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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0화 〉 450. 레벨업 시스템

450. 레벨업 시스템

내 신도증을 본 신도들의 얼굴이 부드럽게 풀어졌다.

“얼마 전에 들어온 신도셨군요.”

“예. 지형우 주교님의 도움을 받아 진리를 깨우치고 신도가 되었습니다.”

“절 따라오십시오. 2박 3일 동안 성유진 신도님께서 머무를 방을 안내하겠습니다.”

나는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조용히 주위를 살폈다.

옆에 커다란 계곡이 흐르고, 그 주위에는 산이 에워싸고 있다. 다른 건 몰라도 공기 하나는 좋았다.

‘사이비답게 산골 중 산골을 골랐군.’

숙소는 4층 짜리 건물로 무려 7채가 있었다. 최근에 신축했는지 꽤 고급스러웠다.

“저 신도님.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날 안내하는 신도에게 물었다. 그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짓더니 말했다.

“김현욱입니다. 인천에서 왔죠. 이게 제 신도증입니다.”

신도증.

적색바다교회에선 가장 중요한 물건이다. 이게 있어야만 신도로 인정받을 수 있다.

나는 그의 신도증을 보고 작게 감탄하는 척 했다.

“김현욱 상급 신도님이셨군요. 제가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무례라 할 게 있습니까. 저희들은 모두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일 뿐입니다. 우리는 모두 동등합니다. 우리들 사이에 신분의 차이는 없습니다.”

“과연… 김현욱 상급 신도님은 대단하시군요. 멋진 말씀입니다.”

나는 아부를 떨었다. 최면을 쓸까 했지만 마력이 아까운 느낌이다. 지나가다가 예쁜 여신도를 만나면 최면을 걸 생각이다.

“김현욱 상급 신도님. 오늘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제가 급하게 오다보니 일정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주위에 움직이는 신도들이 보였다. 모두 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 중세시대의 사제들이 입었을 법한 로브와 비슷한 디자인이다.

“우선 저녁때까지 숙소에서 대기해주십시오. 다른 일반 신도들과 함께 숙소를 사용하겠지만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뜻을 함께하니까요.”

함께는 무슨 얼어 죽을.

“혹시 숙소는 남녀합동 입니까?”

“아니요. 남자와 여자의 숙소를 나눴습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은 차단에 없애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아. 그렇군요.”

나는 적잖게 실망하며 눈동자를 뒤룩뒤룩 굴렸다. 남녀가 따로라면 여자들만 사용하는 건물이 있을 것이다.

‘찾았다. 한 여자가 베란다에 있다가 안으로 들어갔어. 바깥쪽에 있는 숙소이네.’

여신도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조금 있다 저녁 식사를 한 후에 기도회가 있습니다. 운동장에서 모든 신도들이 모여 함께 교주님께 기도를 드릴 겁니다.”

“교주님. 교주님을 직접 뵐 수 있다고 들었는데, 기도회때 뵐 수 있는 겁니까?”

“아니요. 교주님은 현재 사도로서 제주도의 불신자들을 상대로 소명을 다하느라 매우 바쁘십니다. 내일 오후쯤에 도착하실 겁니다.”

“…아. 그렇군요.”

마음속으로 혀를 찼다. 당장 교주를 찾아가 최면을 걸 생각이었는데 시작부터 틀어졌다.

“기도회 이후의 스케줄은 어떻게 됩니까?”

“내일을 위해 잠들어야지요.”

“……그렇군요.”

사이비인데 섹스 파티같은 건 안 하나?

나는 약간 실망하며 그의 뒤를 따라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서 건장한 체격의 남자 신도들이 나를 둘러쌌다.

“김현욱 상급 신도님…?”

“아, 긴장하실 것 없습니다. 성유진 신도님. 2박 3일 동안 소지품을 저희들에게 맡겨 주십시오. 돈이나 카드, 스마트폰, 그리고 옷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에 걸친 모든 걸 이 바구니에 넣으십시오.”

스마트폰은 그럴 수 있다. 적색바다교회는 엄연한 사이비 종교니까. 은밀함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옷은 의외였다.

“…옷까지 전부 말입니까?”

“네. 속옷과 신발도 예외는 아닙니다. 옷을 벗고 저희들이 준비한 신도복으로 갈아입으십시오.”

나는 그들이 시키는 대로 했다. 스마트폰을 내놓긴 싫었지만 눈을 부라리고 있는데 들고 있을 수도 없었다. 안쪽에서 헐렁한 신도복을 갈아입었다.

일반 신도복과 상급 신도복에 차이가 있었다. 일반 신도복이 아무 장식 없이 새하얀 것에 비해 상급 신도의 오른쪽 어깨 부위에 적색파도교회의 상징인 십자가와 빨간 파도 문양이 있었다.

“성유진 신도님이 머물 숙소는 304호입니다. 3층에 있습니다. 저녁 식사는 준비되는 대로 방송을 할 테니 가서 기다려주십시오.”

“네.”

그가 말한 304호로 들어갔다.

대충 5~6인 정도 이용할 수 있는 넓이였다. 화장실 1개. 방 1개. 거실 1개다. 그러나 안에 들어 있는 인원은 11명이었다. 나까지 포함하면 총 12명.

‘시발. 홀아비 냄새가 펄펄 나네! 그리고 저 새끼들 나처럼 옷 아래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을 거 아니야.’

덜렁덜렁.

나도 모르게 떠올린 더러운 상상에 인상이 팍 썼다가 서둘러 표정을 풀었다.

“함께 지낼 새로운 신도님이시군요.”

그들은 거실 중앙에 모여서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안경을 낀 남자가 일어나서 나를 반겼다.

“전 최동진 상급 신도입니다. 신도님은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요?”

“…성유진 신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희는 교리를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와서 앉으시지요.”

“네.”

나는 주위를 살펴봤다.

바닥에 앉아 있는 남자들은 죄다 이상한 분위기를 풍겼다. 사람이 아니라 인형같은 느낌이다.

‘세뇌를 하고 있었군.’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최동진이 교리를 떠들기 시작했다. 세뇌는 적색바다교회의 교리에 있었다. 교리를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세뇌가 진행되는 것이다.

물론 내게는 통하지 않았다. 진지하게 교리를 생각하지도 않았고, 내가 가진 마력 수치가 세뇌에 저항한다. 무엇보다 내겐 [절대 정신] 스킬이 있었다.

적색바다교회의 교리의 기본은 간단했다.

달이 땅에 떨어지는 날, 바다가 붉게 물들 것이다. 하늘의 사도는 인도자가 되어 붉은 바다 너머에 있는 낙원으로 신도들을 이끌 것이다.

‘개소리지.’

허무맹랑한 말이다. 하지만 사이비에겐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 신도들은 이 개풀 뜯어 먹는 소리를 믿는다. 이 교리에는 세뇌의 힘이 담겨 있으니까.

참고로 교리에 나오는 하늘의 사도는 적색바다교회의 교주를 뜻한다.

‘심심해 죽겠군. 교장의 훈화가 이딴 말도 안 되는 교리보다 더 재밌겠다.’

가만히 있으려니 좀이 쑤신다.

나는 내 대각선 방향에 앉아 있는 한 남자를 힐끗 거렸다. 여기서 가장 덩치가 컸다. 얼굴도 곰같이 생겼는데 적색바다교회의 교리를 중얼중얼 외우고 있다.

그에게 최면을 걸었다.

‘수겔라!’

<최면에 성공합니다. 허나 대상이 부분적으로 저항합니다. 최면 유지 시간은 32분입니다.>

부분 저항.

남자의 정신력이 강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이미 세뇌에 걸려 있었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내 최면을 저항한 것이다.

‘그래도 최면 유지 시간이 30분이 넘군. 이 정도면 자살까지 시킬 수 있지.’

마음속으로 남자에게 명령을 내렸다.

“크아아아아아!”

남자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짐승같은 포효를 내질렀다. 모두가 깜짝 놀라는 가운데 최동진이 안경을 치켜들며 남자에게 엄하게 말했다.

“박온석 신도님. 갑자기 무슨 소란입니까. 우리는 지금 신성한 교리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소란을 일으켰으니 무릎 꿇고 사과하십시오. 다른 건 몰라도 교리를 공부하는 시간에 소란을 피우는 건 용서할 수 없습니다!”

“죽어어어어!”

박온석이 최동진에게 달려들었다. 안경을 쓰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거침없이 최동진의 얼굴에 주먹을 질렀따.

퍽! 퍽! 퍽!

“최동진 상급 신도님!”

“말려! 저 사람 말려!”

“다른 상급 신도님을 데려와줘요!”

“박온석 신도님! 진정하세요! 일단 진정하시고 불만이 있으면 말로 하세요! 계속 이러시면 적색바다가 박온석 신도님을 지옥으로 끌고 갈 겁니다!”

상황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다른 신도들이 박온석을 진정시키기 위해 움직였으나, 박온석은 여전히 미쳐 날뛰었다.

퍽! 퍼억!

그는 주위에 있는 다른 신도들에게까지 주먹을 휘둘렀다.

나는 박온석과 거리를 벌리고 당황한 척 연기했다. 연기 특성 덕분인지 몰라도 누구도 날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상황은 다른 건장한 체격의 신도들이 우루루 몰려들어 박온석을 제압한 뒤에 끝났다.

“으아아아아아!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하느님이 말씀하셨다! 저 새끼들을 모조리 죽여야 한다! 으아아아아아아!”

박온석은 특수한 방으로 끌려가 감금되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웃음을 삼켰다. 박온석에게 맞은 최동진은 피떡이 되었고, 다른 신도들 몇몇도 얼굴에 멍이 들거나 코피가 났다.

“악마다! 악마가 나타나서 박온석 신도를 홀린 것이 틀림없습니다!!”

“맞아요. 이전에 주교님이 말씀하셨어요. 항상 악마를 조심해야 한다고. 악마가 우리를 유혹하고 지배하려 든다고.”

“박온석 신도는 악마에 씌었습니다!”

세뇌당한 사이비들이 제멋대로 상황을 해석했다.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그들에게 동조하면서 마음속으로는 낄낄 웃었다.

???

저녁 식사.

김치, 불고기, 미역국, 오곡밥, 잡채, 식혜 등 의외로 정상적인 메뉴였다.

식당에 모여서 기도를 한 후에 식사를 했다.

식사를 반쯤 한 나는 배식을 담당하고 있는 상급 신도 한 명을 쳐다봤다.

‘수겔라!’

<최면에 성공합니다. 허나 대상이 부분적으로 저항합니다. 최면 유지 시간은 28분 33초 입니다.>

다정하게 웃으며 배식을 하던 상급 신도는 얼굴을 흉식악살처럼 일그러뜨리더니 음식통을 뒤집고 바닥에 내던졌다.

“으아아아아! 이딴 쓰레기 같은 음식! 누구보고 먹으라는 거냐! 치킨! 치킨을 가져와라!”

그가 미친 듯이 날뛰며 음식통을 바닥에 죄다 엎었다.

“손혁수 상급 신도! 이게 무슨 짓입니까?! 당장 멈추십시오!”

“으아아아아아아!”

“손혁수 상급 신도가 미쳤습니다! 손혁수 상급 신도를 제압하시십오!”

“아, 악마다! 악마가 손혁수 상급 신도님을 조종한 거야!”

식당은 금방 시끄러워졌다. 참고로 밥을 먹지 못한 신도들은 맛없는 빵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나는 식당에 모인 여신도들을 둘러보며 입술을 핥았다.

사이비라 해서 아줌마, 아저씨들이 압도적으로 많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젊은 층이 적지 않았다.

‘뭐야. 젊은 미녀들도 많잖아.’

내 눈에 들어온 미녀만 해도 벌써 6명이 넘었다. 나는 자지가 꿈틀거리며 반응하는 걸 느끼며 혀로 입술을 핥았다.

‘다 따먹어주지!’

???

저녁 식사 후. 기도회.

적색바다교회 신도들이 모두 운동장으로 모였다.

단상위로 올라온 주교가 마이크 잡고 모두를 향해 말했다. 주교라 그런지 신도복이 꽤 화려했다. 신도복에 괴상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불미스러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악마가 신도들을 홀렸습니다. 박온석 신도와 손혁수 상급 신도가 그 피해자입니다. 악마는 두려움을 이용해 우리의 결속을 끊으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럴 때 일수록 똘똘 뭉쳐야 합니다!”

지루한 기도회의 시작이었다.

나는 조용히 주위를 살폈다. 내가 노리는 것은 여신도들이었다. 일반 여신도는 아니다.

‘상급 여신도들이 일반 여신도들을 이끌고 있고, 그 상급 여신도들을 이끄는 건 여자 주교들이지. 오, 찾았다. 저기도 있고. 주교는 의외로 많구만.’

단상위의 주교는 열을 올리고 있었다.

“달이 떨어지는 날!”

“달이 떨어지는 날!!!!!”

주교가 선창하자 신도들이 따라서 소리쳤다.

“바다가 붉게 변하니!”

“바다가 붉게 변하니!!!!!”

“사도께서 우리를 낙원으로 이끄시니라!”

“사도께서 우리를 낙원으로 이끄시니라!!!!!”

지랄한다.

‘수겔라!’

나는 주교를 보며 최면을 사용했다.

<최면에 성공합니다. 허나 대상이 부분적으로 저항합니다. 최면 유지 시간은 15분 18초 입니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주교가 발작하며 단상에 머리를 팍팍 찧었다.

“으아아아아아!”

팍팍팍!

주교의 이마가 찢어지며 피가 튀었다.

주위에 있던 상급 신도들이 깜짝 놀라 주교를 향해 뛰어갔다.

“주교님!”

“주교님! 정신 차리십시오!”

“이놈의 악마 새끼! 이젠 주교님까지!”

“으아아아아아아!”

“주교님을 막아야 합니다!!! 이러다 주교님이 죽습니다!”

운동장은 혼란이 가득했다. 나는 그 혼란을 틈타 여자 주교에게 다가갔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단상 위를 보고 있는 중년 여자 주교에게 최면을 걸었다.

‘수겔라!’

<최면에 성공합니다. 허나 대상이 부분적으로 저항합니다. 최면 유지 시간은 20분 47초 입니다.>

이 정도면 상식을 완전히 바꿀 수는 없어도, 간단한 인식 정도는 바꿀 수 있다. 최면 유지 시간이 끝나더라도 여주교는 날 중요한 인물로 생각하며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다.

“……제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주교님에게 알려드릴 중요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알겠어요. 기도회가 끝난 뒤에 C동 건물로 찾아오세요. 지금은 그를 말려야 해요.”

“예. 바로 찾아가겠습니다.”

여주교는 단상위로 걸어갔다. 나는 다른 여주교에게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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