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6화 〉 576. 고대의 신비
576. 고대의 신비
뒤를 돌아봤다.
브루노, 에이미, 맥. 전원이 경악한 눈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혼자서 3분 만에 10명을 모두 죽였다. 총을 사용했다곤 하나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속도였다. 상대는 어린아이도 아니고 훈련받은 전투원이었으니까.
“혹시 시체를 파묻어야 한다는 생각이 가지신 분이 있으시다면, 지금은 포기하십시오. 알체리라는 조직은 생각보다 큰 것 같으니 이놈들이 전부가 아닐 겁니다. 여기서 꾸물거리면 더 찾아오겠죠. 움직이죠.”
“그건 나도 자네 말에 동감하네. 저들이 죽은 건… 안타깝긴 하지만 그렇다고 죽어 줄 순 없지.”
우리는 다시 정글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맥은 날 약간 무서워하는 것 같았고, 에이미는 무서워하지 않고 흥미가 생긴 눈으로 날 쳐다봤다.
“미친 괴물 새끼라는 별명을 이렇게 확인하게 될 줄이야. 자네 인간 맞나? 초능력자 아닌가?”
“인간입니다. 혹시 절 고용한 걸 후회하십니까?”
“후회? 내 생애 최고로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된다만. 자네가 있다면 놈들에게 총 맞아 죽을 일은 없겠지. 그리고….”
브루노는 작은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에이미를 잘 부탁하네.”
“브루노 씨를 버리는 한이 있어도 에이미는 지킬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웬만하면 날 버리진 말아주게.”
???
열흘 동안 정글을 돌아다닌 끝에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거대한 절벽에서 흐르는 폭포 지대였다. 폭포의 높이만 해도 무려 30M는 될 듯했다. 세계 3대 폭포라 불리는 것들에 비하면 좀 많이 작지만, 사람에게 경외감을 품게 만드는 폭포라는 건 똑같았다.
“큰일이군.”
브루노가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짚었다.
“뭐가 말입니까?”
“난 물과 친하지 않네. 물속에 들어가려면 들어갈 수 있지만…. 무척 불쾌하지.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을 정도로.”
“꼭 물속에 들어가야 합니까? 보물이 근처 땅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 가능성은 적지. 지도가 폭포를 가리키는데 굳이 근처 땅에 묻을 필요가 있나? 그리고 사실 우리가 찾는 건 보물이 아니야. 에이미가 가진 지도가 가리키는 건 3개의 열쇠 중 하나지. 뭐, 이런 모험을 최소 2번은 더 해야 한다는 말이 되지.”
“……사람을 부르면 안 됩니까?”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보물은 더 안전해지지.”
우리는 넓은 폭포를 탐색해야 했다. 그리고 발견했다. 정확하게는 원작을 통해 알고 있던 내가 3시간 동안 놀다가 발견한 척 외친 것이다.
“브루노 씨! 찾았습니다! 저기 폭포 뒤쪽에 공간이 있습니다.”
“어디…. 망원경으로 보니 잘 보이는군. 수고했네. 유진. 근데 저 안으로 들어가려면 헤엄쳐서 가야겠군. 준비해둔 보트는 비행기랑 폭발했으니…. 나 원.”
“제가 가겠습니다.”
“응? 굳이 그럴 필요 없네. 내가 후딱 가서 열쇠를 가져오면 되네.”
“물 싫어한다면서요. 그리고 제가 브루노 씨보다 더 신체 능력이 좋습니다.”
“……자네가 그렇다면 부탁하겠네.”
브루노가 내게 고마움의 눈길을 보냈다.
물론 내가 나선 건 꿍꿍이가 있어서였다.
“저도 가죠.”
에이미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에이미. 자네도?”
“보물 열쇠가 있는 장소가 어떤 곳인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요. 그리고 혼자보다 둘 인편이 더 낫잖아요?”
“위험할 때 동료가 있으면 훨씬 낫긴 하지. 알겠네. 나와 맥은 여기서 자네들을 지켜보고 있겠네.”
나와 에이미는 옷을 벗었다.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상의를 완전히 벗었고, 에이미는 바지와 검은색 탱크탑만 걸쳤다. 자세히 보면 C컵 가슴의 중심 부분이 약간 솟은 게 보였다. 젖꼭지다.
‘다른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군. 죄다 고자인가? 이 세계에선 저 정도 노출은 아무것도 아닌 건가?’
나와 에이미는 강에 뛰어들고 움직였다. 물론 정글도와 권총, 밧줄 등의 최소한의 장비는 챙겼다.
에이미가 앞장서고 내가 그 뒤를 따랐다. 물장구치는 그녀의 다리를 보는 것도 나름 재밌었다.
‘엉덩이도 탱탱하고… 보짓살도 두툼하군. 물에 젖어서 옷이 착 달라붙기도 하고… 음…. 꼴리네.’
우리는 폭포를 앞에 두고 잠시 헤엄을 멈췄다.
“에이미. 물길이 좀 거센데. 내가 앞장설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것보다 안쪽이 어두워. 네가 뒤에서 잘 받쳐줘야 해.”
“걱정 마. 얼마 전에 내 실력 봤잖아?”
“……그래. 실력만큼은 믿고 있어.”
에이미가 헤엄쳤다. 그녀와 내가 가까워질 수 있는 적당한 사고 같은 게 났으면 좋겠지만, 숨을 참는 게 약간 힘들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아무 문제도 없이 무사히 폭포 안쪽의 공간에 도착했다.
동굴이라 하기엔 너무 작위적인 공간이었다.
바닥은 평평하고, 벽에는 알 수 없는 문양들이 가득 적혀 있다. 나는 브루노의 부탁대로 준비해온 카메라를 꺼내 대충 벽의 문양을 찍으며 에이미의 몸을 훔쳐봤다. 물에 젖어 몸에 착 달라붙어 섹시하고 탄탄한 몸매가 드러났다.
그녀는 어느 한쪽 벽을 말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벽에 난 구멍 안에 원래는 원형이었을 돌조각이 있었다. 따로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누가 봐도 저게 우리의 목적인 물건으로 보였다. 열쇠와는 좀 거리가 먼 생김새긴 하지만, 그 외의 딱히 가져갈 수 있는 물건이 없었으니까.
에이미가 앞으로 벽을 향해 다가간다.
나는 곧장 총을 꺼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끼에에에엑!”
어두워 보이지 않는 천장에서 조용히 에이미를 노리고 있던 1M 크기의 거미가 총을 맞고 바닥에 떨어졌다.
“뭐?!”
거미를 보고 깜짝 놀란 에이미가 뒤로 물러난다.
“앞과 뒤뿐만이 아니라 위도 잘 봐야지.”
거미의 다리가 꿈틀거린다. 그 몸통에 총알이 제대로 박혔음에도 죽지 않았다.
나는 방아쇠를 꾸욱 눌렀다. 권총을 불을 뿜고 슬라이드가 앞뒤로 반복하며 탄피를 배출했다.
“이런 괴물 거미가 있을 줄이야. 에이미. 넌 알고 있었어?”
“…브루노 씨한테 듣기는 했어. 이 세상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생물들이 많다고. 설마 이런 거대 거미가 있을 줄은 몰랐지만. 다른 거미는 없지?”
“없어.”
그녀가 벽 속에 있는 돌조각을 잡아 꺼냈다. 직후, 바닥에서 물이 빠르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건?!”
“뭘 멍하니 있어. 당연히 함정이겠지. 가자.”
은근슬쩍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몸에 닿는 그녀의 감촉이 기분 좋았다. 에이미는 처음에 잠깐 발버둥 치다가 결국 급박한 상황에 내 몸을 잡고 바깥으로 헤엄칠 수밖에 없었다.
“네 도움이 없었어도 혼자서 헤엄칠 수 있었어.”
“결국 나왔으니 됐지. 뭘.”
첫 번째 열쇠는 성공적으로 찾았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이제 3개의 열쇠 중 한 개의 열쇠를 얻었을 뿐이니까.
???
폭포 다음으로 향한 곳은 중국의 산이었다. 알체리의 방해가 없었기에 순조로울 줄 알았으나, 원작에는 없었던 사고가 발생했다. 산을 올라가는 도중에 곰 세 마리와 맞닥뜨렸다. 어미곰과 새끼 곰이었다.
새끼 곰 때문에 예민했던 어미 곰이 우리를 공격했다. 나는 당장 죽이려고 했지만, 브루노와 에이미가 말렸기에 어쩔 수 없이 도망쳤다.
그 과정에서 나와 에이미는 브루노와 떨어져 조난하게 되었다. 맥은 산에 오르지 않았다.
“에이미. 발목은 어때?”
“심각하지 않아. 당장 움직이려고 하면 움직일 수 있어.”
“걸으면 아프다는 거네. 업혀.”
“산에서 조난했을 때는 가만히 구조 요청을 하는 게 좋아.”
“산에 있는 짐승들은 우릴 가만히 있는 좋은 먹이로 생각할 걸. 여기엔 지형적으로 쉬기엔 적합하지 않아. 우선 움직이자.”
“…후. 알았어.”
에이미를 등에 업었다. 엉덩이와 허벅지 사이를 손으로 받쳤다. 탱탱하고 매끈한 느낌이 좋았다.
한동안 업고 다니다가 적당한 장소에서 쉬었다.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에이미와 점점 가까워졌다. 지금에 와서는 내 시시한 농담에도 피식하고 웃을 정도다.
“유진! 에이미! 괜찮나?! 걱정했다네!”
“괜찮습니다.”
“네. 괜찮아요. 발목을 조금 삔 거 말고는요.”
“자네들 뭔가 분위기가 좋아 보이는군. 뭐, 아무튼 두 번째 열쇠는 내가 회수했네. 정상에 있는 커다란 나무뿌리에 박혀 있었네. 문제는 이번에 지도를 해석해서 알게 된 세 번째 열쇠의 장소인데…. 이건 회의가 필요할 것 같군. 우선 구조 헬기부터 불러야겠어.”
세 번째 열쇠는 바로 찾으러갈 수 없었다.
세 번째 열쇠가 있는 곳에 알체리가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섣부르게 접근했다간 알체리에게 붙잡혀 고문당하겠지.
브루노가 세 번째 열쇠가 있는 곳을 조사하는 동안, 나는 에이미의 보디가드 임무를 수행했다. 덕분에 에이미와 부쩍 가까워질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친해졌다고 판단한 나는 에이미가 고백했다.
“에이미. 널 좋아해. 너와 사귀고 싶어. 네 재산에는 정말 관심 없어. 난 순수하게 널 좋아해. 원한다면 계약서도 쓸게.”
“…내 어디가 좋아?”
“예쁜 얼굴이랑 시원한 성격.”
“…좋아. 사귀자. 하지만 딱 사귀는 것까지만이야. 너랑 결혼할 생각은 없어.”
“에이미. 난 그걸로도 만족해.”
에이미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천천히 그녀의 뺨을 들어 올려 입술을 맞추었다. 에이미가 두 눈을 감으며 내 팔뚝을 꽉 잡았다. 내 혀와 그녀의 혀가 뒤섞인다.
난 키스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내 양손이 에이미의 가슴과 엉덩이 쪽으로 움직였다. 손안을 가득 채우는 말랑한 가슴을 움켜쥐고, 옷 위의 엉덩이 사이 두툼한 보지로 손이 들어가려는 찰나, 그녀가 나를 밀쳐냈다.
“허락하는 건 키스까지야. 가슴도 만지게 해줄 순 있어. 하지만 섹스는 안 돼.”
“…왜? 우린 사귀는 사이잖아.”
“넌 나랑 결혼할 남자가 아니니까.”
“혼전 순결?”
“그 정도로 융통성이 없진 않아. 넌 결혼할 대상이 아니니, 섹스 대상이 아닐 뿐이야. 싫으면 헤어지든가.”
“…….”
난 당당한 에이미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에이미는 멍하니 있는 나를 보고 피식 웃더니, 쪽하고 내 입에 키스하고는 떠났다.
“내일 봐.”
“…어. 에이미. 내일 보자.”
나는 실망하지 않았다. 실망하는 것 대신에 어떻게 해야 에이미를 자빠뜨릴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었다.
‘답은… 스킨십이다. 스킨십을 자주 해서 성욕을 자극해야지. 다행히 키스나 가슴 만지는 것 정도는 허락해주니까. 근데 생각해보니 웃긴 년이네. 가슴은 만지게 해주면서 보지는 안 대주다니.’
???
세 번째 열쇠가 있는 곳은 미국에 있는 작은 섬 중 하나였다.
문제는 그 섬을 알체리가 먼저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알체리. 그놈들도 역시 열쇠에 대해 알고 있었군. 열쇠 세 개가 모두 모이면 진정한 신비의 길이 열린다는 걸 알고 있는 걸세. 우리가 중국의 산에 가서 두 번째 열쇠를 찾는 걸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이유가 결국은 우리가 세 번째 열쇠를 찾아서 이 섬에 오리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겠지.”
“좀 편하게 가면 안 됩니까? 사람도 좀 고용하고…. 아니면 국가에 협력을 요청하거나.”
“알체리 만큼 믿을 수 없는 게 국가라네. 그리고 우리 목적은 열쇠지, 알체리가 아니네. 굳이 알체리와 싸울 이유는 없어. 다행히 알체리의 조직원 한 명을 회유 하는 데 성공했어. 세 번째 열쇠의 정확한 위치와 기지로 들어갈 비밀 통로를 발견했네.”
“어쩐지 불길한 느낌이 드는군요. …어떤 계획입니까?”
“유진. 자네 도움이 필요해. 자네가 섬에서 소란을 피워 알체리의 시선을 끄는 동안 우리가 신속하게 움직여 세 번째 열쇠를 훔치는 걸세.”
브루노의 말을 듣고 있던 에이미가 책상을 손바닥으로 치며 벌떡 일어났다.
“잠깐만요. 브루노 씨. 그건 유진에게 미끼가 되라는 소리잖아요!”
내 연인이 그녀가 나를 대신해 화를 내주었다.
“이게 최선일세. 배신자의 말에 따르면 우리의 신상 정보는 이미 알체리가 알고 있네. 놈들은 우릴 죽이기 위해 움직일 준비를 거의 끝마쳤어. 보물을 찾은 뒤에 정부에 도움을 요청해 알체리를 싸그리 없애는 거야. 에이미. 자네와 나의 인맥이라면 가능한 일이지.”
정부에 먼저 알리고 도움을 구하지 않는 건 정부가 보물을 빼앗으려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선 보물부터 찾은 뒤에 정부를 움직이려는 것이다.
“…….”
“에이미. 유진의 실력이라면 버틸 수 있네.”
“브루노 씨의 말이 맞아, 에이미. 넌 숨겨져 있는 진짜 보물을 찾는 게 목적이잖아. 그러기 위해선 세 번째 열쇠가 꼭 필요한 것도 알잖아. 난 할 수 있어. 에이미.”
“…….”
에이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