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3화 〉 493. 신의 아틀란티스
493. 신의 아틀란티스
「제 6,333 구역, 집념하는 왕의 성에 입장했습니다.」
새삼스레 느끼는 거지만 정보의 힘은 대단했다.
6,331 구역과 6,332 구역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만으로 아무 피해 없이 6,333 구역으로 올 수 있었다.
완벽한 정보와 완벽한 공략 방식.
아마 신좌들은 이렇게 생각하겠지. 강명진이야말로 진짜 회귀자라고.
‘하지만 이 회차에서 회귀자는 없지.’
강명진은 동생의 소설 속으로 들어온 인간이다. 직접 겪어 보지도 않은 일인데도 한 치의 틈도 없이 진행하고 있다. 주인공 버프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쿵!
우리가 성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성문이 닫혔다. 우리는 당황하지 않고 주위를 살폈다. 높은 천장에는 낡고 부서진 샹들리에가 간신히 달려 있다. 성 내부의 공간은 밖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넓었다.
-또냐.
중후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공간을 가득 채우는 목소리에 에이플랜 레기온의 움직임이 뚝 멈췄다.
-또 무엇을 빼앗기 위해 온 것이냐, 침략자들이여!
울분에 찬 목소리에 서린 것은 강렬한 적의.
-더 이상 빼앗기지 않겠다! 침략자들이여! 우리를 지키기 위해 그대들의 목숨을 거두겠노라!
나와 강명진을 제외한 인원들이 모두 전투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습격은 없었다.
강명진은 방천화극을 만지작거렸다. 강명진의 품속에 숨어 있던 작은 청룡이 그의 옆머리를 비비적거린다. 그는 여기까지 오기 전과 다르게 몸을 긴장시켰다. 여기서부터는 공략법을 안다고 해도 안심할 수 없었다.
‘유리아는 성공적으로 히든 구역에 들어갔나? 유리아의 상황을 알 수 없으니 답답하군.’
창을 쥔 강명진이 앞으로 나섰다.
“여기서부터가 진짜다. 지금까지 전부 술술 풀렸다고 해서, 앞으로도 전부 잘 풀린다는 보장은 없다.”
그가 오른쪽 벽, 창문을 가리고 있는 낡고 찢어진 블랙 커튼을 향해 창을 휘둘렀다.
“끼아아아아악!”
블랙 커튼이 찢어지며 비명 소리가 났다. 블랙 커튼이 강명진의 몸을 감싸기 위해 날아들었다.
“흡!”
창이 3번 연속으로 빠르게 휘둘러진다. 조각난 블랙 커튼이 바닥에 떨어지더니, 쭈글쭈글한 가죽이 되었다. 곳곳에 있는 두 눈과 입 부위가 있는 걸 보면 사람의 가죽이 확실하다.
“이 성 자체가 우리의 적이다. 방심은 버려라.”
강명진의 용안이 형형하게 빛난다.
“가자.”
???
절그럭절그럭.
복도에서 검은 갑옷을 입은 기사 다섯이 우리를 향해 걸어온다.
“침략자… 죽인다… 침략자… 죽인다…!”
“죽인다….”
“그으으으으….”
투구속에 보이는 얼굴은 말라비틀어진 미라 같았다. 눈알이 있어야 할 장소에는 푸른 귀화가 타오르고, 입과 몸에서는 검은 기운이 연기처럼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데스나이트.
신의를 위해 죽음이란 안락을 내다 버린, 그 누구보다 충직한 기사들.
“데스나이트의 힘은 압도적인 신체 능력과 방어력, 그리고 생전에 사용했던 검술과 경험에 있다. 절대로 방심하지 마라.”
강명진이 말했다. 우리는 모두 전투 준비를 했다. 미리 준비해둔 성수를 무기에 발랐다. 에이플랜 레기온에는 언데드의 상극인 빛의 힘이나, 성스러운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자가 없기에 아이템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언데드라…. 이미 시체니 감전당하지 않을 테니 평소라면 귀찮은 놈들이라 생각했겠지.’
하지만 내겐 화련비도가 있었다. 설령 칼날에 성수를 바르지 않더라도, 화련비도 자체가 악마와 언데드에게 상극의 힘이라 할 수 있는 대마력을 품고 있다. 화련비도를 통해 발현되는 적뢰 또한 마찬가지로 대마력을 가진다.
“아스트라페.”
칼날에서 붉은 뇌전이 치솟았다.
나는 강명진, 주서현과 함께 데스나이트를 향해 달려나가 전투를 벌였다.
둥글게 휘둘러지는 데스나이트의 검을 고개 숙여 피하면서 안으로 파고들었다. 붉은 뇌전이 데스나이트의 몸을 태운다. 허나 고통을 모르는 죽음의 기사를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강명진이 중심에서 잘 휘저어주고 있고, 주서현은… 걱정할 필요 없겠어. 신체 능력이 떨여도 검술로 극복하고 있으니. 잘하고 있어.’
손발이 척척 맞다는 건 아니다. 우리는 따로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가 데스나이트들을 압도하고 있다. 우리의 기량이 데스나이트 보다 위이기 때문이다.
나는 데스나이트의 몸체에 칼을 찔러 넣었다. 허나 좀처럼 쓰러지지 않았다.
부웅!
대검을 회전하며 피하고, 회전력을 실어 놈의 머리를 때렸다. 까앙! 투구에 금이 갔지만 박살 내지 못했다. 나는 저릿저릿한 손을 느끼며 물러나려 할 때, 데스 나이트의 대검이 2개로 분리되어 내 목과 복부를 노린다.
‘찰나!’
세계가 느려진다. 자세히 보니 대검이 분리 된 게 아니라 검술로 인한 환검이었다. 배를 노리는 쪽이 진짜.
‘…하. 재밌네.’
나는 아스트라페를 해제했다. 가속도, 찰나도 사용하지 않고 순수하게 검술만으로 눈앞에 있는 놈을 이기고 싶었다.
영천류(影天流) 벽계(碧溪).
데스나이트의 옆을 지나치며 칼을 휘둘렀다. 노린 것은 목이었지만, 데스나이트가 건틀릿을 낀 팔을 방패처럼 세워 막았다.
‘눈이 없는 시체라 벽계가 통하지 않았나…? 아니, 저건 저놈이 가진 실력 때문이야.’
데스나이트는 무거운 대검을 섬세하면서도 절묘하게 움직였다. 위험하다. 하지만 동시에 기회이기도 했다.
영천류(影天流) 패월(蔽月).
놈의 대검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하며 반격을 날렸다. 데스나이트의 투구가 박살 났다.
나는 전투에 빠져들었다. 데스나이트는 갑주를 믿고 방어에 집중하면서 무거운 한 방을 노렸다. 반대로 나는 치고 빠지고의 반복이다.
전투의 승자는 나였다.
30번이 넘도록 시도한 공격에서 내 칼이 드디어 데스나이트의 방어를 뚫고 목을 날렸다.
“내가… 졌다….”
데스나이트의 안광이 사라지며, 그 몸이 허물어졌다.
주위를 둘러보면 에이플랜 레기온 단원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특히 주서현의 시선이 심상치 않다. 입을 꾹 깨물고 이쪽을 노려보고 있다. 주먹을 쥐고 있는 것이 분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 뭐야. 내가 마지막이었어?”
“성유진. 이해한다. 주위 시간이 느려지고, 의식이 무기와 하나가 되는 듯한 감각. 좀처럼 쉽게 느낄 수 없는 감각이지. 하지만 지금은 자제해라. 그건 지금 상황에서 위험하고, 우리는 지금 구역을 공략하고 있다.”
강명진이 진지하게 말했다.
무기와 하나가 되는 감각? 아무래도 강명진은 뭔가를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경험상 반발해봤자 내게 오는 잔소리만 더 많아질 뿐이다.
“알았어.”
???
차근차근 나아가던 우리의 발걸음을 멈춰 세운 것은 부서진 조각상이다. 악마의 형상을 한 조각상 4개가 처참하게 부서져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러려니 했다. 여기까지 오면서 이 성에는 언데드가 나타나는 낡은 성이란 걸 경험했다. 조각상이 부서져 있다고 유난을 떨 리가 없다.
하지만 단 한 명, 강명진은 동요를 숨기지 못했다.
“말도 안 되는…. 이게 왜…. 가고일이 죽어 있는 거지?!”
너무 동요한 나머지 그의 입에서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지금 강명진의 머리는 바쁘게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유리아가 여기를 지나갔구나. 가고일에게 들켜버렸나? 하긴. 가고일은 원래 문지기를 서는 몬스터니까. 이놈들을 속이는 건 유리아라도 떨어진 능력치로는 힘들었겠지.’
강명진은 혼란스러울 것이다.
누군가가 우리보다 먼저 성안에 들어왔다면 처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야 정상이니까.
‘입구가 아닌 다른 곳으로 들어온 거지. 목소리의 주인, 이 구역의 지배자에게 들키지 않고.’
하지만 이 구역의 특성상 사람이 많으면 들킬 수밖에 없었다. 강명진이 생각할 수 있는 건 적들이 모두 암살자처럼 모습을 숨기는 것에 능하거나, 대상이 한 명 이거나.
“마스터? 왜 그러십니까?”
지영빈이 강명진을 불렀다. 강명진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 조각상들은 가고일이다. 조각상인 척하고 사람을 습격하지. 그런데 지금 가고일은 부서져 죽어 있다. 우리보다 누군가가 한발 앞서와서 가고일을 처리했다는 거지.”
“그게 가능합니까? 다른 건 몰라도 6.331 구역은 그 신기한 나침반이 없으면 아예 공략이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누군가가 우리보다 먼저 온 흔적도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유인하가 말했다.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 오기까지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고, 다른 사람이 먼저 간 흔적도 없었다.
“어쩌면 우리 뒤를 미행하다가 어느 타이밍에 앞질렀을 수도 있다.”
“마스터. 그럼 당장 움직여야 하지 않습니까? 그들이 구역의 지배권을 가지기 전에.”
“……그들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혼자일 수도 있고,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목적도 구역의 지배가 아니…. 음.”
“지배가 아니라면요?”
“다른 것일 수도 있지. 어느 쪽이든 우린 당장 움직여야 한다.”
강명진은 어쩌면 알 수 없는 그들의 목적이 히든 구역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히든 구역이 누군가에게 먼저 털렸다는 걸 알게 되겠지. 그때는 나를 비롯해 다른 사람들을 의심하고 싶어도 하지 못할 것이다.
히든 구역에 대한 정보는 오직 강명진만 알고 있는 정보니까.
우리는 30분 후, 왕의 홀에 도착했다.
황금 왕관을 머리에 쓴 해골이 옥좌에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침략자 놈들… 기어코 여기까지 왔구나. 짐의 병사들이여, 일어나라! 침략자로부터 왕국을 지켜다오!”
“예. 전하!”
70명의 정예 병사들이 나타났다.
저들은 언데드지만 실제로 살아 있다. 저 왕의 권능으로 일시적으로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
“유서희. 유인하! 너희들의 차례다!”
강명진이 외쳤다.
“네. 드디어 나서네요. 뒤에서 지켜보는 게 대부분이라 좀이 쑤셨다니까요.”
“…….”
유서희가 스킬인 유혹을 사용했다. 70명의 병사는 모두 남자. 그들의 시선은 일제히 풍만한 육체를 비틀고 있는 유서희에게 박혔다. 병사들이 침을 질질 흘리며 유서희에게 비틀거리며 걸어간다.
“서희 씨! 제가 지켜드리겠습니다.”
지영빈이 기회라는 듯 외쳤다.
“…파이어 블래스트.”
타이밍을 보던 유인하가 마법을 사용했다. 시뻘건 불길이 병사들을 덮쳤다. 병사들은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다시 일어나거라! 짐의 병사들이여! 설령 지옥의 불길이라도 우리의 영혼까지 태울 순 없을 것이다.”
병사들이 다시 나타났다.
“…유서희, 유인하, 지영빈. 너희들이 병사를 맡는다. 나머지는… 왕을 죽인다.”
???
“…짐의 왕국은 또… 침략자들에게 유린당하는 가….”
해골이 부서져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왕관이 바닥을 굴렀다.
「제 6,331 구역의 지배자가 바뀌었습니다.」
「제 6,332 구역의 지배자가 바뀌었습니다.」
「제 6,333 구역의 지배자가 바뀌었습니다.」
「에이플랜 레기온의 마스터가 지배권을 얻었습니다.」
내게는 이런 메시지가 떴지만, 강명진에게는 더 많고 복잡한 내용의 메시지가 떴을 것이다.
레기온 단원들은 공략이 끝나자마자 바닥에 주저앉아 피로한 육체에 휴식을 주었다.
나는 쉬는 척하면서 강명진의 눈치를 살폈다.
강명진의 얼굴은 여전히 굳어져 있었다. 그가 밖으로 나가려는 걸 내가 물었다.
“강명진. 어디 가는 거야? 힘들지 않아? 좀 쉬지.”
“…너희들은 여기서 쉬고 있어라. 조금 신경 쓰이는 게 있어 확인해보고 오겠다.”
히든 구역을 확인하러 가는 것이 분명했다.
강명진은 10분 뒤에 다시 돌아왔다. 그의 얼굴은 어두워져 있었다.
“누군가 먼저 왔다 간 히든 구역을 발견했다. 다행히도 지배권은 얻지 못한 것 같다. 조사도 할 겸 1시간 뒤에 히든 구역의 공략을 시작하겠다.”
전혀 다행인 표정이 아니었다.
???
가시덩굴을 지나쳐 적당히 휴식을 취하던 유리아는 성을 살펴봤다. 정면의 입구로 들어가면 성의 주인에게 바로 들킨다.
정면이 아닌 다른 곳으로 몰래 들어가야 한다. 다행히도 그 틈을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창문을 통해 들어가면 되니까. 문제는 그 이후, 성안에 있는 언데드에게 들키지 않고 뒷문으로 가는 것.
“…….”
유리아는 그림자 속에서 꺼낸 마나 포션을 마시고는 곧장 성안으로 침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