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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72 - 572. 아카데미의 구원자 (352/2,000)

〈 572화 〉 572. 아카데미의 구원자

572. 아카데미의 구원자

내 몸은 시뻘겋게 불타고 있었다. 그러나 뜨겁지는 않았다. 현재 나는 정령강령으로 인해 정령이 된 것이다. 얼핏 보면 화염이 내 몸을 불태우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내 몸을 보호하고 있다. 이 화염은 나의 힘이다.

-이, 이게 뭐냐?!

당황한 용암 거북이의 의지가 전해져 온다. 무시했다.

천재의 시간은 끝났지만 정령강령의 주도권은 내가 쥐고 있다. 오래 유지할 수는 없으나, 10분 정도는 충분히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뭐, 그것도 화심의 에너지 덕분에 가능한 일이지만.’

정령강령을 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자연히 알게 되었다.

나는 우선 몸의 크기를 늘렸다. 광대 가면을 쓴 불타는 거인이 된 것이다.

“……불쾌하군.”

하르텅그과 짜증스레 중얼거렸다.

나는 일부러 몸을 하르텅그 보다 머리 하나 더 높게 크기를 키웠다. 이유는 단순했다. 하르텅그를 내려다보기 위해서.

“딱 좋은 전망이다. 날 올려다보는 느낌은 어떻지?”

“건방지군. 정령이 되었다고 해서 네 힘이 나와 맞먹는 건 아니다. 죽어라. 널 죽이고, 그 거북이에게서 불의 심장을 뽑아내 주마!”

그가 녹색 지옥불이 이글거리는 주먹으로 내 명치를 후려쳤다.

“컥!”

유람선 벽을 뚫고 바깥으로 날아갔다. 1Km 날아간 뒤에서야 겨우 멈출 수 있었다. 나는 바다 위에 섰다. 내가 가진 수상보 스킬이다.

명치가 화끈거린다. 다행히도 지옥불이 몸에 옮겨붙지는 않았다. 아니, 못했다.

‘…저 새끼. 생각보다 더 강하잖아.’

아니다.

내가 약하다.

정령강령을 했다고 해도 그 베이스가 되는 내 몸은 처참한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 이래서는 얼마 못 가 하르텅그 놈에게 죽는다.

“인간과 정령의 합체라. 갑자기 흥미가 생기는군. 가지고 놀다 죽여주마.”

하르텅그가 유람선 위에 오만하게 섰다.

나는 잠깐 몸집을 원래 크기로 돌렸다. 스마트폰을 꺼내 인벤토리에 넣어 두었던 정령옥 10개를 꺼낸다.

“도핑은 너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정령옥 10개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처음 느껴보는 쾌락과 동시에 힘이 차오른다.

정령이 정령옥을 먹으면 3가지 효과를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뛰어난 쾌락. 두 번째는 영구적인 능력 상승. 세 번째는 일시적인 폭발적 능력 상승. 내가 노리는 것은 당연히 3번째다.

-이, 이건 뭐냐…! 이렇게 좋은 것이 이 세상에 있었다니! 이게 무엇인지 말해라!

용암 거북이가 호들갑을 떨었다.

‘시끄럽다. 닥치고 협조해라. 너도 저놈한테 죽고 싶지 않을 거 아냐.’

-……이번에만 협력해주지.

나는 정령옥에 의한 폭발적인 힘을 사방으로 내뿜으며 다시 몸의 크기를 늘려 거인이 되었다.

해수면에 시뻘건 불길이 치솟는다. 그 불길들은 내 손아귀 안으로 모여들어 검의 형태를 취했다.

“바다 위에서 싸우는 게 낫겠군.”

하르텅그가 유람선을 박차고 허공을 부유했다. 유람선 안에 있는 재산을 신경 쓰는 모양이다. 나는 몸의 불꽃을 추진력 삼아 하르텅그를 향해 뛰어올랐다. 놈의 얼굴에 불의 검을 내리그었다.

하르텅그는 피하지도 않았다.

“불은 미지근하고 밀도까지 낮군. 이딴 한심한 공격으로 날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녹색의 주먹이 날아온다. 공격 직후라 피할 수 없었다. 주먹은 아까처럼 명치에 적중했다. 그러나 아까처럼 밀려나는 일은 없었다.

“오?”

하르텅그가 감탄하며 다른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때, 하늘에서 작은 운석이 나타나 놈의 몸을 바다에 처박았다. 나는 몸에 붙어 있는 화염의 힘으로 하늘을 부유하며 지상을 내려다봤다.

-정령의 힘은 이렇게 쓰는 거다!

용암 거북이거 운석을 만들어내 공격한 것이다. 정령술이다.

그러나 하르텅그의 존재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바닷물이 끓고 있다.

용암 거북이가 힘을 사용했다. 하늘에 20개가 넘는 운석이 나타나 바다로 쾅쾅 떨어진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왜 쓸데없이 힘을 쓰는 거냐.’

-쓸데없다니.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마라. 이것이야야말로 정령의 전투법이다.

‘정령의 전투법 좋아하네. 저놈은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고 멀쩡하잖나.’

-놈이 상상이 상의 괴물인 것이다.

‘불의 밀도를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놈의 말을 믿는 거냐? 불의 밀도를 높여도 소용없을 것이다. 놈의 권능도 불이고, 나의 권능도 불이다. 순수한 불은 통하지 않는다.

할 말이 없었다. 용암 거북이의 말대로다. 놈의 말을 신뢰할 이유는 없었다.

하르텅그가 바다 위로 올라온다.

나는 몸의 크기를 30M 넘게 키우고서 발에 힘을 주며 아래로 떨어졌다. 이대로 하르텅그를 밟아 죽일 생각이었다.

콰아아앙!

물기둥이 솟구치고 바다가 요동쳤다.

내게 밟혀 바다 바닥에 쓰러진 하르텅그가 낮게 웃었다.

“아까보다 좀 낫군.”

하르텅그의 몸이 나와 비슷할 정도로 커졌다. 갑작스런 변화에 내가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는 틈을 놓치지 않고 하르텅그가 자세를 되잡고 공격해온다.

우리는 바닷속에서 바닷물을 증발시키며 육탄전을 벌였다. 불의 권능을 휘두르는 것보다 이게 더 효과적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앞섰다. 하지만 정령옥의 효과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줄어들었다. 결국 힘의 우위에 선 것은 하르텅그였다.

-크아아악! 내 몸이 부서지고 있다! 가망은 없다! 당장 이 상태를 풀어라!

용암 거북이가 발광을 해댔다. 그 반응은 이해한다. 내 몸은 엉망이었다. 좌반신은 이미 작살난 상태로 움직일 수 있는 건 오른팔 정도가 전부다.

‘이제 조금이다. 하르텅그의 몸도 여기저기 금이 갔다. 놈도 한계다.’

하르텅그의 몸은 금 간 유리컵처럼 아슬아슬해 보였다. 몸 전부를 휘감고 있던 지옥불도 희미해져서 두 눈의 안광만 녹색불로 이글거 릴뿐이다.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승리의 기회가 바로 눈앞에 있다.

-내 영체가 찢겨나간 게 보이지 않는 것이냐?! 이래서야 화심을 받은 의미가 없다! 오히려 내가 손해다! 회복하려면 몇백 년이 걸릴지 모르겠군!

마지막 남은 힘까지 짜내 오른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은 하르텅그의 얼굴을 때렸지만, 어떤 피해도 주지 못했다. 주먹에 실린 힘이 거의 없었던 탓이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악!

하르텅그의 왼손이 내 가슴을 관통했다.

용암 거북이의 비명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크하하하하하! 결국 내가 이겼다! 이런 기분은 정말 오랜만이다! 내게 즐거움을 주느라 수고했다. 성유진! 불의 심장은 천천히 뽑아가 주마.”

하르텅그가 내 가슴에서 손을 뽑고 어깨를 붙잡았다. 그가 말하는 불의 심장이란 물리적인 심장을 말하는 게 아니다. 용암 거북이의 존재감이 옅어지고, 내 몸이 재로 변해 사라진다.

[죽음 저항이 발동했습니다. 앞으로 15초간 죽지 않습니다.]

‘완전 회복.’

온몸이 눈깜짝 할 사이에 회복됐다. 당황하는 하르텅그의 머리에 주먹을 내다 꽂았다.

콰앙!

하르텅그의 머리 절반이 박살 나고, 그 거대한 몸이 바다 바닥에 쓰러진다.

“……내가 졌군.”

그게 끝이었다. 하르텅그의 몸이 먼지로 변해 사라졌다. 그 압도적인 존재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하르텅그는 목숨을 구걸하지도 않았고, 추하게 몸부림치지도 않았다. 원래 저런 놈이었으니 그러려니 하다.

-허억! 상처 입은 영체가 갑자기 회복됐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시끄럽다. 끝났으니 이제 내 몸에서 나가.”

정령강령을 해제했다.

마지막에 완전 회복을 사용하고 십몇 초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온몸이 쑤신다.

‘최상급 정령이라 엄청 빡세군. 모카 때랑은 전혀 다른 느낌이야.’

30초 이상 정령강령을 유지했더라면 그 반동으로 불구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스킬, 정령계약(B)의 랭크가 (A)로 상승합니다.』

『스킬, 정령강령(E)의 랭크가 (B)로 상승합니다.』

가지고 있는 스킬 두 개의 랭크가 한번 훌쩍 뛰었다. 이런 엄청난 경험을 했는데 랭크가 오르지 않으면 오히려 더 이상하다.

‘중요한 건 이것보다 카르마지.’

『카르마: 선(善)이 31 상승합니다.』

『카르마: 악(惡)이 20 상승하는 대신 선(善)이 20 차감됩니다.』

하르텅그를 죽이고 얻은 선 카르마 31.

그러나 악 카르마도 20 상승했다. 그 이유는 짐작 갔다. 아마도 나와 하르텅그의 싸움에 휘말린 수많은 바다 생물들 때문이겠지.

최종적으로 선 카르마 11이 올라, 선 카르마는 총 19다.

‘19란 숫자는 그럭저럭 마음에 드는군.’

???

용암 거북이의 도움으로 윗부분이 박살 난 유람선으로 돌아왔다.

용암 거북이는 기분이 좋아 보였는데, 화심을 얻고 내가 먹은 정령옥의 영향으로 더 높은 단계에 도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최상급 정령인건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최상급이란 더 이상 높게 설정할 수 없기에 사람이 붙인 단어다.

‘같은 최상급이라 하더라도 개체마다 차이가 상당히 크지.’

용암 거북이의 모습이 변했다.

사람.

그것도 여자의 모습이었다.

불꽃 같은 붉은 머리에 새하얀 피부를 가진 미녀였다. 눈동자도 붉고, 가슴도 폭유다. 엉덩이까지 순산형이다. 사타구니 사이에는 불꽃처럼 일렁이는 보지털이 있었다. 진짜 불 보지다.

‘젖꼭지도 있고, 배꼽도 있고, 보지도 있군.’

아주 마음에 드는 외형이다.

정작 본인은 정반대로 느끼는 모양이다.

“이런 제길. 인간 계집처럼 변했잖아.”

말투까지 변했다.

“왜 갑자기 그런 모습이 된 거지?”

“너 때문이야. 네 영향을 받아서 이런 모습이 된 거지. 네가 무의식적으로 바란 모습이 이런 거 아니야? 대체 어떻게 되먹은 인간이 몇 천 년을 산 나보다 더 정신이 뛰어날 수 있는 거지?”

“…….”

나 때문이란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원래 정령은 성별이 존재하지 않고, 인간과 비슷한 형상을 가진 정령은 굉장히 희귀했다.

“뭐, 좋아. 힘만큼은 전보다 강해진 건 사실이니까. 난 이만 간다.”

“잠깐. 어디 가냐. 나와 계약했으니 내 곁에 있어야지.”

“하…. 날 실체화 시킬 수도 없는 주제에? 적어도 지금보다 5배 정도는 더 강해지면 계약자로 인정해줄게.”

또 부정할 수 없었다.

지금 내 마나로는 최상급 정령인 그녀를 실체화시킬 수 없다. 아쉽지만 그녀를 놓아줄 수 밖에 없다.

‘계약은 해제된 게 아니니 나중에 다시 부를 수 있겠지.’

그녀는 미련없이 곧장 떠나려고 했다. 그녀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다급히 물었다.

“이름이 뭐지? 그것도 안 알려줄 생각인가?”

최상급 정령이라면 이름 정도는 당연히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받았든, 자신 스스로가 지었든.

“인페라. 그게 내 이름이야. 경고하는데 약해빠진 주제에 날 부르려고 하지 마.”

정령옥으로 유혹할까 하다가 관뒀다. 정령옥이 다 떨어지면 결국 인페라를 제어할 수 없게 되니까. 무엇보다 나는 실체화하지 않은 인페라를 만질 수도 없다. 내 옆에 있어도 그림의 떡이라는 것.

“나중에. 내가 널 감당할 수 있게 되면 바로 부를 거다. 잘 가라. 용암보지.”

“용암보지?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불쾌해.”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냥 웃었다. 인페라는 날 한 번 째려보더니 그대로 사라졌다. 순식간에 멀어져서 어디로 갔는지는 내 수준으로는 알기 힘들었다.

나는 바닥에 누워서 휴식을 취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리아가 나를 찾아왔다.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니야. 내가 하르텅그에 대해 잘못 파악했어. 원작 정보를 너무 믿었어.”

유리아는 유독 풀죽은 모습이었다. 나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유리아가 바로 한계 초월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 대충 짐작은 간다. 이 세계에 조금 더 나랑 같이 있고 싶었던 거겠지.

그리고 그녀가 한계 초월을 사용했다고 해도 하르텅그를 쉽게 죽일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하르텅그는 만만찮은 놈이 아니다.

“유리아 누나. 안아줘. 움직이기 힘들어.”

“네. 주인님.”

유리아가 나를 안아 들었다. 적당히 허리를 잡고 들어 올릴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연인 간의 포옹을 하듯이 나를 끌어안은 것이다. 허나 로맨틱함은 전혀 없다. 신장 차이가 커서 내 얼굴이 그녀의 풍만한 가슴 사이에 끼인 형태였다.

가슴 감촉이 좋으니 그러려니 했다.

“잠깐.”

누군가의 목소리가 우리를 붙잡았다. 나는 눈동자만 옆으로 굴러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했다.

하르텅그에게 한 대 처맞고 천장째로 날아간 데빌 헌터 젠이었다.

“너희에게 물어볼 게 있다.”

“살아 있었나.”

“육체의 내구성에는 자신 있다.”

“그런 것 치곤 복부의 중심은 끔찍하게 함몰되어 있군.”

“이 정도면 며칠 쉬면 낫는다. 그보다… 너희들은 대체 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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