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2화 〉 412. 미스터 S
412. 미스터 S
본래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이리저리 구르면서 캐나다에 있는 레드 아이의 비밀 거점 중 하나를 알아낸다.
그러나 나는 영화를 한 번 본 것으로 주인공의 고생을 죄다 무시하고 정보를 얻었다. 일종의 스포일러였지만 문제는 없었다.
나와 제나는 망원경을 통해 연구소를 살펴봤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연구수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경비원의 숫자도 적은 편이었고, 실제로 음료수가 이곳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런 대규모의 연구소가 전부 눈속임이라니.”
“겉보기에는 음료수 만드는 회사의 연구소지만, 실제로는 양귀비를 재배하고 헤로인을 만드는 곳이지.”
제나가 망원경을 내려놓고 내게 물었다.
“어떻게 할 거야? 이건 우리 둘이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야. 상부의 도움이 필요해.”
“상부가 알게 되면 자연히 코트도 알게 되겠지. 그럼 코트가 우리를 방해할거야. 그리고 레드 아이는… 연구소를 버리고 잠적하겠지. 모처럼 잡은 놈들의 꼬리를 이렇게 놓칠 수는 없어.”
“S. 네 말대로라면 저기에 지하 공간까지 있다는 건데…. 우리가 해낼 수 있을까?”
“해낼 수 있고말고. 우린 미국 최고의 요원이잖아?”
내가 자신감 있게 씨익 웃자, 제나도 피식 웃었다.
“그래. 우린 최고의 요원들이지. 그런데… 넌 왜 레드 아이에게 집착하는 거야? 나는 개인적인 복수 때문이라고 해도… 넌 딱히 레드 아이에게 원한이 있는 건 아니잖아.”
“레드 아이의 보스를 내버려두면 세계 평화가 위험해. 놈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어.”
“네가 이토록 세계 평화를 추구하고 있을 줄 몰랐어.”
“말 안했어나. 내가 요원 일을 하는 이유가 세계 평화를 위해서라는 걸.”
우리는 작전을 짰고, 다음날 바로 실행에 옮겼다.
???
캐나다 레지펄트 음료수 연구소에는 주기적으로 한 트럭이 들어간다. 연구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일할 수 없었기에 일주일에 3번 이상 식품 트럭이 연구소를 들락거렸다.
나와 제나는 이 식품 트럭의 뒤쪽에 숨었다. 식품 상자 안에 몸을 구겨 넣은 것이다. 하필이면 냉동고인지라 옷을 입고 있음에도 꽤 추웠다.
제나도 추위를 견디다 못해 입술을 달달 떨었다.
나는 양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잡아 내 품으로 끌어당겼다.
“S! 이게 무슨 짓이야?”
“조금의 온기라도 유지해야지. 이대로라면 얼어 죽겠어. 아니면 다른 방법이라도 있어?”
“…….”
제나도 여기서 마땅히 방법이 없었다. 그녀는 머뭇거리다가 나를 끌어안았다.
서로 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이 아쉬울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자지가 발기하지 않도록 신경써야 했다.
“…J. 우리의 임무를 잊지 마. 참기 힘든 더러운 장면을 보게 되더라도 참아. 우리는 정보를 모으는 게 최우선이야. 특히 레드 아이의 보스에 관한 정보를!”
“나도 알아.”
상부를 움직이기 위해선 정확한 정보와 증거 자료가 필요하다. 우리의 목적은 자료들을 최대한 모으는 것이었다.
이윽고 트럭이 멈춰섰다.
나와 제나는 입을 꾹 다물고 상자 속에서 기척을 숨겼다.
쿵!
트럭의 냉동고가 열렸다.
“젠장. 좀 도와주면 어딜 덧나나? 왜 나혼자 이걸 다 옮겨야 하는 거냐고. 시발.”
욕설을 내뱉은 남자는 냉동고에 있는 식품 상장들을 하나씩 옮기기 시작했다. 수 십 개가 넘는 상자들을 옮기는 일이었는데 남자는 의외로 성실했다. 이러다가 남자를 기절 시켜야 할지도 모른다.
두근두근.
나와 딱 붙어 있는 제나의 심장 고동이 느껴졌다. 나는 진정하라는 듯 그녀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몇 분 후. 냉동고를 쉴틈 없이 들락거리던 남자의 인기척이 사라졌다.
내가 먼저 움직였다. 상자에서 벗어나 조심히 냉동고 밖을 살폈다. 한 남자가 트럭에 기대어 담배를 피고 있었다.
나는 뒤쪽으로 손짓했다. 우리는 드디어 냉동고 밖으로 빠져 나와 행동을 개시했다.
우리는 남들 모르게 주방으로 이동했다. CCTV가 설치되어 있긴 했으나 사각지대를 최대한 이용했다.
주방에서는 요리사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계란 어디 있어! 계란!”
“됐고, 일단 빵부터 준비해! 빵!”
“빨리 빨리 움직여! 지옥의 저녁 시간이 다가오잖아!”
“신입! 퇴근할때까지 감자만 깎을 생각이야? 더 빨리 깎지 못해?!”
전쟁같은 주방을 재주 좋게 빠져나왔다. 우리는 서로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 까지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서로의 입꼬리가 밀어 올라간다. 내가 손을 들어올리자, 그녀가 조용히 내 손에 터치했다.
“J. 여기서 우린 따로 행동해야해. 돌발 상황이 발생하거나, 위험해지면 바로 무전해. 내가 널 구하러 달려갈 테니까.”
“그럴 일 없어. 나중에 다시 주방에서 보자.”
제나가 조용히 달려나갔다. 그녀의 등이 안 보이게 되었을 때, 나는 인벤토리에서 준비해둔 소음기 달린 권총을 손에 쥐고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방을 달리던 한 남자가 나를 보더니 소리쳤다.
“넌 또 뭐야! 저녁 식사 시간까지 앞으로 2시간이 남았어! 음료수라도 얻을 생각으로 온 모양인데, 나눠줄 생각 없으니 당장 꺼져!”
“그렇게 소리 질러도 돼? 내 손에 있는 거 안 보여?”
“병신 새끼! 여기에 너만 총가지고 있는 줄 아나? 그 총으로 날 쏠 깡도 없는 주… 커헉!”
놈의 목에 총알을 박아준 나는 주방안으로 들어가 다른 요리사들의 생명을 끊기 시작했다.
‘미리 죽여 놓으면 나중에 탈출하기 쉽겠지.’
냉동 트럭 운전수도 죽였다.
나는 느긋하게 연구소 안을 걸었다.
“누구냐!”
도중에 누군가와 마주치면 망설이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대충 40명 정도 죽였을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문이 꽉 닫혀 있었다. 문을 열기 위해선 비밀번호와 지문인식이 필요했다.
‘해킹은 필요 없겠어.’
마나를 담은 돌려차기에 강철문이 박살났다.
‘크크. 제대로 찾아왔어.’
내부에는 양귀비가 자라는 실내 농장이었다. 나는 우선 증거용으로 남길 사진을 찍은 뒤, 양귀비들을 모조리 인벤토리에 넣었다. 이것들은 언젠간 돈이 될 것이다. 도중에 사람이 보이면 바로 죽였다.
농장의 다른 한쪽에는 정제를 위한 기계들이 있었다.
‘그것도 있을 텐데.’
농장 안쪽에 있는 창고의 문을 박살냈다.
최소 20톤은 넘을 것 같은 헤로인 가루들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한편에는 녹색 액체가 들어 있는 작은 유리병이 300개 정도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모조리 챙겼다.
‘이게 그 촉진제인가. 퀘스트 보상은 시시하게 촉진제 1개만 준단 말이지…. 크크크.’
헤빌의 촉진제.
레드 아이의 보스인 헤빌이 만든 식물 성장 촉진제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물건이냐면 씨앗을 심고 그 자리에 촉진제를 뿌리면 1분 만에 완전히 자라 열매를 맺을 정도가 된다. 한 방울을 뿌리면 대충 10 제곱미터 내에 있는 식물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이런 엄청난 물건들은 그냥 내버려둘 수 없지. 영화를 보니 양귀비 농장이 3~4개 정도 있는 것 같은데… 전부 챙겨야지.’
약탈의 재미는 짜릿했다. 물론 섹스 만큼은 아니었지만.
???
연구소의 지하 어느 방에 들어선 제나는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벌거벗은 남자들이 시험관 속에 들어가 있었다.
개조인간을 만들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제나는 우선 증거 사진을 남겼다. 그리고 저 옆에 있는 컴퓨터에 다가갔다. 켜져 있는 컴퓨터에는 연구 데이터가 들어 있었다. 제나는 미리 준비해둔 USB를 꽂아 데이터를 복사했다.
“뭐지, 왜 문이 열려 있어? 여기 누구 있나?”
하얀 가운을 몸에 걸친 안경 쓴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천천히 주위를 살펴본다.
제나는 입술을 깨물며 시험관 뒤로 몸을 숨겼다. 여긴 다른 출구나, 마땅히 숨을 곳이 없었다. 연구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가까이 다가온다면 바로 들킬 수 밖에 없었다.
제나가 조용히 허리춤에서 총을 꺼냈다. 여차하면 연구원을 죽이고 달아나야 했다.
뚜벅뚜벅.
연구원이 가까워질 때였다. 빠깥에서 돌격소총을 무장한 수 십 명의 남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연구원이 몸을 돌렸다.
“갑자기 무슨 일인가!? 적이라도 쳐들어왔나?”
“예. 쳐들어왔습니다. 위에서는 벌써 수 십 명이 죽었습니다. 최악의 경우도 대비해야 합니다.”
“최악의 경우? 적은 누구지? 특수 부대라도 쳐들어 왔나?”
“적은 한 명입니다.”
“한 명? 지금 장난 하나? 고작 한 명 때문에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고?!”
“그 한 명이 보통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놈은 어디에 있나?”
“현재 농장에 있는 걸로 파악중입니다.”
“농장? 오, 이런! 다른건 몰라도 촉진제가 외부로 유출 되어선 안 돼! 빨리 움직여!”
연구원을 비롯한 남자들이 어딘가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제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행운이 찾아와 그녀를 위기에서 구해주었다.
그녀가 몸을 일으킨 순간이었다.
“헉!”
시험관에 있는 알몸의 남자와 두 눈이 마주쳤다. 붉은색의 눈. 개조인간이 증거.
남자가 입을 벌려 광분한다. 시험관에 갇혀 있기에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남자는 곧 주먹을 쥐고 서험관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시험관이 약간 흔들리는 정도였다. 하지만 곧 시험관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놀란 그녀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른 시험관에서도 마찬가지로 남자들이 그녀를 찢어 죽일 듯이 노려보며 주먹으로 시험관을 두들기고 있다.
제나는 컴퓨터에 꽂은 USB를 회수했다. 70% 정도 밖에 자료를 모으지 못했지만 이대로 있으면 개조인간들에게 죽을 것 같았다.
그녀가 밖으로 나와 복도를 내달렸다.
쨍그랑! 뒤쪽에서 시험관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무심코 고개를 돌린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20명이 넘는 개조 인간들이 붉은 눈을 빛내며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빌어먹을 년! 당장 죽여주마!”
“우리의 계획을 박살내려고 해? 용서할 수 없다!”
제나는 소음기가 달린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몇 명의 개조인간들이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러나 몸을 벌떡 일으켰다. 심장이나 뇌를 노리지 않는 이상 개조인간들은 즉사하지 않는다.
“거기 서라!”
제나는 귀에차고 있는 소형무전기를 눌렀다.
“S! 긴급 상황이야! 개조 인간 수 십 명에게 쫓기고 있어. 뭔가 방법 없어?!”
???
퍼억.
내 주먹을 맞은 붉은 눈의 개조 인간의 머리가 박살났다.
나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총에 맞거나, 내 주먹에 맞은 시체들이 한 가득이었다. 나는 덤벼오는 놈들을 모조리 죽였다.
지직.
무전이 들려왔다.
-S! 긴급 상황이야! 개조 인간 수 십 명에게 쫓기고 있어. 뭔가 방법 없어?!
어디냐고 물으려는 순간이었다. 커브길에서 그녀가 나타났다. 입술을 깨물며 죽어라 뛰고 있는 그녀의 갈색 머리가 휘날렸다.
20명이 넘는 개조 인간들이 제나를 노리고 있었다.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가장 가까이 있는 개조 인간이 손을 뻗어 제나의 머리채를 자븡려고 했다.
‘시발 새끼들이. 내 여자에게 손대려고 하네.’
바로 권총을 겨누고 총을 당겼다. 제나의 바로 뒤에 있던 놈의 이마에 총알구멍이 생겼다. 이윽고 다른 개조 인간들에게 총구를 돌렸다.
“S!!!”
“인기 좋은데 J.”
“지금 이 상황에 농담이 나와?!”
찰칵찰칵.
총알이 떨어졌다. 나는 권총을 바닥에 던지고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소총을 발로차 낚아챘다.
“고개 숙여 J.”
제나가 바로 고개를 숙였다. 총구가 연속으로 불을 뿜었다. 그녀를 뒤쫓던 개조 인간들을 모조리 죽였다.
“하아. 하아…. 일이 꼬였어. 어쩌지?”
“괜찮아. 자료는 거의 다 챙겼어. 이제 탈출만 하면 돼.”
해킹 스킬을 이용해 전부 챙겼다.
“정말? 그런데 상황은 생각보다 더 심각한 것 같던데… 대체 무슨 일이야?”
“처음에는 나 때문에 전투가 일어났는데 결국엔 자기들 끼리 싸우더라. 개조 인간들이 쉽게 광분하는 특성 때문인 것 같아.”
나는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하며 위험하다는 이유로 그녀의 팔을 잡아 냉동 트럭을 타고 여유롭게 도망쳤다.
트럭의 조수석에 앉은 그녀는 1시간이 지나자 겨우 긴장을 풀고 의자에 몸을 기댔다.
“하아. 이런 임무는 내 전문이 아닌데….”
“뭘 잘하던데.”
“잘하긴. 결국 네가 자료들을 챙겼잖아.”
“그리고 넌 개조 인간에 대한 데이터를 챙겼지. 어떻게 보면 그게 더 중요한 자료일 수 있어.”
“…그 데이터도 70% 밖에 빼내지 못했어.”
“그것만으로도 증거 자료로 충분해.”
낡은 휴게소에 도착했다. 다른 차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하늘에선 석양이 지고 있었다.
“…….”
“…….”
나와 제나는 서로를 말없이 쳐다봤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이 기회를 놓치는 건 멍청이였다.
손을 뻗어 제나의 얼굴을 잡았다. 제나는 내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나는 몸을 움직여 제나에게 다가갔고, 제나는 두 눈을 감았다. 입술이 마주치자 제나가 내 어깨를 잡았다.
“하읍…. 쭙.”
우리는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키스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