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5화 〉 445. 레벨업 시스템
445. 레벨업 시스템
한국에서 제법 알아주는 신문사 중 하나인 상오일보 소속의 기자인 유지나는 최근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혜나야. 왜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니?”
유지나는 쌍둥이 동생인 유혜나와 함께 오피스텔에서 동거하고 있었다. 그리고 최근 유혜나의 행동이 바뀌었다.
승조 그룹 본사에서 일하는 커리어 우먼인 유혜나는 항상 피곤한 기색으로 퇴근했고,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은 뒤 소파에 누워 배나 긁적이며 TV를 보던 게 일상이었다.
허나 최근 들어 그녀의 일상은 달랐다. 퇴근 뒤에 바로 집으로 오지 않고 헬스장에서 1~2시간 운동을 한 뒤 돌아왔다. 집에 와서 마스크 팩을 하거나, 손톱을 정리하는 등 유독 외모를 가꾼다.
인터넷을 이용해 보기에도 민망한 섹시를 넘어 야한 속옷을 구매하기까지 한다. 남자친구가 생겼나 싶었는데 스마트폰을 몰래 훔쳐보니 남자친구는 없었다.
결국 유지나는 직접적으로 유혜나에게 물었다.
“관리를 해주는 건 당연하잖아? 언니도 몸 좀 관리하지 그래? 아무리 기본적인 미모가 있다고 해도 시드는 건 한순간이야.”
“대체 무슨 바람이 분 거야? 회사에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생겼니?”
유지나는 유혜나의 행동을 예상했다. 코웃음 치면서 되도 않는 소리 하지 말라며 타박하겠지. 허나 돌아온 대답은 그녀의 예상을 빗나갔다.
“응. 생겼어.”
“…뭐? 그게 누구야?”
유지나의 두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일이 바쁘다며 연애도 하지 않던 쌍둥이 여동생이 드디어 남자에게 관심이 생겼다. 노처녀인 유지나는 본인에 대해선 생각하지도 않고 유혜나에게 대답을 재촉했다.
“누구야? 누구야? 누구냐고!”
“아…. 언니 너무 시끄러워. 달라붙지 마. 팩 떨어지잖아.”
“엄마랑 아빠한테 안 말할게. 가르쳐줘. 설마 전에 들어왔다던 영업 쪽의 신입이야?”
“아니야. 넘겨짚지 마. 그런 수에 안 통해.”
“야! 알려주면 좀 어때! 내가 저번 네 생일 때 구두 선물한 거 잊은 거야? 그거 30만 원 넘는 거야!”
유혜나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한테도 안 말 할 거지?”
“내가 기자지만 입이 가벼운 건 절대 아냐. 그리고 뭐하러 내 동생의 일을 떠벌리고 다니겠니?”
“…….”
유혜나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유지나를 쳐다보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이번에 새로 임명된 전무야. 난 그분을 사랑하고 있어.”
“……전무?”
유지나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잘못 들었나 싶었는데 유혜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전무.”
“……미친년. 전무면 나이가 최소 40 세는 넘었을 거 아니야.”
“아냐. 그분은 20대야.”
“20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네가 다니는 승조그룹이 중소기업도 아니고. 20대가 임원을 어떻게 달아? 회장 손자라고 해도 못해.”
“말해줘도 안 믿네.”
농담하지 말라고 말하려던 유지나가 말을 삼켰다. 애초에 유혜나는 이런 농담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얼굴을 보니 농담하는 것도 아니다.
“…진짜 20대가 전무라고? 그것도 승조 그룹 본사의?”
“언니. 몇 번을 말해줘야 돼?”
“그게 사실이라면….”
비리다.
비리가 확실하다.
스마트폰을 꺼내 승조 그룹 홈페이지에 들어가 이사진은 확인한다. 허나 20대로 보이는 젊은 이사는 보이지 않았다.
“혜나야. 그 전무…. 이름이 뭐야?”
“그분? 성유진 님이야.”
“…사람 이름에 님은 왜 붙여?”
“님이라 불려야 마땅한 분이니까. 붙이지.”
유혜나의 눈동자가 몽롱하게 변한다. 남자 아이돌에 빠진 10대 소녀 보다 더 중증으로 보였다. 그녀로부터 꺼림칙함을 느낀 유지나는 괜히 자신의 팔을 쓰다듬고는 성유진이란 이름을 검색해봤다.
마땅한 정보는 뜨지 않았다.
‘……쉽게 찾으면 오히려 이상하겠지. 20대 남자가 임원이 되었다면 당연히 말이 나왔을 텐데 기사 하나 없어. 승조 그룹이 손을 썼을 가능성이 높아.’
목이 탄다.
이건 특종이 틀림없었다.
‘……내가 밝혀볼까? 선배들한테 말하지 않고 나 혼자 하는 거야. 난 기자가 되고나서 한 번도 특종을 물어본 적이 없어. 이걸 내 실적으로 삼으면….’
탐욕이 그득그득한 눈이 유혜나에게 향했다.
“혜나야. 그 성유진 전무라는 사람의 사진같은 거 있니?”
“그런 거 없어. 난 대리직도 못 달았는데 전무님이랑 사진을 어떻게 찍어?”
“사진 찍어서 나한테 주면 안 될까?”
“안 돼. 우리 회사는 사진 찍는 거 금지야. 그리고 사실… 전무님에 대해서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언니는 가족이라 말해줬어. 뭔가 하려는 거 아니지?”
“아니야. 아니야.”
유지나가 웃으며 손을 저었다. 그러나 머릿속으로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비리를 정확하게 파헤치는 건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유진 전무가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이란 증거만 있으면 특종은 충분히 될 수 있다.
‘미끼만 있으면 다른 사람들도 움직일 거야!’
???
일주일이 지났다.
유지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모든 인맥을 동원해 승조 그룹 본사의 성유진 전무에 대해 조사했으나 원하는 걸 얻지 못했다.
그리고 점점 이상함을 느꼈다.
‘많이 이상해. 단순한 비리가 아닐지도 몰라.’
성유진 전무가 존재하는 건 맞는데 서류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귀신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진짜 존재하는 게 맞긴 해? 서류상으로 없으면 없는 사람이잖아. 혜나가 날 놀린 거야? 아닌데…. 그러기엔 만나본 직원들도 다 성유진 전무를 알고 있는 눈치였어.’
이상하다. 이상해.
살아오면서 이런 이상함을 느끼는 건 처음이었다.
그녀는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호기심이 점점 커지는 걸 느꼈다.
‘나는 기자야. 성유진 전무에 대해 반드시 밝혀낼 거야.’
의욕이 타올랐다.
그녀는 다시 유혜나에게 치근덕거렸다. 가족 끼리 서로 돕고 살아야지.
“성유진 전무는 어떻게 생겼니?”
“…아, 왜 또 갑자기 전무님에 대한 거야.”
“네가 반했다는 남자잖아. 궁금해서 그래. 어떻게 생겼니?”
“잘 생겼어.”
“……어떻게 잘 생겼니? 연예인으로 치자면?”
“그냥 잘 생겼어.”
“…….”
다른 질문도 던져봤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알맹이가 없는 것들 뿐이었다.
질문이 계속되자 유혜나가 성을 냈다.
“언니, 왜 자꾸 물어봐? 지금 나 취조하는 거야?”
“아, 아니야.”
유지나는 유혜나로부터 괜찮은 정보를 얻지 못했다.
며칠 뒤,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유지나는 승조 그룹 본사로 쳐들어갔다.
하지만 1층 로비에서 막혔다.
“아, 제 동생이 기획팀에서 일한다고요! 유혜나! 제 동생 만나러 왔어요!”
“아무리 그래도 안 됩니다. 밖으로 나가주십시오. 계속 여기서 방해하신다면 경찰을 부르겠습니다.”
두 눈을 시퍼렇게 빛내는 경비원들의 저지에 그냥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그냥 포기할 줄 알고?’
유지나는 몰래 안으로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유혜나의 말에 따르면 성유진 전무는 가장 높은 층, 회장실이 있는 층에 사무실이 있다고 했다. 전무가 왜 회장실이 있는 층에 사무실이 있는지 매우 의심스럽다.
밤이 되었다. 1층에는 경비원들이 서있었다. 3개조로 시간마다 교대하고 있다. 경비원의 숫자는 10명이 넘는다. 아무리 대기업 본사라지만 지나치게 삼엄했다.
‘비상문은 있을 거야. 지하 쪽으로 가보자.’
지하에도 경비원이 있었다.
유지나는 포기의 한숨을 내쉬었다. 억지로 들어가는 건 불가능했다.
‘……이렇게 까지 보안이 뛰어나면 도리어 더 의심스럽잖아.’
포기하는 건 몰래 침입하는 것뿐이었다.
‘침입은 불가능. 직원을 매수하는 것도 안통하고…. 방법이 없을까?’
유지나가 갈구하던 방법은 며칠 뒤에 생겼다.
“콜록. 콜록.”
출근을 위해 아침 7시에 일어난 유혜나가 기침을 했다. 딱 봐도 그녀는 몽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유지나가 그녀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댔다. 펄펄 끓는 것처럼 뜨겁다.
“혜나야. 오늘은 쉬어. 열이 엄청나. 병원에 가야 돼. 구급차 불려줄까?”
“감긴데 무슨 구급차야. …오늘 회사에 못 갈 것 같긴 해. 과장님께 전화하고 병원에 가봐야겠어.”
유혜나가 다시 침대에 몸을 뉘였다.
안타까운 시선으로 유혜나를 보던 유지나는 갑자기 몸을 떨었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혜나야. 내가 대신 전화해줄게.”
“…언니가?”
“응. 내가 네 언니잖아. 아, 같이 병원도 가야하는데… 그건 일이 있어서 힘들 것 같아. 지금은 일단 푹 쉬어.”
“…내가 애도 아니고 병원을 혼자 못 갈 것 같아?”
유혜나는 투덜거리다가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유지나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그녀는 유혜나의 방을 뒤적거렸다. 그러다 서랍속에 있는 생리대를 발견했다.
‘그러고 보니 혜나가 요즘 생리를 안하는 것 같은데…. 컨디션 때문에 늦나?’
이어서 가장 필요한 물건. 사원증을 훔치고 방으로 나갔다.
‘혜나야. 오늘만 쓸게.’
나중에 유혜나가 화를 내겠지만, 그녀와 자신은 피보다 진한 쌍둥이였다.
‘용서가 허락보다 쉽다지.’
유지나는 바쁘게 움직였다. 먼저 욕실에 들어가서 헤어스타일을 손봤다.
유지나는 유혜나처럼 흑갈색 머리카락이었지만 더 길었다. 손재주가 있는 유지나는 유혜나의 헤어스타일을 어렵지 않게 따라했다.
가슴 윗부분까지 내려오는 길이의 깔끔하고 세련된 세미 롱 헤어.
몸매는 최근 헬스를 시작한 유혜나가 더 뛰어났지만 옷을 입으면 구분하기 쉽지 않았다. 쌍둥이답게 가슴도 똑같은 E컵이고 엉덩이도 똑같이 컸다.
‘좋아. 이 정도면 혜나랑 똑같아. 엄마도 못 알아보겠는 걸?’
정장을 입은 그녀는 자신의 이리저리 둘러보고 만족하고는 회사로 출근을 시작했다.
이건 범죄다.
유지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성유진 전무! 그 사람의 존재만 확인하고 바로 나갈거야. 시간으로 따지면 오래 안 걸려. 걸릴 확률은 아주 낮아.’
유혜나와 자신은 둘 도 없는 쌍둥이 자매다. 여차할 땐 자신을 도울 것이 틀림없었다.
‘난 기자야. 반드시 밝혀내고 말겠어.’
그녀는 흥분하고 있었다.
???
두근두근.
출근하는 무수히 많은 인파 속에서 승조 그룹 본사 건물로 들어가는 유지나의 심장이 아플 정도로 강하게 뛰었다. 이러다가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을지 걱정 될 정도다.
‘…여기까지 왔는데 도망갈 수 없어.’
유지나는 다리와 허리에 힘을 주고 최대한 당당하게 걸었다. 어색하지 않게 보이기 위해서다.
본사의 입구에 들어섰다.
경비원들이 날카로운 눈으로 직원들을 훑었다. 그들은 출근하는 직원 한 명, 한 명씩 확인했다.
“유혜나 씨. 사원증 주시고, 가방은 위에 올려주세요.”
유지나는 목에 건 사원증을 경비원에게 건넸다. 경비원은 사원증의 바코드를 찍고, 사원증의 사진과 유지나를 대조해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지품도 마찬가지로 철저하게 확인한 뒤 경비원이 말했다.
“확인 끝났습니다. 문제없네요. 유혜나 씨, 들어가세요.”
“네. 수고하세요.”
통과했다.
터질 듯이 두근거리던 심장이 조금이지만 얌전해졌다.
유지나는 조용히 주위 눈치를 살폈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잖아. 왜? 고장 났다는 표시도 없는데.’
직원들은 1층 엘리베이터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2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분명 높은 층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있을 텐데도 말이다.
‘혜나도 11층에서 일하는데….’
11층까지 계단을 통해 걸어 올라가야 한다는 암울한 상상을 털어내며 직원들의 뒤를 따라갔다.
직원들을 따라 2층에 올라선 그녀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2층은 마지 대중목욕탕의 탈의실처럼 생긴 구조였는데 실제로 직원들이 옷을 탈의하기 시작한 것이다.
‘목욕탕…?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저기 남자도 옷벗고 있는데?!’
남자와 여자. 구분하지 않고 옷을 벗어 알몸이 된다. 직월든 중 그 누구도 이상함을 느끼지 않는 듯 싶었다.
알몸이 된 남자는 네 발로 기어서 밖으로 나갔다. 젊은 신인 사원에서 늙은 과장과 부장도 예외 없이 모두.
‘…….’
유지나의 얼굴이 굳어지면서 붉어졌다. 남자의 성기가 대놓고 보였다.
머리가 어질 거릴 정도로 이상한 광경이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꿈속에 있나 의심이 들었다. 오른손으로 뺨을 꼬집었다. 아팠다. 꿈이 아니다.
“유혜나 씨.”
“……네?”
자기 이름이 아니라서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알몸의 여자가 팔짱을 끼고 유지나를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