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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7화 〉 607. 광명승천도

607. 광명승천도

신공세를 찾아온 중요한 손님은 남색 도포를 걸친 남자였다. 얼굴은 창백할 정도로 하얗고 눈 아래에는 짙은 눈그늘이 있었다. 눈동자는 죽은 동태의 눈 같다.

여유롭던 신공세의 얼굴이 그를 확인하자마자 굳어졌다.

“두 대인. 지금 전 먼저 온 손님과 이야기하던 중입니다.”

“먼저 온 손님이라…. 내 눈에는 손님이 아니라 호구로 보이는군. 또 어떤 흉계를 세우고 계셨나?”

“무례하시군요. 사과는 바라지도 않습니다만, 적어도 지금은 물러나 주십시오.”

무례를 당한 건 우리도 마찬가지였지만, 신공세의 눈에는 안중에도 없었다. 저 남자의 말대로 신공세는 우리를 호구로 보고 있는 것이다.

남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우리 쪽으로 다가와 비어 있는 의자에 앉았다.

“남지문의 장로인 두만정이다. 너희는 유성검문 소속의 무인들이겠지?”

“예. 그렇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두 대인!”

신공세가 소리를 빽 질렀지만 두만정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지긋이 쳐다본다. 죽은 물고기 같은 눈동자 속에 황금빛이 반짝인다.

뒤늦게 두만정에 대한 정보가 떠올랐다.

남지문의 장로인 두만정은 본질을 꿰뚫어 보는 심미안을 타고난 술법사다. 이 세계에서 심미안이란 본질을 찾아내는 특별한 눈이다. 술법사에게 있어선 최고의 재능 중 하나. 원작에선 주인공과 싸우다 죽는다.

“이거 놀랍군.”

두만정이 나를 보더니 씨익 웃는다. 내게서 무얼 봤는지 알 수 없었다.

“신 공자. 나는 이자와 단둘이서 이야기하고 싶다. 자리를 만들어라.”

“대체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계십니까?”

“내가 묻고 싶은 말이군.”

“……용건이 무엇입니까?”

“남지문주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다. 슬슬 개입할 것이다. 열흘 안에 남지문의 청하대가 파양시에 당도할 것이다.”

두만정의 행위는 명백한 남지문의 배신행위였다. 그는 원작과 다르게 신공세에게 포섭된 모양이다.

“……이 상항에는 불문율이 있습니다. 아현신가와 직가표국은 서로 으르렁거리고 싸우고 있지만, 남지문에게 어떤 것이든 넘겨줄 생각이 하나도 없다는 것. 남지문은 아현신가와 직가표국을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움직이지 않았겠지.”

“돌겠군요. 이미 직가표국을 칠 준비를 모두 끝냈는데…. 하.”

“일주일 안에 나강문의 법기를 얻는다면 싸울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게 말처럼 쉽다면 말이죠.”

“네게 전할 말은 전했다. 나는 이자와 따로 대화하고 싶군.”

“좋습니다. 생각할 것도 많으니 자리를 만들어 드리죠. 성지곤 소협. 잠시 저와 밖으로 나가서 기다리죠.”

나와 성지곤의 의견을 전혀 묻지 않는다. 신공세는 남자의 말대로 우리를 호구 취급하고 있다.

성지곤이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그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눈짓으로 신공세와 함께 나가라고 말했다.

방안에는 나와 두만정 두 사람이 남았다.

“유성검문의 성유진입니다.”

“남지문의 두만정이다.”

“제게서 무얼 보신 겁니까?”

“오호. 내 눈에 대해 알고 있나?”

“심미안(審美眼). 본질을 꿰뚫어 보는 눈. 직접 본 건 오늘이 처음입니다만, 들어본 적은 있습니다.”

“생각보다 식견이 있군.”

“대인은 제게서 무엇을 보신겁니까?”

“심미안이 본질을 꿰뚫어 본다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심미안도 사람에 따라 조금씩 그 효과가 다르다. 나 같은 경우엔 사물과 술법의 경우 숨겨져 있는 걸 볼 수 있고, 사람의 경우 자질을 볼 수 있다.”

“제 자질을 보셨다는 말이군요. 실망하셨겠습니다.”

“실망? 무슨 헛소리냐. 나는 네 자질을 보자마자 경악했다. 너처럼 뛰어난 자질을 가진 자를 지금껏 만나 본 적도 없으니까.”

“네? 무언가 오해하신 모양이군요. 전 가진 재능이 없습니다.”

“내 눈이 잘못 봤을 리가 없다. 네가 아직 재능을 실감하지 못했다면, 그건 아직 재능을 개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 호기심을 자극하는 말들을 하시는군요. 제게서 무엇을 보았는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너 같은 놈을 보는 건 처음이니 알려주마. 네게서 보이는 건 두 개다. 하나는 번개. 아마도 네가 가진 속성이겠지.”

“예. 전 뇌령(雷靈)을 타고났습니다.”

“뇌령을 타고났는데 재능이 없다? 사람을 기만할 줄 아는 놈이군.”

“…….”

“다른 하나는 별의 기운이다.”

“……별의 기운?”

“이 세상에는 별의 기운을 타고나는 자들이 있고, 그들 모두가 운명처럼 대단한 인물이 된다고 하더군. 너는 아직 각성하지 못했다. 정확히 어떤 별의 기운을 타고났는지 모르겠으나, 각성만 한다면 네 입에서 재능 없다는 말은 두 번 다시 나오지 않을 거다.”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별의 기운에 관해선 나도 잘 모른다. 다만 몇 가지 사례가 있지. 그중에서 유명한 건 천살성과 자미성이다.”

“전 들어본 적 없습니다만.”

“들어 보았을 것이다. 황제와 살신에 관한 이야기다.”

“……설마 황제와 살신이?”

“그렇다. 황제는 자미성이었고, 살신이 천살성이었다.”

이 세계에서 황제와 살신에 대한 이야기는 동네에 사는 꼬마들도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했다.

그 이야기를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지금으로부터 약 700년 전, 살신이 대혈겁을 일으켰고, 황제가 살신을 죽이고 세상의 평화를 되찾았다. 황제는 이어서 진제국을 건국했다.

지금 내가 있는 파양시나, 유성검문이 있는 후단시도 진제국에 속해 있다. 변방 중의 변방인지라 수도와는 엄청나게 멀리 떨어져 있다.

“설마 제가 천살성이나 자미성입니까?”

“그럴 리가. 자미성은 이미 황제가 있으니 네가 타고날 일은 없다. 네가 천살성이었다면 나는 네게서 불길함을 느꼈겠지. 천살성은 그만큼 강력한 별이니. 별의 기운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다. 나도 문헌으로만 알아봤을 뿐이지. 네가 어떤 별을 타고났는지는 나로선 알 수 없다.”

“별의 기운이 그렇게 대단합니까?”

“별의 기운을 타고난 놈치고 대단한 인물이 되지 않은 경우가 없다.”

“……혹시 저를 죽이실 겁니까?”

“네가 타고난 별의 기운을 질투해 죽일 정도로 막 나가지는 않는다. 나는 단지 별의 기운을 타고난 놈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을 뿐이다.”

“만족하셨습니까?”

“아니. 생각보다 재미도 없고, 얻을 것도 없군. 그래도 내 대화에 어울려 줬으니 대가는 치러주마. 너도 나강문의 법기를 찾고 있을 테지?”

“네. 그렇습니다.”

나강문의 법기가 어디에 있는지 대충 알고 있었다. 그러나 찾기가 영 힘들었다. 원작의 묘사가 간략해도 너무 간략했기 때문이다.

“나강문의 법기는 파양시 동쪽에 있는 작은 산에 있다. 고위 결계로 가려져 있어서 최소 오기 이상의 술법사가 아닌 이상 찾아내기 힘들지.”

알고 있다. 문제는 결계 때문에 정확한 입구를 파악할 수 없다. 땅을 파면 결계를 무시할 수 있지만, 애먼 곳의 땅을 파면 시간만 버릴 뿐이다.

두만정은 품에서 부적 하나를 꺼내 내게 건넸다.

“이 부적이 있으면 결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계를 간파하는 부적입니까?”

“그러기엔 내 실력이 미천하다. 이건 내가 본 입구의 위치를 표시해뒀을 뿐이다. 이 부적의 끝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서 땅을 파거나, 주변 일대를 박살 내면 나강문의 법기가 있는 곳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두 대인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법기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면 왜….”

“나강문의 법기 따위에 관심 없다. 나는 이번 기회를 이용해 이곳을 떠날 것이다. 남지문에 부려지는 것도 진절머리가 난다. 법기를 가지고 싶다면 그 부적을 이용해라. 네가 나강문의 법기를 감당할 수 있다면 말이다.”

“……다른 사람에게 줘도 됩니까?”

“상관없다.”

두만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발걸음을 휘적이며 방을 나갔다. 곧바로 성지곤이 들어온다. 문틈으로 신공세가 두만정을 쫓아가는 게 보였다.

“유진아! 그놈이 설마 널 협박한 거야?”

“아니. 대화 좀 나눴을 뿐이야.”

두만정의 목적.

원작과 다른 두만정의 행보에 머리가 약간 혼란스럽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이 부적을 이용할 방법을 떠올린다.

“성지곤. 직가표국으로 돌아가자.”

???

직가표국에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유성검문의 삼장로인 석죽을 만났다.

“볼일은 잘 끝냈느냐?”

“예. 임무는 성공적으로 수행했습니다.”

“성공했다니 다행이구나. 신공세 공자가 따로 내게 남긴 말 같은 건 없느냐?”

“없습니다.”

“쯧.”

혀를 찬 석죽이 우리를 지나쳤다.

‘자기가 뭐라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

어처구니가 없는 놈이었다. 나는 피식 웃어 주고는 성지곤과 함께 직가표국의 장녀, 직성미를 찾아갔다.

직성미는 탁자 앞에 앉아 조용히 녹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나강문의 법기와 관련해 중요한 말이 있으시다고요?”

“네.”

“흐음. 솔직히 믿음이 전혀 가진 않습니다만, 나강문의 법기에 관련된 말이니 들어보기는 하죠.”

직성미가 따뜻한 녹차를 한 모금 삼키며 말했다. 기대는 전혀 되지 않지만 마침 심심하니 일단 들어보는 보겠다는 뉘앙스다.

그녀는 우리가 이 방에 들어오고 나서 단 한 번도 녹차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나강문의 법기가 있는 곳을 알아냈습니다.”

탁!

찻잔이 거칠게 탁자 위에 떨어졌다. 녹차가 옆으로 튀었으나 직성미의 검은 눈동자는 내게 못 박혀 움직이지 않았다.

“농담이죠?”

“이런 거로 농담할 정도로 멍청하지 않습니다.”

“절 기만하는 것이라면 용서하지 않겠어요.”

“제 목숨을 걸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름이 뭐였죠?”

“성유진입니다. 이쪽은 성지곤으로 제 형제입니다.”

“성 씨라면….”

“예. 저희 아버지가 유성검문주입니다.”

그녀의 태도가 아까보다 더 진지해졌다.

“나강문의 법기에 대해 어서 말해보세요. 어떻게 법기의 위치를 알아낸 거죠? 당연히 그 위치도 말씀해주시겠죠?”

“그 전에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라…. 저희 직가표국과 유성검문은 협력 관계가 아니었나요?”

“크흐흐.”

내가 낮게 웃자 직성미가 불쾌한 듯 인상을 찌푸렸다.

“재밌는 농담이었습니다. 직 소저. 저희는 지금 석 장로님에게 보고하지도 않고 바로 직 소저를 찾아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유성검문을 배신한 거나 다름없습니다. 그런 만큼 이득은 챙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문파를 배신한 자들의 말을 믿어야 하나요?”

“믿기 싫으면 믿지 않으셔도 됩니다.”

“……조건이 뭐죠?”

“영약입니다. 지금 당장 저희에게 영약을 주신다면 나강문 법기의 위치를 말하겠습니다.”

“직가표국은 아직 파양시에 자리 잡지 못했어요. 영약이 있다고 보시나요?”

“몇 개 챙겨오지 않았습니까? 없으시다면 이대로 물러가겠습니다.”

“이대로 물러나서 유성검문에 보고할 생각인가요?”

“저희는 유성검문에 보고해봤자 영약을 얻지 못합니다. 지금 유성 검문에는 영약이 없으니까요. 치하의 말이 전부겠죠. 저희가 직 소저와 거래를 원하는 이유입니다.”

“……잠깐 나갔다 올 테니 기다려요.”

직성미는 약 2시간 정도 사라졌다가 다시 나왔다.

그녀의 손에는 비단 상자가 들려 있었다. 상자를 탁자에 올리고 비단을 풀었다.

순간 향긋한 냄새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이건….”

“설삼이에요.”

하얀 삼 2뿌리였다. 가까이서 보니 영기가 느껴진다. 나와 성지곤은 침을 꼴깍 삼켰다. 이전에 먹은 목침화 이상의 영약이다.

“80년 정도 자란 영약이죠. 설삼 자체의 품종이 영약으로서 뛰어나다는 건 알고 계시죠? 은자로는 구매하기 힘들고, 못해도 천옥 3개는 받을 수 있는 가격이에요. 파양시에 자리 잡다가 급전이 필요한 경우를 대비해 가져온 물건이죠.”

“나강문의 법기는 그 이상의 가치를 할 테니 걱정하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그걸 몰랐다면 이러지 않았겠죠.”

“나강문의 법기의 위치를 지금 말하겠습니다. 그러니 설삼을 이리로….”

“잠깐. 제가 아까 당신들의 말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나요? 이 설삼들은 나강문의 법기를 발견한 뒤에 드리겠어요.”

“……나강문의 법기가 있는 곳은 이 부적이 알려줄 겁니다. 그러니 설삼을….”

“당신들도 함께 가야죠. 기껏 단서를 얻었는데 오래 질질 끌 이유는 없죠. 의심을 받지 않도록 최소한의 인원으로만 움직일 거예요. 당신들도 준비하세요.”

직성미는 다시 비단으로 상자를 감쌌다. 나는 입맛만 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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