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0화 〉 610. 광명승천도
610. 광명승천도
유성검문 내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아현신가와 직가표국을 동시에 적으로 돌렸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하인 중에는 불안함을 견디다 못해 일을 그만둔 자들이 몇몇 있었다.
‘현명한 자들이지.’
이곳은 곧 전쟁터가 된다. 적들은 무인들뿐만이 아니라 허드렛일을 하는 하인들까지 모조리 죽이려 들 것이다. 아현신가는 비정하기로 유명하니까.
“성지곤. 넌 아현신가가 습격해오면 정해진 길로 여자들을 데리고 도망쳐.”
“알았어. 유진이 넌 정말 싸울 거야?”
“너희들이 도망갈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하거든.”
진짜 내 목적은 두 가지다.
천강성 시스템의 특별 임무, 신공세의 목숨. 직접 나서는 걸 좋아하는 신공세라면 이번에도 필시 나설 것이다.
다른 목적은 유성검문주 성고단이 가지고 있는 법기. 그 법기를 내가 가질 것이다.
“유진아. 여차할 땐 그냥 도망쳐. 여기서 목숨을 버리기엔 너무 아깝잖아.”
“너도 많이 변했군. 옛날 같았으면 끝까지 남아 싸우겠다고 빡빡 우겨댔을 놈이.”
“죽으면 섹스를 못 하잖아. 그리고 유성검문에는 목숨을 바칠 정도의 가치도 없어.”
“아버지가 죽더라도?”
“아버지가 우리에게 해준 게 뭐가 있어? 그리고 우린 이미 아버지를 위하기에는 너무 많은 죄를 저질렀어.”
“크크. 아버지의 처첩은 맛있었지.”
“넌 너무 노골적으로 말하잖아. …뭐, 맛있긴 했지만.”
???
“적이다! 아현신가가 쳐들어왔다!”
예상보다 빠르게 아현신가가 유성검문에 쳐들어왔다. 신공세는 아마도 나강문의 법기가 유성검문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게 아니면 유성검문을 빠르게 치워두자는 생각이거나.
“성지곤. 준비했던 대로 행동해.”
“알았어.”
성지곤이 바쁘게 움직였다. 여자들을 데리고 미리 정해둔 루트로 도망갈 것이다. 밖으로 나가자 모든 사람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겁에 질린 이들도 있었고, 분노한 얼굴로 검대를 잡는 이들도 있었다.
“유성단원들은 모두 모여라!”
멀리서 유성단주의 고함이 들린다.
나는 그 말을 무시했다. 나중에 한소리 듣는 거로 끝나지 않는다.
‘나중이 있다면 말이야.’
오늘 유성검문은 멸문한다. 나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성소정을 찾았다. 성소정은 유성단의 집합 장소로 달려가고 있었다.
“누님! 큰일입니다! 누님!”
다급한 목소리로 성소정을 불렀다. 달려가던 성소정이 방향을 돌려 내게 다가온다.
“유진아?! 무슨 일이야?!”
“지곤이가…! 지곤이가 위험합니다! 누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성소정의 얼굴이 굳어진다. 성지곤은 성소정의 친동생이었다.
“지곤이는 지금 어딨어?!”
“이쪽입니다!”
나는 그녀를 데리고 유성검문의 외곽에 있는 낡은 처소로 향했다. 나와 성지곤이 하녀들을 범할 때 주로 사용하던 아지트 중 한 곳이다.
낡은 처소에는 전투 흔적과 함께 핏자국이 여기저기 뿌려져 있었다. 미리 준비해둔 것들이다.
“저와 지곤이는 여기서 습격받았습니다! 지곤이가 적들을 맡고 전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왔는데…! 젠장!”
“유진아. 진정해. 지곤이는 무사할 거야. 쉽게 당할 녀석이 아닌 걸 너도 잘 알잖니.”
성소정은 전투의 여파로 무너진 처소 쪽으로 다가갔다. 다른 곳과 다르게 유독 부자연스러운 곳. 마치 건축 자재 밑에 누군가가 깔려 있을 것만 같은 곳으로 다가갔다.
내게 진정하라고 말한 것과 다르게 성소정의 행동은 냉철하지 못했다. 조금도 신중하면서도 주의 깊게 움직여야 했다.
성소정은 자재를 치웠고, 아래에 설치되어 있던 바늘들이 위로 솟구쳐 그녀의 팔과 어깨를 찔렀다.
“누님!!”
“이, 이건 함정이, 야….”
털썩.
성소정이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빠르게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말대로 이건 함정이었다. 다만 아현신가의 적들이 준비한 함정이 아니라, 내가 준비한 함정.
바늘 끝에 묻혀 있는 건 독이 아니라 수면마취제로 그녀는 현재 강제로 잠들었다.
‘일단 첫 단추는 성공적으로 뀄다.’
성고단의 처첩들과 다르게 성소정은 유성단에 속해 있었다. 성소정은 유성검문에 꽤 높은 충성심이 가지고 있었기에 나와 성지곤이 도망치자고 말하더라도 따를 일이 없었다.
‘성소정은 여기서 죽기엔 아깝지. 강제로라도 데려가야지.’
깨어난 성소정은 이 함정을 적들의 짓으로 생각할 것이다. 나는 품에서 공간 이동 주문서를 꺼내 그녀의 손에 쥐여주고 강제로 찢게 했다.
그녀의 몸이 빛으로 휩싸여 사라진다. 이걸로 그녀가 죽거나 다칠 일은 없을 것이다.
‘일이 끝난 뒤에 성소정을 따먹는다!’
하지만 그 전에.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이다. 너무 나대면 표적이 되어 빨리 죽을 테니 일단은 숨어서 기회를 보기로 했다.
‘이미 준비는 끝났다! 존버!’
???
챙. 채앵. 챙!
“끄아아아악!”
“죽어라!!”
비명과 칼 부딪히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유성검문의 전각들이 불타고, 시체들이 아무렇게나 바닥에 쓰러졌다.
유성검문의 정예, 유성단도 아현신가의 정예 무인들 앞에선 그 위용을 발휘하지 못하고 쓰러질 뿐이었다.
나는 일루시터까지 이용해 모습을 숨기고 상황을 지켜봤다.
지금 신공세와 성고단이 마주쳤다.
신공세는 비릿하게 웃으며 성고단에게 검을 겨눴다. 그의 부하들이 성고단을 빙 둘러 포위했다. 총 100명이 넘는 포위망. 아무리 성고단이 오기(五氣)의 강자라 하더라도 상황 자체가 지극히 불리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유감입니다. 유성검문주님.”
“신념도, 신의도 없는 더러운 놈이 잘도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구나. 이곳이 네 무덤이 될 것이라는 것도 몰랐더냐?”
“제 무덤이 되기엔 이곳이 너무 초라하군요. 문주님에게 양보하겠습니다.”
“건방진 것.”
성고단이 검을 들었다. 그의 검에서 붉은 검기가 넘실거렸다. 그의 별호가 왜 적성검(赤星劍)인지 보여주는 모습이다.
“놈에게 여유를 주지 마라! 변방의 문주라곤 하나 그 실력은 진짜다! 유성검문주를 죽이는 자에게 영단을 지급할 것을 이 자리에서 약속하겠다!”
무인들이 성고단을 향해 달려들었다.
성고단은 왼손을 하늘 위로 뻗었다. 그의 손목에 은색 팔찌가 보였다. 팔찌에 장식된 작은 은색 검이 번쩍인다.
직후, 하늘에서 거대한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검은 무인들의 중심에 유성처럼 지상으로 떨어졌다.
콰아아아아앙!
발생한 충격파에 아현신가 무인들이 날아간다. 그나마 주위에 있던 자들은 충격파를 버티며 살아남았지만, 유성검의 아래에 찍힌 자들은 온몸이 산산이 조각나 죽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거대한 유성검은 곧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신공세는 땀을 삐질 흘렸다.
“그게 말로만 들었던 유성검문의 유성검(流星劍)이군요. 대단한 법기입니다. 나강문의 천리경만큼 가치는 아니지만 탐이나는군요.”
천리경은 대단하다. 사용하기에 따라서 결계 내부도 훔쳐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천리경에는 한계가 있었다. 삼정의 경지만 되어도 천리경의 눈을 피할 수 있고, 실력 좋은 술법사는 역으로 추적할 수도 있다. 한계가 확실했기에 내가 가지지 않고 직성미에게 넘긴 것이다.
반면에 유성검은 사용자의 실력에 따라 위력이 달라지는 법기다. 저것만큼은 반드시 얻어야 한다.
“내가 왜 네놈에게 유성검을 떨구지 않은 지 아느냐?”
“제가 피할 것 같아서가 아닙니까?”
“네놈은 내 손으로 직접 죽일 것이다. 유성검으로 쉽게 죽일 것 같으냐?”
“시시한 이유군요. 그 법기는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아, 그 전에 성유진과 성지곤을 찾고 있는데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내 아들들은 왜 찾는 거지?”
“그들에게 배신당했습니다. 잠깐 사용하던 사냥개 주제에 주인의 손을 물었으니 대가를 치르게 해줘야지요.”
“모른다. 그리고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넌 여기서 죽을 것이니.”
성고단이 정면으로 뛰었다. 신공세가 이를 악물고 검기를 일으켜 성고단의 검을 받아쳤다. 성고단의 몸이 뒤로 밀려난다.
“과연. 내 일격은 잘 막았다. 하지만 이격은 어쩔 거지?”
“……!!”
성고단이 아래에서 신공세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그의 검이 신공세의 가슴을 찌른다.
콰앙!
성고단의 검이 튕겨 나가고, 신공세의 몸이 충격파에 뒤로 날아갔다.
“무복 안에 갑옷을 입고 있었군. 평범한 갑옷이 아니라 법기로군.”
“철하린갑(鐵蝦鱗鉀)이란 법기입니다. 수준 낮은 법기인지라 방금의 공격으로 박살 났지만요.”
“아현신가가 대단하긴 대단한 모양이야. 둘째 공자에게 법기를 내줄 줄이야.”
“우리 가문과 유성검문을 비교하지 마십시오.”
신공세가 검으로 바닥을 짚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는 이내 악을 쓰듯 주위를 향해 외쳤다.
“뭐해! 위치를 잡았으면 오십오절진(五十五節陣)을 펼쳐라!”
성고단을 포위한 무인들이 마치 하나처럼 움직이며 성고단을 서서히 조이기 시작했다.
수 십 개의 검들이 마치 하나처럼 움직이며 성고단을 공격한다. 성고단도 놀라운 실력으로 대응하고 있으나, 한 명이 수 십 명을 감당하기는 힘들었다.
성고단의 몸에 점점 상처가 쌓여 간다. 그의 무복의 절반 이상이 붉게 물들였을 때, 성고단이 유성검을 사용했다. 하늘에서 떨어진 유성검이 오십오절진의 일부를 망가뜨린다. 진법이 약해진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성고단은 도망을 시도했다.
“날 여기서 죽인다고 하더니 결국 선택한 건 도망이냐? 성고단!”
“신공세. 네놈은 반드시 죽일 테니 걱정 마라. 그날이 오늘이 아니었을 뿐이다.”
성고단이 도망치면서 뻔뻔하게 말했다. 그러나 성고단은 곧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남색 도포를 걸친 술법사들이 나타나 성고단과 아현신가의 무사들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왔군. 유성검문을 멸문시키는 진짜 세력이!’
그들이 무차별적으로 술법을 사용했다. 불덩어리를 날리고, 시커먼 저주를 날리고, 검과 창을 먼 거리에서 날렸다.
“빌어먹을! 남지문!!!”
“제기랄! 놈들은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건가?!”
성고단과 신공세가 경악했다. 그들의 공격에 무인들이 죽어 나간다.
‘이때다.’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내가 움직였다. 화련비도를 쥔 손에 힘을 주고 신공세를 향해 달려 나간다. 도중에 일루시터의 에너지가 떨어지며 내 모습이 드러났다.
“서, 성유진?!”
놀란 신공세가 검을 들어 올렸다. 허나 늦었다.
‘찰나.’
그의 검보다 빠르게 내 칼이 신공세의 목을 꿰뚫었다.
“끄으으으으으!”
신공세가 피거품을 물며 죽였다.
『특별 임무를 성공했습니다.』
『성공 보상으로 천옥 50개가 주어집니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준비해두었던 천옥 50개를 꺼냈다.
이걸로 총 100개.
“VIP 레벨 상승.”
『천옥 100개를 이용해 VIP 레벨을 올립니다.』
『VIP 1을 달성합니다.』
『VIP 레벨을 올리기 위해선 300개의 천옥이 필요합니다.』
『VIP 1을 달성 특전이 주어집니다.』
『무공의 위력이 50% 상승합니다.』
『성장률이 50% 상승합니다.』
『영약의 효과가 30% 상승합니다.』
『출석 보상이 좀 더 좋아집니다.』
‘……뭔가 변했나? 딱히 힘이 강해진 것 같진 않은데….’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는 몸을 획 돌렸다.
“문주님! 제가 신공세를 죽였습니다!”
“유진! 잘했다!”
술법사들의 공격을 피하면서 성고단을 향해 뛰어갔다.
첫 번째 목적은 달성했다. 하지만 내 목적은 처음부터 두 개였다.
‘가까이 다가가서 성고단을 죽이고 유성검을 빼앗는다!’
성고단과의 거리가 점점 좁혀진다. 30보. 10보. 5보. 1보.
‘찰나!’
적뢰가 서린 칼을 휘둘렀다. 노리는 것은 성고단의 목.
카아앙!
검과 칼이 부딪쳤다. 화련비도가 내 손에서 하늘 위로 날아갔다.
“역시 날 노리고 있었군.”
“…어떻게 알았지?”
“난 내 자식도 믿지 않는다. 특히나 성유진. 넌 너무 수상했다.”
뇌전을 사용했다.
벼락이 내려쳤다.
콰앙! 쾅! 콰앙!
세상이 번쩍거린다. 벼락은 확실하게 성고단에게 내려꽂혔다.
“소용없다.”
붉은 기운이 그의 몸을 감싸며 벼락을 막아내고 있었다. 호신기(護身氣)다.
“자식이 아비를 죽이려고 한 그 패륜. 목숨으로 갚거라.”
“찰나!”
찰나를 썼음에도 그의 검이 이쪽으로 향해 빠르게 날아오는 게 보였다. 유성검법을 알기에 이 공격이 연계기의 시작이란 걸 알고 있다. 처음 일격을 피하더라도 다음 공격이 쉬지 않고 날아온다.
‘화련비도는 저 멀리 떨어져 있고, 인벤토리에서 새로운 검을 꺼내기엔 시간이 부족해. 그 전에 내 몸이 썰리고 말겠지. 꺼림칙 하지만… 방법은 이것뿐이야.’
나는 천마신공을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