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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5화 〉 405. 미스터 샘

405. 미스터 샘

대학교로 향했다. 목적은 하승희를 만나 반응을 확인하는 것.

나는 성스러운 물이 그녀의 흥미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선배. 저를 이렇게 대한 사람은 선배가 처음이에요.”

“…갑자기 무슨 말이야?”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하승희의 눈에는 나에 대한 흥미보다는 짜증이 가득했고, 주위에 있는 경호원들은 위압적이다.

경호원들이 거슬렀지만 신경을 껐다. 내가 덤벼들어서 이길 수 있는 상대도 아니고, 세진 그룹을 적으로 돌려 살아남을 힘이 아직 내겐 없다.

“저를 가지고 논 건 당신이 처음이라고요. 약간은 기대했는데… 설마 이런 장난을 당할 줄이야. 그래도 당신을 원망하거나 하진 않아요. 제가 그 정도로 속 좁은 인물은 아니거든요. 그리고 이건 나름 신선한 경험이었어요.”

“…….”

나는 잠깐 생각했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화낼 일은… 어제 내가 주었던 성스러운 물 말고는 없었다.

“성스러운 물을 사용해봤어?”

“그런 수상쩍은 물건을 바로 사용할 정도로 제가 멍청해보였나요? 당신의 성스러운 물은 바로 연구소로 보내 성분을 조사했어요. 결과는 물이었고요. 수돗물보다 조금 더 깨끗한 물.”

성스러운 물의 성분은 그냥 깨끗한 물이었나 보다. 그래서 더 놀랍다. 그냥 물인데 어떻게 그런 능력이 있는 거지? 성분 분석으로 알 수 없는 특별한 힘이 숨겨져 있는 것이 틀림없다.

“몸에는 발라 봤어?”

“제 경호원이 손에 물을 발랐어요. 아주 시원했다고 하네요. 당신이 말했던 대로 좋은 일이 생겼네요.”

주위에 있던 경호원 중 한 명이 피식 웃었다. 아마도 그가 성스러운 물을 손에 바른 인물일 것이다.

“그거 양에 따라 효과가 달라져. 전부 사용한 거야? 손에 발랐다면 은은한 빛이 손에 나왔을 텐데?”

하승희가 눈을 찡그렸다.

“…후. 성유진 씨. 당신이 제게 무슨 목적으로 이런 장난을 했는지는 별로 궁금하지 않아요. 대신 앞으로 이런 일은 없었으면 해요. 한 번 더 이런 일이 일어나고 또 제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면… 오늘처럼 그냥은 넘어가지 않을 거에요.”

나는 인벤토리에서 성스러운 물을 꺼내 내 몸에 뿌릴까 하다가 관뒀다. 어쩌면 이번에도 효과가 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설령 효과가 있다 하더라도 세상을 발칵 뒤집을 정도로 엄청난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녀에게 이미 미운털이 박힌 것 같았다.

“알았어. 괜히 시간만 뺏어서 미안.”

나는 뒤돌아서 대학교 밖으로 나갔다.

하승희를 따먹을 계획은 처음부터 실패했다.

우우우웅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도중에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모르는 전화번호였다.

“여보세요?”

???

카페 문을 열고 3층의 프라이빗 룸의 문을 열었다.

검은색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한아영이 보였다. 다시 봐도 한하린과 닮은 얼굴이었다. 하얀 머리카락을 한하린처럼 검은색이었다면 쌍둥이 자매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나는 군침을 삼켰다.

한하린의 몸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한아영의 몸도 얼마나 쫄깃할지 절로 상상이 갔다. 벌써부터 남근에 피가 쏠린다.

무심코 한아영의 성감대를 확인했다.

[한아영의 성감대: 클리토리스 혀, 겨드랑이.]

자매라서 그런가. 성감대가 비슷했다. 다만 한하린은 클리토리스 대신 왼쪽 유두가 들어가있지만.

“일단 앉아.”

목소리는 한하린 보다 약간 더 높았다.

나는 그녀가 나를 죽이고 싶어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의외로 그녀의 목소리는 평탄했다. 적의도 살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감정을 감추는 것에 능한 것 같았다.

“이렇게 뵙게 될 줄은 몰랐는데요. 하린 선배 때문이죠?”

“하린이 말고 내가 널 부를 이유가 있겠니?”

“그거 말곤 없긴 하죠. 혹시 하린 선배랑 헤어지라는 말을 하려고요?”

“맞아.”

등허리에 힘이 들어가며 척추가 똑바로 섰다. 여기서 방심해서는 안 된다.

“처음에는 이해하려고 했어. 하지만 생각해보면 하린이는 하린이의 인생이 있으니까. 걔가 어떤 남자를 만나든 걔가 선택한 거야. 라고 이해하려고 했어. 하지만 안 되더라. 하린이는 내 동생이야.”

“…제 생각과 많이 다르신 분이었군요. 전 최소한 뺨이라도 한 대 맞을 줄 알았는데.”

“난 힘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아. 그리고 내가 뺨을 때리면 넌 입원해야했을 거야.”

“…….”

겨우 이걸 말한다고 날 여기에 불러내지 않았을 것이다. 진짜는 이제부터다.

“너와 하린이의 관계를 알고 싶어.”

“친구 관계에요. 하린 선배가 저보다 1살 많기는 하지만…. 1살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너는 서로 물고 빠는 관계를 친구라고 하니? 내가 알고 있는 우정과는 많이 다른데.”

“섹스 프렌드요.”

“…….”

한아영이 나를 노려봤다. 그녀는 커피 잔에 가는 손가락을 걸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처음부터 말해줘. 너와 하린이가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그리고 어쩌다 그런 관계가 됐는지.”

“……꼭 말해야 하나요? 하린 선배한테 물어보실 수 있잖아요.”

“최근 하린이와 사이가 좋지 않아. 그리고 하린이를 바꾼 건 너야. 네가 하린이를 바꿨으니, 네 입으로 듣는 게 더 정확하겠지.”

“하린 선배는 안 변했어요.”

“변했어. 하린이는 자기 집에 남자를 들일 애가 아니야. 하물며 자기 집에서 포르노 배우처럼 남자와 뒹구는 스타일은 절대 아니지. …아니었지.”

한아영의 눈에 날카로운 빛이 서렸다. 역시 감정을 숨기고 있지만 기회가 오면 나를 찢어 죽이려 하고 있다.

“어…. 하린 선배가 원래 좀 차갑긴 했죠.”

“우리 집안은 엄격했어. 성인이 되어 독립하기 전까지 통금 시간이 있었고, 하루에 절반은 공부로 시간을 보내야 했어.”

“…힘드셨겠네요.”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힘들지는 않았어. 나는 짜증났지만 하린이는 잘 해냈지. 아버지와 어머니도 그런 하린이를 좋아했고. 그런데 네가 하린이를 바꿨어. 그것도 좋지 않은 방향으로. 말해. 하린이랑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한아영에게서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냥 대충 둘러대고 이 자리에서 벗어나는 건 힘들어보였다.

“말하자면 길어지는데… 레몬에이드 좀 시켜도 될까요?”

“좋아.”

그녀가 테이블 위에 놓인 벨을 눌렀다. 여자 종업원은 정확히 13초 만에 달려왔다.

“네. 사장님. 부르셨어요?”

“레몬에이드 하나, 카푸치노 하나 부탁해요.”

“네. 바로 갖다 드릴게요.”

종업원이 바람처럼 사라졌다.

“여기 사장님이셨어요?”

“어렸을 적엔 내 카페를 가지는 게 꿈이었어. 부모님이 헌터라고 하더라도 내가 각성한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헌터가 되지 않았다면 카페 사장으로 살았을 거야.”

곧 레몬에이드가 나왔다. 나는 레몬에이드를 마시면서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까.

“하린 선배와 저는 대학교에서 만났어요. 좋은 관계는 아니었죠.”

나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거짓말은 최대한 배제했다. 한아영은 이후에 내 이야기를 따로 조사할 것이 분명하고, 거짓말이 들키게 되면 귀찮아 질 것이다. 그리고 사실 그렇게 거창한 이야기도 아니었다.

“……기공 마사지로 하린이의 마나를 각성시켜줬다고?”

“네. 하린 선배와 던전 서바이벌이란 프로그램에 나가게 됐는데 마나 각성 때문에 고민이 많더라고요. 기공 마사지에 대해 아세요?”

“…들어봤던 것 같아. 마나 마사지 아니니? 내가 알기로는 그런 효과는 없어.”

“평범한 마나 마사지가 아니니까요. 아영 씨, 기혈이라고 알아요? 저는 기혈을 다루는 점혈술과 마사지를 합쳤어요. 기공 마사지는 육체의 잠재력을 자극하는 거죠. 하린 선배는 원래부터 잠재력이 있었어요.”

“확실히 시기적으로 보면 맞는 말이지만…. 그래도 믿을 수 없어.”

“제가 뭐 때문에 거짓말을 하겠어요?”

“네 말이 진짜라면 그 마사지라는 걸 왜 알리지 않았지? 돈과 명성을 한 번에 손에 넣을 수 있을 텐데.”

“제 꿈은 마사지사가 아니니까요. 최고의 헌터가 되는 게 꿈이에요.”

거짓말이었다.

최고의 헌터는 수단에 불과하다. 내 진짜 목적은 모든 미녀들을 따먹는 것! 거기엔 당연히 한아영도 포함되어 있다.

“말은 누구나가 번지르르하게 할 수 있어.”

한아영이 내게 오른팔을 내밀었다.

“…아영 씨?”

“점혈에 관해선 나도 약간 알고 있어. 네가 점혈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 봐. 그럼 믿어 줄게.”

“그러죠. 팔에 힘좀 빼주세요. 아영 씨는 A급 헌터라 힘을 주고 있으면 잘 통하거든요.”

그녀의 오른팔에서 힘이 빠졌다. 나는 손가락을 이용해 점혈술을 펼쳤다. 콕콕콕.

“끝났어요. 움직여 보세요.”

“……안 움직이네.”

한아영이 마나를 사용했다. 내가 한 점혈을 강제로 풀어버린 것이다. 보통은 불가능하지만, 지금 나와 그녀의 수준차이가 너무 났기에 어쩔 수 없었다.

한아영은 오른 팔을 허공에 흔들었다.

“네가 기공 마사지로 하린이의 마나를 각성 시켜줬다는 건 믿을게. 그런데 어쩌다 너와 하린이의 관계가 그렇게 된 거야?”

“거의 매일 마사지를 했죠. 그리고 그 대가로… 저도 마사지를 받았습니다.”

“…하린이가 기공 마사지를 할 수 있었어?”

“전 그냥 마사지도 좋아하거든요. 매일 마사지를 하다보니 가까운 관계가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 아영 씨가 알고 있는 관계가 되었죠.”

“……다른 비열한 짓을 한 건 아니지?”

“그럴 리가요.”

“그런데도 하린이가 저렇게 변했다고? 겨우 마사지로?”

나를 보는 한아영의 눈에는 불신이 가득했다. 나는 보란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성감 고조라는 스킬을 썼다고는 말 할 수 없다.

“약이나 마법, 주술같은 걸 썼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인데…. 전 그럴 능력이 없어요. 그리고 철저한 하린 선배가 그런 짓에 순순히 당할 리도 없고요.”

“마사지와 섹스만으로 하린이가 저렇게 변한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마사지는 둘째치더라도… 섹스는 차원이 달라요. 흔히들 첫섹스는 인생의 변환점이라고도 하잖아요. 혹시 섹스 안 해보셨어요?”

“무, 무슨 소리야. 당연히 해봤지. 나도 연애는 몇 번 해봤어.”

알고 있다. 인터넷에 한아영에 대해 검색하면 과거에 사겼던 남자친구 3명에 대한 정보도 뜬다. 다만 세 명의 남자친구 중 연애기간이 한 달이 넘는 이가 없었다.

“사람은 변해요. 첫섹스는 사람이 변하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한 사건이죠.”

“…그래. 네 말이 맞아. 사람은 변하지.”

나는 한아영이 섹스를 경험하지 못한 처녀란 것에 손모가지를 걸 수 있었다. 그녀는 아까 당황했고, 지금은 목소리 톤이 내려갔으며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제가 봤을 땐 하린 선배는 변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아니 변했어! 내가 너보다 하린이를 더 잘 알아! 사람이 그렇게까지 변할 수는 없다고! 어제 본 하린이는 내가 본 어떤 여자들보다 음탕해보였어! 걔가 내 여동생이란 걸 믿을 수 없었다고!”

한아영의 몸에서 냉기가 흘려 나왔다. 소파가 쩌적쩌적 얼어붙는다. 냉기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내게 달라붙는다.

파지지직.

뇌전이 튀며 냉기에 맞섰다.

‘…이게 S급 후보로 거론되는 A급인가. 일부러 냉기를 보내 나를 공격하는 것도 아닌데…. 마나가 소모되는 속도가 너무 빨라. 저쪽이 1의 힘을 쓴다면 난 6~7의 힘을 쓰고 있어. 식은땀이 다 나는군.’

다행히도 한아영이 먼저 냉기를 멈췄다.

“…미안. 잠깐 감정이 너무 격해졌어.”

물론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괜찮아요. 가족과 관련된 일이니 흥분하는 것도 당연하죠.”

“…….

잠깐이 침묵이 흘렀다.

“성유진. 나는 하린이가 원래대로 돌아왔으면 좋겠어. 그러기 위해선 네가 하린이 근처에 없는 편이 좋을 것 같아.”

“하린 선배는 변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제 덕분에 마나를 각성했고, 지금은 B급 헌터를 준비하고 있죠.”

한하린은 내 좆집이다. 그리고 내 첫사랑이다. 내가 미쳤다고 그냥 물러날까.

“하린이는 네가 없으면 더 잘 할 수 있어.”

“아뇨. 하린 선배는 제가 있어야 더 잘 할 수 있어요. 제 기공 마사지의 효과가 끝내주거든요.”

“…….”

“…….”

한아영이 날 노려봤다. 나는 그녀의 눈을 직시했다.

“원하는 게 뭐야?”

“전 친구를 돈 받고 파는 놈이 아니에요. 하지만 이대로 있으면 우리 관계가 살벌해지겠죠. 그러니 내기 하죠.”

“내기?”

“일주일. 아영 씨가 일주일 동안 나랑 하린 선배가 하는 것처럼 서로 마사지를 해주는 거에요. 마사지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신다면 저와 하린 선배를 그냥 내버려두세요.”

“……네 마사지가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다면?”

“하린 선배와의 관계를 끝낼게요. 깨끗이.”

한아영이 입을 우물거렸다. 그녀의 입속에서 말이 뭉개졌다가 다시 만들어진다.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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