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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4 - 544.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324/2,000)

〈 544화 〉 544.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544.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어드바이스 : 일어나십시오.」

어드바이스의 메시지에 몸을 일으켰다.

새벽 5시. 아직 날도 제대로 밝지 않은 시간에 일어났다. 나는 집사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에 익숙해졌군. 이 갑갑한 집사복도 이젠 편하게 느껴질 정도고.’

집사복에 구김이 없는지 확인하고 방 밖으로 나섰다. 서늘한 공기를 느끼면서 주위를 확인했다. 기숙사로 입주한 건 어제인지라 아직 좀 낯설었다.

「어드바이스 : 청소를 끝내고 아침 식사를 준비하십시오.」

어드바이스가 시키는 대로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내가 먹었을 땐 그저 그런 요리지만, 남들이 먹었을 땐 왕궁 요리장 뺨치는 요리다.

「어드바이스 : 공녀를 깨우고 시중을 드십시오.」

다른 사용인들이 없었기에 유독 바빴다. 그래도 유리아가 협조적이어서 편하긴 했다.

나는 그녀의 청은색 머리카락을 빗겨주면서 창문 밖을 쳐다봤다. 1층 현관문 앞에 귀족 영애 셋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사용인 셋이 보였다. 영애 3명, 집사 1명, 시녀 2명.

“공녀님을 기다리고 계시는군요. 빠르게 해야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천천히 하세요. 저들이 멋대로 기다리는 것뿐입니다. 저들을 배려할 이유는 없습니다. 전 이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습니다.”

머리 정리까지 완벽하게 끝냈다.

“마음에 드십니까?”

“네. 좋군요. 흠잡을 곳이 없습니다.”

“…공녀님. 상을 받고 싶습니다.”

“아침부터 말입니까? 욕심이 많으시군요. 하지만…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 상을 허락하죠.”

“감사합니다.”

유리아의 허리와 뺨을 부드럽게 잡고 입을 맞추었다. 나와 그녀는 섹스 빼고 다 해봤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키스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녀의 입술이 벌어졌다. 좀처럼 허락하지 않던 혀를 허락하는 걸 보니 기분이 좋다는 말은 사실인 모양이다. 혀를 집어넣고 키스에 집중했다. 그녀의 혀를 빨고 침을 먹었다. 점점 고조되어 그녀의 허리에 얹은 손이 엉덩이로 내려가려는 찰나, 그녀의 손이 내 가슴을 밀었다.

“여기까지입니다.”

“…네. 공녀님. 치맛자락이 약간 흐트러졌습니다.”

등교를 시작했다. 유리아는 친구 3명… 아니, 추종자 3명을 이끌고 당당히 걸어갔다. 아카데미 건물이 있는 곳 까지 15분은 걸어야 한다. 나는 뒤에서 다른 사용인들과 함께 영애들의 뒤를 따랐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등교를 하는 귀족들이 많아졌다.

걷는 것 말고 할 일도 없었던 나는 귀족 자재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저분이 필타니아 공작가의 후계자…. 외모와 걸음걸이부터가 다르네요…. 보고만 있어도 동경하게 될 것 같아요.”

“어제 잠깐 대화를 해봤는데 목소리와 말투까지 얼마나 아름다우시던지… 제가 남자였다면 반했을 거예요.”

“유리아 공녀님과 파레인 왕자님은 약혼 관계라고 들었어요.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대부분 귀족 영애들은 선망의 눈으로 유리아를 쳐다봤다. 남자들의 경우도 다를 바 없었다. 다만 시선에 흑심이 담겨 있다.

“어머. 저분은 파레인 왕자님이시네요. 이런 우연이…. 이게 운명이라는 걸까요?”

황금색 머리카락의 미남자였다. 녹색 눈동자는 반짝이고 부드러운 인상이었다. 동화 속에 나오는 왕자님 같은 이미지의 진짜 왕자. 그리고 유리아의 약혼자.

“셀브리즈 백작가의 후계자이신 요르센 님도 있잖아요!”

파란색 머리카락에 큰 덩치를 가진 남자였다. 얼굴은 잘생겼고 몸은 근육투성이다. 느껴지는 기세로 보아 무시할 수 없는 실력자다.

“저분은 차기 재상 후보인 마티스 공자가 아닌가요?!”

검은 머리에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남자였다. 미간 사이를 팍 찌푸리고 있는 게 결벽증이라도 가지고 있을 것 같은 남자다.

“왕국의 유명한 미남들이 한자리에 모였군요!”

“아! 감격이에요! 이런 날이 올 줄이야…!”

“…근데 중앙에 있는 영애는 누구죠?”

“전 알아요. 코모토프스 자작가의 영애인 메리 양이에요.”

“왜 메리 양이 저들 사이에 있는 거죠? 마치…”

“마치 세 명의 남성분들이 메리 양에게 매달리는 것 같네요.”

나는 메리라는 여자를 쳐다봤다.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색 머리카락. 귀여워 보이는 큰 눈과 여름을 떠올리게 만드는 미소와 분위기. 미녀이긴 했으나 흔히 볼 수 있는 미녀였다. 허리는 잘록하지만, 가슴은 기껏해야 B컵이고 골반도 평범했다. 내 취향과는 좀 멀었다.

‘…근데 왜 저런 여자한테 저 남자 셋이 푹 빠져 있는 거로 보이지?’

특히나 파레인 왕자를 이해할 수 없었다. 훨씬 더 아름다운 유리아에겐 시선도 주지 않고 오직 메리만 보고 있다.

“메리! 아카데미 밖에 좋은 디저트 가게가 있어. 수업이 끝나고 같이 가보지 않겠어?”

“정말요? 저 디저트 좋아해요! 그리고 왕자님의 초대를 제가 어떻께 거절할까요!”

“아카데미 밖에는 호위가 필요합니다. 호위는 제게 맡겨주십시오.”

“저도 디저트에 흥미 있습니다. 단 음식은 두뇌에 활력을 넣어주죠. 함께하겠습니다.”

“…너희들은 따로 가면 안 되나?”

시간이 갈수록 웅성거림이 심해진다. 원인은 저 무리 때문이다. 이곳과 저곳의 분위기는 명확히 달랐다.

메리와 두 눈이 마주쳤다. 메리는 날 보고 웃었다. 아마 큰 이유 없이 그냥 웃는 것이리라.

유리아는 잠깐 그들을 돌아봤다. 허나 이내 관심 없다는 듯 지나쳤다. 파레인 왕자와는 인사 조차 하지 않았다.

‘안 좋은데.’

내 예상은 적중했다.

“파레인 왕자님은 유리아 공녀님과 약혼한 사이가 아니었나요…?”

“저건 아무 사이도 아닌 타인 같잖아요. 둘 사이에 무슨 사건이 있었던 걸까요?”

“파레인 왕자님을 메리 양에게 빼앗기거나….”

웅성거림이 수군거림으로 변했다. 유리아와 파레인 왕자의 명성이 실시간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왕자는 그러려니 할 것이다. 왕위계승권도 없는 그에겐 잃을 것이 딱히 없다. 허나 공작이 될 유리아에겐 다르다.

‘집사에 불과한 내가 뭘 할 수도 없고.’

나는 눈살만 찌푸렸다.

이후에 유리아와 잠깐 헤어지기 직전, 그녀에게 물었다.

“공녀님. 이상한 소문이 돌 겁니다. 어떻게든 대처해야….”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겨우 이런 일로 함부로 움직여선 안 됩니다. 파레인 왕자도 생각이 있다면 대처하겠죠.”

“네. 일단 지켜보겠습니다.”

???

유리아가 아카데미에서 수업을 받는 동안, 나는 약간의 자유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점심은 식당에서 먹을 테고… 오후 수업도 있으니 저녁쯤에 마중 나가면 되고…. 낮잠이나 자볼까.’

「어드바이스 : 집을 청소하십시오.」

“아직 시간은 많으니 낮잠 한 번만 자고….”

「어드바이스 : 집을 청소하십시오.」

“…알았다. 알았어.”

나는 어드바이스가 원하는 대로 청소를 했다. 보상은 딱히 없었다.

아카데미에 오고 난 후의 일상은 대부분 이랬다. 성에 있을 때는 가끔씩 암살 임무를 받았는데, 지금은 유리아의 간단한 심부름 밖에 하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일이 묘해지는 걸 느꼈다.

“유진 씨. 공녀님이 메리 양에게 파레인 왕자님을 빼앗겼다던데… 사실입니까? 무례한 질문이란 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 아가씨가 답변을 꼭 들어오라고 재촉하셔서….”

“헛소문입니다. 약혼이 파혼된 적은 없습니다. 빼앗기다니 뭘 빼앗겼다는 겁니까.”

“아. 헛소문이었군요.”

내게 소문에 관해 묻는 사용인들이 많았다. 나는 모두 헛소문이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러나 소문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면 심해졌지, 진정되지는 않았다.

파레인 왕자는 소문을 바로 잡기는커녕 방관했다. 그의 태도가 소문을 더욱 가속시켰다.

그리고 며칠이 더 지났을 때. 이제는 유리아와 메리가 사랑싸움으로 인해 철천지원수가 되었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었다.

메리가 관련되자 파레인 왕자가 지금까지의 태도를 집어 던지고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문제는 그의 행동은 소문을 없애기는커녕 신뢰성만 넣어주고 있다.

“공녀님. 누군가가 악의를 가지고 소문을 내고 있는 게 확실합니다. 이대로 가만히 계실 겁니까?”

“소문은 소문일 뿐입니다.”

“소문을 잘 이용하면 귀족도 끌어내릴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혹시 소문을 이용해 파혼을 노리고 계십니까?”

“요근래 파레인 왕자에게 집중했습니다. 차라리 파혼하는 편이 가문에 더 도움이 될 것 같더군요.”

“공작 각하께서 분노하시지 않겠습니까?”

“어머니의 자리는 곧 제 자리가 됩니다.”

여공작은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번 챕터는 아마도 이번 소문과 관련된 거겠지. 소문을 정리하거나, 악질적으로 소문을 내는 범인을 찾아내면 다음 챕터로 넘어갈 수 있을 거야.’

유리아가 협조해주지 않더라도 혼자서라도 소문을 조사해봐야겠다.

???

“유리아 공녀님과 코모토프스 영애가 머리채를 잡고 싸웠는데 중간에서 파레인 왕자님이 말렸다죠?”

“어머….”

시녀들이 소문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나를 보더니 잠깐 몸을 긴장시켰다.

“유, 유진 씨….”

“그 소문에 대해 자세히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저, 저도 잘 몰라요. 들었던 거라….”

“누구에게 들으셨습니까?”

“그게…. 주방에서 일하는 마틸다 씨에게서….”

숲속 바닥에 찍힌 짐승 발자국을 뒤쫓듯이 차근차근 행동했다. 너무 조급하게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일이 안 될 것 같으면 루프 하면 되니까.

죽일 수는 없었다.

아카데미 내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면 일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지니까.

‘짐작 가는 용의자는 총 11명. 증거는 없다. 하지만 상황이 그들이 범인이라고 말하고 있어. 사용인은 3명이고 8명은 귀족. 범인을 알아도 대처하기가 영 쉽지 않군.’

동기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질투다.

유리아가 너무 잘났다 보니 질투심으로 소문을 부풀리는 것이다.

나는 여유 시간이 될 때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그녀들이 미처 숨기지 못한 증거들을 수집했다.

그 과정에서 메리와 만났다.

아카데미의 뒤쪽, 작은 숲길이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뒷정원이라 불리는 곳. 이곳에서 메리와 우연히 마주했다.

“유리아 공녀님의 집사인 유진 씨네요? 여긴 어쩐 일이세요?”

“절 알고 계셨습니까?”

“유진 씨는 유명해요. 가장 뛰어난 집사. 필타니아 가문의 집사가 아니었다면 귀족도 될 수 있을 정도라고 소문이 자자하던걸요. 아, 소문이라고 하니 유리아 공녀님과의 소문이…. 하아…. 그 소문이 왜 났는지 모르겠지만 유리아 공녀님이 많이 속상해하고 계시죠? 저 때문에 난 소문인 것 같으니 제가 직접 사과하러 가도 될까요?”

직접 본 메리는 말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말에 집중할 수 없었다. 내 시선과 정신은 그녀가 품에 안고 있는 검은 고양이에게 향해 있었다.

느낌이 심상치 않았다.

“메리 님. 그 고양이는….”

“귀엽죠? 항상 이 근처에 있더라고요. 데려가서 키우고 싶은데… 주인이 있을지도 몰라서 이렇게 시간이 날 때마다 만나러 오고 있어요.”

「어드바이스 : 고양이는 몬스터입니다. 죽이십시오.」

“메리 님! 고양이를 내려놓고 이쪽으로 오십시오! 그건 고양이의 탈을 쓴 몬스터입니다!”

“네?”

메리의 두 눈이 커졌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뜨며 품에 안은 고양이를 쳐다봤다.

야옹.

검은 고양이가 메리의 품 안에서 위로 뛰었다. 고양이의 몸이 부풀며 커진다. 신기하게도 검은 고양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고 허공에 앉아 있었다.

거대해진 고양이가 커다란 팔을 들어 올린다. 메리를 후려치려는 사전 동작이다.

「어드바이스 : 메리를 구하십시오.」

바닥을 박차고 메리에게 뛰었다.

“꺄아아악?!”

그녀의 어깨를 붙잡아 옆으로 엎어져 고양이의 공격을 회피했다.

“괜히 도망치러 하지 말고 가만히 계십시오. 그편이 더 지키기 편합니다.”

검은 고양이의 쭉 찢어진 동공이 이쪽으로 향했다.

파지직.

손에 뇌전을 일으킨 내가 고양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검은 고양이가 길게 울었다.

순간 균형 감각이 사라지고 시야가 흔들렸다. 고양이가 나를 향해 발톱을 세운 앞발을 휘두른다.

“유진 씨!!”

나는 하체에 힘을 주고 고양이의 공격을 양손으로 받아냈다. 발톱이 팔에 파고들어 피가 났다. 발차기로 고양이의 코끝을 후려쳤다.

냐앙!

놈이 당황하며 고개를 휘저었다. 난 그 작은 틈을 놓치지 않았다.

“전기 찜질 시간이다.”

파지지지지지지지직!

최대 출력으로 뇌전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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