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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75 - 575. 고대의 신비 (355/2,000)

〈 575화 〉 575. 고대의 신비

575. 고대의 신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드르렁 코를 골며 자고 있는 브루노의 머리를 후려쳤다.

”컥! 무, 무슨 짓인가?!“

”웬 날파리들이 모여들고 있어서 깨웠습니다.“

”날파리?“

나는 엄지손가락으로 창문을 가리켰다. 붉은 경비행기 3개가 이쪽을 향해 위협적으로 날아오고 있다.

브루노는 다급하게 창가로 뛰어갔다. 그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진다.

”알체리…. 놈들의 방해를 예상했지만, 설마 시작하자마자 이럴 줄이야.“

알체리.

이 세계의 악역이라 할 수 있는 조직의 이름이었다. 도덕을 내팽개치고 오직 조직의 이익만을 위해 고대의 신비를 이용하려는 집단.

”브루노 씨. 정보가 새어 나갔나요? 설마 배신자가…….“

에이미가 날 힐끔거린다. 내가 알체리에 정보를 넘기지 않았는지 의심하는 모양이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에이미에겐 아직 동료로 인정받지 못했으니까.

”그는 아니라네. 우리를 배신하고 알체리에 정보를 넘겼다면 애초에 우리를 찾아오지도 않았겠지. 에이미. 자네 직원 중에서 배신자가 있을 가능성이 높네. 유진의 일은 우리를 지키는 것이네. 그를 모욕하지 말게.“

”……미안합니다. 유진.“

에이미가 순수하게 사과했다.

”말 편하게 해도 된다니까 그러네. 아, 사과는 받을게. 근데 우리 너무 여유로운 거 아닙니까?“

알체리의 경비행기는 이미 바로 옆까지 다가왔다. 무기까지 달고 있었다. 공격해오거나 미친 척 부딪히면 우린 꼼짝 없이 죽을 수밖에 없다.

”죽진 않을 걸세. 이 비행기를 터트리려고 했다면 진즉에 했겠지. 에이미의 지도를 노리고 있군. 비행기는 터트리지 않겠지만, 사로잡힌다면 그 끝은 뻔하지. 맥!“

“그래. 내가 어떻게 해줄까?”

맥이 여유롭게 말했다. 이 위급한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는다. 베테랑의 연륜이 느껴졌다.

“낙하산으로 탈출해야 할 것 같네. 적당한 곳에서 잠시라도 좋으니 놈들을 따돌려 주게. 정글로 움직이면 놈들이라 해도 따라오지 못하겠지.”

맥이 바쁘게 움직이며 말했다. 그는 나와 에이미에게 낙하산 가방을 던졌다. 낙하산 가방을 착용하면서 에이미를 쳐다봤다.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지금부터 운전이 좀 거칠어지니 양해 바랍니다!”

단순히 거칠어지는 정도가 아니었다. 비행기가 360도 회전하거나, 옆으로 쏠리기까지 했다. 어떤 놀이기구도 이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큭….”

에이미가 균형을 잃고 넘어지려고 한다. 손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붙잡았다. 옷 위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탄탄한 복근이 느껴진다.

“괜찮아?”

“…고마워. 놔줘.”

순순히 놔줬다. 그녀는 흔들리는 비행기 속에서 곧장 중심을 잡았다. 감탄이 나올 정도로 뛰어난 운동신경이다. 일반인치고는 말이다.

“지금이다! 당장 뛰어내리게!”

가장 먼저 브루노가 나갔고, 그 뒤를 에이미. 다음으로 나, 마지막으로 맥이 밖으로 뛰어내렸다. 쫓기고 있으니 아슬아슬한 지점까지 낙하산을 펼쳐선 안 된다. 낙하산을 펼치는 시기는 브루노를 따라 하면 될 것이다.

콰아아앙!

굉음이 울렸다.

전용기가 절벽에 부딪혀 화려하게 폭발하는 소리였다. 알체리의 경비행기들이 당황하는 게 눈에 보였다. 뭐, 곧이어 우리의 뒤를 추적할 것이 분명하다.

낙하산을 통해 정글 아래로 내려온 우리는 빠르게 합류했다.

“여기서 가만히 있었다간 알체리 놈들이 우리를 쫓아와 죽이겠지. 구조 요청을 보내고, 구조를 기다릴 여유는 없네. 일초라도 빨리 움직여야 하네.”

“난 이렇게 될 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어. 브루노. 너랑 함께하면 여러 가지로 스펙터클 해지니까.”

“맥. 지금 심각한 상황이네. 긴급 탈출하느라 준비한 물건들을 절반도 가져오지 못했지. 자꾸 실없는 소리 할 텐가?”

“미안. 분위기가 가라앉아서 있어서 말이야. 좀 띄워볼까 했지.”

“지금 중요한 건 분위기가 아니네. 에이미. 지도 좀 보여주겠나?”

“여깄어요. 브루노 씨.”

에이미로부터 낡은 지도를 받아든 브루노가 진중한 눈으로 지도를 살펴봤다. 지도를 해석하는 게 아니라 확인하는 것에 가깝다. 해석이야 이미 옛날에 끝냈겠지.

“지도가 하나뿐이라고 단정할 수 없네. 어쩌면 지도의 내용이 유출되어 알체리 놈들이 알고 있을지도 모르네. 조금 돌아서 가는 편이 좋겠군. 움직이지.”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원작 영화 내용에 따르면 앞으로 약 3개월 동안 고생길의 문이 열렸다.

‘자동 진행이 있긴 하지만, 에이미를 따먹으려면 내가 직접 작업해야 해.’

저 굳은 표정의 다부진 여자가 내 밑에 깔려 젖은 신음을 흘리는 걸 상상하며 정글을 걷기 시작했다.

???

3일 동안 정글을 헤맸다.

인벤토리는 사용할 수 없었지만, 준비성이 철저한 브루노 덕분에 그럭저럭 잘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힘든 건 어쩔 수 없었다. 여기 오기 전에 빡세게 운동해서 몸을 만들어 두지 않았다면 더 고생했을 것이다.

‘내용이 2시간으로 압축된 영화를 볼 때는 실제로 겪으니 장난 아니군.’

정글은 너무 넓었다. 온종일 걷는데 앞으로 나아간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끼니는 비상식량으로 그럭저럭 해결하고 있다. 문제는 벌레나 짐승이었다.

‘아오. 이놈의 벌레.’

시도 때도 없이 달려드는 모기떼는 정글 전체에 불을 질러버리고 싶을 정도다.

“그르르르르.”

재규어다.

재규어와 마주쳤다. 재규어는 일정 거리를 벌리고 우리들을 경계했다. 도망가지 않는 걸 보면 우리를 먹잇감으로 판단한 것 같았다.

“이런….”

“브루노 씨. 해결해주시죠.”

“유진. 왜 나를 콕 집어 말하는 건가?”

“맨몸으로 맹수를 상대한 적 있다면서요. 브루노 씨는 전문가 아닙니까?”

“이럴 때 앞으로 나서서 우리를 지키는 게 자네의 일이라네.”

“전 용병 출신이라 맹수는 잘 상대 못 합니다.”

탕!

총성이 울리고 재규어가 고꾸라진다.

나와 브루노의 시선이 에이미에게 향했다. 에이미는 쿨하게 허벅지 홀더에 권총을 집어넣고 있었다.

“짐승 한 마리에 호들갑 떨지 마시고 빨리 움직이기나 해요.”

에이미가 당당하게 말했고 우리는 움직였다.

브루노가 앞장서고, 내가 후방을 맡았다.

나는 에이미를 자주 쳐다봤다. 에이미를 최우선으로 지켜 달라는 브루노의 말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는 홍일점. 남자 놈들을 보는 것보다 그녀를 보는 게 더 낫다.

‘머리카락이 길면 더 잘 어울릴 것 같군.’

정글 4일차.

문제가 생겼다.

맥이 몸살 난 것이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맥은 우리 중에서 가장 몸이 좋지 않았다. 지난 4일간의 강행군이 무척이나 힘들었을 것이다.

“제가 업을까요?”

내가 브루노에게 물었다. 남자 새끼를 업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는 긴급 상황이었다. 브루노는 고개를 저었다.

“약이라면 있고, 우리까지 지쳐 쓰러질 수도 있네. 맥이 쓰러진 건 내 불찰이네. 휴식을 취했어야 했는데… 알테리의 추적에 너무 조급해졌었군.”

휴식이 결정됐다.

나는 근처에 있는 강에서 세수하고 있는 에이미에게 다가갔다.

“에이미.”

“유진? 할 말이라도 있어?”

이전보다 그녀의 분위기가 부드러웠다. 지난 나흘 동안 같이 정글에서 고생하다 보니 어느 정도 친해진 것이다.

“네가 직접 나서는 이유가 궁금해서. 윌킨스 그룹의 후계자인 너는 굳이 직접 움직일 필요는 없었잖아. 브루노에게 전부 맡기고 호텔 스위트룸에서 기다리기만 해도 상관 없었을 텐데. 왜 직접 나선 거야?”

“……내가 방해돼?”

“아니. 넌 잘해주고 있어. 지금 상황에서 방해되는 건 맥이지. 돈도 많고, 지위도 있는 네가 굳이 고생길을 걷는 이유가 궁금해서 묻는 거야.”

에이미는 잠깐 침묵하더니 차가운 강물로 세수를 한 뒤 몸을 일으켰다. 물에 젖은 짧은 금발과 깨끗한 얼굴. 무심코 달려 나가 덮칠 뻔했다.

“내게 지도가 있는 건 알지?”

“알테리가 노린다는 보물지도 말이지?”

“아버지의 유품이야. 아버지는 회장 자리도 마다하고 이 지도가 가리키는 보물을 찾아다녔어. 그러다 희귀병에 걸려 죽었지. 죽는 그 순간까지도 나보다 보물을 더 생각했지. 난 궁금해졌어. 대체 어느 정도의 보물이길래 하나밖에 없는 딸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지.”

“그게 직접 움직이는 이유?”

“아버지가 모험 자체를 좋아했을 수도 있으니까. 모험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느껴보려고.”

“모험은 즐거워?”

“……지금 와서는 조금 후회 중이야. 근데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거야? 목적이 뭐야?”

“너와 친해지고 싶은 게 목적이야. 난 네가 마음에 들었거든. 에이미.”

“내가 아니라 내 재산이 마음에 든 거겠지.”

“네 재산에는 관심 없어. 뭣하면 계약서도 쓸 수 있다고.”

“너 같은 남자를 한두 번 만나는 줄 알아? 내게 다가오는 남자들은 전부 그런 말을 하곤 했어.”

“난 그런 것들과 달라. 네 재산보다는 너에게 관심 있다니까.”

“유진. 우린 비즈니스 관계일 뿐이야. 동료. 그 이상의 관계가 될 일은 없어.”

글쎄. 그건 과연 어떨까.

나는 씨익 웃으며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다음날. 약의 효과가 있었는지 맥이 몸살을 털고 일어났다. 우리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녁이 되었을 때 비가 쏟아졌다. 비가 어찌나 퍼붓는지. 3분도 지나지 않아 옷은 물론이고 속옷까지 완전히 젖었다.

‘비행기 사건도 그렇고. 아직까지 원작과 같아. 그렇다면… 오늘이겠군.’

원작을 통해 벌어질 일을 알고 있었던 평소 이상으로 몸을 긴장시켰다. 덕분에 가장 먼저 우리 뒤를 따르고 있는 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브루노 적입니다.”

“……적?”

“이쪽을 향해 오고 있습니다. 10명 안팎이고 대충 20분 뒤에 맞닥뜨리겠군요. 전문적으로 훈련 받은 놈들입니다. 군인 출신. 어쩌면 용병일 수도 있겠군요.”

“알겠네. 속도를 올려야겠군. 쉽게 따돌릴 수 있으면 좋으려만…. 그건 힘들겠지. 유진. 내가 했던 말을 잊진 않았지?”

“에이미를 최우선으로 지켜달라는 것 말이죠? 잊지 않았습니다. 브루노 씨가 죽더라도 에이미 만큼은 확실히 지킬 테니 걱정하지 마시죠.”

“거참. 자네는 말을 너무 예쁘게 하는군”

우리는 빠르게 움직였다. 브루노가 정글을 돌아다니며 추적자들을 떨쳐내려고 했으나 불가능했다. 추적자들 또한 전문가였다. 게다가 우리는 현재 지친 상태였다. 어느 쪽으로 보나 유리한 건 추적자들이었다.

“브루노. 오랜만이군.”

추적자들과 맞닥뜨렸다. 바로 정면으로 마주한 건 아니고 저들과 우리 사이에는 나무라는 엄폐물이 잔뜩 있었다. 추적자들은 군대의 특수부대 같은 무장을 하고 있었다.

“뒤꽁무니가 간지러워 뭔가 했는데 울팽 자네였나. 여전히 흉악한 얼굴이로군. 아이들은 자넬 보자마자 눈물을 터트리겠지.”

“내 얼굴 흉터의 지분 절반은 너에게 있다. 그 배당금을 주고 싶다만, 지도를 순순히 넘긴다면 후일로 미뤄두지.”

“그런 살기등등한 눈빛을 하고 있는데 내가 어찌 자네 말을 믿을 수 있겠나.”

울팽이 씨익 웃었다. 그는 주위에 있는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최대한 죽이지 마라. 정글 어딘가에 지도를 숨겨뒀을지도 모른다. 잡아서 고문하는 한이 있어도 지도는 반드시 찾아야 한다. 움직….”

탕!

내가 먼저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은 정확히 울팽의 이마 정중앙을 관통했다. 직후, 울팽의 부하들이 나를 향해 소총을 겨누고 일제히 격발했다. 커다란 나무 뒤로 숨은 나는 순식간에 나무 위로 올라가 원숭이처럼 다른 나무로 뛰면서 적들을 공격했다.

엄폐물이 많아서 확실하게 죽이기 위해선 가까이 가야 했다.

‘이건 좀 위험하군.’

힘들 것 같으면 곧바로 찰나를 이용했다.

내가 한 번 방아쇠를 당기면, 적 한 명이 죽어 나갔다. 격렬하게 움직이는데도 빗나가는 일은 결코 없었다. 사격을 올린 보람이 있었다.

3분.

내가 놈들을 전부 죽이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나와 저들의 신체 능력은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소프트웨어가 전혀 다르다. 내가 가진 경험을 저놈들이 따라올 수 있을 리가 없고, 내겐 가속이라는 초능력도 있다.

‘원래 이 장면에선 브루노가 기지를 발휘해 도망치고 울팽이 죽지도 않는데…. 뭐, 답답하게 원작대로 따라갈 생각은 없어.’

뒤를 돌아봤다.

브루노, 에이미, 맥. 전원이 경악한 눈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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