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0화 〉 470. 아카데미의 구원자.
470. 아카데미의 구원자.
핸드렉은 중세 시대의 성을 표현한 건축물을 향해 마수변환 능력을 사용했다. 10M가 넘는 거대한 성이 마수가 되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성은 마치 자신의 힘을 과시라도 하듯이 근처에 있는 마수들을 짓밟아 죽였다.
“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
핸드렉이 광소를 터트렸다.
그럴 만도 한게 저 성은 몬스터로 치면 S급 이상이라 할 수 있다. 자칫 잘못 하다가는 이 유원지 전체가 날아가리라.
‘저 새끼… 미친 척 하면서 도망칠 준비하고 있군.’
핸드렉은 악마 백작의 작위를 가진 것 치고 본신의 힘이 약하다. 그의 장점은 능력에 있었으니까. 만약 그가 제대로 준비한 상태로 침공했다면 놀이공원은 3분도 되지 않아 가루가 되었을 것이다.
“죽여라! 전부 죽여버려!”
거대한 성이 우리를 향해 다가온다. 허나 나는 물론이고 성한구 조차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놀이공원에는 성하리가 있으니까.
“악마 백작의 침공으로 놀이 공원을 즐길 수 없게 되었으니 운이 나쁜지…, 아니면 악마 백작을 잡을 수 있어서 운이 좋다고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군.”
성한구의 중얼거림 직후, 세상을 뒤엎는 듯한 뇌성이 울렸다.
???
즐거움과 행복함에 가득 차 있던 성하리의 얼굴이 순식간에 정반대로 변했다.
“…유진아? 유진아!”
잠깐 정신이 팔린 사이에 아들인 성유진이 사라졌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다 못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온갖 불길한 상상이 머리를 치켜든다.
성하리는 난생 처음으로 속이 울렁거리는 듯한 두려움을 맛봤다. 맹세컨대 몇 년 전 한국의 존폐가 걸린 싸움에서도 이런 감각은 느끼지 못했다.
마나를 퍼뜨려 성유진을 찾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기엔 인파가 너무 많았고, 성유진 또래의 아이들이 한, 둘이 아니다.
“유진아! 어딨어?! 유진아!!!”
성하리는 소리 치며 주위를 돌아다녔다. 그 속도는 인간 이상이었다. 인파 사이사이를 누리며 성유진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최악의 경우가 떠오른다.
자신에게 원한을 품은 빌런의 납치.
싸이코패스 빌런에게 납치당했다면 고문당하다가 비참하게 죽을 수도 있다. 아니면 지옥같은 삶은 살게 되거나.
“흐윽… 유, 유진아!!”
수많은 빌런들을 냉혹하게 처리한 SS급 히어로인 성하리는 성유진과 관련된 일에는 냉정함을 유지할 수 없었다.
“하리야. 진정하거라.”
성한구가 성하리의 어깨를 붙잡았다.
“…아빠! 유진이가…! 유진이가 없어 졌어!”
“근처에 있을 거다. 나도 도와줄테니 진정하고 찾아보거라. 정 안 되면 놀이공원 측에 도움을 구해서라도….”
콰쾅!
굉음이 들렸다.
성하리와 성한구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차원의 틈이 벌어지고 괴물들이 쏟아져 나온다. 게다가 다른 곳에서도 차원의 틈이 벌어지고 있다. 놀이 공원은 고함과 비명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몬스터…?”
“아니. 진정하고 느끼거라. 마수다.”
마수.
간단히 말해서 악마의 힘을 가진 몬스터로 마계에서 서식하는 괴물들.
“서, 설마. 유진이를 노리고?!”
“성하리! 마수를 처리하면서 유진이를 찾거라! 마수놈들이 활개 치면 유진이가 위험해 진다!”
성한구는 곧장 바람의 최상급 정령, 풍진을 불러내 하늘로 떠올랐다. 풍진은 근육질의 상반신을 한 남자 형태를 한 정령이다.
“풍진! 마수들을 쓸어 버려라! 그리고 유진이를 찾아내야 한다!”
성하리는 이를 악물고 근처에 있는 마수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파지지직.
번개가 서린 그녀의 주먹과 발길질에 마수들은 버티지 못하고 터져나갔다.
“가, 감사합니다!”
“…….”
시민들이 감사 인사를 해왔지만, 성하리는 대답할 여유가 없었다. 그녀는 마수를 처리하면서 유진을 찾기 바빴다.
“……!”
콰르르릉!
저 멀리 떨어진 하늘에서 천둥 소리가 들리더니 새하얀 천둥부엉이의 모습이 보였다.
“모카! 유진이가 저기에 있어! 지금 당장…!”
달려가지 못했다.
근처에서 마냥 무시할 수 없는 어린아이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성하리는 순간적으로 고민했다. 비명을 무시하고 유진이에게 달려가는게 좋지 않을까. 하고.
그때, 하늘을 날아 성유진이 있는 곳으로 날아가는 성한구가 보였다.
‘아빠! 아빠가 간다면 유진이는 무사할 거야.’
성한구는 S급 히어로. 성유진을 지키기에 충분한 실력을 갖춘 히어로다.
신속하게 판단을 내린 성하리는 근처에 목숨을 위협받는 어린아이를 구하기 위해 번개처럼 움직였다.
이때. 성하리는 마구잡이로 날뛰던 마수들이 일제히 성유진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걸 포착했다.
‘마수가 이 정도로 대규모로 나타났다는 건 작위를 가진 악마도 나타났을 확률이 높아. 설마 유진이가 있는 쪽에!?’
불안감이 치솟았으나, 애써 냉정함을 되찾았다.
설령 악마가 있다고 하더라도 정식 게이트로 나타난 게 아니니 전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그 정도면 성한구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성하리는 모카의 발에 붙잡혀 하늘 위로 치솟은 성유진을 발견했다.
“유진아!”
목마들이 성유진을 노리며 올라가지만, 제때 도착한 성한구가 목마를 땅으로 쳐박았다.
그리고 거대한 성이 살아있는 것 마냥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은 정확히 성유진을 노리고 있다.
저건 위험하다.
그렇게 판단을 내린 성하리가 마나를 끌어올렸다. 파지직. 그녀의 주위에 뇌전이 꿈틀거리고, 기파가 퍼져나가며 땅바닥이 갈라진다.
‘창! 창이 필요해!’
그러나 창같은 무기가 이런 유원지에 있을 리가 없었다.
성하리는 옆에 있는 길쭉한 가로등을 한 손으로 잡고 땅바닥에서 뽑았다. 그리고 다리를 벌리며 투창 자세를 취했다. 가로등을 쥔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고, 가로등에 전격의 힘이 부여된다.
‘유진이는 못 건들여!’
가로등이 천둥소리와 함께 허공을 뚫으며 성을 향해 쇄도했다.
콰아아앙!
성과 가로등이 부딪혔다. 성의 중심 부분이 박살나고, 성 전체가 휘청거리며 아래로 떨어진다.
성하리는 새로운 가로등을 뽑아들며 하늘을 향해 달렸다.
그녀가 가진 스킬 중 하나, 역장(C+)이 발동된다. 본래 역장은 무언가를 막이 위한 마나 방패지만, 그녀는 역장을 발판으로 삼았다. 역장을 이용해 공중 기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자유롭게 하늘을 뛰어다니는 그녀의 두 눈에 깊은 상처를 입은 악마 삐에로가 보였다.
‘저 생김새… 악마 백작인 핸드렉! 아이들을 잔학하게 죽이길 좋아하는 악마!’
성유진이 보였다. 울지도 않고 대견하게 악마를 노려보고 있다. 그리고 성유진의 몸에 붉은 피가 묻어 있었다.
뚝.
성하리의 머릿속에 있는 무언가가 끊어졌다.
“아아아아아아아!”
성하리가 비명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가로등을 들고 공중에서 아래로, 핸드렉에게 돌진했다. 그 모습은 마치 벼락과도 같았다.
“헉! 넌 성하리?! 네년이 왜 이곳에!”
깜짝 놀란 핸드렉이 뒷걸음질 치며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현재 본래의 힘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
퍼억!
가로등이 핸드렉의 심장에 꽂혔다. 성하리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파지지직!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뇌전이 튀며 핸드렉을 감전시킨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핸드렉은 처절한 비명소리와 함께 사망했다.
???
『카르마: 선(善)이 7 상승합니다.』
핸드렉이 죽는 순간 선 수치가 올랐다.
‘성하리가 강한건 알고 있었지만…. 정령왕의 주박에 당한 상태에서도 저 정도라니…. 도중부터 움직임을 놓쳤어. 그리고 어떻게 공중에서 저런 움직임이 가능한 거지?’
성하리의 모습을 확인하고 3초도 지나지 않아 핸드렉이 사망했다. 성하리의 힘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단했다.
상황이 끝나고, 나와 성한구는 바닥에 내려섰다. 그리고 내려서자마자 성하리가 달려들어 내 몸을 붙들었다.
“유진아! 괜찮아? 우선 119를! 아니, 협회에 연락해서 치료 전문 히어로를 불러서…!”
“하리야. 잘 보거라. 유진이는 다친 곳이 없다. 옷에 묻은 피는 저 악마의 것이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성하리의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마마….”
나도 어린아이답게 우는 척 해줬다. 단검은 성한구가 나타났을 때 모카의 몸에 숨겨 놨다. 마음속으로 모카에게 단검을 숨겨 놓으라고 명령했다. 나중에 회수할 생각이다.
나중에 뭘 어떻게 핸드렉에 한 방 먹인 거냐고 묻는다면 대충 잡아 뗄 생각이다. 어린아이이자, 내게 범죄자 심문하듯 대하지는 않겠지.
“하리야. 주위에 있는 마수들은 내버려 둘 생각이냐? 내가 처리해줄 수도 있다만은.”
“……유진이는 부탁할게요. 저것들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요.”
“걱정 말거라. 유진이는 내 목숨을 바꿔서라도 지켜낼테니.”
성하리의 두 눈이 사납게 빛난다. 그녀는 현재 화가난 상태였고, 주위에 있는 마수들은 화풀이로 딱 좋았다.
‘무엇보다 돈이 되지. 성하리는 돈을 펑펑 쓰니까. 입고 있는 옷에서부터 시작해 집에 있는 것들 대부분이 명품이지.’
어렸을 적부터 소비습관이다. 그리고 히어로들의 특징 중 하나다. 제대로 된 장비를 구해야 생존 확률이 더 올라가니까. 전투 중에 싸구려 장비를 썼다가 죽는 히어로들에 대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성하리는 주먹과 발, 벼락을 이용해 마수들을 해치웠다. 최대한 내게 잔인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하는게 느껴졌다.
“유진아.”
성한구가 날 불렀다.
“응?”
“들었다. 히어로가 되고 싶다지?”
“응. 마마처럼 되고 싶어.”
“하리처럼 되고 싶다면 강해져야 한단다. 이 할아비의 집에 오지 않겠느냐? 정령사가 어떻게 강해지는지 가르쳐주마. 너라면 하리보다 더 강해질 수 있을 거란다.”
“……하지만 마마가.”
“하리보다 네 의견이 중요하단다. 너는 어쩌고 싶으냐?”
“……강해지고 싶어.”
“그래.”
성한구가 흡족하게 웃었다.
성하리가 마수들을 모조리 처리하고 얼마지나지 않아 히어로 협회의 히어로와 직원들이 찾아왔다.
젊은 S급 히어로는 성하리를 보자마자 깜짝 놀랐다. 아는 사이인 모양이다.
“헉! 성하리! 네가 왜 여깄냐?”
“…왜. 난 여기 있으면 안 돼? 엉?”
“기분 안 좋은가 보구나. 아, 성한구 선배님도 있으셨군요. 그리고 너는…. 아하. 가족 끼리 놀려왔구만. 불행 중 행운이었군.”
성하리와 성한구가 없었다면 피해가 수 십배로 늘어났을 테니 옳은 말이다.
우리는 협회 직원에게 잠깐 시달렸다가, 성한구가 힘을 써준 덕분에 놀이공원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나는 성하리부터 잔소리 폭격을 맞아야 했다. 갑자기 사라지면 안 된다, 능력을 함부로 사용해선 안 된다, 걱정 끼치지 말라 등등. 대부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때, 한 남자와 여자 엘프, 그리고 하프엘프 어린애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남자는 나를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도와줘서 고맙다. 네가 아니었다면 우리 가족은 함께하지 못했을 거야.”
“고마워요.”
“아뇨. 도울 수 있으니 도왔을 뿐이에요.”
미래를 위한 포석일 뿐이다.
연두색 머리카락의 하프엘프, 정은비는 나중에 정보 수집 능력이 뛰어난 미녀가 될 테니까.
‘지금은 영 별 볼일 없지만, 나중에 미녀가 될 게 확실하니 따먹어야지.’
정은비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구해줘서 …고마워….“
”아니. 뭘.“
나보다 대충 5살 정도 많아 보이는 그녀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냥 나뭇잎이다. 라고 말하기에는 느껴지는 힘이 다르다. 거기에 내 근처에서 영체 상태로 있는 모카가 흥미를 보이고 있다.
내 곁에 있는 성한구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정령 나무의 잎사귀군요. …이렇게 귀한 걸 주셔도 되겠습니까?“
”그건 은비의 거에요. 은비가 어떻게 사용하든지 우리가 뭐라 할 수 없지요. 게다가 은인에게 주는 보답이니까요.“
은비의 어머니가 말했다. 솔직히 이 여자도 따먹고 싶은데 지금은 각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빌런 이었다면 다죽이고 강간했을 텐데. 쩝. 이 나뭇잎이나 확인해보자.’
『정령 나무의 잎사귀
랭크: A
뛰어난 생명력.
정령의 본체를 치유하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
랭크 A.
진짜 귀한 걸 줬다. 이 정도면 최소 천 만 원 이상일 것이다.
”고마워 누나.“
”아니… 앗.“
내 손과 맞닿는 순간이었다. 정은비의 두 눈이 동그랗게 변하고, 뺨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정은비의 특성인 ‘추적의 눈(S)’이 발동하며 나의 과거를 본 모양이다.
‘저 정도로 부끄러워할 정도라…. 어제 한소희랑 마당에서 섹스하는 걸 본건가? 아니면 성하리가 대딸을 해주는 걸 봤나?’
나는 정은비를 보며 씨익 웃었다.
”눈나. 난 성유진이야. 이건 우리집 전화번호고. 난 서울에 살아. 나중에 만나면 같이 놀자. 알았지?“
”……응.“
뭐, 실제로 내게 전화를 걸 확률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만약 내게 전화를 하고, 다시 만나게 된다면….
‘미녀가 될 테니. 조기 교육을 주입해줘야겠지. 크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