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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2 - 402. 헌터의 이상한 세계 (182/2,000)

〈 402화 〉 402. 헌터의 이상한 세계

402. 헌터의 이상한 세계

지난 며칠.

나는 해킹을 이용해 박수호에 대해 이것저것 알아봤다.

허나 알게 된 정보는 별로 없었다.

우선 박수호의 가족 관계.

그의 부모님은 2년 전에 있었던 던전 붕괴 사태로 인해 돌아가시고, 여동생은 A급 몬스터인 백택의 저주를 받아 혼수상태에 빠져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중화제를 이용해 계속 저주를 중화해주지 않으면 한 달도 버티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문제는 백택의 저주 중화제는 가격이 많이 나간다는 것과 일반인이 백택의 저주를 떨쳐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저주를 완벽히 없애려면 S급의 실력을 가진 해주사의 힘이 필요하다.

‘현재 박수호의 빚은 1억이 조금 넘는 수준이지.’

박수호가 국천 대학교에 입학한 것은 장학금 때문이었다. 국천대학교의 입장에서 창원의 영웅이라 불리는 박수호의 명성을 원했다.

‘교우 관계는 2년 전, 고등학교를 자퇴하며 끊어졌고…. 입학식 때를 제외하면 학교에 온적이 없군.’

박수호는 매일 던전에 들어가고 있었다.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상한 것은 돈을 모아서는 대량의 밀가루나 농기구 같은 걸 산다는 점이다.

‘…박수호에게 뭔가가 있다면 하나뿐이지. 각성하면서 얻은 능력.’

하승희는 박수호의 능력이 뭔지 정확히 모르고 있을 것이다. 단지 특별한 능력이라고 의심하고 있는 수준이다.

‘대체 얼마나 끝내주는 능력이길래 하승희가 관심을 보이는 거야?’

???

고블린 동굴

F급 개방형 던전이다. 그 이름 그대로 F급 몬스터인 고블린이 나온다.

높은 습기와 토를 유발하는 악취 때문에 인기가 없는 던전이다. 돈이 급한 헌터가 아니라면 굳이 이 던전을 찾지 않는다.

나는 박수호가 고블린 동굴로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 3분 뒤에 뒤따라 들어갔다. 던전 입구를 지키고 있던 협회 직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성유진 씨? C급 헌터이신데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고블린 독이 필요해서 직접 구하러왔습니다.”

직원은 내 얼굴을 뺜히 쳐다봤다.

“…던전 내에서 문제 일으키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럴 일 없습니다.”

던전 속으로 들어가자마자 악취가 느껴졌다. 기척을 죽이고 동굴 안쪽으로 들어갔다.

박수호를 발견했다. 그는 숏소드를 들고 고블린을 사냥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움직임을 보고 놀랐다. 각성한지 얼마 되지 않아 제대로 된 전투 훈련을 받은 적이 없을게 분명한데 누군가에게 전투를 배운 듯 한 움직임이다.

“끄엑!”

고블린이 손톱을 내밀며 달려들었다. 박수호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우선 몸을 옆으로 돌려 공격을 피한 뒤에, 숏소드로 고블린의 심장을 노리며 반격했다.

박수호는 이런 식으로 차근차근 고블린을 죽여 나갔다.

그리고 고블린 3마리가 동시에 나타났다.

‘각성한지 얼마 안 된 F급 헌터한테는 고블린 3마리는 벅차지. 뒤쪽에 좁은 곳으로 도망가서 싸우는 게 정답이야.’

허나 박수호는 내 생각과 다르게 움직였다.

그가 무기를 들고 있지 않은 왼손을 앞으로 척 내밀었다. 왼쪽 팔목에는 복잡한 도형들이 그려진 문신이 있었다.

“파이어 볼!”

박수호의 손바닥에서 불덩어리가 나타나 고블린을 향해 날아갔다. 퍼엉! 불덩어리가 터지며 고블린 3마리가 즉사했다.

‘마법?! 박수호가 마법을 썼다고?!’

아니. 마법이라 확신하기엔 아직 이르다. 박수호가 마법을 사용할 때 마나가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박수호의 능력일지도 모른다.

“고마워. 엘리샤. 네 도움 덕분이야.”

박수호가 고블린의 마석을 수거하며 중얼거렸다. 말투를 보면 혼잣말이라 할 수 없었다. 저게 혼잣말이면 정신병이 있는 게 틀림없다.

‘……누군가 숨어 있는 건가? 내 눈을 속이고? 설마 그럴 리가.’

던전 안이라 전화 통화는 불가능하다. 혹시 내가 모르는 동료가 있는 건가?

“무리하는 거 아니야. 너희들도 빨리 강해져야지. 그 편이 너희들에게도… 뭐?”

박수호가 멈칫했다.

그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더니 숏소드를 내 쪽으로 겨누었다. 벽 뒤에 숨어 있는 내가 숨을 삼켰다.

“누구냐! 벽 뒤에 숨어 있는 거 다 알고 있다! 나와!”

대체 어떻게 내 기척을 알아차린 것인지 모르겠다. F등급 헌터가 가능한 일인가?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박수호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유, 유진 선배님!?”

“오랜만이다. 박수호.”

“선배님이 어떻게….”

“고블린 독이 필요해서 왔는데… 묘한 걸 봤어. 파이어볼은 어떻게 쓴 거냐? 넌 마법사가 아니잖냐. 그리고 저번에 내게 육체강화 능력이라고 말하지 않았냐?”

“그, 그건….”

박수호가 눈에 띄게 당황했다.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간다. 설마하니 여기서 아는 인물을 만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다.

“뭐, 말하기 싫으면 됐다.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아는 사람이 한 명은 있겠지. 움직이는 문신에 대해서도 말이야.”

내가 등을 돌린 순간이었다.

“엘리샤! 안 돼!”

파이어 볼이 나를 향해 날아왔다.

나는 찰나를 사용해 파이어 볼을 피했다. 그리고 박수호의 곁으로 순식간에 접근해 그 목을 틀어쥐었다.

“방금 날 죽이려고 해? 죽고 싶어서 환장했냐? 박수호.”

“커흑! 아닙니다! 제가 한게 아닙니다! 선배님! 이건…!”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제대로 설명해라. 박수호.”

살기를 담아 으르렁거리자 박수호가 겁에 질려 고개를 끄덕였다.

???

문신 세계.

박수호의 능력이었다.

박수호는 문신을 통해 다른 세계와 이어져 있었다. 다른 세계로 음식이나 도구들을 보낼 수 있었고, 다른 세계의 힘을 사용할 수도 있었다. 또한 다른 세계로 직접 갈 수도 있는 능력이었다.

‘이런 능력도 다 있네.’

나는 박수호의 몸을 쳐다봤다. 박수호의 몸은 손과 발, 머리, 목을 제외하고 전부 문신으로 뒤덮여 있었다. 오른 팔목에는 태양이 있었고, 복근에는 산이 있었으며, 심장 쪽에는 마을같은게 있었다.

등쪽에는 밭과 동굴같은 게 있었다.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음.”

“웹게임 말이죠?”

“맞아. 그거 웹게임. 마을을 발전시키는 종류의 웹게임 말이야.”

“네. 저도 처음에 그걸 떠올렸어요. 그리고… 크게 다르지 않고요. 제가 이 문신 세계, 정확하게는 베로프린 도시를 발전시킬수록 저는 그에 비례하듯이 강해져요.”

나는 박수호의 오른쪽 어깨를 빤히 쳐다봤다. 마차를 몰고 있는 상인들이 가슴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아프거나 하진 않는 거냐?”

“네. 아프지는 않아요.”

“아까 그 파이어볼은?”

“베로프린의 시장 대리인 엘리샤의 마법이에요. 엘리샤의 허락하에 능력을 쓸 수 있어요. 아까 제가 선배님에게 파이어볼을 날린 건… 제가 아니라 엘리샤의 뜻이었어요.”

“그건 됐고 문신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면, 나도 들어갈 수 있나?”

“그건… 시도 해보지 않아서 정확히 모르겠어요.”

“한 번 시도해봐. 대신 네 능력에 관해선 다른 사람들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을게. 어때?”

“정말 아무한테도 안 말하시는 거죠?”

“그래.”

“…실패할 수도 있어요. 다른 사람을 문신 세계로 데려가는 건 처음이라.”

“일단 해봐. 너도 갈 수 있으니 나도 갈 수 있을 거 아니야.”

“네. 일단 제게 손을 줘보세요.”

“…….”

남자와 손을 잡는 건 기분 나빴지만 일단 손을 내밀었다. 그의 능력이 정말 궁금했기 때문이다.

박수호는 내 손을 잡고 눈을 감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의 문신이 빛나기 시작했고 나와 박수호는 문신 세계로 들어갔다.

새파란 하늘과 둥둥 떠다니는 하늘이 보였다.

나와 박수호는 중세시대의 마을과 비슷한 곳에 나타났다. 마을 주민들은 박수호를 보자마자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들이 박수호를 얼마나 존경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하얀색 로브를 몸에 걸친 금발 미녀였다. 가슴은 D컵이고 허리는 잘록했다.

“시장님! 오셨군요! 그리고… 시장님의 손님도요.”

“엘리샤. 내 옆에 있는 사람은 대학교 선배야. 적이 아니야.”

“…죄송합니다. 적인 줄 알고 공격한 건 저였습니다.”

엘리샤가 내게 고개를 숙였다. 하얀 가슴골에 조용히 입맛을 다셨다.

“아니. 나도 좋게 행동한건 아니야. 그리고… 설마 진짜 다른 세계와 연결되어 있을 줄이야.”

“선배. 약속은 지켜주시는 거죠? 이 일은 제발 비밀로….”

“그렇게 할게. 대신 이 세계 좀 둘러봐도 되나?”

“네. 물론이죠.”

나는 박수호와 엘리샤의 안내를 받아 이 세계, 정확하게는 박수호가 다스리는 베로프린 도시를 둘러봤다.

도시 바깥쪽에는 광산과 논밭이 있었다. 그 너머에는 나무가 울창한 숲이 있었다.

“수호야. 밖의 시간은 멈춘 상태냐?”

“예? 아뇨. 시간은 똑같이 흘려요.”

“그래? 다른 세계는 없고?”

“다른 세계요?”

“없으면 말고.”

내 능력인 유희 생활 어플과는 많이 달랐다.

그리고 이 세계는 볼 것도 별로 없었다. 차라리 ‘백환’ 세계가 더 볼 것도 많고 즐길 것도 많았다.

“…갑자기 도시가 소란스럽네요. …이런. 싸움이 일어났어요!”

“시장님! 위험해요!”

박수호와 엘리샤가 싸움을 말리려 달려갔다. 나는 그 틈을 타 인벤토리에서 공간 이동 주문서를 꺼냈다.

‘좌표 저장이… 되네? 혹시 밖에서 여기로 공간 이동 주문서로 올 수 있는 건가?’

실험해볼 가치는 있을 것 같았다.

이후에 도시에 있는 박수호의 집으로 가서 저녁을 먹었다.

“엘리샤 씨는 수호의 연인입니까?”

“여, 연인이라니요. 시장님과 전 그런 사이가 아니에요.”

“…그렇죠.”

엘리샤가 빠르게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고, 박수호는 우울하게 웃었다.

나는 그들이 서로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허나 내가 나서서 그들의 관계를 개선할 생각이 없었다.

“삼일에 한 번씩, 대충 4시간 정도만 이 세계에 들어올 수 있다고?”

“네. 엘리샤의 말로는 능력이 더 발전한다면… 더 오래 머물 수 있을 거라고 해요.”

“엘리샤는 밖으로 데려갈 수 없나?”

“시도 해봤지만… 안 됐어요.”

“그래. 오늘 구경시켜줘서 고맙다. 슬슬 돌아갈까 하는데 괜찮지?”

“네. 저와 함께 돌아갈 수 있을 거에요.”

이후 저녁을 먹고 엘리샤와 인사를 한 뒤 박수호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우리는 고블린 동굴 속에 있었다.

“후우. 선배님. 제 능력의 비밀은 꼭 지켜주세요.”

“약속대로 아무에게도 말 안할게. 근데 하승희가 널 지켜보고 있는 것 같던데. 이유가 뭐야?”

“……저번에 창원에 사고가 발생했을 때 문신 세계의 물건을 줬거든요.”

“물건?”

“몬스터에게서 모습을 숨기는 향수요. 그것 때문에 절 보고 있는 거에요.”

“그런 게 있으면 팔면 되잖아. 돈이 될 거야.”

“……엘리샤의 말로는 지금 도시의 수준으로는 한 달에 1개도 만들기 어렵다고해요.”

“그래? 아무튼 난 간다. 수고해.”

“아. 예. 조심히 들어가세요.”

???

몇 시간 뒤.

나는 공간 이동 주문서를 쳐다봤다. 박수호의 문신 세계, 베로프린 도시의 좌표가 설정되어 있는 주문서다.

‘성공하려나? 아, 박수호는 문신 세계를 관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하니… 얼굴은 숨겨야지.’

광대 가면을 쓴 나는 주문서를 찢었다.

나는 베로프린 도시에 와있었다.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쳐다본다.

‘성공이다!’

이게 가능하다는 건 돌아갈 때도 공간 이동 주문서를 사용하면 된다.

‘공간 이동 주문서로 오고 갈 수 있다는 건… 세계가 이어져 있다는 건데….’

나는 고개를 저었다. 골치 아픈 건 나중에 생각하자. 지금 중요한 건 따로 있다.

“엘리샤! 지금 따먹으러 간다!”

???

박수호는 이부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허나 잠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오늘 자신의 능력을 타인에게 들켰다. 그것도 친분도 별로 없는 타인에게.

‘…그 선배가 약속을 지킬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머릿속이 복잡했던 박수호는 기분전환이 필요했다. 그는 자연스럽게 문신 세계 관조 능력을 사용했다. 그에게만 보이는 화면이 나타났다. 화면을 통해 문신 세계를 볼 수 있었다. 다만 보는 것 밖에 못한다.

‘엘리샤…. 엘리샤는 뭐하고 있으려나….’

박수호는 자연스레 엘리샤가 머물고 있는 저택을 생각했다. 화면이 저택을 비추었다.

‘엘리샤가 갑자기 샤워라도 하고 있으면 어떡하지?’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박수호가 저택 어딘가에 있을 엘리샤를 찾았다. 엘리샤는 침실에 있었다.

“……!!”

엘리샤는 침대위에서 광대가면을 쓴 남자에게 범해지고 있었다.

-그, 그만…! 하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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