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570 - 570. 아카데미의 구원자 (350/2,000)

〈 570화 〉 570. 아카데미의 구원자

570. 아카데미의 구원자

“음. TV에서 본 것 같은데… 모델?”

“네. 저들 중 일부는 세계 각국에 모델로서 활동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모두 하르텅그 님의 은혜를 받았지요.”

은혜를 입었다.

다시 말해 저들 모두가 하르텅그와 계약했다는 말이다.

나는 내가 알아본 모델을 향해 걸어갔다. 인기척을 느낀 모델이 눈을 뜨고 나를 쳐다봤다.

“무슨 일이죠?”

“유명인이 만나 반갑더군. 실제로 보니 더 아름다워 보이는군.”

“제 몸을 원하시는군요. 방 번호를 알려주신다면 1시간 뒤에 찾아가도록 하죠.”

“여기서는 안 되나?”

“상관없어요.”

그녀가 망설임 없이 옷을 벗었다. 그러나 나는 흥미가 팍 식었다. 가슴은 성형한 티가 났고, 보지에는 피어싱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몸을 막 굴린 느낌이 확 났다. 차라리 이 여자보다 라미아를 품에 안는 편이 더 즐거울 것이다.

“흥이 식었다.”

“제가 걸레처럼 보이나 보죠?”

“걸레가 아닌가?”

“맞아요. 오늘만 해도 섹스를 3번이나 했죠.”

“혹시 방송국의 높으신 분들에게 다리를 벌려주고 다니나?”

“아뇨. 더 높으신 분들에게 다리를 벌려주고 다니죠.”

나는 그녀에게서 물러났다. 그녀는 수영복을 입지도 않은 채로 다시 두 눈을 감았다.

다른 곳으로 갔다.

수영장 아래층이었다.

그곳은 마약 소굴이었다. 뿌연 연기가 실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마약이었다.

남자와 여자들이 약에 취해 알몸으로 바닥을 기어 다녔다. 그들은 서로가 만나면 상대가 누구든지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섞었다. 그게 설령 여자끼리든, 남자끼리든 가리지 않았다.

“여긴 더 엉망이군.”

“취향이 아니시면 다른 곳으로 보내겠습니다.”

“약을 하는 취미는 없어.”

절대 정신을 가지고 있는 나는 술에 취하고, 약에 취해도 육체적으로 흥분할지언정, 정신 만큼은 멀쩡하다.

라미아는 우리를 다른 곳으로 안내했다.

식당에서는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요리사의 음식을 맛봤고, 전 세계를 들썩이게 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영향력을 가진 가수의 콘서트도 봤다.

재밌는 건 카지노였다.

도박도 여러 가지로 재밌었지만, 내 흥미를 끄는 건 카지노에서 일하는 바니걸들이었다. 섹시한 복장의 바니걸을 희롱하면서 하는 룰렛은 재밌었다.

“21.”

나는 대충 되는 대로 지껄이며 칩을 배팅했다.

“앙, 아응….”

내 손은 옆에 끼고 앉은 검은 머리 바니걸을 희롱하느라 바빴다. 가슴을 만지고 보지 안에 손가락을 넣고 있다.

룰렛이 돌아간다. 나는 룰렛에 큰 관심을 주지 않았다.

바니걸의 레오타드 아랫부분을 찢어내고 보지를 보였다.

“앙. 손님. 여기선…!”

“시끄럽고 허리 낮춰.”

바니걸은 내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나는 자지를 꺼내 바니걸의 보지에 자지를 삽입했다. 조금 덜 젖어서 뻑뻑하지만, 점점 보지가 젖어가고 있다.

“룰렛이 멈췄습니다. 21번에 떨어졌군요. 축하드립니다.”

배당률은 35배.

1만 달러짜리 칩을 걸었으니 한 번에 35만 달러를 벌었다. 1만 달러가 배당금과 합쳐 36만 달러가 된 것이다. 한화로 따지면 천만 원 넘는 돈으로 4억 넘게 벌어들인 것이다. 어마어마하게 벌어들였지만 별 감흥이 없었다.

“다음은 10만 달러로 9번.”

“이런. 0번에 떨어졌습니다.”

“아쉽군.”

룰렛보다 바니걸의 보지가 더 흥미로웠다. 쫄깃쫄깃한 보지다.

“앙! 아응! 하윽!”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 내 몸이 너무 어려 보이는 것도 한몫했지만 대놓고 바니걸을 범하고 있는 것도 놀라운 모양이다. 그리고 내 운에 감탄하는 자들도 있었다.

나는 계속 숫자 하나에 배팅했고, 대충 3번 중 한 번은 내가 이긴다.

“이번에도 10만 달러를 걸지. 17번.”

“……17번에 떨어졌습니다. 축하합니다. 손님.”

“운이 좋군.”

나는 옛날부터 운이 좋을 때는 확실하게 운이 따라주는 편이었다.

‘이 세계의 경우 선(善) 카르마 때문에 운이 더 좋아졌지.’

나는 이날, 카지노에서 1만 달러로 약 300만 달러를 벌었다. 바니걸은 3명을 범했다.

???

“라미아. 가장 인기 있는 곳으로 안내해라.”

“예. 지하 쪽에 있습니다.”

라미아가 안내한 곳은 결투장이었다.

중심에 좁은 링이 있고, 링 위에서 2명의 남자가 무기를 들고 싸우고 있다.

짜고 치는 경기가 아니었다. 링 위의 남자들은 서로를 죽이기 위해 전력을 다해 무기를 휘두르고 있다. 능력을 사용하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 그들의 살기가 구경꾼들을 모두 흥분시키고 있다.

‘콜로세움 같군.’

구경꾼들 대부분이 가면을 쓴 자들이다. 대화를 엿들어 보면 누가 이길지 맞히는 도박까지 벌이는 모양이다.

나는 눈을 빛내며 경기에 집중했다.

생각보다 경기 수준이 높다. 현실로 따지면 대충 C등급 헌터들의 전투라 할 수 있다.

‘두 놈 모두 전문적으로 전투를 배웠군.’

재미는 둘째치고 어느 정도 내게 도움이 된다.

한참 결투에 집중하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가 내게 다가왔다. 손목에는 초대된 손님을 뜻하는 팔찌가 있다.

그는 화려한 붉은 정장을 입은 금발의 미남자였다. 약간 처진 눈이다. 푸른색 눈동자는 그의 성격을 말하듯이 오만하다.

“만나서 반가워.”

그가 씨익 웃으며 내게 인사했다. 내 눈은 차가워졌다.

“누구지?”

“에릭 보가트. 그쪽의 이름은?”

에릭 보가트. 미국의 보가트 가문의 후계자다. 원작에서 악역으로 스쳐 지나가듯이 나온다. 입펙트 있는 악역은 아니고 일회용의 악역이다. 그마저도 특정한 루트에 들어가야만 맞닥뜨린다. 조연도 못 되는 엑스트라 악역.

“에드윈이다.”

“오. 내 아버지와 이름이 똑같군.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나!”

에릭이 킥킥 웃었다. 내가 일부러 그의 아버지 이름을 댄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무슨 볼일이지?”

“사실 너 같은 꼬마에게 별 볼 일 없어. 내가 관심 있는 건… 네 옆에 있는 보호자 쪽이야.”

그가 유리아를 쳐다본다. 유리아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가면을 쓰고 있지만, 분위기만으로 알겠다고. 강하고 아름다운 여자라고. 그 가면 아래에 있는 얼굴을 보고 싶어. 가능하다면 내 침실에서.”

“헛소리가 심하군. 여기서 문제 일으킬 생각은 없으니 이번 한 번은 봐주지. 꺼져라.”

“크크. 꼬마가 무섭군. 무서워.”

그는 내 옆자리에 앉았다.

“메이드뿐만이 아니라 네게도 흥미가 생기는군. 설마 너 같은 어린 애를 여기서 볼 수 있을 줄이야. 정체가 뭔지 궁금해졌어.”

“미숙한 놈이군. 내가 정말 어린 아이로 보이나?”

“난 감이 좋아. 넌 어린아이고, 네 옆에 있는 메이드는 끝내주는 여자지. 가면을 쓰고 있어도 딱 보면 느낄 수 있다고.”

그는 이어서 유리아를 보며 눈을 찡긋거렸다.

“이름 모를 레이디. 이런 꼬마를 내버려 두고 어른인 우리끼리 노는 게 어때? 널 위한 끝내주는 선물도 있어.”

“…….”

유리아는 아예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라미아.”

“네.”

“이놈을 쫓아낼 수 없나?”

“죄송합니다. 제 권한으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럼 내가 이놈을 죽여도 되나?”

“손님 간의 분쟁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쫓겨나실 수도 있으시니 자재해주십시오.”

“오오. 살벌하군.”

에릭이 끌끌 웃었다.

“저쪽이 시비를 거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지금 바로 관리자를 부르겠습니다.”

“미안. 미안. 이렇게 사과할 테니 관리자를 부르는 건 그만둬주지 않겠어? 이미 경고를 받아서 말이야.”

에릭이 껄렁껄렁한 태도로 사과했다.

“말로만 사과해선 안 되겠지. 뭔가를 주기엔 지금 내가 가진 건 아무것도 없고…. 정보를 줄게. 이 파티의 주최자인 하르텅그의 정보를. 너도 궁금하지 않아?”

“하르텅그에 대해선 나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그래도 새로운 정보가 있을지 모르니 궁금하군. 사과를 받아들이지. 네가 알고 있는 하르텅그의 정보를 말해봐라.”

“에드윈. …아, 아버지의 이름으로 널 부르니 이상한 기분이야. 다른 이름은 없어?”

“내 이름은 에드윈이다.”

“알았어. 에드윈. 하르텅그가 이 파티를 연 목적을 알고 있어?”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파티의 이유는 생각 이상으로 단순하고 시시했다.

“자랑하기 위해서지.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자신이 가진 것이 얼마나 많은지.”

“오오. 여기에 널린 어중이떠중이는 아닌가 봐?”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봤다. 기괴한 것들이 장식되어 있더군. 물건. 그리고 사람.”

“그렇지. 하르텅그의 진짜 재산은 사람이야. 하르텅그가 마음만 가지면 세계 전체가 요동 칠거야. 그런데 이건 알려나? 하르텅그의 진짜 정체는….”

“악마.”

“어?”

그가 당황했다. 놀라서 두 눈을 뜨고 나를 쳐다본다.

“그냥 해본 말은 아닌 것 같고… 진짜 하르텅그의 정체를 알고 있네? 와, 이거 거물이었잖아? 하르텅그의 정체를 아는 이는 진짜 정체가 작은데. 대체 어디 출신이야? 사막 쪽? 사막에 너 같은 꼬마가 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가진 정보는 그게 전부인가? 시시하군. 꺼져라.”

“자존심 팍 상하는데? 어쩔 수 없지. 진짜 끝내주는 정보를 말해줄게. 이 배에 하르텅그가 가장 아끼는 보물이 있다는 말이 있어.”

“……확실한가?”

“나도 숙부를 통해 들은 거라 확실하진 않아. 그리고 하르텅그가 가장 아끼는 보물이 뭔지 짐작도 가지 않고. 분위기를 보니 넌 그 보물이 뭔지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좋은 정보를 들었다. 꺼져라.”

“까칠한 꼬마구만.”

에릭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그냥 물러나지 않았다. 유리아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 손을 내밀었다.

“레이디. 이 꼬마는 내버려 두고 저와 함께 놀지 않으시겠습니까? 즐겁게 만들어드리겠습니다.”

“당신이 꺼져주시면 즐거울 것 같습니다.”

“하, 하하…. 그러시다면 꺼져줘야지요. 허나 신사적으로 물러나는 건 이번뿐이야. 여기서 소란 피우는 건 내게도 부담스러운 일이니. 하지만 다음에 만났을 때는….”

그는 말끝을 흐리고는 몸을 뒤로 돌려 성큼성큼 물러났다.

“기회가 되면 저것도 없애야겠군.”

“명령하신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처리하겠습니다.”

“지금 네 상태로 할 수 있겠어?”

저래 보여도 에릭은 미국의 보가트 가문의 후계자다. 결코 만만히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모르긴 몰라도 현실의 나보다 더 강할 것이다.

“정면으로 싸우는 것과 암살은 다른 일입니다. 준비물은 충분합니다.”

“아니. 됐어. 저놈보다 내일 저녁에 있을 하르텅그가 더 중요해.”

하르텅그에 비하면 에릭은 잡몹이었다. 지금은 하르텅그에게 집중해야 할 때다.

‘그보다 하르텅그의 보물이 이곳에 있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아마도 내일.

하르텅그는 관객들을 모아놓고 자신의 보물을 자랑할 것이다. 그런 놈이니까.

‘지금 시기를 생각하면… 하르텅그의 최대 보물은… 그건가? 화심(火心). 크크. 이거 운이 좋은데?’

눈동자를 굴러 라미아를 쳐다봤다. 우리의 대화를 들었음에도 어떠한 표정 변화도 없다. 내가 하르텅그를 죽인다고 직접적으로 말하더라도 위에 보고하지 않을 것이다. 그럴 의무도 없거니와, 라미아의 입장에서 하르텅그가 죽으면 그에게서 벗어날 수 있으니 더 이득이다.

“라미아. 다른 곳도 둘러보고 싶다. 안내해라.”

“네. 손님.”

???

단상 위에 한 중년 남자가 올라갔다.

고급 턱시도를 입은 뚱뚱한 남자였다. 키는 짜리몽땅한 데 배는 만삭의 임산부보다 컸다. 팔다리도 짧아서 하찮게 보였다. 머리카락은 짧았고, 얼굴에는 짙은 주름이 있었으며 검은 두 눈은 형형했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허나 그 누구도 우습게 보지 못했다. 사람들은 하르텅그에서 뿜어지는 위압감에 오히려 입을 다물었다.

“신사, 숙녀 여러분. 나의 파티에 와주셔서 감사한다.”

장난스러운 말투였다. 그리고 그 목소리에는 오만함이 담겨 있었다.

“오늘 여러분을 부른 것은 나의 위대한 업적을 여러분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여러분은 그저 내 업적을 보고 경악하고, 질시하고, 찬양하면 된다.”

하르텅그가 양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양손 사이에 지독한 녹색 불꽃이 일렁이며 나타났다.

이윽고 그 불꽃은 새빨갛게 변했다. 그 불꽃의 열기는 수십 미터 떨어져 있는 내게까지 느껴졌다.

“두 눈으로 보고 영혼으로 감탄하거라. 2만의 인간의 영혼과 66마리의 불의 정령을 갈아 만든 불꽃의 심장이다.”

하르텅그가 희열에 찬 얼굴로 웃었다.

푸욱.

어디선가 날아온 검날이 하르텅그의 목에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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