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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1화 〉 521. 새로운 스킬

521. 새로운 스킬

“네가 내 여자가 된다면, 난 소환할 수 있을 때마다 널 현실에 소환할 거야. 약속할게.”

미령이 눈살을 찌푸렸다.

“날 뭐로 보는 거야? 겨우 그 이유로 네 여자가 될 거라고 생각해?”

그녀가 팔을 흔들어 내 손을 뿌리쳤다.

나는 실망하지 않았다. 그동안 그녀가 내게 보였던 호의. 그것들은 모두 내게 잘 보이기 위해서다. 그 이유는 당연히 이 세계를 좀 더 즐기고 싶기 때문이겠지.

“미령. 우리 솔직해지자. 난 네가 내 여자가 되길 원해. 너는 이 세계를 좀 더 즐기고 싶잖아.”

“난 돌아가야 할 세계가 있어. 이 세계가 재밌다고 해도 네게 몸을 팔 정도는 아니야.”

“잘 생각하고 말해. 이게 최후통첩이야. 여기서 네가 거절한다면 두 번 다시 널 소환할 일은 없을 거야.”

“…….”

미령의 얼굴이 복잡해졌다.

나는 그녀가 얼마나 현대문명에 심취했는지 알고 있다. 인터넷은 해도 해도 질리지 않고, 음식은 매번 다른 요리를 먹는다. 그녀가 해외 유명 관광지를 심심치 않게 검색한다는 것도 안다.

“이 세계는 네가 즐겨보지 못한 것들이 많아.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발전하고 있지.”

“내가 사는 세계도…….”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다물었다.

[광명승천도] 세계의 문명은 발전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 살아온 그녀는 알 것이다. 몇백 년, 몇천 년이 지나도 발전하지 않을 것이란 걸. 이유? 지배자들이 그걸 바라지 않을 테니까.

발전하기 위해선 인간들의 수준을 올라갈 필요가 있다. 허나 힘을 가진 지배자들은 효율적인 지배를 위해 그걸 배제한다.

인간들이 혁명을 일으킨다? 불가능하다. 저 세계의 지배자들은 땅을 가르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힘을 가진 자들이다. 그들에게 대들어봤자 학살당할 뿐이다. 경지가 높을수록 수명이 늘어나는 특성상 시간 또한 지배자들의 편이다.

[광명승천도]에서 오랜 세월 살아온 그녀가 나보다 더 잘 알 것이다.

“호인족이 평생 한 명의 반려만을 삼는다는 걸 알고 있어.”

전통이라기보다는 습성이었다. 호인족의 먼 조상이 되는 존재가 평생 한 사람만을 사랑했고, 조상을 그 누구보다 존경했던 후손들은 조상을 따라 하며 전통을 만들었다. 그 전통은 시간이 흘러 호인족의 습성이 되었다.

‘그래봤자 저주나, 제약 같은 게 아니라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도 있지만.’

호인족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쉽게 반려를 정하지 못한다.

“난 널 사랑하지 않아. 그런데도 널 반려로 삼으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사랑이 없어도 결혼은 할 수 있지. 한국 드라마를 봤으니 알잖아. 날 사랑하지 않아도 돼. 내 재력을 사랑하거나, 내 능력을 사랑하면 돼. 그게 날 사랑하는 거니까.”

내가 봤을 때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데 거창한 이유는 필요 없다. 얼굴을 예뻐서 사랑하고, 몸매가 좋아서 사랑하고, 재산이 많아서 사랑하고, 힘이 강해서 사랑하고, 편해서 사랑하고, 섹스를 잘해서 사랑하고.

‘날 사랑하지 않아도 내 좆을 사랑하게 만들 자신은 있어.’

미령이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고민한 순간 이미 대답이 된 것이나 다름없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내일까지… 대답해줄게.”

“거기까진 기다릴 수 있어. 잘 생각해. 네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미령이 방 안으로 들어갔다.

‘크크. 내일 미령이 내 여자가 되겠군.’

물론 내 예상과 다른 대답을 할 수도 있었다. 그때는 강제로 굴복시킬 것이다.

???

“안녕. 오빠들! 약속한 시간에 딱 맞춰 왔죠?”

미령은 방송을 켰다. 오늘 일도 있었으니 매력을 높이는 술법은 해제했다. 오늘 같은 일이 또 일어나는 건 그녀도 원하지 않았다.

어제보다 시청자 수가 줄었다. 방송을 킨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해도 2,000명이 되지 않는다. 어제는 최대 시청자 수가 무려 1만 명이 넘었었다. 비록 술법의 힘이었지만.

「생수킹 님 코인 100,000개 고마워요!

ㅋㅋ오프닝 섹시 댄스 ㄱㄱ」

‘이 변태 새끼 바로 들어왔네.’

미령은 표정 관리를 하며 마음속으로 생수킹을 욕했다.

생수킹.

어제 무려 5억이나 쓴 큰 손이었다. 뭐 하는 놈인지는 몰라도 돈은 무척이나 많았다. 한 번 메시지를 쓸 때마다 천만 원씩 후원한다. 자신의 방송에서 가장 많은 돈을 후원해준 회장님이었다.

하지만 후원으로 시키는 것들이 노골적이었다. 성추행이라 해도 좋을 정도의 발언도 거침없이 채팅창에 친다.

‘쳐내기에는 이 플랫폼에서 이 정도로 큰손은 없어. 쳐냈는데 다른 여캠 방송에서 코인을 펑펑 쏴대면…? 으… 상상만 해도 배 아파 죽을 것 같아.’

생수킹은 마음에 안 들지만 돈은 죄가 없었다.

“네에~ 섹시 댄스 갈게요.”

그녀는 아슬아슬하게 춤을 췄다. 카메라가 남자들의 끈적끈적한 눈으로 보였다. 물론 그런 거에 그녀는 전혀 기죽지 않았다.

“하아. 이제 춤은 나중에 출 거에요. 어제만 해도 몇 시간을 춤췄는지…. 근육통이 배겼다니까요?”

그녀는 양팔을 흔들면서 은근하게 남자들을 유혹했다.

-하악. 언니 너무 멋지다.

채팅창을 보면 간간이 여성들이 쓴 글들이 보였다. 그녀는 같은 여자가 보더라도 놀랄 정도로 미모가 뛰어났다. 거기에 어제 사용했던 술법의 여파가 아직 남아 있어 여성 시청자들 몇몇이 있었다.

-성유진 헌터랑 사귄다는 소문 진짜임?

-?? 왜 갑자기 성유진이 나옴?

-커뮤니티 사이트에 성유진이랑 같이 다니는 걸 봤다는 글이 있던데?

-성유진 한하린이랑 사귀는 거 아니었음?

-누나 나 죽어ㅓㅓㅓㅓㅓ

-빨통 존나 빨고 싶네

-한아영이랑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도 있던데?

-성유진이 누군데

-뭐야 시발 비처녀였냐?

-그럴 줄 알았다. 저 정도의 외모인데 남자들이 내버려 뒀겠냐ㅋ

채팅창이 혼란스럽다. 기다렸다는 듯이 물어뜯으며 욕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기다렸다는 듯이 수위 높은 사람들도 있었으며, 해명을 요구하는 사람도 있었다.

‘…설마 아까 있었던 그놈이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나? 반응을 봐선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일반 신입 BJ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혼란스럽다. 하지만 그녀는 평범한 여자가 아니었다. 고작 이 정도로 멘탈이 흔들린다면 오기(五氣) 경지를 이루지도 못했다.

「여우령팬1호 님 코인 1,000개 고마워요!

난 믿고 있어. 웃지만 말고 빨리 해명 해조」

생글생글 웃고 있던 여우령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제가 어제 말했죠? 저 D등급 헌터라고요. 성유진 씨와는 헌터 일을 하다가 우연히 만났어요. 여러분도 알잖아요. 성유진 씨는 소속된 길드나 파티도 없고 공개 파티를 자주 하잖아요.”

-성유진이 이상하게 길드에 안 들어가긴 함.

-성유진 걔 S급 헌터가 될 정도의 재능충이라며?

-성유진 요새 TV도 안 나오고 뭐 하는지 모르겠음

-눈나 노래 불러줘요

-성유진이랑 떡 존나 쳤겠네! 부럽다.

-얼마 줘야 떡칠 수 있음?

성유진은 인터넷에서 더 유명했다. 다른 나라의 루키들보다 더 압도적인 재능과 능력을 보유했기에 더 그랬다. 헌터계에 관심 많은 한국인들은 기대감을 가지고 성유진을 지켜보고 있다.

「생수킹 님 코인 100,000개 고마워요!

성유진 불러서 해명 방송 ㄱ」

“생수킹님 코인 감사해요. 성유진 씨를 초대해서 해명 방송을 하는 건 좀 그래요. 그 정도로 친하지도 않아요. 따로 연락하는 것도 아니고요. 성유진 씨에게 너무 민폐잖아요.”

미령은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아무 관계가 아니라고 극구 부인해도 채팅창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성유진 씨. 얘기는 그만! 방송에 집중해주세요. 아, 그리고 저 조금 있다가 게임 방송할 거예요.”

미령은 방송을 진행했다. 하지만 성유진의 이름은 간간이 나왔고, 그때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생수킹 님 코인 100,000개 고마워요!

게임 잘하네. 이거 후속작이 3개월 뒤에 나오는 거 알지?」

“…3개월… 뒤요?”

-ㅇㅇ 3개월 뒤에 후속편 출시함

-제작사가 아주 자신만만하더라.

-솔직히 기대됨.

-누나. 의상 바꿔 입어줘요. 어제처럼 여우 귀뢍 여우 꼬리…. 하 진짜 쩔었는데.

-여우 꼬리 똥꼬에 넣는 거지?

-코만도 님이 추방당했습니다.

게임을 하던 미령이 숨을 삼켰다.

3개월 뒤.

그때 자신은 없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내년에도 자신은 없을 것이다. 내년에 출시되는 게임을 할 수 없고, 내년에 개봉되는 영화도 볼 수 없다.

그 외에도 정기적으로 열리는 세계의 축제 올림픽이나, 월드컵도 즐길 수 없다.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은데 즐길 시간이 없었다.

‘원래 세계는….’

지루한 곳이었다. 가서 할 것이라곤 수련뿐이다.

수련에, 수련에, 수련.

음식도 늘 먹던 것들을 먹을 것이다.

인간들이 사는 마을에 가봤자 재밌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다. 가끔 인간들이 연극을 하기도 하지만, 드라마에 비하면 어린애 장난이나 다름없다.

‘성유진은 자기가 아니라 자신이 가진 능력을 사랑하라고 했지.’

자신을 이 세계로 소환하는 능력. 성유진이 아니라 그 능력을 사랑하는 것이다.

「생수킹 님 코인 100,000개 고마워요!

죽었네. 벌칙으로 물구나무서기 1분 ㄱㄱㄱ」

“아, 아아악! 진짜 죽었어?!”

잠깐 멍해진 사이에 그녀가 조종하던 캐릭터가 몬스터의 뒤치기에 나가떨어졌다. 그녀는 일부러 큰 소리를 지르며 분통을 터트렸다.

실제로 그렇게 화가 난 건 아니다. 방송을 위한 연기였다.

-와 가슴이 아래로 떨어진다.

-참젖 인정합니다.

-ㅗㅜㅑㅗㅜㅑ

-엉덩이랑 허벅지 사이에 코박죽 하고 싶다.

「생수킹 님 코인 100,000개 고마워요!

얼마를 후원해야 실제로 만나서 데이트 할 수 있는 거임?」

“전 수 천억을 받아도 데이트같은 건 안 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

-회장님 불쌍

-생수킹이 생수를 못함ㅋㅋ

-꼬시다ㅋㅋㅋㅋㅋㅋ

-돈만 빼먹기 개이득!

???

하민수는 자신의 방 침대에 앉아 초조하게 다리를 떨며 엄지손톱을 물어뜯었다.

그는 스마트폰으로 여우령의 방송을 지켜보고 있었다. 2시간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앞에서 성유진과 함께 깊은 키스를 하던 여자는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고 성유진과 관계를 부정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어차피 돈 벌려고 사람들 앞에서 몸이나 흔드는 년인데….’

이런 여자는 많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여우령의 모습을 떨쳐낼 수 없었다. 눈을 감으면 아른거리고, 화면을 보고 있는 지금도 눈을 뗄 수 없다.

‘내 것으로…!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여우령은 내 옆에 있어야 해. 내 옆에 있는 게 더 행복할 거야. 그러기 위해선….’

성유진을 치워야 한다.

다행히도 성유진은 헌터다. 주기적으로 던전에 들어갈 테고, 그때를 노려 암살자를 보내면 깔끔하게 없앨 수 있다.

가장 큰 방해물인 성유진이 없으니 여우령은 자신에게 매달릴 것이다.

하민수는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바로 비서에게 연락했다. 헌터 전문 암살자들을 알아보고 성유진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했다. 해버렸다.’

심장이 뛰고 식은땀이 흐른다. 누군가를 직접 없애라고 지시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괜찮아. 일은 성공할 거야. 그럼 여우령을 가질 수 있어.’

스마트폰 화면 속의 여우령을 쳐다봤다. 생글생글 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한다. 그녀가 교태를 부리자 아랫도리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오늘 낮에 3번이나 했잖아. 그런데 지금 또….’

아까 여우령과 성유진의 키스 장면이 떠오른다. 야동에서나 나올법한 키스였다. 성유진의 손이 여우령의 젖가슴과 엉덩이 만지는 장면이 생생하다. 화가 치밀어오르는 동시에 아랫도리가 더 빳빳해진다.

“여우령. 여우령… 여우령…!!”

하민수가 참다못해 자신의 사타구니에 손을 가져다 댄 순간이었다.

방문이 열리며 경호원을 동원한 하승희가 들어왔다. 하민수의 여동생인 하승희는 하민수를 보자마자 얼굴을 구겼다. 두 눈에는 혐오가 가득했다.

“내가 나쁜 타이밍에 왔나 봐. 나갔다가 다시 올 생각은 없으니까. 정신 차려.”

“……승희야. 넌 예의가 없구나. 노크하는 상식은 어디에 갖다 버렸어?”

“짐승 우리에 들어오는데 노크를 해야 하는 상식은 어느 나라에도 없어.”

“너 오빠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그리고 오늘따라 왜 이래? 난 오늘 너랑 얘기할 시간 없으니 돌아가.”

“인터넷 방송하는 여자한테 빠져서 스토커 짓 했다며?”

하승희의 옆에 있는 경호원 중 한 명이 태블릿을 들었다. 화면에는 한 오피스텔 앞에서 꽃다발을 들고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하민수의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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