로 신혼 여행을 떠나는 게 내 계획이었는데….”

“청승떨지 말고 이거나 봐라.”

스마트폰 영상을 틀어주자 오준혁은 진지한 표정으로 영상을 감상했다. 나와 미사가 빠구리를 뜨는 영상이다.

“가슴 장난 아니네. 무슨 컵이냐?”

“G컵. 엉덩이도 쩔지.”

“이, 이런 여자는 어디서 만난 거냐? 한국인은 아닌 것 같은데….”

“일본에서 만났지.”

“시발! 나도 일본 간다! 일본 여자들이 그렇게 가슴이 크다며?”

“그냥 큰 여자는 큰 거야.”

오준혁은 헤벌쭉 거리며 영상을 쳐다봤다.

“근데 네 몸…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

“기분 탓이겠지. 이번에 들어온 후배는 봤냐?”

“어. 아까 대충 둘러 봤어. 30명 정도고 성비는 반반? 예쁜 애가 3명 정도 있더라. 아, 그리고 유명인이 2명 있어.”

“유명인이면 연예인이라도 들어왔나?”

“한 명은 세진 그룹의 회장 손녀라고 하더라. 보니까 존나 예뻤어. 근데 분위기도 장난 아니야. 태생부터가 다르다고 해야 하나? 나같은 놈은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할 것 같더라.”

세진 그룹은 나도 안다. 대한민국의 헌터라면 모를 수가 없었다.

세진 그룹은 헌터와 관련된 사업을 하는 기업이고 가장 유명한 건 헌터샵이다.

거기에 세진 그룹의 회장이 S급 헌터다.

“다른 유명인은?”

“창원의 영웅. 몰라?”

“그게 뭔데.”

“얼마전에 있었던 창원 던전 붕괴 사건에서 오크 2마리를 해치우며 영웅이 되신 후배지. 이름은 박수호였나. 시발. 나도 영웅이 되고 싶다…!”

“전에 중국에 긴급 지원했으면 됐을 거다.”

“죽고 난뒤에 영웅이 되면 무슨 소용이냐.”

오준혁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무언가를 검색하고 있었다. 슬쩍 보니 진짜 일본으로 떠나려는 모양이었다.

“오늘 신입생 환영회하지?”

“어. 저녁에. 고깃집에서 할 거야. 너도 오게?”

“재벌 3세가 궁금해서.”

“걘 사는 세계가 달라. 너나, 나나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여자가 아니야.”

“그렇겠지.”

나는 낄낄 웃었다. 오준혁이 이상한 놈 쳐다보듯이 나를 봤다.

???

신입생 환영회.

나는 교수들과 함께 앉았다. 교수들이 나를 불러서였다. 무능력자였던 나는 어느새 학과를 대표하는 헌터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린 학생이 안 온게 아쉽군.”

“B등급 준비한다고 이리저리 바쁜 모양이던데요.”

“자네는 준비하지 않나?”

“C등급으로 있으니까 B등급이 만만하지 않다는 걸 알겠더라고요.”

“그렇지. 나때는 말이야…. D등급도 쉽게 올라가지 못해서….”

나는 교수들의 말을 흘러들으며 고기를 먹었다.

분위기는 갈수록 점점 무르익었고, 교수들은 제들끼리 2차를 간다며 사라졌다.

그리고 과대표가 내게 다가왔다.

“유진 선배. 신입생들 아직 못 보셨죠?”

“재들이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배라십고 거들먹거릴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대학교에 잘 나오지도 않는다. 게다가 후배들이 엉겨 붙으면 내가 더 귀찮아진다.

“얘들아. 이 분이 내가 말했던 성유진 선배님이셔. 우리 과에 2명밖에 없는 C등급 헌터 중 한 명이시지.”

“반갑다. 성유진이야. 난 1학년 때 무능력자였는데… 옛날 생각나네.”

내 말에 신입생들이 흥미를 보였다. 보통 헌터들은 성인이 되었을 때, 육체가 성장을 끝냈을 때 각성을 한다. 나처럼 잠재력만 있고 각성을 뒤늦게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나는 나에 대해 말하면서 신입생들을 훑어보았다.

한 명의 여자가 내 시선을 끌었다.

캐주얼하면서도 세련된 옷을 입고, 차분한 얼굴의 긴 검은 머리의 여자.

가슴은 봉긋하고 허리를 보기 좋게 휘어졌다. 예쁘다는 말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예술 조각품같은 미녀다.

뒤쪽에서 정장을 입은 경호원들이 그녀를 주시하고 있다.

세진 그룹의 손녀. 하승희가 틀림없다.

그녀는 다른 신입생과 달리 내 말에 별다른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맞은편에 앉아 있는 남자를 신경 쓰고 있다.

‘꼴린다. 고로 따먹는다.’

문제는 어떻게 접근하고, 어떻게 꼬시는 가다. 강간? 여긴 현실이라는 걸 잊어선 안 된다. 거기에 S급 헌터의 손녀를 강간했다가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불보듯 뻔하다.

나는 신입생 한 명, 한 명과 악수를 했다.

“이름이 하승희? 반갑다.”

“네. 선배. 잘 부탁드려요.”

하승희와 손을 잡았다. 보드라운 손이었다. 그녀는 의무적으로 악수를 했다. 시선은 다시 맞은편의 남자에게 향했다.

‘이놈을 좋아하나? …남자를 보면 하승희의 관심을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은데.’

이번엔 맞은편 남자에게 악수를 건넸다.

“박수호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박수호는 평범하게 생겼지만 인상은 꽤 좋은 편이었다.

“아, 그 창원의 영웅?”

“…하하. 네.”

박수호가 겸연쩍게 웃었다. 나는 그와 악수를 하면서 팔뚝에 새겨진 문신을 발견했다.

“문신?”

“따로 문신을 새긴 건 아니고 각성하면서 몸에 문신이 생겼어요. 능력은 육체강화입니다.”

“그래? 근데 요즘 문신은 움직이기도 하나?”

“네, 네?!”

박수호가 당황했다. 나는 확실하게 보았다. 팔목에 새겨져 있던 태양 문신이 옆으로 이동한 것을.

“자, 잘못 보신 걸 겁니다. 문신이 어떻게 움직이겠습니까.”

“……그렇긴 하지.”

수상하지만 넘어가기로 했다. 여기서 추궁하면 분위기만 이상해진다.

하지만 흥미는 갔다. 하승희가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분명 있을 테니까.

‘하승희를 꼬시려면 얘부터 어떻게 해봐야겠군.’

이후에 나는 하승희에게 말을 몇 번 걸어 보았으나, 돌아오는 것은 무감정한 단답 뿐이었다. 한하린 만큼이나 도도하다.

‘약점같은 건 없나?’

하승희의 스마트폰을 해킹해봤다. 인간관계는 원만해보였다. 형제와 사이가 좋지 않은 모양이지만 대체적으로 화목한 가정이다.

다만 한 가지. 사람을 시켜 박수호에 관해 조사하도록 명령한 흔적이 있었다.

‘내가 뱀파이어 형사 세계의 회장이라 아는데 이런 건 협박거리도 되지 못하지.’

확실한 건 박수호에게 뭔가가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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