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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3 - 533.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313/2,000)

〈 533화 〉 533.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533.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회수.”

평원에 떨어져 있던 스톰브레이커가 내 앞으로 빠르게 날아왔다. 나는 거창에 마나를 주입하면서 형태를 검으로 바꿨다.

푸른색의 검신이 돋보이는 롱소드다. 무게는 거창 상태일 때와 차이 없이 무겁고, 검날은 화련비도 보다 길었다. 나는 검의 손잡이를 잡자마자 푸른색 오러를 일으켰다.

“재밌는 무기를 가지고 있군!”

루크만은 다리에 폭발을 일으키듯이 이쪽을 향해 달려들었다. 도중에 창을 줍고는 내 앞에 다가와 창대를 휘둘렀다.

0.5초 만에 발현되어 창을 감싸는 황금색 오러에 실력차를 실감하면서 검을 위로 휘둘러 창을 쳐냈다.

“푸르커스의 검술이 아니군.”

“…바로 알아보시는 겁니까?”

“그 검술을 몇 번이나 봐왔는데 모르겠나. 차남과도 다른 검술이로군. 무슨 검술인지는… 지켜보면 알겠지.”

루크만이 창이 움직인다. 나를 배려한 것인지 그 속도를 눈으로 좇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창에 실린 힘이었다.

콰아앙!

“큭!”

정면으로 한 번 막아냈을 뿐인데 몸이 5cm 정도 밀려났다. 검을 쥔 양손이 저릿하다. 창에 실린 힘이 장난이 아니었다.

콰앙! 쾅! 쾅!

검과 창이 부딪힐 때마다 충격파가 발생한다.

이길 수 없다. 그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이제 겨우 오러 익스퍼트 상급에 닿을까, 말까 한 나다. 오러 마스터의 경지인 루크만을 이기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무력하게 질 수는 없지. 루크만은 이상한 소문을 내지도 않을 테고….’

영천류를 사용했다.

영천류의 호흡법으로 바꾸고, 영천류의 보법을 밟았다. 화련비도가 아닌 다른 검으로 사용하는 거라 약간 어색하긴 하지만 문제는 없다.

영천류(影天流) 뇌사(雷蛇).

검은 번개 줄기처럼 꿈틀거리며 루크만의 오른쪽 어깨를 노렸다.

루크만이 지면을 박차고 순식간에 거리를 벌렸다. 내가 그에게 달라붙었다.

영천류(影天流) 벽계(碧溪).

노리는 것은 머리.

“흠. 차남이 쓰던 게 매화검술인가? 그것만큼이나 신기한 검술이군.”

벽계는 당연하다는 듯 통하지 않았다. 그는 고개만 살짝 까딱여 내 공격을 쉽게 피했다.

영천류(影天流) 뇌광(雷光).

영천류에서 가장 빠른 검격을 날렸다. 허나 이번에도 막혔다. 루크만의 눈에는 내 공격이 전부 보였던 것이다.

“좀 더 속도를 올려…. 왜 검을 놓는 거지?”

“제가 졌습니다. 마나는 바닥을 치고 있고, 손도 아픕니다.”

“…아직 검은 휘두를 수 있지 않느냐.”

“휘둘러도 제가 집니다. 그러다 부상을 입으면 저만 손해가 아닙니까?”

“부상이 두려우냐? 근성 없는 놈.”

“뭐라 말씀하시든 전 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 이상 해봤자 내가 얻을 건 없었다. 위대한 창사와의 경험? 그 경험은 지금까지의 전투만으로도 충분히 느꼈고, 다른 곳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경험이다.

내가 전의를 상실하자 그는 날 노려보더니 한숨을 내쉬며 거창을 쥔 손에 힘을 뺐다.

“후. 흥이 깨졌군. 알고 있나? 너의 형들은 모두 한계까지 싸웠다. 장남은 기절까지 했지. 너는 네 형들과는 달리 전사가 아니로군. 네 검술의 느낌도 암살자들의 것과 닮았지.”

“아. 형님들은 장래에 어떤 관계가 될지 모르는 분에게 밑바닥을 보였다는 거군요.”

“……어처구니없는 놈이군.”

메이드들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들은 각각 수건을 들고 땀이 묻어 있는 내 몸을 닦았다. 계속했더라면 수건에 빨간 액체가 묻어나왔겠지.

“여색을 밝히는 놈이었군. 제 아비나 형들과는 너무도 다르다.”

“부럽습니까?”

“……프루커스에 어떻게 너 같은 놈이 태어났는지 의문이군.”

“사람이 태어나는데 대단한 이유는 필요치 않습니다.”

“한 마디도 지지 않으려고 하는군. 너는 선천적인 심장병을 앓고 있다고 들었다. 심장병은 괜찮나?”

“최근에는 발작도 하지 않고, 치료사의 말로는 심장병의 흔적도 찾기 힘들 정도라더군요. 페트라스 후작 각하. 일이 끝났으니 이제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음. 뭘 물어볼 생각이지?”

“저에 대한 평가 말입니다. 후작 각하께서 원하시는 대로 싸웠습니다. 그러니 각하의 평가를 들을 자격이 제겐 있습니다.”

루크만은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너는… 모르겠군.”

“네?”

“일신의 무력은 고만고만하다. 특이하긴 하지만 그뿐이다. 허나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너는 재력을 갖췄고, 그 외에도 다른 힘을 가지고 있겠지. 프루커스 가문의 자식 중에서 네가 가장 위험하다는 생각이 드는군.”

“……좋은 평가입니까?”

“나쁜 평가는 아니지.”

나는 곤란한 웃음을 지었다. 저 평가가 소문으로 변해 전국으로 퍼지면 내 평판이 내려갈 것이 분명하다.

“바로 떠나실 생각이 아니시라면 제 영지에서 잠깐 머물고 가시죠.”

예의상 건네는 말이었다.

본심은 지금 당장 내 영지에서 꺼져줬으면 좋겠다. 관리하기 힘든 손님이 오는 건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며칠 정도 머물고 가도록 하지. 물론 공짜로 머물 생각은 없다. 넌 창에 관심이 있는 것 같으니 창술의 기본을 알려주마.”

“그러실 필요까지는….”

“사양할 필요 없다.”

“…….”

뭐라고 말해도 쉽게 물러날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에게 손님용으로 준비해둔 별채에 안내했다.

???

루크만은 테브라 영지를 둘러봤다.

유진 프루커스는 듣도 보도 못한 방식으로 영지를 운영하고 있었다.

‘시민들의 등급을 나누다니…. 어떻게 이런 사고방식을 할 수 있는 거지?’

시민 등급제.

평민들을 5개의 등급으로 나눴다. 등급은 계급이 아니지만, 등급이 붙은 순간부터 계급이었다.

등급이 높을수록 여러 혜택이 주어졌다. 거기에 높은 등급의 평민이 낮은 등급의 평민을 무시하는 일은 다반사였으며, 젊은 여자들은 높은 등급의 남자에게 시집가고 싶어 했다.

‘이 도시의 평민들은 등급을 높이기 위해, 등급을 유지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다른 곳보다 훨씬 가혹해 보이는군.’

하지만 다른 도시로 도망치는 자들은 없었다. 오히려 평민들이 바깥에서 들어오고 있다. 테브라는 코리아 상단의 본거지가 있는 만큼 굉장히 혁신적이었다. 온갖 신기한 물건들이 넘쳐났고, 다른 도시와 비교해서 문명 자체가 다른 것 같았다.

대부분의 평민은 이 편리한 도시에 만족하고 있는 듯했다.

“유진 프루커스 남작.”

“네. 후작 각하.”

“왜 시민 등급제란 것을 실행한 것이지? 이해할 수 없군.”

“후작 각하. 귀족이라 해서 다 같은 귀족이 아니듯, 평민이라 해서 다 같은 평민이 아닙니다. 유능한 평민은 무능한 평민들보다 더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평민들은 등급을 높이고 싶어서, 등급을 유지하고 싶어서 보다 열정적으로 일합니다. 다른 영지들은 보시면 알겠지만, 이 정도로 열심히 일하는 평민들은 아마 이 도시가 유일할 겁니다.”

“상인이나 평민, 용병들이 네게 뇌물을 바치더군.”

“그들이 저를 존경하여 선물을 줍니다. 그들의 마음이 담긴 선물을 영주로서 어찌 거절하겠습니까.”

“타인인 내가 이 도시에 참견할 자격은 없다. 하지만 식객으로서 네게 충고하자면… 언젠간 큰코다칠 일이 올 것이다.”

루크만은 제법 오랫동안 살아온 만큼 여러 가지 꼴을 봐왔다. 영지민들을 수탈하며 제 배를 불리던 귀족들은 그 끝이 좋지 않았다. 자식에게 버림받거나, 누군가에게 속아 모든 것을 잃거나, 암살자에게 당하거나.

“괜찮습니다. 이 도시는 제 발밑에 있습니다.”

유진은 안색하나 안 변하고 담담히 말했다.

루크만은 유진에 대한 평가를 수정했다.

처음에는 장사치에 가까운 줄 알았다. 하지만 저 모습을 보면 귀족이었다. 그것도 장남인 젠트와 버금갈 정도의 귀족.

“전쟁은 어떻게 할 것이냐?”

“예?”

“점점 다가오고 있는 전쟁 말이다. 역시 돈을 이용해 뒤에서 군대를 지원할 생각인가? 전쟁을 하는 것은 사람이다. 무기와 식량이 없다면 전쟁은 성립되지 않는다. 프루커스 백작도 돈을 이용한 후방 지원을 공으로 인정할 것이다.”

“물자를 지원하더라도 뒤에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나서서 싸우는 것보다는 그 주목도가 떨어지니까요. 전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공을 세워 프루커스의 주인이 될 것입니다.”

“그렇군.”

루크만은 매일 몇 시간씩 유진에게 기본적인 창술을 가르쳐주었다. 허나 영 쉽지 않은 일었다.

“창술에 대한 재능이 전혀 없군. 차라리 지나가던 병사가 너보다 창을 더 잘 다루겠다! 힘으로만 다룰 생각은 하지 마라! 창을 좀 더 부드럽게 휘두르란 말이다!”

“전 창술에 관심 없다니까요. 전 투창 쪽이 더 좋단 말입니다.”

“이미 내가 네놈에게 창술을 가르쳐주고 있다는 소문이 왕국 전역으로 퍼졌다! 네놈에게 내 명성이 걸렸단 말이다! 못해도 기초만큼은 확실하게 새겨주마! 그리고 앞으로 누군가가 창술에 관해 묻거든 내게 기초만 배웠다고 해라!”

루크만은 예정했던 것보다 훨씬 더 길게, 한 달 동안이나 테브라 도시에 머물렀다. 재능이 너무 없었기 때문이다. 오러 익스퍼트가 아니었다면 연 단위로 머물러야 했을지도 모른다.

‘흠. 막상 도시를 떠나려고 하니 불편해질 것 같군. 빈민도 별로 없어서 치안도 좋고, 음식도 입맛에 맞았지.’

???

한 달 만에 루크만이 떠났다. 나는 그를 보내고서 한숨을 내쉬며 유리아에게 물었다.

“드디어 떠났네. 들키진 않았지?”

“네. 숨겨야 할 것은 모두 숨겼습니다. 카메라를 통해 페트라스 후작의 일거수일투족을 24시간 내내 감시했습니다.”

루크만이 본 내 영지는 극히 일부뿐이다. 들키면 큰일 날 것들이 한두 개가 아니라서 루크만을 상대하며 진땀을 뺐다.

‘예를 들자면 지하 감옥에서 악마를 비롯해 범죄자들을 끊임없이 고문하고 있다거나. 납치한 귀족을 죽이지 않고 천천히 정보를 실토하게 만들어 재산을 뜯어낸다거나….’

그리고 지금 시점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건 밀수다.

나는 라펠리 왕국의 최대 적국이라 할 수 있는 발트 왕국에 군수물자를 팔아먹고 있었다. 일종의 매국 행위라 할 수 있었다.

‘루크만은 왕국에 대한 충성심이 깊으니, 눈치챘다면 당장 내 목을 치려고 했겠지.’

물론 순순히 당해줄 생각은 없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유리아가 나서서 루크만의 명줄을 끊었을 것이다.

“유리아. 후작이 우리 형제들을 찾은 건… 딸 때문이겠지?”

루크만에게는 혼기가 꽉 차다 못해 지나친 딸이 한 명 있었다. 선머슴 같은 딸이다. 얌전한 다른 귀족 영애들과 다르게 직접 창을 쥐고 도적을 토벌하러 다닐 정도로 거칠다.

페트라스 후작가는 명성 높은 가문임에도 불구하고 혼담은 많이 오가지 않았다. 루크만의 딸은 얼마 없는 혼처도 모조리 거부했다. 하하 호호 웃을 뿐인 귀족 부인이 될 생각이 전혀 없다나.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페트라스 후작은 프루커스 백작에게 악감정은 있지만, 프루커스 가문 자체에는 별다른 감정이 없습니다. 오히려 프루커스 가문을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답 없는 꼰대인 줄 알았는데, 그렇게까지 심각한 꼰대는 아니었지.”

루크만의 딸에게 흥미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지금 난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결혼해봤자 득보다 실이 더 많기도 하고.

“주인님. 보고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보고? 심각한 일이야?”

“경계가 필요한 수준입니다.”

나는 자세를 바로잡고 유리아의 보고를 들었다.

“둘리바드 왕세자를 기억하십니까?”

1분 가까이 둘리바드가 누군지 떠올릴 수 있었다.

“……음. 아, 코발트 왕국의 왕세자 말이지?”

“네.”

골드웨이 아카데미에서 만났다.

내 기억에 따르면 둘리바드 왕세자는 공녀이자 학생회장이었던 멜리사에게 청혼하려 했었다. 그러나 멜리사와 나는 놈의 눈앞에서 떡을 쳤다.

‘놈의 부하를 유리아가 죽였지.’

기억나는 건 그게 전부였다. 나는 코발트 왕세자를 죽이지 않고 골드웨이 아카데미를 떠났고, 멜리사는 가문을 버리고 도망쳐 내 메이드가 되었다.

“주제넘은 짓인 건 압니다만, 주인님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지 염려되어 둘리바드 왕세자에게 그림자를 붙여두었습니다.”

“주제넘은 짓은 무슨. 내 뒤처리를 해주는 네게 항상 감사하고 있어. 근데 그놈이 왜?”

“레오시오 크라이소드와 접촉했습니다.”

그 이름이 뭔지 모를 리가 없었다. 원작에서 나온 이름이니까.

“……그놈이 레드 드래곤이랑 접촉했다고? 왜?”

“주인님을 향한 복수심 때문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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