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2화 〉 462. 아카데미의 구원자
462. 아카데미의 구원자
손에 쥔 악마 계약서가 검은 빛을 뿜었다.
주위에 있는 천 명의 시체들로부터 희끄무레한 영혼이 나타나 계약서로 빨려들어갔다.
계약서에서 흘려 나오는 검은 빛이 한층 더 강해졌다.
검은 빛 속에서 붉은 악마가 나왔다.
“구제할 도리가 없는 악의 냄새가 나는구나!”
붉은 몸을 가진 악마가 튀어나왔다. 머리에는 7개의 뿔이 달려 있었고, 눈은 검은 자위에 핏빛처럼 붉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 등에는 붉은 날개가 접혀 있으며 다리는 염소의 것과 흡사하다.
“…생각도 못한 거물이 튀어나오셨군.”
메킨.
파멸의 악마왕이자 다섯 번째 군단장.
“흐흐. 더러운 악의 냄새가 날 유혹하더군.”
메킨은 주위를 둘러봤다. 그는 피와 시체가 가득한 강당 내부가 마음에 든 듯 입가에 진한 미소를 그렸다.
“쓸데 없는 소리 말고 계약이나 진행 하자.”
메킨의 피처럼 붉은 눈동자가 나를 쳐다봤다. 그는 나를 빤히 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허세를 부리는 것 같진 않고…. 나를 앞에 두고 제정신을 유지하다니 제법이군. 마음에 들었다. 계약에 응해주마. 무엇을 원하나?”
“힘이다. 그거 말고 네게 원하는게 있을 것 같나?”
“흐흐…. 힘의 대가로 무엇을 바칠 생각이냐?”
“뭘 원하지?”
대가는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다. 내 목숨이 되거나, 내가 놈의 부하가 되거나, 아니면 특별한 물건을 놈에게 주거나. 문제는 내가 가진 물건들이 악마왕인 메킨에겐 별 필요 없는 잡것들이란 점이다.
“나는 네가 마음에 들었다. 네가 죽고 난 뒤, 넌 내 부하가 되어라. 최소 남작의 지위는 보장해주마.”
“……너무 후한데.”
“크흐흐. 남작위를 가진 악마 놈들은 내 눈도 마주치지 못한다. 인간인 너보다 못한 쓰레기들이지. 계약을 하겠나?”
“하겠다.”
“하하하하! 네가 악마가 되는 날을 고대하마!”
메킨의 계약서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계약서가 붉게 물들더니 내 가슴 안으로 스며들어왔다.
“크으으윽….”
불덩어리가 몸속에서 이글거리는 느낌이었다.
쿵!
바닥에 주저 앉아 식은땀을 흘리며 고통을 감내했다. 약 1분 후. 뜨거움은 사라졌다.
『파멸의 악마왕 메킨과 계약했습니다.』
『계약의 의해 사망 시 영혼이 5번째 마계로 끌려가 악마로 환생합니다.』
『카르마: 악(惡)이 50 상승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특성, 파멸의 권능(SS)을 획득합니다.』
『스킬, 파멸(S)을 획득합니다.』
『이름: 성유진
근력: A+ 체력: A 민첩: SS 내구: A+ 마나: S+
특성: 아웃 사이더 (S) 파멸의 권능(SS)
스킬: 은밀기동 (A), 맹독 (B-), 흔적 제거 (A-), 각성(C), 간파(B+), 파멸(S)
카르마: 선 0 악 811』
“…….”
입이 벌어졌다.
모든 능력치가 급상승했다. 이 정도면 S급 히어로와 맞붙어도 될 정도다.
파멸의 권능(SS)은 모든 방어를 무시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게임식으로 말하자면 방어력을 무시하고 고정 데미지를 입히는 것이다. 다만 파멸의 권능을 사용하면 대량의 마나가 소모된다.
파멸의 경우 랭크를 가진 물건을 파괴하는 것으로 능력치를 일시적으로 상승시키거나, 육체를 회복시킬 수 있다.
“인천학살마! 성유진! 세상을 위해 네놈을 처형하겠다!”
강당의 문이 열리며 13명의 히어로들이 나타났다. 모두 최소 A급 이상의 히어로들이다.
예전 같았으면 곧장 인벤토리에서 공간 이동 주문서를 꺼내 도망쳤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 눈은 한 여자에게 꽂혔다. 길쭉한 귀를 가진 엘프.
“씌불년. 몸매 좋네.”
나는 새로 얻은 파멸 스킬을 사용했다. 파멸 대상은 내 바지 주머니 속에 있는 손수건이다. 더럽혀도 자동으로 깨끗해지고, 망령을 한 마리 소환해 부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아이템이다.
『파멸(S)을 사용합니다.』
『망령의 손수건(B+)이 파괴됩니다.』
『35초 동안 근력과 체력이 1단계 상승합니다.』
주머니 속에 있는 손수건이 먼지가 사라진 게 느껴졌다.
파지지직.
손에 쥔 단검에 뇌전이 번뜩인다. 파멸의 권능을 사용하자 시퍼런 뇌전의 색깔이 불길한 검붉은색으로 변했다. 검붉은 번개는 내 몸을 휘감았다.
나는 번개가 되어 히어로들을 향해 뛰었다.
8초.
내가 12명의 히어로들을 학살하고, 엘프년을 제압해 바닥에 깔때까지 발생한 시간이었다.
“괴, 괴물….”
노란 머리 엘프가 두려움에 찬 얼굴로 중얼거렸다.
“크크크.”
나는 웃으며 그녀의 옷을 찢었다. 새하얀 우유를 바른 듯한 부드러운 살결과 봉긋하게 부푼 탱글한 가슴.
“꺄아아아아아악!”
“씨발년아. 엘프 보지맛좀 보자!”
『카르마: 악(惡)이 1 상승합니다.』
???
1년이 지나지 않아 SSS급 빌런이 되었다.
‘SSS급 히어로도 존재하지 않는데 빌런인 내가 최초로 SSS급을 찍다니. 기분 째지네!’
『이름: 성유진
근력: S 체력: A+ 민첩: SS+ 내구: S- 마나: SS
특성: 아웃 사이더 (S) 파멸의 권능(SS)
스킬: 은밀기동 (S), 맹독 (A+), 흔적 제거 (A), 각성(S), 간파(A), 파멸(S)
카르마: 선 0 악 1641』
내 능력은 이전보다 더 높아졌다. 영약을 빼앗아 먹기도 했고 아이템의 효과 등등이 나를 강화시켰다.
그리고 오늘. 나는 서울의 한 콘서트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C급 히어로이자, 유명한 가수인 클라라 페이레드가 오늘 공연을 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원작 게임에 나오는 플레이어블 캐릭터 중 하나다. 그런 만큼 뛰어난 외모를 갖추고 있다.
‘한국에 있는 마루한 아카데미가 나 때문에 폐쇄되어서 못 따먹을 줄 알았는데… 이런 기회가 올 줄이야!’
아웃사이더를 발동해 투명 상태가 된 내가 공연장의 벽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갔다.
“음?”
원래라면 공연이 진행중이여야 하는데, 무대 위에는 클라라가 없고 만 명이 넘어야 할 관중들에는 수 백명 밖에 없었다.
“왔구나. 학살마.”
공간이 변한다.
의자가 가득한 관중석이 탁 트인 평원으로 변했다.
‘결계?! 함정이었나!’
곧장 공간 이동 주문서를 꺼내들었다. 망설이지 않고 손에 힘을 주었다.
찌이이익.
그러나 나는 여전히 평원 속에 있었다.
“특성, 스킬, 마법… 기존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공간 이동법. 그게 언제까지고 통할 줄 알았나?”
앞으로 나서서 자신만만하게 말한 건 금발의 미청년이었다.
저스틴 헤일드. 히어로 협회장이자 SS급 히어로.
그 뿐만이 아니었다.
나를 포위하고 있는 수 백 명의 히어로들은 최소 A급 이상의 실력자들이다. SS급 히어로도 당장 보이는 것만해도 15명이 넘는다.
“…작정을 하셨군. 나 하나 죽이자고 히어로들이 이렇게 몰려온 게 부끄럽지도 않나?”
얼굴이 굳어졌다. 내겐 승산은 없었다. 공간 이동 주문서도 사용할 수 없는 지금 도망칠 수도 없다. 남은 건 죽는 것 뿐이다.
“히어로건 빌런이건 정도가 있다. 그런데 네겐 정도가 없다. 부끄러운 줄 모르고 악마왕 중 하나와 계약했으며, 3,000만 명이 넘는 사람을 학살했지. 미국에서는 널 죽이기 위해 핵까지 써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중이다. 세계의 평화를 위해, 인류의 안위를 위해 여기서 죽어라.”
히어로들이 전원 내게 살의를 내비친다. 항복하더라도 죽는 건 확정이다.
“아까부터 거슬리는 게 있는데 말이야. 내 뒤쪽에 있는 놈들은 빌런 아니냐? 익숙한 얼굴이 많이 보이는군.”
칼리스.
내가 속해 있는 악의 조직을 비롯해 이름 높은 빌런이란 빌런들은 모두 모였다.
그리고 칼리스의 보스인 중년 남자가 살의로 번들거리는 눈으로 날 응시하고 있다.
“오랜만이야. 보스. 날 도와주러 온 건… 아닌 것 같네.”
“성유진. 네가 내 딸을 죽였다고 들었다.”
“오해야. 죽인 적 없어.”
“발뺌할 셈이냐. 네가 내 딸을 납치하는 과정을 본 조직원이 있다.”
“죽인 적 없다니까. 자살 했어. 강간 좀 몇 번 했는데 치욕스럽다며 스스로 목에 단검을 찔러 넣더라.”
“성유진!!!!”
“그때 맛본 주성아의 보지가 얼마나 쫄깃쫄깃 했는지…. 지금도 내 눈앞에서 성아의 보지가 아른거려. 보스. 딸 하나 더 낳을 생각은 없어?”
“죽여 버리겠다!!!!”
거대한 뱀이 나를 향해 날아온다.
‘찰나.’
사고 속도가 빨라졌다.
나는 여기서 고민했다. 유희를 여기서 끝내고 지금까지 얻은 물건들을 가지고 현실로 돌아가느냐, 아니면 물건들을 가지고 싸우느냐.
‘……이대로 그냥 죽어주기엔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그리고 어쩌면. 승산은 없지만 모든 것을 걸고 싸운다면….’
협회는 대부분의 전력을 여기로 데려왔다. 빌런들과 모종의 거래를 했는지 유명한 빌런들도 대부분 모였다. 세계의 절반 이상의 전력이 이곳에 있다. 만약 내가 여기서 싸워서 이긴다면, 내가 이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싸운다! 아직 내가 따먹지 못한 미녀들을 위하여!’
『파멸(S)을 사용합니다.』
『역변의 가죽(A+)이 파괴됩니다.』
『황금 나침반(S)이 파괴됩니다.』
『그림자 검(A)이 파괴됩니다.』
『40초 동안 모든 능력치가 3단계 상승합니다.』
내가 이 세계에서 지금까지 모아온 물건들은 모두 100개 이상이다. 원래는 더 많았는데 파멸을 쓰는 일이 많다 보니 이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100개 모두를 쓴다면… 승산이 있다!’
콰르르릉!
검붉은 번개가 사방으로 내려쳤다.
히어로와 빌런들이 나를 죽이기 위해 사력을 다해 달려든다. 그들의 분노와 증오가 내 팔과 다리를 부러뜨리고, 내 목덜미를 물어 뜯는다.
『파멸(S)을 사용합니다.』
『토르의 망토(S+)가 파괴됩니다.』
『생명력과 마나가 회복됩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대검을 휘둘렀다. 파멸의 권능이 묻어있는 번개가 전방으로 뻗어 나가 10명이 넘는 히어로들을 쓸어 버린다. 허나 그 대가로 보이지 않는 검에 하체가 잘려나갔다.
번개의 창이 내 어깨를 꿰뚫고, 시뻘건 불사조가 내 몸을 태운다. 나는 고통을 무시했다. 내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건 고통에 정신줄을 놓는 것이다. 다행히도 절대 정신 덕분인지 고통에 정신줄을 놓는 일은 없었다.
『칠지도(S)가 파괴됩니다.』
『암브로시아(SS)가 파괴됩니다.』
『생명력과 마나가 회복됩니다.』
『모든 상태이상이 해제됩니다.』
나는 미친 듯이 싸웠다. 물건이 10개도 남지 않았을 때, 적들의 80% 내 손에 죽었다. 적들은 이미 지쳤다. 반면에 나는 물건이 있는 이상 체력과 마나를 회복 시킬 수 있다. 승기는 점점 내게 기울여졌다.
“파멸의 권능! 저 힘만 없었더라면!”
협회장이 억울함과 분노를 담아 소리쳤다. 파괴의 권능에 탱커 역할을 하는 히어로들 대부분이 그 의미를 잃는다. 그러나 내가 봤을 땐 파멸 스킬이야 말로 진짜 사기였다.
‘조금 있다 죽은 놈들의 물건들을 전부 알뜰히 챙겨주마! 잃은 만큼 다시 얻어야지!’
나는 적들을 향해 검붉은 벼락을 쉬지 않고 떨어뜨렸다.
『데우스의 가방(A+)이 파괴됩니다.』
『마나가 회복됩니다.』
비어졌던 마나가 단숨에 차오른다. 치트키를 쓰고 싸우는 기분이었다.
-역시 여기까지가 좋겠군.
돌연 파멸의 마왕 메킨의 목소리가 들렸다.
『파멸의 악마왕 메킨이 계약을 파기했습니다.』
『파멸의 악마왕 메킨이 강제 계약 파기의 대가를 지불합니다.』
『특성, 파멸의 권능(SS)와 스킬, 파멸(S)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습니다.』
“뭐?”
가슴속에 있는 무언가가 사라졌다.
능력치가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이래서는 S급 히어로 1명도 처리 할 수 없다.
-널 내버려 둔다면 100년이 지나도 죽지 않겠지. 그러니 여기서 죽거라. 널 위해 백작의 작위를 준비해놓았다. 흐흐흐.
“메킨! 이 씨발 새끼가! 내 통수를 쳐?!!”
-알아둬라. 통수는 악마의 미덕이다. 흐흐흐.
“내가 이대로 가만히 당하고 있을 것 같냐! 메킨!!”
-하하하하하하!
잠깐 메킨에게 정신이 팔린 사이. 칼리스의 보스, 주신만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양팔은 잃은 주신만은 입을 벌려 내 어깨를 물어 뜰었다. 물어 뜯긴 어깨가 시커멓게 괴사한다.
“내가… 죽여버린다고 했지!”
“……!!”
콰르르르릉!
그리고 저 멀리서 한때 인류최강이라 불렸던 히어로의 창이 천둥소리와 함께 날아와 내 심장을 관통 한다.
[죽음 저항이 발동했습니다. 앞으로 15초간 죽지 않습니다.]
-드디어 죽었군. 계약은 파기되었지만 네 몸에는 내 힘이 잔류해있지. 자, 성유진. 마계로 오너라. 너를 위한 자리는 이미 준비… 어억?! 왜 영혼이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냐!
완전 회복을 사용했다. 내 앞에 있는 주신만의 머리를 양손으로 붙잡아 뇌전을 일으켜 뇌를 바싹 태웠다. 놈의 몸의 바닥으로 쓰러졌다.
『카르마: 악(惡)이 3 상승합니다.』
『카르마: 악(惡)이 2,000을 달성했습니다.』
『태초의 악이 침식합니다.』
『믿을 수 없이 견고한 정신력이 침식을 저항합니다.』
『태초의 악이 당황합니다.』
『태초의 악이 다시 침식을 시도합니다.』
『육체가 서서히 침식 됩니다.』
“거슬린다! 꺼져!”
『침식을 저항합니다.』
나는 허리춤에서 단검을 꺼냈다. 『피오르의 단검(A)』. 내가 가지고 있던 물건에 비해 초라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지만, 현재 수중에 남아 있는 무기는 이것 뿐이었다.
“젠장! 어차피 죽을 거라면 한 놈이라도 더….”
서걱!
협회장 저스틴이 날린 황금빛의 검이 날아와 내 목을 베었다.
[사망하셨습니다.]
[유희를 종료합니다.]
???
현실로 돌아온 나는 눈을 끔뻑거리다가 소리쳤다.
“씨발!”
[아카데미의 구원자 세계의 엔딩을 봤습니다.]
[아카데미의 구원자 세계를 선택할 수 없습니다.]
[엔딩은 저장되며 언제든 다시 볼 수 있습니다.]
[엔딩 보너스로 57포인트를 획득합니다.]
“메킨! 개새끼! 이 새낀 죽이지 않으면 내가 화병으로 죽을 거야! 다 된 밥에 재를 뿌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나는 씩씩거리며 유희리셋권을 사용했다.
[아카데미의 구원자 세계를 리셋합니다.]
[인연 초기화를 진행하시겠습니까?]
“초기화 해!”
자동진행이 대부분이었던지라 쌓은 인연도 별로 없었다. 그리고 초기화하면 다시 인연을 쌓으며 포인트를 벌 수 있다.
[아카데미의 구원자를 선택했습니다.]
[아바타가 생성됩니다.]
[선택 가능한 아바타의 설정 5가지가 존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