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3화 〉 563. 아카데미의 구원자
563. 아카데미의 구원자
한 손에 창을 쥔 성하리가 구목교 한국 지부에 돌입했다.
9개의 눈이 그려진 기괴한 가면을 쓰고 검은 옷을 뒤집어쓴 구목교의 광신도들이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성하리는 가늘게 뜬 눈으로 그들을 살폈다. 각성자와 비각성자가 섞여 있다. 각성자는 죽이더라도 정당방위지만, 비각성자를 죽이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었다. 비각성자를 각성자라고 우기는 것도 불가능하다. 히어로 협회는 시체를 통해 각성자와 비각성자를 구분할 수 있으니까.
마음 같아선 다 쓸어버리고 싶어도 참았다. 유진이를 두고 감옥에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유진이는 어딨어?”
“아홉 번째 사도님을 데려가기 위해 찾아온 건가? 어림도 없다! 아홉 번째 사도님은 구목교에 계셔야 한다! 교인들이여! 저 여자를 죽여라!”
파직.
성하리의 창에서 번개가 튀었다.
직후, 그녀의 발이 지면을 박찼다. 구목교의 교인들은 눈으로도 성하리의 움직임을 뒤쫓을 수 없었다.
“사라졌… 커윽?!”
성하리는 창대와 주먹으로 그들을 타격해 기절시켰다. 죽이지 않는다. 성유진을 구하기 위해선 정보가 있어야 하고, 정보의 양과 신뢰성을 검증하기 위해서 최대한 많이 살려둘 필요가 있다.
“보이지가 않…. 어억!”
“괴, 괴물 같은!”
성한구나 다른 진령성가의 정령사들이 나설 필요도 없었다. 그들은 성하리를 막기를 커녕 그녀의 움직임조차 쫓지 못했다.
팔짱을 끼며 성하리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던 성한구는 남몰래 식은땀을 흘렸다.
‘정령왕의 주박을 받아 약해진 상태가 틀림없을 텐데…. 그래도 터무니없이 강하구나.’
성한구는 정령사들을 시켜 상황을 정리하도록 했다.
“너희들이 알고 있는 것들 전부를 말해야 할 거다.”
성한구가 제압당한 구목교의 교인들을 심문할 때, 성하리는 가만히 있지 못하고 구목교 곳곳을 돌아다녔다. 어쩌면 성유진이 구석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놓지 못한 것이다. 그런 그녀의 뒤를 정령사 몇몇이 뒤따랐다.
성하리는 어느 방구석에 놓여 있는 나무 우리를 발견하고 빠르게 다가갔다. 나무 우리 속에 익숙한 정령이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모카!”
우지끈.
성하리는 나무 우리를 한 손으로 잡아 뜯듯이 박살 내고, 모카의 몸을 한 손으로 덥석 잡았다.
모카는 벌벌 떨었다. 성하리가 자신을 죽이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지만, 정령의 본능이 성하리를 두려워했다.
“모카! 넌 유진이랑 계약했으니, 지금 유진이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지? 유진이는 어디 있어?!”
“꾸우… 꾸….”
모카가 고개를 가로질렸다. 어디에 있는지 자신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계약한 정령조차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면 성유진은 현재 특수한 장소에 갇혀 있을 것이다.
성하리는 실망하지 않았다. 예측했던 일이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모카. 계약은 끊어지지 않았지? 유진이는. 유진이는 무사한 거지?”
“꾸.”
모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하리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성하리가 가장 걱정하고 있던 상황은 납치당한 성유진이 죽는 경우였다. 다행히 최악의 경우는 피했다.
‘일단 유진이는 여기에 없는게 확실해. 그래도 조금 더 찾아보자. 혹시 모를 단서가 있을지도 몰라.’
성하리는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마주치는 구목교 교인이 있으면 곧바로 제압하고 물었다.
“유진이는 어딨어?”
“말할 수 없다.”
성하리는 구목교의 교인들과 깊게 대화하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이들과는 말이 통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저들의 신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광신도들이다. 고문을 하더라도 제대로 말하지 않겠지. 유진이를 찾으려면 다른 방법을 써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성하리는 제단에 도착했다.
제단 앞에 가만히 무릎 꿇고 기도를 진행하고 있던 제사장이 몸을 일으켰다.
“불청객들이군요. 이곳은 아홉 개의 눈을 가진 신을 모시기 위한 곳. 부디 이곳에서만큼은 정숙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네가 여기의 주인이야? 긴말하지 않겠어. 유진이는 어딨어?”
“이곳의 주인은 아홉 개의 눈을 가진 신입니다. 그분이야말로 구목교의 진정한 주인이시고, 우리는 단지 봉사자에 불과합니다.”
제사장의 가면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드러난 얼굴은 평범했다. 다만, 이마에 있는 세 번째 눈을 제외하고는.
성하리는 창대를 되잡고 앞으로 나서며 뒤에 있는 정령사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물러서.”
“저희도 돕겠습니다. 성하리 님.”
“나 혼자서도 충분해. 오히려 너희들은 방해가 될 뿐이지.”
차갑게 말한 그녀의 몸에서 뇌전이 꿈틀거렸다. 정령사들은 안타까운 눈으로 성하리를 쳐다봤다.
“당신이 아홉 번째 사도 님의 모친이란 건 알고 있습니다.”
“그럼 유진이가 어딨는지 말해. 아이는 부모와 함께 해야 해.”
“아홉 번째 사도님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신 점은 감사합니다. 허나 아홉 번째 사도님을 이끄시는 건 아홉 개의 눈을 가진 신의 뜻입니다. 당신의 존재는 그분에게 걸림돌밖에 되지 않습니다. 비록 아홉 번째 사도님의 미움을 받더라도, 제가 여기서 당신을 없애겠습니다.”
“날 죽이겠다는 말을 길게도 하네.”
성하리는 제사장을 향해 창을 내던졌다. 콰르르릉! 창은 천둥소리와 함께 제사장의 가슴을 노렸다.
제사장의 세 번째 눈이 흔들린다. 창의 방향이 바뀌어 성하리를 향해 그 창끝이 향한다.
성하리는 오른손으로 간단히 날아오는 창을 붙잡았다.
“그 눈. 마음에 안 드네.”
“흐흐. 역시 이해하지 못하시는군요. 이 눈은 아홉 개의 눈을 가진 신께서 제게 내려주신 눈. 비록 사도님들의 눈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이 세상 최고의 보물 중 하나입니다.”
콰르르르릉!
성하리의 오른쪽에서 뇌전을 머금은 창이 날아온다. 성하리가 손에 쥐고 있는 창과 똑같은 창.
“…….”
성하리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창을 휘둘러 날아오는 창을 쳐냈다. 창이 허공을 날아가다가 사라진다.
콰르르릉.
이번엔 뒤와 정면. 두 방향에서 날아온다. 성하리가 회전하며 창을 쳐냈다.
“당신의 창을 재현해봤습니다만, 의미도 없고 힘들군요.”
제사장의 세 번째 눈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설마 고작 4번 사용한 것으로 벌써부터 한계라니…. 당신은 대체 얼마나 강한 겁니까?”
“내가 강한 게 아니라 네가 약한 거야.”
“제사장이 되고 나서 그런 말을 든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군요. 지금의 저로선 당신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그분께 부탁드려야겠습니다.”
헛수작을 부리려고 한다. 직감한 성하리가 움직였다. 투창이 안 통한다면 직접 움직이면 된다. 1초 만에 거리를 좁힌 그녀가 창을 제사장을 향해 창을 내질렀다. 허나 알 수 없는 힘이 창과 함께 그녀를 튕겨냈다.
“아홉 개의 눈을 가진 신이시여. 저의 모든 것을 바치겠나니. 제게 힘을 내려 주소서.”
제사장의 몸이 울긋불긋 거리더니 커지기 시작했다. 걸치고 있던 옷이 찢겨져 나가고, 피부가 파랗게 변한다. 그의 몸 곳곳에 수십 개의 눈동자가 나타났다.
명백하게 인간이 아니라 괴물이 된 것이다.
“이런 미친! 사람이 몬스터로 변하다니…!”
“성하리 님! 기록은 남겼습니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그녀의 뒤에서 정령사들이 외쳤다. 그들이 말하지 않더라도 성하리는 마음대로 할 생각이었다.
파지직.
성하리가 내달리며 하늘로 뛰어올랐다. 반투명한 파란색 역장이 공중에 나타났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역장을 발로 차며 공중에서 자유로이 기동했다.
거인이 된 제사장이 몸에서 촉수가 뻗어 나와 성하리를 노렸으나, 성하리에 닿지 못했다.
성하리가 창을 휘둘러 제사장의 몸을 베어냈다. 허나 내구도가 상승한 제사장의 몸은 단번에 베이지 않았다.
‘한 번으로 벨 수 없다면 여러 번 베면 돼.’
제사장의 눈은 성하리의 움직임을 쫓았다. 그러나 눈과 다르게 몸은 너무 느렸다. 성하리의 움직임을 볼 수 있음에도 잡을 수 없고 막을 수 없었다. 결국 제사장은 바닥에 쓰러졌다. 죽은 시체가 된 제사장의 몸은 원래 인간의 몸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성하리 님. 이 시체는 저희가 수습하겠습니다. 분명 히어로 협회 쪽에서 이걸 원할 테죠. 가문에 도움이 될 겁니다.”
“그래.”
정령사들이 시체를 들고 떠났다. 성하리에게 제사장의 시체 따윈 아무래도 좋았다.
그녀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곳이라면 성유진을 찾을 흔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벽이나 바닥에 이상한 문양이 있는 걸 제외하면 특별한 흔적은 없었다. 그녀는 벽에 기대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성유진의 걱정만 해온 그녀는 상상 이상의 정신적 피로를 느끼고 잠시 눈을 감았다.
“꾸욱. 꾹!”
곁에 있던 모카의 소리에 번쩍 눈을 뜬 성하리는 의식을 위해 만들어진 듯한 제단을 노려봤다.
제단 위에 마법진이 그려진다.
전이 마법진. 누군가가 마법을 통해 여기로 오고 있다.
‘적인가?’
이윽고 일련의 무리가 제단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가면을 쓰고 있는 2명과 1명의 어린아이.
창을 쥐고 적의를 보이던 그녀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진다. 그녀는 모카보다 빠르게 제단을 향해 뛰어갔다.
“유진아!”
달리던 그녀의 몸이 멈칫했다. 성유진의 황금색 눈동자를 본 것이다. 성하리가 알고 있던 아들의 눈동자가 아니었다. 자신을 보는 눈은 무미건조하다. 반가운 기색은 전혀 없다.
“……유진아?”
성유진은 검은색의 사제복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가슴팍에는 동그란 붉은 보석이 박혀 있다.
“저 여자가 감히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군.”
눈빛만큼이나 무미건조한 목소리였다.
“치워라.”
“네. 아홉 번째 사도님.”
성유진의 양옆에 있던 가면인들이 성하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
나는 구목교의 교주인 카산드라에게 부탁해 적당히 강한 교인 2명과 함께 나타났다.
카산드라는 내가 짠 시나리오에 협력해주기로 했다.
‘내가 돌아가서 아무 일 없었다고 말하면 누가 내 말을 쉽게 믿어줄까. 한국 지부에 있는 구목교 교인들이 이상한 소리를 내뱉어서 날 곤란하게 만들지도 모르지.’
그리고 이 계기를 살려 성하리가 날 좀 더 소중하게 여기도록 만들 생각이다.
‘사람은 잃어 봐야 그게 소중한 것임을 깨닫는다고 하지. 만화에서도 자주 나오는 상황이잖아. 뭐, 성하리는 평소에도 날 소중하게 여기지만.’
사실 계획은 별거 없었다. 나는 구목교에 세뇌당한 척할 생각이었다. 가슴팍에 매달아 놓은 구슬이 세뇌의 근원이고, 그게 파괴되면 세뇌가 풀린다. 라는 설정이다. 이 상황에서 중요한 건 내 연기였다. 그리고 나는 특성으로 연기를 가지고 있다. 연기는 자신 있었다.
나는 가면인 2명과 전투를 벌이는 성하리를 쳐다봤다. 성하리의 실력은 엄청났다. 그 속도는 내 두 눈으로 좇기 힘들 정도다.
‘그뿐만이 아니야. 창을 다루는 솜씨가 엄청나. 마치 창이 몸의 일부분 같군.’
성하리가 가면인들을 죽일 기회는 몇 번이나 있었다. 하지만 성하리는 가면인들을 죽이지 않았다.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내게 자신이 살인을 저지르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 것이다.
성하리는 가면인들을 최대한 제압하려고 했다.
“한심한 것들. 언제까지 날 실망 시킬 생각이냐? 빨리 해치워라.”
한 명은 이미 날아가 기절한 상태였고, 다른 한 명은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사도님.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곧 해치우… 걱?!”
성하리에게 목덜미가 붙잡힌 가면인이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가면인이 들고 있던 칼이 빙글빙글 돌더니 나를 향해 떨어진다.
“유진아?! 피해!!”
성하리가 이쪽으로 오며 칼을 잡아채려 한다. 내가 그보다 빠르게 칼을 낚아채며 성하리를 향해 휘둘렀다.
성하리는 창을 들어 내 칼을 막아냈다. 제법 진심으로 휘두른 공격인데 너무 손쉽게 막아내서 좀 충격이었다.
“유진아! 나야! 엄마야! 알아 보겠니?! 응?!”
“네가 나의 어미라고?”
“그래. 유진아! 그놈들이 네게 무슨 짓을 한 모양인데, 괜찮아. 돌아올 수 있을 거야. 엄마가 도와줄게.”
“……내게 부모는 없다. 나를 이 세상에 만들어주신 건 아홉 개의 눈을 가진 신이시다.”
마나를 일으켜 신체를 강화하고 칼을 휘둘렀다. 허나 이번에도 여전히 손쉽게 창에 막혔다.
“세뇌구나. 구목교 그놈들이 널 세뇌한 거야!”
“난 세뇌 당한 적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