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3화 〉 413. 미스터 S
413. 미스터 S
나와 제나는 서로를 말없이 쳐다봤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이 기회를 놓치는 건 멍청이였다.
손을 뻗어 제나의 얼굴을 잡았다. 제나는 내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나는 몸을 움직여 제나에게 다가갔고, 제나는 두 눈을 감았다. 입술이 마주치자 제나가 내 어깨를 잡았다.
“하읍…. 쭙.”
우리는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키스를 했다.
내 혀는 그녀의 입안 깊숙이 파고들었다. 혀가 너무 파고들면 안 된다. 그럼 오히려 괴로워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성감 고조를 사용했다.
“으응….”
제나가 기분 좋은 신음을 흘렸다. 두 개의 혀가 끈적하게 얽힌다. 하얗던 제나의 얼굴이 점점 상기되기 시작했다.
그녀의 뺨을 잡고 있던 내 손은 자연스레 아래로 내려간다. 뺨에서 어깨로, 어깨에서 가슴으로. 내 손이 그녀의 한쪽 가슴을 잡는 순간, 그녀가 나를 밀어냈다.
나는 찰나의 순간에 고민했다. 이대로 그녀를 덮쳐서 따먹을지. 아니면 일단 뒤로 물러나 다음 기회를 노릴지.
선택은 후자였다. 여기까지 왔는데 공들인 탑을 무너뜨릴 수 없었다. 나는 가슴에서 손을 떼고 뒤로 물러났다.
입이 떨어진다. 그녀의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에 있는 혀와 이어진 은색 실타래가 늘어났다가 끊어졌다.
“S…. 키스 너무 잘하잖아. 어디서 배운 거야?”
“하하. 키스를 가르쳐주는 학교라도 있나?”
나는 다시 제나의 뺨을 잡았다. 이어서 키스를 시도하려고 했지만 제나가 손바닥을 들어 내 시도를 막았다.
“S. 임무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본부로 돌아갈 때까지 방심해서는 안 돼.”
“그럼 본부에 도착한 뒤에는… 이어서 해도 되지?”
“키스만이라면 괜찮아.”
“키스만이라니…. 조금 실망인데. 우린 10대도 아니잖아.”
“난 그저 그런 싸구려 여자가 아니야.”
“……어쩔 수 없지. 대신 한 번만 더 키스 하자.”
“알았어. 한 번 만이야. 하읍….”
???
나는 연구소에서 해킹해 자료를 빼낼 때 레드 아이의 보스인 헤빌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냈다. 당장 쳐들어가서 헤빌을 죽이는 일은 뒤로 미뤄뒀다.
아직 제나를 따먹지 못했기 때문이다. 헤빌을 죽이면 퀘스트는 완료될 것이고, 나는 현실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니 헤빌을 죽이는 일은 제나를 따먹은 뒤다.
‘문제는 제나가 좀처럼 몸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거지.’
키스는 쉽게 허락하지만 그 이상은 꽤 힘들었다. 내가 보기엔 섹스 경험이 몇 번 있는 것 같긴 한데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그리고 레드 아이를 쫓는데 혈안이 되어 있어.’
나는 시선을 돌려 제나를 찾았다. 제나는 유리벽 너머의 코트의 사무실에서 코트와 이야기 하고 있었다. 콧수염을 기른 코트는 고집스러운 입매로 제나를 노려보고 있었고, 제나는 분하다는 감정이 역력했다.
이윽고 제나가 문을 박차고 코트의 사무실에서 나왔다. 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제나에게 다가갔다.
“J. 코트 자식이 뭐라고 지껄인거야?”
“…당분간 개인 임무를 수행하래.”
“뭐?! 왜?”
청천벽력같은 말이었다. 내가 얌전히 요원 일을 하고 있는 건 순전히 제나 때문이었다.
제나는 주위를 한 차례 둘러봤다. 직원들이 여기저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내 팔을 잡고 인적이 없는 청소 도구실로 끌고 갔다.
“코트가 우리를 의심하고 있어.”
“…젠장.”
“자료들을 상부에 넘기는 게 좋겠어. 그럼 바로 코트를 구속할 수 있을 거야.”
“아냐. 지금 자료를 넘겨 봤자 코트가 손을 쓸게 분명해.”
나는 되는대로 지껄였다. 아직 코트는 있는 편이 낫다. 코트가 사라지면 혼란이 오게되고 일이 더 귀찮아진다.
“그럼 대체 언제까지 코트를 내버려 둬야 하는 거야?!”
“진정해. 코트도 얼마 안 남았어. 난 지금 자료를 정리하고 분석하는 중이야. 레드 아이의 보스, 헤빌의 실마리를 잡았어.”
내 말에 흥분해 있던 그녀의 표정이 순식간에 냉정해진다.
“…정말?”
“내가 네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잖아. 이 실마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배신자인 코트가 제자리에 있는 편이 나아.”
“하지만 코트가 역으로 우리를 공격할 수도 있어.”
“코트는 아직 우릴 의심하는 단계일 뿐이야.”
나는 그녀의 어깨를 양손으로 붙잡고 두 눈을 마주했다.
“J…. 아니, 제나. 날 믿어줘. 코트는 반드시 죗값을 치르게 될 거야. 지금 우리가 집중해야 할 건 코트가 아니라 레드 아이의 보스인 헤빌이야. 놈을 다시 놓칠 수는 없어. 눈앞의 소악 때문에 거악을 놓칠 수 없다고.”
“…하아. 알았어. 널 믿을게. 그래도 너한테만 맡겨두는 건 내 마음이 편치 않아. 내가 널 도울 방법이 없을까?”
“괜찮아. 일은 착착 진행되고 있으니까. 시간만 주면 돼. 그래도 정 나를 돕고 싶다면… 키스를 해줘.”
제나가 나를 쳐다봤다. 그녀의 입꼬리가 약간이지만 올라갔다. 그리고 제나가 내게 달려들었다. 손으로 내 목을 휘감고 입술을 맞췄다. 내 손은 그녀의 허리와 등을 끌어안았다.
“으응… 응.”
키스는 거의 10분 동안 이어졌다.
???
2주가 지났다.
나는 그 기간 동안 레드 아이의 거점 여러 곳을 습격해 헤빌의 촉진제를 빼앗았다. 이런건 많으면 많을수록 좋기 때문이다.
그 외의 시간에는 자동 진행으로 보냈기에 실제로는 하루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다.
“여기에 헤빌이 있다고…?”
“이해해. 놀랍겠지.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이 딱 들어맞는 꼴이었으니까.”
제나와 나는 자동차 안에서 뉴욕에 있는 어느 한 호텔을 쳐다봤다. 이 호텔 안에 헤빌이 머물고 있었다.
호텔은 본부에서 겨우 20분 거리에 있었다.
쿵!
제나가 분통한 표정으로 주먹을 내려쳤다.
“바로 근처에 레드 아이의 보스가 있었는데…! 왜 우리는 그 동안 몰랐던 거야?! 우리가 이렇게나 무능했을 줄이야…!”
“진정해, J. 우리가 무능한 게 아니야. 우리 위에 배신자인 코트가 있었을 뿐이야. 코트는 그 동안 우리가 얻는 레드 아이의 정보를 통제했어. 중요한 정보는 모두 없앤 거지. 그 과정에서 요원들 몇 명이 희생되었고.”
“코트! 그 개자식도 용서할 수 없어!
“코트는 상부와 미스터 A가 처리 할 거야. 우리가 신경 써야 하는 건 헤빌이지.”
나는 여기 오기 전에 상부와 미스터 A에게 자료를 넘겨줬다. 상부는 멍청하지만 주인공인 미스터 A는 믿을 수 있었다.
자동차를 운전해 호텔 주차장 쪽으로 들어갔다. 제나는 긴장한 티가 역력했다.
“S. 역시 우리끼리 움직이는 건 힘들지 않을까? 지원이 필요해. 네 말대로라면 호텔의 직원과 투숙객들 대부분이 개조 인간이야. 우리끼리 할 수 있을까?”
“우리 목적은 전쟁을 하는 게 아니야. 헤빌을 붙잡는 거지. 그리고 걱정하지 마. 지원은 올 거니까.”
호텔의 발레파킹으로 보이는 남자가 차 앞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미스터. 차는 제가 주차해드리겠습니다.”
나와 제나는 차에서 내리고 호텔로 들어갔다. 우리는 호텔의 스위트룸으로 들어갔고, 작업을 준비했다. 제나가 움직이기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총을 무장했다.
일을 시작하기 전, 내가 그녀의 허리를 휘감고 입을 맞췄다.
“고마워. S.”
“뭐가?”
“뭐든지.”
다시 키스를 하고 헤어졌다.
그녀는 위쪽으로 올라갔고, 나는 지하로 내려가기로 했다. 내가 헤빌은 위층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그녀에게 말했기 때문이다.
허나 실상은 지하에 헤빌이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호텔의 꼭대기보다 지하 쪽이 도망가기 쉽기 때문이다.
나는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을 이용했다. 엘리베이터는 어차피 지하로 내려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하로 향하는 계단 입구에서 한 남자가 나를 가로 막았다. 경비원으로 보이는 그는 2M가 넘는 근육질의 체구에 정장을 입고 허리춤에 권총을 무장했다.
“손님. 지하는 관계자 외 출입 금지 구역입니다. 돌아가 주십시오.”
“…….”
나는 말없이 그의 어깨를 잡았다.
“손님?”
파지지지지직!
뇌전이 일어났다. 경비원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감전당해 죽었다. 쿵. 바닥에 쓰러진 경비원의 몸에서 연기가 흘려 나왔다. 나는 역겨운 살타는 냄새를 뒤로 하고 지하로 향했다.
인벤토리에서 권총을 꺼내 손에 쥐었다.
지하의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대마초 냄새가 났다. 문이 여러개였는데 그 중에 하나를 열어보았다.
“아아앙! 앙! 흐어어엉!”
남자와 여자가 침대 위에서 미친 듯이 섹스하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방안에 들어왔음에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탕탕!
두 번의 총성이 울리고 그들의 섹스가 멈췄다.
내 눈은 무심했다. 그들은 마약 중독자였다. 여자나 남자나 더럽게 생겼다.
몸 곳곳에 주사 자국이 있고, 머리카락은 씻지도 않는지 산발이었다. 눈썹은 없으며 눈 아래에는 시커먼 다크 서클이 있다. 이빨은 누렇다 못해 시커멓게 변해 삐죽삐죽하고 몸은 뼈가 보일 정도로 말랐으며 온몸을 손톱으로 긁은 흔적이 있었다.
나는 다른 방안으로 쳐들어갔다. 마약 중독자들은 적었고, 대부분이 레드 아이의 전투원들이었다. 나중에 귀찮아지지 않기 위해 모조리 죽였다.
그리고 마침내 레드 아이의 보스인 헤빌을 만날 수 있었다.
헤빌은 나보다 조금 더 큰 체격의 남자였다. 회색 머리카락의 중년이었으며 금목걸이와 금팔찌를 했다. 그는 소파에 앉아 보드카를 마시며 노트북을 보고 있었다.
총구가 그의 머리에 향했다.
“헤빌. 만나서 반갑다. 아직도 세계 정복을 꿈꾸고 있나?”
헤빌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그의 눈동자는 새빨갛다. 조명을 반사해서 마치 눈이 붉은빛을 내는 것 같았다.
“오플의 요원이군. 미스터 S. 본명은 성유진.”
“코트, 그 자식이 가르쳐줬나?”
“미스터 S. 내 밑으로 들어와라. 너는 유능하다. 내 사업장을 박살낸 건 마음에 안 들지만, 개조 인간보다 더 뛰어난 전투 능력을 높이 산다. 내 오른팔이 되어 같이 세계를 정복하자. 우리라면 앞으로 10년… 아니, 5년 내로 할 수 있다.”
“미친놈이군. 세계 정복이 그렇게 쉬운 줄 아나? 설마 마약 따위로 세계 정복을 할 수 있다고 믿는 건 아니지?”
“마약은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진짜는 개조 인간이지.”
“개조 인간도 총 맞으면 죽더만.”
헤빌의 입가가 찢어지며 미소를 그린다.
“미스터 S. 개조 인간에게는 비밀이 하나 있다. 개조 인간은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갖게 되지만….”
“너한테 복종하게 된다는 것 말이냐?”
헤빌의 입가의 미소가 사라졌다.
개조 인간은 헤빌에게 복종하게 된다. 세뇌같은 게 아니다. 마치 정해진 운명처럼, 유전자와 본능이 헤빌에게 복종한다.
헤빌이 관리하지 못하면 재앙이 되어버리는 개조 인간을 마음 놓고 양산해내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다.
“…알고 있었나? 대단하군. 그건 나와 간부 몇몇만 알고 있는 극비 중의 극비인데 말이야. 점점 네가 마음에 드는군.”
“너 혹시 게이냐?”
“흐흐. 그런 질문은 난생 처음 들어보는군. 아직 늦지 않았다. 미스터 S. 내 밑으로 들어와라. 자금도 거의 다 모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세계 정복을 시작할 것이다.”
“세계의 유명인들을 납치해서 개조 인간으로 만든 뒤 지배하는 계획 말이냐?”
“역시 알고 있군. 우선 미국의 정치인과 기업인부터 개조 인간으로 만들 것이다. 그 뒤에 대통령까지 개조 인간으로 만들고 전 세계의 유명인들을 내가 지배 할 것이다. 네가 있으면 일은 더욱 쉬워지겠지. 내게 와라. 돈이면 돈, 권력이면 권력, 여자면 여자. 부족함 없이 주마.”
“여자는 좀 끌리긴 한데… 내 퀘스트가 널 죽이는 거라서 말이야.”
탕탕탕탕!
총알이 헤빌의 머리에 쏘아진다. 헤빌은 여전히 여유로웠다. 총알들이 그의 머리에 부딪혔다가 튕겨나갔다. 찌그러진 총알이 내 발치를 굴렸다.
“멍청한 선택을 할 줄이야. 유감이군.”
헤빌이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나는 다시 한 번 방아쇠를 당겼다. 이번엔 연사였다. 머리 뿐만이 아니라 그의 몸 전체를 노렸다. 어느것 하나 헤빌에게 피해를 주지 못했다. 심지어 거시기에 부딪힌 총알도 튕겨나갔다. 총알이 꿰뚫은 건 놈이 입고 있는 옷뿐이었다.
“…….”
“크크. 총 따위로는 날 어떻게 할 수 없다. 넌 내 일을 방해했으니… 온몸을 찢어 죽여주마.”
헤빌의 몸이 부풀어 오른다. 근육이 폭발적으로 커지면서 상의가 찢겨나갔다. 그의 몸은 새빨갛게 변해 있었다.
나는 권총을 바닥에 버리고 마나를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