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7화 〉 517. 새로운 스킬
517. 새로운 스킬
나는 차를 운전하며 조수석에 앉아 있는 미령을 힐끗 쳐다봤다. 짧은 바지와 후드티를 입은 그녀는 창문 밖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고층 빌딩과 도로를 달리는 수많은 자동차들. 내게는 늘 보던 익숙한 풍경이지만, 그녀에겐 생소하면서도 신기한 도시 풍경일 것이다.
“자, 잠깐! 잠깐만! 저기에서 파는 거 핫도그지? 나 핫도그 먹고 싶어! 잠깐만 차 세워 봐.”
정확하게 말하면 핫도그가 아니라 콘도그다.
나는 미령이 원하는 대로 차를 세웠다. 미령은 차에서 내려 후다닥 콘도그를 향해 달려갔다. 꼬리와 귀는 숨겼기에 겉으로 봤을 땐 평범한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이거 꼭 한번 먹어보고 싶었어.”
그녀는 총 5개를 샀다. 제각각 다른 맛인 모양이다.
“나도 하나 줘.”
“…….”
미령은 깊이 고민하다가 감자가 촘촘히 박힌 콘도그를 건네줬다. 대식가인 그녀는 4개의 콘도그를 5분 만에 먹어 치웠다.
“어디 가보고 싶은 곳은 없어? 웬만한 곳이라면 데려가 줄 수 있어.”
“응? 진짜?”
“이런 거로 거짓말할 이유는 없지.”
“가보고 싶은 곳은 많아. 영화관, 놀이공원, 동물원, 타워…. 아. 외국에도 한번 가보고 싶어. 특히 유럽!”
“유럽은 좀…. 시간이 너무 걸려. 갔다 오는 것만으로도 며칠은 걸릴 거야.”
“그건 나도 좀 그러네. 집에서 게임도 해야 하고 드라마도 봐야 하는데.”
“영화관이나 놀이공원 정도면 데려가 줄 수 있어. 내일 바로 갈까?”
“…….”
미령이 날 빤히 쳐다봤다.
“무슨 꿍꿍이야?”
“꿍꿍이라니. 집에 틀어박혀 있는 널 보기 안쓰러워서 제안했을 뿐이야. 내가 이 세계에 널 소환했으니, 못해도 너한테 이 세계를 즐기게 해주고 싶어. 앞으로 네가 이 세계에 머물 시간은 남은 시간은 20일 남짓에 불과하잖아.”
“…….”
복잡한 얼굴의 그녀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쳐다봤다.
차는 던전 앞에 도착했다.
C등급 던전, 봄의 마당.
식물형 몬스터들이 나오는 개방형 던전이었다.
던전 입구에는 협회가 통제하고, 하나같이 비싼 외제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주차되어 있는 외제차들은 헌터들의 것이겠지.
무장을 챙기고 차에서 내린 나는 절로 긴장되는 몸을 느꼈다. C등급 던전에 들어가는 건 처음이 아니다. 인터넷에서 일시적으로 파티를 맺은 C등급 헌터들과 몇 번 C등급 던전에서 사냥을 진행했었다.
‘혼자서… 아니, 둘이서 들어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야. 조심하면 위험하지는 않겠지. 이 던전은 C등급 중에서도 안전한 편에 속하고, 내 실력은 C등급 헌터 평균 이상이니까.’
미령은 긴장한 기색 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다. 던전에 대한 긴장감보다 주위에 있는 자동차나, 건물들이 더 신기해 보이는 모양이다.
“미령. 장비도 없이 괜찮겠어?”
“응? 괜찮아. 어차피 내가 하는 건 널 술법으로 보조하는 게 전부잖아. 무인들처럼 앞으로 나서서 싸우는 건 내 전문이 아니야.”
나도 그녀에게 앞으로 나서서 싸우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가지고 온 장비들을 한 번 살펴보고는 가장 중요한 스마트폰을 챙겼다.
“미령. 넌 D등급 헌터야. 헌터 직원이 이름이 뭐냐고 물으면 신미령이라고 해. 알았지?”
“알아. 너무 잔소리만 해대지 마. 나도 이젠 이 세계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대충 아니까.”
물론 가짜 신분이다.
브로커의 도움으로 D등급 헌터라는 신분을 얻을 수 있었다. 협회는 C등급 이상의 헌터를 제외하면 널널하게, 나쁘게 말하면 관심이 없기 때문에 얻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일반인이 헌터를 사칭하면 바로 들키기 마련이지만. 미령은 실제로 능력을 갖추고 있으니 조심하면 들킬 일은 없어.’
우리가 주차장을 빠져나갔을 때였다. 5명의 남자가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둘이서 오셨나 봐요?”
그들의 중심에 있는 짧은 검은 머리에 창백해 보일 정도로 새하얀 피부를 가진 남자가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는 노골적으로 사람을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를 비롯해 남자들의 시선은 미령에게 향했다. 이해는 한다. 미령은 좀처럼 힘든 미녀였다. 거기에 본인은 가만히 있을 뿐인데도 남자의 음심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다.
“네. 잠깐 사냥하러 왔죠.”
내가 미령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내 여자이니 수작 부리지 말라는 제스처이기도 했다. 미령의 눈가가 잠깐 꿈틀거렸으나 내 팔을 쳐내지는 않았다. 그녀에게도 눈치는 있었다.
“둘이서요? 여기가 개방형이라고는 해도 C등급 던전이죠. 위험할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저희랑 함께 파티하지 않으실래요?”
“리더의 말이 맞습니다. 저희랑 하면 빠르고 안전하게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습니다.”
“저희는 이 던전을 사냥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그들이 말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이 정도 던전 쯤은 혼자서도 할 수 있습니다.”
“……자신감이 상당하시군요. 아, 자세히 보니 요즘 유명하신 성유진 씨군요. 옆에 계신 분은… 여자친구인가요?”
“하하. 네. 성유진입니다. 옆에 있는 그녀는 여자친구는 아닙니다. 그런데 당신은 누구십니까?”
“소개가 늦었군요. 쿨레이더 파티의 리더를 맡고 있는 김지오입니다.”
C등급 이하의 헌터들은 보통 내 이름을 들으면 기가 죽고 물러난다. 내가 대한민국의 최고의 천재라고도 불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지오는 나를 알아봤음에도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업신여기는 시선으로 쳐다본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오늘은 성가신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후, 미녀랑 있으면 트러블이 일어나기 마련이지.’
저렇게 날 무시하는 눈으로 쳐다보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네요. 어디 길드 소속이십니까?”
“……아직 길드에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성유진 씨도 소속된 길드는 없지 않습니까?”
“저는 고민 중입니다. 수월 길드에서도 제안이 왔고, 자운 길드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다른 길드에서도 좋은 제안을 계속해주고 있어서 말입니다. 선택하기가 영 쉽지 않더군요.”
“…대단 하시군요.”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나는 길드를 들먹이며 말하고 있었다. 나는 10대 길드도 날 원하고 있다. 길드도 들어가지 못한 너희들 따위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머리가 제대로 돌아간다면 내 말뜻을 알아듣지 못할 리가 없다.
“……성유진 씨. 정말 저희랑 함께 하실 생각이 없으십니까? 아무리 성유진 씨라도 둘이서 던전에 들어가시는 건 부담스럽지 않습니까?”
김지오가 질척거렸다.
나를 향한 분노를 숨기고 내 옷자락을 잡고 늘어졌다. 뭐, 실제로 잡고 늘어진 건 아니다.
‘나와 함께 던전에 들어가서 적당한 시점에 배신할 생각이겠지.’
안 봐도 뻔하다.
그리고 놈들은 지치지도 않고 미령을 힐끗거린다. 아름다운 얼굴, 풍만한 가슴과 순산형의 엉덩이. 놈들이 쉽게 벗어나지 않는 것도 내 옆에 있는 미령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반면에 미령은 지금 상황에 전혀 관심 없었다. 스마트폰을 웹툰을 들고 집중하고 있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 정도 던전 쯤은 저 혼자서도 충분합니다.”
“알겠습니다. 서로 바쁜데 너무 잡아둘 수는 없는 노릇이죠. 저희는 가보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쿨레이더 파티는 우리보다 한발 앞서 던전에 들어갔다.
“장담할게. 저놈들은 던전 속에서 함정을 파고 있을 거야. 이 세계는 법이 수호하고 있지만, 던전은 아니라며?”
미령이 지루하다는 듯 말했다. [광명승천도] 세계는 다른 어떤 세계보다 치열하다. 기회가 오면 망설임 없이 뒤통수를 치고, 위험할 것 같으면 가족마저 버리고 도망치는 곳. 그 세계에 비하면 이 세계는 천국이다.
“나도 동감이야. 저런 놈들은 어떤 세계든 있지.”
나는 C등급 헌터다. 경력은 짧지만 경험해볼 건 다 경험해봤다. 낮은 등급의 던전 경우 혼자서 들어갔던 경우도 몇 번 된다.
김지오처럼 날 질투하고, 추악한 행동으로 날 성가시게 만드는 헌터는 꽤 많았다.
허나 나는 성가신 일은 웬만하면 피한다. 여긴 현실이니까. 굳이 내가 피해를 감수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저놈들이 내 여자를 노리고 있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마침 던전. 완전 범죄를 만들기 쉬운 곳이지.’
그리고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저놈들은 함정을 만들 거야. 날 좀 도와줄 수 있지?”
“네게 협력하기로 했어. 그리고 저놈들은 나도 마음에 안 들어. 주제도 모르고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기는…. 내가 살던 세계였으면 당장 팔다리를 자르고 몸이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정기를 흡수했을 거야.”
미령이 그 어느 때보다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언제까지 내 어깨에 손 올리고 있을 거야?”
“아, 미안. 싫어했지.”
나는 손을 떼며 그녀의 불호령이 떨어지는 걸 기다렸다. 하지만 한 박자가 지나도 불호령을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잠깐 내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지. 싫은 건 아니야.”
“…….”
입꼬리가 올라갔다. 계획은 술술 풀리고 있었다.
???
던전에 들어갔다. 따뜻한 봄 날씨가 느껴졌고, 사방에는 풀과 나무, 꽃으로 가득했다. 보는 관점에 따라 이곳은 숲이라 할 수 있었고, 다르게 정원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내 눈에는 숲으로 보였다.
“괜찮은 정원이야. 자연의 생명력이 느껴져. 어머니가 봤으면 좋아했겠어.”
미령은 이곳을 정원으로 봤다. 나는 그녀의 어머니에 대해 호기심을 느꼈으나 참았다.
그녀는 내 여자가 될 테니 언젠간 그녀의 어머니도 보게 되겠지.
“놈들을 찾을 수 있겠어? 던전 입구에서 우릴 덮치질 못할 테니, 아마 어딘가에 함정을 파고 있을 거야.”
“기다려 봐.”
미령의 머리 위에 하얀 여우 귀가 나타나 쫑긋거리고, 엉덩이골에서 여우 꼬리 2개가 툭 튀어나왔다.
그녀는 두 눈을 감고 작게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나로서는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그녀가 어떤 술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녀의 기운이 땅을 타고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것을 느꼈다.
“찾았어. 여기서 북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거리에 있어. 거대 식물이랑 전투를 벌이고 있어. 지금 당장은 우릴 노리고 함정을 파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
“…….”
이건 좀 예상 밖이었다. 나는 쿨레이더 파티원 중 한 명이 우리를 감시하고 준비한 함정을 우리에게 사용할 줄 알았다. 그게 헌터 밴디드의 기본적인 수법이니까.
‘내가 너무 과민했나? 어쩌면 그놈들은 건전한 놈들이었을 지도 몰라.’
“어쩔래? 쫓아가서 죽일 거야?”
그녀가 물었다.
놈들이 짜증 나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쫓아가서 죽일 생각은 없었다.
‘여긴 현실이고, 놈들이 내 여자를 좋지 않은 눈으로 보긴 했지만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
여기가 [백환] 세계였다면 그것만으로 죽을 이유가 되겠지만.
“놈들을 감시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다만 오랫동안 유지할 수는 없어. 많아 봤자 3시간 정도? 또 너무 떨어지면 술법이 끊어져.”
“감시해. 그놈들이 아무것도 안 한다면 아무 일도 없을 거야.”
“흐응. 네가 그럴 생각이라면야.”
그녀는 토를 달지 않고 내 말대로 따라줬다.
미령이 나뭇잎 5장을 이용해 술법으로 새를 만들었다. 나뭇잎으로 된 참새가 북동쪽 방향으로 날아갔다.
“됐어.”
“좋아. 사냥하러 가자. 몬스터가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있지?”
“응. 파악해뒀어. 왼쪽으로 3분 정도만 걸어가면 몬스터와 마주칠 수 있을 거야.”
미령의 말대로 3분 만에 몬스터와 마주할 수 있었다.
흡성 대나무.
땅에 가만히 박혀 있는 그것은 사람의 마나와 피를 흡수하는 식물형 몬스터였다. 대나무 중심에 동그란 눈이 떠졌다. 눈은 정확히 나와 미령을 쳐다본다. 눈이 웃는 것처럼 휘어진다.
직후, 주위에 있는 식물들이 나와 미령을 향해 쇄도했다. 흡성 대나무의 능력 중 하나다. 주위의 식물을 조종할 수 있고, 시야에 들어온 사람의 기운을 빼앗는다.
“홍풍(紅風)!”
미령이 술법을 사용했다. 붉은 바람이 불어 주위의 식물들을 베고 날려버린다. 놈에게 향하는 길이 열렸다.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칼을 치켜들고 달려들었다.
흡성 대나무는 뿌리를 버리고 허공으로 떠올랐다. 염동력으로 도망칠 속셈이다.
“위로 떠 오르면 못 잡을 줄 아나.”
주위에 있는 나무를 박차고 흡성 대나무를 쫓아가 검기로 일렁이는 칼을 휘둘렀다. 반으로 갈라진 흡성 대나무의 사체가 아래로 떨어졌다. 나는 대나무 속에 있는 마석과 놈의 눈을 회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