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492 - 492. 신의 아틀란티스 (272/2,000)

〈 492화 〉 492. 신의 아틀란티스

492. 신의 아틀란티스

우리는 깨끗한 물 대신 진녹색의 어두운 물을 토해내는 분수를 발견했다. 분수대에서 나온 끔찍한 액체는 수로에서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늪 분수다. 모두 준비한 방독면을 써라.”

일제히 가방에서 방독면을 꺼내 얼굴에 썼다.

「정화 방독면

공기를 정화한다.

랭크: C」

이때를 위해 주문 제작한 물건이다. 무려 랭크까지 달렸지만, 몇 번 쓰고 나면 버려야 한다.

방독면을 쓰는 이유는 2가지.

하나는 여기 늪에서 발생하는 오염물질을 막기 위해. 방독면 없이 여길 지나가려 한다면 얼마 못 가 내장이 썩는 고통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으으…. 벌레! 징그러워요! 알고는 있었지만, 너무 많아요!”

유서희가 질색하며 준비해온 특수 살충 스프레이를 양손에 쥐고 사방팔방으로 뿌리기 시작했다. 내장 파리, 저주 모기, 마취 나방, 기생 바퀴 등등 온갖 해로운 종류의 곤충들이 살충제에 닿자마자 죽어 나간다.

방독면을 쓰는 두 번째 이유가 이 엄청난 살충제를 흡입하지 않기 위한 것이다.

“유서희! 살충제를 낭비하지 마라!”

강명진이 고함쳤다. 이 살충제를 제작하기 위해 꽤 많은 돈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레기온 마스터인 강명진에겐 살충제가 아니라 돈을 뿌리는 거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아! 네!”

“너무 기죽지 마. 네가 좀 과하긴 했어.”

“알고 있어요. 근데 유진 씨는… 스프레이가 필요 없으셨네요?”

파지직. 파직! 파직!

나를 향해 다가오는 곤충들은 도중에 전기로 바싹 구워져 바닥에 떨어졌다. 뇌전을 응용한 전기장을 내 주위에 펼친 것이다.

“저번에 받아 간 스프레이는 어쩌셨어요? 필요 없으시면 제게 주세요.”

“어… 그거? 놔두고 왔어. 깜빡했거든.”

“네? 명진 씨가 알면 바로 화낼 거예요.”

“비밀이야. 비밀. 근데 넌 왜 두 개 가지고 있는 거야? 한 사람당 하나씩 아니었어?”

“남는 게 있어서 받았어요. 하나 드릴까요? 명진 씨한테 걸리면 큰일이잖아요.”

“어. 하나 줘.”

나는 스프레이를 뿌리다가 귀찮아져서 전기장만 전개하고 걸었다.

“성유진! 마나를 낭비하지 말고 스프레이를 써라! 스프레이를!”

“알았어. 알았어.”

결국 강명진의 잔소리를 들어버렸지만.

“……근데 스프레이를 쓰는 것보다 마나 포션을 마시는 게 더 경제적이지 않아?”

“그건… 그렇군. 그래도 스프레이를 써라. 능력을 사용하며 쌓이는 정신적 피로는 포션으로도 회복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할 말이 없지.”

나는 잠자코 벌레들을 향해 스프레이를 뿌렸다.

벌레가 우수수 떨어져 나간다.

나는 힐끗 수로 옆을 쳐다봤다.

‘유리아는 제대로 길을 찾아갔겠지?’

아까 황무지 같은 곳이 아니니 나침반이 꼭 있을 필요는 없지만 좀 불안하긴 하다.

‘아. 빨리 잠자는 공주 따먹고 싶다.’

???

“수고했다. 이젠 방독면을 벗어도 된다. 여기서 조금 쉬다 가지.”

늪 분수 지대에서 벗어난 우리는 곧바로 방독면을 벗었다. 대부분 머리에 땀이 가득했다. 불어오는 미약하게 불어오는 순풍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레기온 단원들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누구도 벌레 가득한 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으니까.

나는 정면을 쳐다봤다.

가시덩굴로 가득한 정원이었다. 가시덩굴을 어떻게 하지 않으면 움직이기조차 쉽지 않았다. 여기선 필연적으로 가시덩굴을 어떻게든 처리해야 한다.

‘여기서 먼저 간 유리아의 흔적이 발견될지도 모르겠어.’

누군가가 앞서 나간 흔적을 본 강명진은 분명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어쩌면 공략법이 유출되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 정도는 감수할 수밖에.’

우리는 준비해온 음식으로 배를 채운 뒤 가시덩굴 앞에 섰다.

자세히 보면 가시덩굴이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걸 볼 수 있었다. 잠깐 실수해서 가시덩굴에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가시덩굴이 바로 몸을 조이며 날카로운 가시로 온몸을 갈아버릴 것이다.

믹서기처럼.

“…여기선 제가 앞서나가 탐색할 수 없습니다. 복잡한 산과 정글 속에도 길은 있습니다만, 저 가시덩굴 속에는 길이 없습니다.”

릴스네가 항복했다. 옳은 판단이다. 가시덩굴 안으로 섣부르게 접근했다가는 뼈도 추리지 못한다.

허나 강명진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그는 가시덩굴의 존재도 알고 있었다.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면 된다.”

그는 횃불과 도끼를 꺼냈다.

모두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을 지었다.

노동의 시작이다.

???

“에헤라디야~!”

나는 의미 없는 말을 내뱉으며 불로 달군 도끼를 힘차게 휘둘렀다.

콰직!

가시덩굴이 손쉽게 끊어진다. 강철보다 더 단단한 주제에 식물이라 그런지 불에는 몹시도 약했다.

“대단합니다. 끝이 안 보이는 그 체력… 과연 마스터께서 성유진 씨를 믿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내 옆에서 지영빈이 말했다.

현재 나와 지영빈은 둘이서 가시덩굴을 제거하며 길을 만들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뒤쪽의 넓은 곳에서 쉬고 있다.

“…능력치가 높아서 그렇습니다.”

“능력치를 높이는 게 쉬운 일이 아닌 걸 누구나가 다 압니다. 이번에 정식으로 인사하겠군요. 지영빈입니다.”

“성유진입니다.”

나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남자랑 친하게 지낼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지영빈은 다른 듯했다.

“하하. 분위기가 차가우시군요. 그렇게 보이지 않던데…. 혹시 제가 마음에 안 드십니까? 성유진 씨의 입장에서 전 굴러온 돌이니 말입니다.”

“그런 게 아닙니다. 제가 낯을 좀 많이 가립니다.”

“다행입니다. 아, 전 용병으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주점에서 우연히 마스터와 운명처럼 만났습니다.”

지영빈이 미주알고주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곰 같은 외모와 다르게 말이 무척이나 많았다. 나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도끼를 휘둘렀다.

그러나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이름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성유진 씨와 유서희 씨는 연인 사이입니까?”

도끼질이 잠깐 멈췄다.

돌아본 지영빈의 얼굴은 매우 진지했다. 아마도 이 질문이 본론인 모양이다.

“갑자기 그게 무슨 질문입니까?”

“사실대로 말하겠습니다. 전 유서희 씨를 보고 첫눈에 반했습니다. 보는 순간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런데… 유서희 씨는 항상 당신만 바라보고 있더군요.”

“제게 그런 질문을 던진다는 건… 제가 연인 사이가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모양이군요.”

“애매해서 그렇습니다. 어떨 때는 연인처럼 보이지만 또 어떨 때는 가까운 친구 사이처럼 보였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도 물어봤습니다. 마스터는 관심 없다는 듯 직접 물어보라 말했고, 민정이는 연인 사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인하는 연인이 아니라고 단언하더군요. 주서현 씨는 왠지 절 노려보며 무시했고, 유서희 씨에겐… 아직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나는 잠깐 고민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연인 사이가 맞다고? 장단점이 있었다. 장점은 지영빈이 귀찮게 굴지 않는다는 것이고, 단점은 다른 여자를 꼬시는데 애로사항이 생길 수 있다는 것.

“저와 서희가 가까운 사이이긴 하지만 연인 사이는 아닙니다.”

내 대답에 지영빈이 얼굴이 활짝 퍼졌다.

“그렇군요! 대답 감사합니다!”

“그렇게 기쁜 일입니까?”

“연인 사이가 아니시라면 제게 기회가 생겼다는 말이 아닙니까!”

“서희는 영빈 씨에게 큰 관심이 없는 것 같던데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고,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 저 그 말들을 믿습니다!”

지영빈의 두 눈이 이글이글 빛난다. 알고는 있었지만 귀찮은 타입이다. 그리고 이용해 먹기 쉬운 타입이기도 하다.

“아무튼, 열심히 해보십시오.”

“성유진 씨! 절 좀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저보다 유인하 한테 부탁하시죠.”

“인하는 딱 잘라서 저보고 알아서 하라고 했습니다. 도와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습니다. 성유진 씨! 부탁드립니다! 제발!”

그 유서희는 내 전용 좆집입니다만?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가 내려간다.

“서희는 체력이 좋은 남자가 이상형입니다.”

“…체력? 다행입니다! 전 체력에 자신 있습니다! 지금은 아직 성유진 씨나 마스터에게도 밀리지만, 기필코 체력을 길러 유서희 씨에게 걸맞는 남자가 될 겁니다!”

지영빈이 기합을 내지르며 도끼질을 했다.

‘내가 말하는 체력은 침대 위의 체력이다만….’

나중에 지영빈이 쓸모없어졌을 때. 현실을 알려줘야겠다.

그리고 1시간 후, 우리는 마침내 6,333 구역, 집념하는 왕의 성에 도착했다.

???

성유진과 헤어진 유리아는 정원을 거닐었다. 그녀는 일부러 편한 길을 마다하고 위험한 식물이 가득한 흙길을 걸었다. 흔적을 최대한 남기지 않기 위해서다.

흙바닥에서 식물 줄기 하나가 튀어나와 그녀의 발목을 노렸다. 그러나 유리아는 알고 있었다는 듯 여유롭게 줄기를 피하고 앞으로 달렸다.

식물 몬스터가 앞을 막아서면 피하지 않고 지나쳤다. 안 그래도 그녀는 에이플랜 레기온과 동선이 겹치지 않게 돌아가는 길이다. 동선이 겹쳤다간 흔적이 남아 들킬 수 있으니까. 이 계획은 신속하면서도 은밀하게 끝나야 한다.

푸득, 빠득.

그녀의 앞에 있는 나무가 움직이며 앞길을 막아선다. 유리아는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수십 개의 나뭇가지를 안색 하나 바꾸지 않고 모조리 회피하며 지나쳤다. 다른 식물형 몬스터도 마찬가지다.

고작 식물 따위가 그녀의 두 다리를 멈출 수 없었다. 여차할 경우에는 마나 소모를 무릅쓰고 그림자 이동을 사용했다.

유리아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시스템은 당신의 존재를 인정합니다.」

「당신은 인간입니까? 당신이 긍정한다면 시스템의 힘을 부여하겠습니다.」

유리아는 당연하다는 듯 시스템의 메시지를 무시했다.

시스템의 힘? 성유진이 이 세계에서 사용하는 고유 특성이니, 능력치니 하는 것들을 말하는 것이겠지.

유리아는 자신이 가진 힘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또 어차피 자신은 30일 뒤에 원래 세계로 돌아간다. 있으면 편하겠지만, 유리아는 시스템을 믿을 수 없다.

「마천의 왕이 당신에게 메시지를 보냅니다.」

「어디에서 왔지? 네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싶다.」

「거래 하자. 힘을 주지. 대가는 너의 정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군.」

「네가 원하는 게 뭐지?」

「아까보니, 성유진을 사랑하는 것 같던데… 성유진을 가질 수 있게 해주지.」

쉴 틈 없이 움직이던 유리아의 다리가 멈췄다.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녀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난다.

“부탁드립니다. 닥쳐 주십시오. 저는 당신을 상대하고 있을 정도로 한가하지 않습니다.”

「점점 더 마음에 드는군.」

「자. 널 위한 선물이다.」

공간이 일렁거리며 검 한 자루가 나타나 바닥에 꽂힌다.

음산한 기운을 흘리고 있는 검은색의 검이다.

누가 보더라도 마검이라 부를만한 검.

검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 유리아는 시스템의 힘이 없으니까.

유리아는 검에서 느껴지는 압도적인 힘을 느꼈다. 저 검을 쥐는 것만으로도 평범한 사람은 평생을 바쳐도 얻을 수 없는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그녀는 검의 옆을 지나쳤다.

「마천의 왕의 불법 행위를 적발했습니다.」

「마천의 왕에게 페널티를 부과합니다.」

「아니, 잠깐. 장난이다. 장난. 결과적으로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지 않나. 이 페널티는 너무 과하다. 판결에 이의를 신청한다.」

「이의를 기각하며 페널티를 추가합니다.」

「괘씸죄?! 내가 뭘 했다고?!」

「시스템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페널티를 추가합니다.」

유리아는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는 메시지창이 거슬렸다. 허나 마땅히 치울 방법이 없었기에 전전긍긍하며 다시 움직였다.

곧 늪이 흐르는 수로를 발견했다. 그녀는 곧장 그림자 속에서 방독면을 꺼내 쓰고 살충 스프레이를 손에 들었다. 눈에 띄지 않는 길을 골라 살충제를 뿌리면서 내달린다.

그리고 빽빽하게 들어찬 가시덩굴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유리아는 조용히 체력을 회복시켰다.

성유진은 유리아에게 공략 방법을 가르쳐줬다. 시간이 걸리고 힘들지만 안전하게 갈 수 있는 방법을.

하지만 그 방법으로는 흔적이 남는다.

유리아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 가시덩굴을 살폈다.

구두에 검은색 오러가 스멀거렸다. 준비를 끝낸 그녀가 가시덩굴 사이를 내달렸다. 가시덩굴이 기다렸다는 듯이 조여온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앞으로 나가고 없었다. 가시덩굴이 반응하는 것보다 유리아의 달리는 속도가 더 빨랐다.

유리아가 입을 벌렸다.

숨이 차고, 이마에서 땀방울이 흐른다.

지금까지 완벽하게 관리해온 체력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다리가 점점 무거워졌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가시덩굴을 돌파했다.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