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469 - 469. 아카데미의 구원자 (249/2,000)

〈 469화 〉 469. 아카데미의 구원자

469. 아카데미의 구원자

이 세계의 한국은 통일한국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세계에서 한국과 북한으로 분단 된적이 없었다. 이 세계에서 한국의 위상은 전세계 10위 안에 들어갈 정도다.

때문에 이 세계의 한국은 열차를 타고 중국과 유럽, 러시아를 여행할 수 있었다.

차를 타고 평양에도 갈 수 있고, 백두산에도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나와 성하리는 함경남도 신흥에 있는 팔색 놀이공원에 찾아왔다.

2006년 9월 10일.

내가 한 달 전부터 떼를 써서 이날에 오게 되었다. 날짜를 맞추는 게 조금 힘들었지만 이런저런 핑계와 떼를 쓴 끝에 결국 오늘 오게 되었다.

“유진아. 오늘은 마마랑 신나게 노는 거야!”

“응! 붕붕카 타고 싶어!”

팔색 놀이공원은 대한민국 최고의 유원지인 만큼 엄청난 부지와 최신 놀이기구들을 자랑했으며, 인파들도 엄청나게 몰려 들었다. 특히나 오늘은 일요일이라 더욱 그렇다.

“아. 덥네. 유진아 괜찮아?”

“응.”

나와 그녀는 놀이 공원 입구에서 줄을 섰다. 뜨거운 태양 때문에 덥긴 했지만 못 버틸 정도는 아니었다.

시야에 성하리의 손목에 낀 팔찌가 들어왔다. 은색 팔찌. 평범한 물건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인식을 약간 변경 시켜주는 효과를 가진 팔찌다. 이 팔찌가 아니었다면 SS급 히어로인 성하리는 이미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곤혹을 치르고 있었을 것이다.

자유이용권을 끊고 안으로 들어간 성하리는 곧장 눈살을 찌푸렸다. T 셔츠와 바지를 입은 중년 남자, 성한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그의 등장에 대해 전혀 몰랐다.

“……그 나이에 스토커 짓이라니… 부끄럽지도 않아요?”

“그냥 우연히 여기에 와서 너희와 부딪혔을 뿐이란다.”

“지나가던 개도 안 웃을 소리를.”

그는 인사을 팍 쓰는 성하리를 무시하고 내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유진아. 오랜만이구나. 잘 지냈니?”

“네. 할아버지.”

사실대로 말하자면 성한구에게 오늘 일정에 대해 은근슬쩍 흘린 건 바로 나다. 그는 성하리가 일을 나간 틈을 타서 집에 찾아왔다. 덕분에 놀이방에 있는 장난감들이 많이 늘어났다.

‘와줘서 다행이군. 이러면 일이 더 쉬워지겠지.’

애초에 내가 여기에 온 건 놀이기구를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 나이가 몇인데 유원지에서 놀이기구를 타면서 즐기겠는가.

“가자. 유진아. 범퍼카를 타려면 빨리 움직여야 돼.”

“마마. 저거 먹고 싶어.”

“솜사탕인가. 여기도 사람이 많구나. 이 할아비가 사갈테니 먼저 가거라.”

“그럴 실 필요는 없는데요.”

“하리야. 그게 더 효율적이지 않느냐.”

성하리와 성한구가 짧은 실랑이를 벌일 때, 나는 천둥부엉이 모카에게 명령을 내렸다.

‘모카. 하늘을 돌아다니며 한 여자애를 찾아라. 생김새는 연두색 머리에 뾰족한 귀. 하프 엘프다. 찾으면 놓치지 않게 주시하고 있어.’

천둥부엉이가 하늘을 난다. 볼 수 있는 건 나와 성하리 뿐이다. 성하리는 천둥부엉이가 놀이공원 위를 날아다니더라도 그러려니 할 것이다.

내겐 정령안이 있었다. 정령안의 효과 중 하나는 정령의 시야를 공유하는 것. 모카가 엘프 여자애를 찾아내기만 한다면, 멀리 떨어져 있는 나도 어디에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유진아. 이쪽이야. 마마 손 놓으면 안 된다?”

“응.”

성하리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기회를 봐서 떨어질 생각이다. 내가 그들을 이끄는 것도 나쁘지 않으나, 나를 잃어버리면 성하리와 성한구가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것이다.

나는 몸이 작다보니 탈 수 있는 놀이 기구는 한정되어 있었다. 죄다 시시한 것들 뿐이라 하품이 나올 정도였지만.

“와아아아아! 유진아! 유진아! 다음엔 저거 타자! 저거!”

어째 나보다 성하리가 더 신나 보였다. 그녀는 놀이 공원 특유의 비싼 물가에도 불구하고 군것질을 아끼지 않고 하며, 쓸데 없는 장난감도 샀다. 그녀는 기분 내키는 대로 돈을 쓰는 타입이었다.

성한구는 조용히 우리 뒤를 졸졸 따라오고 있었다.

“할아버지.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

“바로 사 오마. 조금만 기다리거라.”

성한구는 쉽게 떨쳐냈다.

“앗! 유진아! 저기에 곰탱이가 있어! 가서 사진 찍자! …유진아?”

틈을 봐서 도망쳤다.

제아무리 SS랭크 히어로라고 하더라도 인파로 바글바글 거리는 유원지에서 나를 순식간에 찾아내지는 못할 거다. 최소한 몇 십 분은 걸릴 테지.

나는 인파 속에 섞여 뛰어다녔다. 중간에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말을 걸었지만 무시했다.

‘정령안 발동.’

천둥부엉이와 시야를 공유한다. 신비한 감각이었다. 기존의 시야가 정령의 시야로 덧씌워지는 게 아니라 머릿속에 새로운 시야가 나타났다.

‘미리 찾아서 감시하고 있었군. 위치는… 회전 목마가 있는 곳. 좀 머네.’

콰아앙!

달려가는 도중 굉음이 들렸다. 나는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놀이기구 바이킹의 중심축이 박살 나서 바닥에 떨어졌다. 바이킹이 있는 곳에는 차원의 틈이 벌어지고 있다.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는 게 보인다.

‘시작이군.’

난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괴물이다! 도망쳐!!”

“히어로를 불려! 어서!”

“히어로들은 뭐하고 있는 거야?!”

“꺄아아아아아악!”

내가 도착했을 땐 이미 상황은 혼돈이었다. 던전… 아니, 던전으로 보이는 차원의 틈을 이용해 습격해온 마계 5군단의 마수들이 마구잡이로 사람들을 공격한다.

본래 유원지처럼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특수한 결계를 쳐두지만, 지금은 그 결계가 해제되어 있었다. 협회에서 히어로를 곧장 파견한다고 해도 도착하기까지 최소 5분 이상은 걸릴 것이다.

그리고 5분은 수 천 명이 학살당하고도 남을 시간이다.

“하하하하하하. 이 짜릿한 비명과 향기로운 피냄새! 좋군요! 좋습니다!”

하늘에서 섬뜩한 웃음소리가 울렸다.

우스꽝스러운 삐에로 복장을 한 남자였다. 얼굴은 새하얀 삐에로의 얼굴이고 입은 귀까지 찢어졌으며, 상어처럼 뾰족한 이빨이 들쭉날쭉 나있다.

5군단 소속의 살의의 백작. 핸드렉.

그는 인간이 아니라 악마다.

“오! 유니콘! 아주 멋들어진 뿔입니다! 엉덩이에 박기 딱 좋은 크기입니다! 하하하하!”

핸드렉이 장갑낀 손바닥을 내밀었다. 손바닥에서 쏘아진 검은 빛이 유니콘 조각상에 명중한다.

히히히힝!

유니콘이 살아움직이기 시작했다.

핸드렉의 능력인 마수변환이다. 핸드렉은 물건을 일시적으로 마수로 변환 시킬 수 있다.

나는 핸드렉을 무시했다. 저놈이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해도, 지금의 내 힘으로는 저 놈을 막기 힘들었다.

“으… 아… 으으….”

나보다 5살은 많은 것 같은, 연두색 머리카락의 여자애가 마수를 앞에 두고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짜리몽땅 한 몸에 돼지의 얼굴을 가진 마수. 스터본 오크. 한 번 노린 목표물을 죽기 직전까지 노린다는 마수다.

“은비야!”

여자애의 어머니로 보이는 엘프와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가 뛰쳐나와 그 앞을 감싼다.

“끌끌끌.”

스터본 오크가 웃는다. 스터본 오크는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걸 알고서는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여보! 내가 막을 테니 은비 데리고 도망가!”

“읏… 당신…!”

“어서!”

사냥감이 도망가려고 하자 스터본 오크가 손을 치켜들었다. 저 짧은 손에는 자동차는 우습게 찢어 버릴 수 있을 정도의 힘이 담겨 있었다.

“모카! 번개 박치기!”

“꾸욱꾸!”

번개가 된 모카가 스터본 오크를 향해 떨어졌다. 뇌전이 강렬히 파지직 거린다. 스터본 오크는 비명을 내지르며 생을 마감했다.

“너, 너는.”

“아저씨. 도망이나 가세요.”

“…고맙다!”

남자는 가족들을 끌고 도망쳤다. 도망치는 와중에 연두색 머리카락의 여자애의 녹색 눈동자와 마주쳤다.

『카르마: 선(善)이 2 상승합니다.』

‘역시 카르마가 올랐군.’

연두색 머리카락의 여자애, 정은비는 원작에서 빌런으로 나오는 여자였다.

정보 판매로 유명한 S급 빌런. 별명은 시궁창 요정.

원작에선 여기서 부모님을 모두 잃고 분노하며 빌런이 된다. 가지고 있는 특성인 추적의 눈(S)은 과거에 있었던 일을 알 수 있고,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일도 알 수 있다. 간단히 말해 사이코메트리와 비슷한 능력이다.

‘다섯 번째 악마 군단에 맞서기 위해서 히어로가 되는 편이 낫다는게 상식이지만…. 이 사건에 부패한 히어로들이 관련되었다는 걸 알아버리고 빌런이 되지.’

이 놀이 공원의 결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가 놀이공원에 상주하고 있는 D급 이하의 히어로들 때문이다. 그들은 악마에게 막대한 돈을 받고 결계의 작동을 멈췄다. 그리고 도망쳐서 잠적한다.

히어로 협회는 기회가 있을 때 그들을 쫓지 못했다. 마수를 처리하고 사람들을 구하는게 우선이었으니까.

“오오오? 여기 재밌는 어린아이가 있군요!”

머리위에서 핸드렉의 경박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위로 들었다.

“왁!”

핸드렉이 일부러 과장된 표정을 지었다. 두 눈을 부릅뜨고 찢어진 입을 벌리며 삐죽한 이빨을 자랑했다. 평범한 어린애였다면 공포를 느끼며 엉엉 울었겠지만, 내 눈은 어떠한 동요도 없이 차가울 뿐이었다.

“…꿈쩍도 하지 않군요. 알겠습니다. 꼬마는 보통의 어린 아이가 아니었군요. 좋습니다. 저는 특별한 어린 아이를 좋아합니다. 공포를 모르는 꼬마에게 공포와 절망을 새겨주는 건 저의 둘도 없는 사명입니다!”

핸드렉이 양손을 좌우로 벌렸다. 그의 손톱이 20cm로 순식간에 자랐다.

“찰나.”

세계가 느려졌다.

여기에 오기 전 뒷주머니에 숨겨 놓았던 단검을 꺼낸다. 그 행동에 찰나가 풀린다. 나는 다시 한 번 찰나를 사용해 핸드렉을 향해 새하얀 단검을 휘둘렀다.

화들짝 놀란 핸드렉이 고개를 뒤로 빼고 물러 났다. 머리를 노린 단검의 날은 핸드렉의 가슴에 푹 박혔다. 두부를 자르는 것처럼 저항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바로 단검을 놈의 하복부까지 내리 그었다.

“끄아아아아악! 이 꼬맹이가!!”

피가 뿜어지며 내 몸에까지 튀었다.

‘찰나.’

놈이 휘두르는 손톱을 찰나를 이용해 뒤로 빠지며 피했다.

“모카!”

“꾹!”

모카가 날아와 내 어깨를 붙잡고 하늘로 비상했다. 나와 핸드렉의 거리가 순식간에 벌어진다.

“아아아아악! 회복이! 회복이 되지 않잖아아아!!”

핸드렉의 상처에서 검붉은 피가 꾸역꾸역 새어나왔다.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냐! 꼬맹이!!”

“무슨 짓을 하긴. 칼침 좀 놓아줬지. 뭐, 칼이 좀 특별하긴 하다만.”

나는 그를 약올리듯 손에 쥔 작은 단검을 허공에 휘저었다.

『데몬 슬레이어의 성인

랭크: S+

악마, 악마의 힘을 가진 자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다.

악마, 악마의 힘을 가진 자는 사용할 수 없다.

성자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 단, 성자의 힘을 사용하면 데몬 슬레이어의 성인은 파괴된다.』

1회차 때, 나는 파멸의 악마왕 메킨과 계약했기에 이 물건을 사용하지 못하고 현실에 짱박아 뒀다. [신의 아틀란티스],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광명승천도], 등의 세계에서 악마는 흔히 나오는 편이니까 언젠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원래는 S랭크인데 광명승천도로 강화 시켜서 S+랭크가 되었지.’

핸드렉은 고통에 손을 떨면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비로소 악마같은 얼굴이 된 것이다.

“뭐하는 거냐, 버러지 들아! 저 꼬맹이! 저 꼬맹이를 잡아 죽여! 찢어 죽여 버리란 말이다!”

분노한 핸드렉이 나를 삿대질 하며 주위의 마수들에게 명령했다.

마수들의 어그로가 전부 내게 끌린다. 그러나 대부분의 마수들은 하늘을 날 수 없었고, 원거리 공격 수단도 없었다. 고슴도치처럼 생긴 마수가 가시를 내게 쏘긴 했지만, 모카가 옆으로 움직여 가볍게 피했다.

“이, 쓸모 없는 것들!”

철을 씹듯이 말한 핸드렉이 회전 목마를 향해 양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에서 검은 기운이 흘려나와 회전 목마에 스며들었다.

마수가 된 목마 십 몇 마리가 마수가 되어 나를 향해 날아 온다.

“내 손자를 노리는 것이냐? 어림도 없다.”

저 멀리서 바람을 타고 나타난 성한구가 손을 휘저었다.

하반신이 없는 거대한 남자, 바람의 상급 정령이 힘을 사용한다. 하늘에서 떨어진 바람이 목마를 바닥에 추락시키고 박살 냈다.

“이, 이이이익! 잠깐 놀라 왔을 뿐인데 이게 무슨 일이야! 빌어먹을!”

핸드렉은 중세 시대의 성을 표현한 건축물을 향해 마수변환 능력을 사용했다. 10M가 넘는 거대한 성이 마수가 되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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