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1화 〉 611. 광명승천도
611. 광명승천도
천마신공을 사용했다.
내기(內氣)를 천마기(天魔氣)로 전환한다. 원래는 시간을 들여 몸에 맞게 천천히 전환해야 하는데, 지금 그럴 시간이 없기에 억지로 강제로 전환 시켰다. 덕분에 내상을 입었다. 치명적인 건 아니지만, 전투를 오랫동안 끌고 가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성공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수라(天魔修羅).
양손에 천마기를 끌어올리고 성고단의 검을 붙잡았다. 성고단의 검기는 천마기를 뚫지 못했다.
“그 불길함이 느껴지는 무공은 무엇이냐!”
천마신공의 위험성을 본능적으로 안 것일까. 성고단이 당황하며 소리쳤다.
“저승길 선물로 알려주지. 천마신공이다.”
“건방진 패륜아 놈이!”
성고단이 뒤로 물러나면서 유성검을 사용한다. 하늘에서 붉은 기운을 품은 거대한 검이 나를 향해 떨어진다.
천마신공을 운용하고 있는 지금, 이상하게도 저 유성검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용권(竜拳).
거대한 검끝을 향해 주먹을 내지른다. 압축된 천마기가 정면으로 뻗어 나간다. 용권이 유성검의 중심을 꿰뚫는다. 유성검의 검신에 금이 가더니 산산이 부서져 바닥에 떨어지다가 사라졌다.
“마, 말도 안 된다! 대체 무슨 사술을 쓴 것이냐!”
“꼭 엑스트라들이 자기 상식에 안 맞으면 사술이라 하더라.”
솔직하게 말해서 나도 지금 상황이 잘 이해 가지 않았다. 천마신공의 위력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했다.
짐작 가는 건 세 가지. 내가 지금까지 복용해온 영약. 혹은 이 세계가 무공에 특화되어 있거나. 마지막은 천강성 시스템의 영향.
‘천강성 시스템 VIP 1이 되면서 무공의 위력이 50% 상승했지. 천마신공 또한 결국은 무공이니.’
쿨럭.
입에서 시커먼 피가 올라왔다. 내상이 점점 심해진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내 계획대로 진행하기 위해선 완전 회복은 지금 쓸 수는 없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용권(竜拳).
거리를 벌리는 성고단을 향해 용권을 내질렀다. 용권이 도망치는 그의 옆구리를 꿰뚫는다. 가슴을 노렸는데 놈이 몸을 비틀어 치명상을 피한 것이다.
나는 그의 앞으로 다가가 멱살을 잡았다. 그가 검을 휘두르며 저항하지만, 아까처럼 위력적이지 않다. 주먹으로 검을 쳐냈다. 어이없을 만큼 쉬울 정도로 성고단의 검이 저 멀리 날아갔다. 아현신가의 무인들을 상대하며 성고단 또한 지친 것이다.
“유, 유진아. 진정하거라. 나는 네 아비다! 우리 사이에 무언가 오해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진정하고 대화로 해결하자꾸나…!”
“이런 놈인 건 원작을 통해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보니 더 구차하군. 그냥 죽어.”
“유진… 커억!”
성고단의 목을 잡아 옆으로 꺾고 명치를 퍽 때렸다. 자비를 베풀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이놈이 살아 있으면 내가 더 곤란해진다.
성고단을 죽인 나는 놈의 팔에서 유성검을 빼앗았다. 팔찌 형태의 법기. 정확하게는 팔찌에 장식된 은색검이 유성검의 본체다.
“쿨럭. 쿨럭.”
기침했다. 당연하다는 듯이 피가 입 밖으로 쏟아진다.
『사용자의 무공, 천마신공(天魔神功)의 오류를 발견했습니다.』
『천마신공의 오류를 수정합니다.』
‘오류?’
나는 두 눈을 번쩍 떴다.
내가 알고 있는 천마신공의 구결의 일부가 변한다. 변화된 구결대로 천마신공을 운용하자 내상이 약간 완화되면서 상태가 편해졌다.
‘뭐지. 효율이 더 좋아지긴 했는데 딱히 오류라고 하기엔….’
오히려 천마신공에 숨겨져 있던 것이 드러나고 진화한 느낌이다.
‘그게 아니면 내가 깨닫지 못하거나. 천마신공의 마성과 관련된 일일지도 모르지.’
절대 정신을 가지고 있는 나는 천마신공의 마성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천강성 시스템이 천마신공의 오류를 수정하며 마성 문제가 해결된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아직 상황은 해결된 게 아니었다. 유성검문을 포위하고 있는 남지문이 남아 있었다.
“볼만한 촌극이었다.”
남지문의 대표 한 명이 내게 말했다. 다른 남지문의 술법사들 보다 복장이 화려하고 보석이 박힌 지팡이를 손에 든 노인이었다.
무려 남지문의 문주인 갈마식이다.
“남지문의 문주께서 제게 말을 다 걸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흥. 긴말하지 않겠다. 유성검을 내놓아라.”
“유성검은 유성검문의 법기입니다. 제가 미쳤다고 드리겠습니다?”
“제 아비를 죽인 패륜아가 도리를 따지는구나. 억지로라도 가져가겠다.”
나는 팔찌를 찼다. 팔찌에 천마기를 사용해 유성검을 소환한다. 천마기의 소모가 생각보다 극심하다. 그리고 유성검은 한 번 사용하고 나서 다시 사용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대기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하늘에 크고 시커먼 검이 나타났다. 유성검이 새까만 건 천마신공의 영향이리라. 유성검이 남지문주 갈마식을 향해 떨어졌다.
“같잖다.”
갈마식이 손에 든 지팡이에 장식된 보석들이 빛난다. 그리고 갈마식의 머리 위로 커다란 금강석이 나타나 유성검을 막아낸다. 유성검은 금강석을 꿰뚫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져 역소환 되었다.
술법이 아니다. 갈마식이 가지고 있는 지팡이의 효과다. 저 지팡이도 법기인 것이다.
“놈을 붙잡아라. 놈은 유성검문주에 비해 약해 빠졌다! 함부로 공격했다가 법기가 부서질 수도 있다. 그 상황만큼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네. 문주님!”
술법사들이 나를 향해 포위하며 서서히 다가온다. 나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화련비도를 회수하고 몸을 꼿꼿이 세웠다.
이놈들을 내버려 두고 공간 이동 주문서를 사용해 도망갈 수는 없다. 이놈들은 이후에도 집요하게 나를 쫓을 테니까. 여기서 놈들을 정리해야 한다.
나는 주머니 속에서 폭탄 스위치를 꺼냈다.
‘나는 원작을 통해 아현신가와 남지문이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 다만 원래라면 직가표국도 복수를 명목으로 병력을 이끌고 왔어야 하는데 원작이 조금 변해서 오지 않았어.’
적들이 오는 걸 뻔히 알고 있는데 아무런 대비도 안 했을 리가 있나.
이미 유성검문 곳곳에 폭탄을 설치해뒀다. 유성검문 자체를 날려버리기에 충분한 폭탄들을.
‘설치하기 편했지. 이세계의 사람들은 현대의 폭탄이 뭔지도 모르니까.’
땅 밑, 지붕 아래, 벽 속, 나무 상자 안 등등 온갖 곳을 폭탄을 설치해뒀다.
나는 유성검과 화련비도를 인벤토리에 넣었다. 그리고 폭탄 스위치를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천마는 위대하다!”
꾸욱.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폭발이 일어났다. 천둥소리보다 더 시끄러운 굉음이 사방으로 터진다. 유성검문 자체가 날아가고 산에 불길이 치솟는다.
경악하는 적들이 폭발에 휘말려 몸이 부서지고 날아간다. 물론 나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순 없었다.
‘이것이 자폭…!!’
[죽음 저항이 발동했습니다. 앞으로 15초간 죽지 않습니다.]
나는 죽으면서 갈마식을 쳐다봤다.
갈마식은 다른 술법사들과 다르게 술법과 법기를 이용해 스스로의 몸을 폭발로부터 보호하고 있었다. 오기(五氣)의 경지에 오른 건 폼이 아닌 것이다.
‘역시 현대 무기로 오기 이상의 강자를 죽이는 건 힘들군.’
그래도 갈마식은 폭발의 여파를 완벽히 막아내진 못했다.
갈마식은 술법으로 자신의 모습을 학으로 바꿔 힘차게 날갯짓을 하며 불길이 치솟는 이곳에서 힘차게 도망가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정신을 못 차리는 놈을 습격해 죽일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성공은 했다.’
갈마식은 내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내가 죽었다고 생각할 테니 이후에 나를 추적하려 들진 않을 것이다.
‘놈의 법기도 뺏어야 하는데… 아쉽군.’
[완전 회복을 사용합니다.]
몸을 회복한 나는 스마트폰을 들었다. 이 폭발과 화염속에서도 스마트폰은 흠집 하나 없다.
인벤토리에서 공간 이동 주문서를 꺼내 찢었다.
???
학으로 변신한 갈마식은 서둘러 도망갔다.
‘미친 자식! 폭약을 이용해 유성검문 전체와 자폭할 줄이야! 그놈 때문에 내가 직접 움직인 것에 비해 얻은 건 없다!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야!’
생각할수록 열 받는다. 유성검문의 멸문은 기본이었고 아현신가에 극심한 피해를 입히고, 유성검문의 법기를 빼앗는 것이 본래 목적이었다. 그러나 법기는 얻기는커녕 남지문의 술법사들만 죽어 나갔다.
‘오늘 얻은 피해를 복구하려면 최소 30년은 필요하다…!’
갈마진은 하늘을 날면서 이번의 손해를 어떻게 메꿀지 생각에 잠겼다. 그렇기에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검을 보고 뒤늦게 반응했다.
‘헉!’
몸을 비틀었으나 검은 그의 한쪽 날개를 관통했다. 그는 하늘을 날지 못하고 바닥으로 추락했다.
‘지금 변신을 풀면 죽을 수도 있다! 최대한 가벼운 상태로 떨어진 뒤에 변신을 풀어야 한다!’
다행히 아래에 있는 풍성한 나무가 쿠션 역할을 해주었다. 비록 몸 곳곳에 긁힌 상처가 났지만, 중상은 피할 수 있었다.
바닥에 추락한 그는 변신을 풀고 본래의 인간의 몸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몸은 정상이 아니었다. 오른쪽 어깨에 검에 꿰뚫린 상처가 있고 몸 곳곳에 긁힌 상처가 가득했다. 학으로 변했을 때 입은 상처가 그대로 그의 몸으로 이어진 것이다.
‘대체 어떤 놈이 검을…! 찾아내서 수십 개의 검으로 온몸을 꿰뚫어 죽여버릴 것이다…!’
찾을 필요는 없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검은 던진 범인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뵙네요. 남지문주. 거의 10년만인가요. 그때나 지금이나 욕심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역겨운 얼굴이군요.”
검은색 긴 머리를 땋은 미녀였다.
“너, 너는 직성미…?!”
직가표국의 장녀인 직성미였다.
“길게 묻지 않을게요. 그는 어떻게 됐죠?”
“……그? 신공세를 말하는 것이냐? 유성검문주를 말하는 것이냐?”
“둘 다 아니에요. 그들보다 더 대단한 인물이 있을 텐데요.”
“있긴 했지. 이름이 성유진이었던가? 신공세와 유성검문주가 그 어린놈의 손에 죽었으니까. 그놈을 찾는 거라면 이미 늦었다. 놈은 폭약을 설치해 자폭했다. 내 생전에 그놈 같은 미친놈은 처음 봤다.”
“……그는 죽었나요?”
“뭐냐. 정이라도 있는 게냐? 그거참 안 됐군. 놈이 몸이 폭발에 휩쓸려 토막 나는 것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아쉽네요. 그에게 물어볼 게 있었는데….”
직성미가 검을 휘둘렀다. 갈마식의 오른팔이 바닥에 툭 덜어진다.
“끄아아악!”
“당신이 수인을 맺고 있다는 걸 모를 줄 알았나요?”
“이 빌어먹을 년…! 내가 몸만 정상이었어도 너 같은 년 따윈…!”
“정상이어도 당신은 죽었을 테죠.”
직성미의 주위에 무인들이 나타났다. 어림잡아 수십 명이 넘는 무인들이었다. 직성미 혼자였다면 모를까. 지금 몸 상태로 수십 명의 무인들을 뚫고 살아나갈 방법은 없었다. 갈마식은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설마, 여기서 날 죽일 생각이냐?”
“남지문주를 간단히 죽일 수 있는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죠.”
“어리석은 선택이다! 내가 죽으면 남지문이 가만히 있을 줄 아느냐?! 남지문을 적으로 돌릴 것이냐?!”
“당신은 유성검문에서 싸우다 죽었어요. 유성검문은 멸문한 것이나 다름없는 피해를 입었으니…. 아현신가가 복수의 표적이 되겠죠. 이것도 남지문이 복수를 택했을 때의 일이죠. 당신의 평판이 남지문 내에서도 최악이란 걸 알고 있어요. 당신이 죽어도 누구 한 명 슬퍼하지 않겠죠.”
직성미가 검을 들었다. 푸른 검기가 불꽃처럼 활활 타오른다.
갈마식은 당황하며 서둘러 말했다.
“살려다오! 날 살려준다면 남지문은 직가표국과 손을 잡아 아현신가를 멸문시킬 것이다! 너희들도 아현신가가 거슬리지 않았더냐? 결코 손해 보는 거래가 아닐 것이다! 냉철하게 생각하거라!”
“…….”
직성미가 멈췄다.
갈마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곧 그가 두 눈을 부릅떴다. 직성미의 검이 내려와 그의 어깨와 배를 가른 것이다.
“왜, 왜냐…?!”
“아현신가보다 믿을 수 없는 곳이 남지문이니까요. 특히 남지문주, 당신을 믿을 바엔 신공세를 믿겠어요.”
“어리석은 것…!”
직성미는 갈마식의 보석 박힌 지팡이를 회수했다.
“어리석은 건 당신이겠죠. 남지문의 보황장(寶晃杖)은 우리 직가표국이 잘 사용하겠어요.”
그녀는 이윽고 몸을 돌렸다. 저 멀리서 불에 타고 있는 산과 연기로 인해 새까맣게 변한 하늘이 보였다.
“아가씨. 직가표국으로 귀환합니까?”
“유성검문에 확인할 게 있습니다. 산불을 진압하며 후단시에 빚을 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유성검문이 사라진 이상 후단시의 주인이 우리가 될 수 있으니까요.”
산불이 멎은 뒤, 유성검문을 둘러봤으나 직성미가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시체 또한 새까맣게 타서 누가 누구인지 구분할 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