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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 518. 새로운 스킬 (298/2,000)

〈 518화 〉 518. 새로운 스킬

518. 새로운 스킬

“속풍(速風).”

미령이 부리는 술법의 바람이 내 몸에 깃들었다. 몸이 가벼워지고 반응속도가 일시적으로 높아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노란 꽃밭을 질주했다. 내 발은 예쁜 꽃들을 사정없이 짓밟았고, 밟힌 꽃들은 누런 독가스를 뿜어낸다.

“변정천(邊淨天).”

미령이 또 다른 술법을 사용했다.

내 몸에 묻어 있던 독가스가 정화되어 사라지고, 다른 독가스들은 내 몸을 침범하지 못한다.

안전한 상태가 된 나는 가벼워진 몸을 만끽하며 꽃밭의 중앙에 있는 커다란 노란 꽃을 향해 날아갔다. ‘꽃가스무리’ 라는 이름을 가진 몬스터다. 놈의 꽃받침이 기울어지더니 나를 향한다.

꽃의 중심에는 그로테스크한 날카로운 이빨과 누런 점액이 가득했다.

딱! 딱딱딱!

놈은 입맛을 다시듯 이빨을 부딪쳤다.

‘뇌전.’

더욱 확실히 놈을 죽이기 위해 칼에 붉은 뇌전을 일으켜 휘둘렀다.

놈의 몸이 찢겨나간다. 이것만으로도 치명상이다. 허나 나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고통을 느끼지 않는 식물형 몬스터는 치명상을 입혀도 완전히 죽기 직전까지 태연하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놈도 아주 편하게 잡았어.’

나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마석과 꽃잎을 회수하고 미령을 향해 다가갔다.

“미령. 네 내조는 최고였어.”

“내조? 웬 갑자기 헛소리야?”

미령이 나를 째릿 노려봤다.

그녀의 술법으로 인한 도움은 탁월했다. 식물형 몬스터는 그 특성이 제각각 달라서 안전하게 사냥하려면 여러 가지 준비가 필요하다. 그러나 미령의 술법으로 그 과정을 생략하고 아무 생각 없이 적을 향해 돌진할 수 있었다.

그녀의 술법을 사용한 보조는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다음 몬스터는 어디에 있어?”

“남쪽. 걸어서 5분 거리야.”

담담하게 몬스터의 위치를 말한다. 그녀는 이 근처에 결계를 깔아뒀다고 한다. 일정 범위 내의 상황을 파악하는 결계다. 본인은 간단한 결계라고 하지만, 내가 봤을 땐 이것도 엄청난 결계였다.

“바로 가자. 손이 근질거리는군.”

보통 개방형 던전에서 전투를 한 번 끝마치면 다른 몬스터를 찾기까지 평균적으로 30분은 걸린다. 30분이면 전투의 흥분이 식어버리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투의 흥분이 계속 유지되고 있다.

“…….”

미령이 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그놈들이 움직이고 있어.”

흥분되던 내 몸이 찬물을 뒤집어쓴 것마냥 가라앉았다.

“……쿨레이더 인가 뭔가 하는 놈들 말이야? 어떻게 움직이는데?”

“여기에 다른 동료가 있었던 모양이야. 총 10명. 2명씩 쪼개서 우리를 찾고 있어.”

“어느 쪽에 있지?”

“도망갈 거야?”

나는 잠깐 고민했다. 지금 전속력으로 도망쳐서 현실로 돌아가면 놈들은 우릴 찾지 못한다. 내가 자존심을 굽히면 싸움을 피할 수 있었다.

“아니.”

하지만 그딴 놈들에게 겁먹어 도망친다니?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못한다. 그리고 날 죽이려고 마음먹은 놈들이다. 나중에 또 이런 짓거리를 벌일 수 있다.

“던전이 자기들 안방이라 생각하는 모양인데. 여기가 자기들 무덤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가르쳐줘야지.”

“헤에.”

미령이 눈꼬리를 접었다. 분홍색 입술이 호선을 그린다.

“도망친다고 했으면 실망할 뻔했어. 나한테 방법이 있어. 한번 들어볼래?”

“여우의 꾀라. 기대되는군.”

미령의 의도는 간단했다.

함정을 파서 따로 잡아먹는 것.

???

나와 미령은 일부러 흔적을 남겼다.

그 흔적을 찾은 놈들은 희희낙락하며 우리 쪽을 쫓아왔다. 미끼를 입에 문 물고기들이다.

아직은 내버려 뒀다. 갈고리에 꿰이지 않았으니까.

우리는 몰래 숨겨둔 카메라와 도청기로 놈들의 행동을 살폈다.

“찾았다. 남자와 여자의 발자국이다.”

두 명의 남자 중 한 명이 무전기를 입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그 망할 놈의 발자국이 확실해?

“이 던전에서 한가롭게 데이트를 하는 연놈이 또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그건 아니지. 장소는 어디야? 그쪽으로 간다.

“아까 우리가 모였던 장소에서 남서쪽이다. 거리는 약 600M. 빨리 와라 김지오. 놈들이 우리 추적을 눈치채고 도망갈지도 모른다.”

-5분 안에 간다. 흐흐흐. 모두가 띄워주니 자기가 진짜 잘난 줄 아는 그놈을 죽이고, 여자는 따먹는 거야. 아씨. 벌써부터 흥분되네.

“김지오. 여자도 죽여야 한다.”

-그 여자는 여기서 죽이기엔 너무 아까워.

“……그 여자가 신고하면 어쩌려고 그러지?”

-신고하지 못하게 어디 잡아 가둬두고 기르면 되지. 너도 그 여자를 한 번 보면 죽이겠다는 말은 못 꺼낼 거다.

“……그 정도라고?”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런 년은 처음 봤어. 그 정도의 미녀는 몇 번 보긴 했는데…. 그년은 뭔가 특별해. 반드시 잡아야 해.

“……알겠다. 빨리 와라.”

무전을 끝낸 그는 동료와 함께 주위를 경계하며 대기했다.

나는 옆에 있는 미령을 쳐다봤다.

“왜?”

“아까 김지오인가 뭔가 하는 놈에게 뭔가 했어? 정상이 아닌 집착을 보이잖아.”

“잠깐 눈이 마주쳤을 뿐이야. 그것만으로 내게 홀린 거지. 형편없는 수준의 놈이야.”

“…….”

그러고 보니 호인족에겐 사람의 정기를 빼앗는 능력뿐만이 아니라, 홀리는 능력도 있었다.

“설마 나도 홀린 건 아니지?”

“평소에는 패시브 스킬 같은 거야. 내 눈과 마주치면 자동으로 홀려 버리는 거지. 너한테 작정하고 쓴 적은 없어.”

나는 미령의 눈을 빤히 쳐다봤다. 예쁜 눈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그녀에게 빠져든다는 느낌은 없었다.

5분이 지났다.

놈들 10명이 모두 모였다.

“시작할까?”

미령이 나뭇가지를 흔들며 물었다.

“시작해.”

미령이 땅바닥 어느 곳에 나뭇가지를 쿡 찔러 넣었다. 그것으로 그녀가 20분에 걸쳐 요 일대에 준비해두었던 진법이 발동한다.

‘이 진법을 펼치기 위해 지금까지 얻었던 마석들을 모조리 사용했지. 오늘 수익을 다 쓴 만큼 여기서 놈들을 다 죽여버린다.’

태팔윤진(太八輪陣). 외부와 내부의 공간을 비틀어 진법 내로 들어온 적들을 끊임없이 헤매도록 만드는 진법이다. 진법이지만 일종의 결계이기도 하다.

“태팔윤진이 지속되는 건 1시간뿐이야. 그 이상을 유지하기엔 재료가 너무 없어.”

땀투성이의 그녀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녀는 급하게 진법을 설치하느라 지친 상태다.

“1시간이면 충분하지.”

나는 칼을 들고 일어섰다. 내 시선이 향한 곳은 태블릿이다. 놈들은 진법이 발동하는 순간 서로 떨어져서 개인이 되었다.

‘이 새끼부터 죽일까.’

???

나는 낯선 곳에 떨어진 고양이처럼 털을 바짝 세우며 긴장하고 있는 김지오에게 다가갔다.

김지오를 나를 보자마자 경악하며 칼을 겨누었다.

“성유진! 역시 네놈 짓…. 젠장. 그 꼴은 뭐냐?!”

“내 꼴?”

고개를 숙여 내 상태를 확인했다.

온몸이 피투성이다.

나는 일부러 김지오를 마지막으로 남겨두었다. 즉, 놈의 동료 9명은 전부 내 칼에 죽었다는 뜻이 된다.

‘생각보다 상대하기 쉬웠지.’

같은 C등급 헌터라도 1대1로 붙으면 내가 훨씬 유리했다. 내가 지금까지 갈고닦아온 실력과 경험이 놈들의 우위에 있었다.

“왜 그렇게 징그럽게 쳐다보냐. 이것들은 모두 네 친구들의 피들이다. 네 피도 여기에 섞이게 될 테니 기뻐해야 하지 않냐?”

말은 그렇게 했지만, 굉장히 찜찜했다. 당장 김지오를 죽이고 샤워하고 싶었다.

“미친 새끼.”

김지오는 식은땀을 흘리며 나를 욕했다. 칼끝이 흔들린다. 자신의 동료들이 죽었다는 사실이 어지간히도 충격적인 모양이다.

“넌 지금 지쳐있다. 그 상태로 날 이길 수 있을거라고 생각 하냐? 그 피에 섞이는 건 내 피가 아니라 네 피다! 이 개새끼야!”

김지오가 먼저 선공했다.

놀랍게도 그는 무술을 익혔다. 보법을 밟고 내 앞으로 순식간에 앞으로 다가와 칼을 휘두른다.

“……대충 배운 게 아니라 전문적으로 배운 솜씨군. 너 왜 그 실력으로 밴디드 같은 짓거리를 하고 있냐?”

나는 칼을 들어 김지오의 공격을 막아냈다.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있지만, 나는 그의 말대로 지쳐 있었다. 몸이 무거웠다. 다리는 철 덩어리 같았고, 팔은 움직이기조차 벅찼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최소한으로 움직였다.

‘죽어도 상관없어. 완전 회복을 사용할 수 있으니까.’

그래도 그냥 죽어 주기는 싫었다.

‘……뭐지.’

나는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말이 좋아 최소한의 움직임이지, 실상은 흐느적거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김지오의 칼은 내 몸을 꿰뚫지 못한다. 아슬아슬하게, 종이 한 장 차이로 놈의 모든 공격이 빗겨나가고 있다.

‘이 새끼 진짜 C등급 맞나? 내가 착각한 거고 실제로는 D등급인가?’

김지오의 품이 벌어졌다. 어깨 부위가 드러났다. 찌르면 내가 이길 것이다. 나는 확신했다.

‘무법지대에서 나대던 놈들에 비하면, 이놈은 아무것도 아니야. 시시할 정도지.’

내 칼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오히려 느린 편이었지만, 김지오는 내 칼을 막지 못했다. 칼이 김지오의 어깨에 파고들었다.

“끄아아아아악!”

“김지오. 잘가라. 덕분에 뭔가 알 것 같다.”

나는 칼에 서린 검기를 쳐다봤다. 푸른색의 검기는 이전보다 더 날카로워져 있었다.

“씨, 씨발…!”

김지오가 나를 향해 발을 휘둘렀다. 신발 앞부분에서 칼날이 튀어나왔다.

‘찰나.’

칼을 휘둘러 놈의 다리를 베어내고, 목에 칼을 꽂았다.

“차라리 폭탄을 넣고 다니지 그랬냐. …아, 다리가 날아갈까 봐 폭탄은 못 가지고 다니나?”

김지오가 바닥에 쓰러졌다.

이걸로 나와 미령을 노리던 10명 전부를 죽였다.

나는 가장 먼저 칼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인벤토리에서 물을 꺼내 몸에 묻은 피들을 씻겨냈다.

“윽, 왜 알몸으로 씻고 있는 거야?”

다가오던 미령이 멈칫했다.

“찝찝해서 그래. 그리고 이 상태로 밖에 나가면 협회 직원이 바로 날 체포하겠지.”

“……시체는 어떻게 할 거야? 태워? 묻어?”

“이런 상황에선 몬스터의 먹이로 던져줘야지. 던전에선 그게 가장 빠르고 안전한 뒤처리야. 아, 흡수는 안 해?”

“이런 시원찮은 것들의 정기는 필요 없어.”

시체를 내버려 두면 다른 헌터가 발견하고 밖으로 가져갈 수도 있었다. 시체에 남은 흔적으로 날 찾을 수 있으니 반드시 없애야 한다.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은 나는 한숨을 내쉬며 뒷정리를 했다. 도중에 너무 피곤해서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자 미령이 내 등을 받쳐주었다.

“아. 고마워. 네가 이렇게 날 도와줄 줄이야.”

“협력하기로 했으니까 협력해줄 뿐이야. ……그리고 내가 이 정도로 대단하다는 건 알겠지? 내가 없었으면 이놈들을 수월하게 처리하지 못했을 거야.”

“그렇긴 해.”

나는 씨익 웃었다.

미령이 열심히 나를 도와주는 이유. 자신의 유능함을 내게 증명하고 싶은 것이다.

“빨리 정리하고 돌아가자. 저녁은 돼지 갈비나 먹을까?”

“난 한우가 먹고 싶어.”

“한우도 좋지.”

???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팬티와 티셔츠 차림으로 거실로 나갔다. 시간은 오후 7시가 넘어갔다. 새벽까지 한하린과 한아영과 침대 위에서 뒹굴었던 탓이다. 흑백쌍보는 몇 번을 먹어도 질리지 않는 덮밥이다.

“……뭔 박스가 이렇게 많아?”

20개가 넘는 빈 박스가 쌓여 있었다. 박스를 보면 택배 운송장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나는 이토록 많은 택배를 시킨 적이 없었다.

‘미령이 시켰나? 옷이랑 방송용 카메라…? 갑자기 뭔 바람이 분 거야.’

마음대로 쓰라며 카드를 줬더니 진짜 제 마음대로 쓰고 있었다. 한 번 궁금해서 택배에 있는 것 중에 하나를 검색해보니 하나같이 고급품이었다. 가격도 최소 수 십만 원이다. 방송용 카메라의 경우 100만 원이 넘어갔다.

‘또 뭔가에 꽂힌 모양이군.’

현실에 미련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 좋았다.

‘뭐 하고 있는지 한 번 볼까.’

미령의 방문에 노크하려다가 멈칫했다. 안쪽에서 음악 소리가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

‘음악을 틀어놓고 실제로는 자위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미령이 소환된 지 2주째. 그녀가 자위하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나는 화들짝 놀라는 그녀를 기대하며 문을 열었다.

내가 기대하고 있던 장면은 없었다.

미령은 신나는 음악 소리와 함께 가슴골이 보이는 헐벗은 옷차림으로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앗, 청계천 싸울아비 님! 3만 코인 감사합니다! 오빠를 위한 섹시 댄스!”

그녀의 하얀 여우 꼬리가 요염하게 살랑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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