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8화 〉 618. 신의 아틀란티스
618. 신의 아틀란티스
제국오공(帝國五公)
유스티아 제국을 떠받치는 다섯 명의 공작.
천년공(千年公), 수의공(水衣公), 우검공(愚劍公). 철한공(鐵漢公), 환상공(幻想公).
이 중에서 천년공이 가장 오래되었으며, 환상공인 엘레나는 제국오공이 된 지 불과 몇 년밖에 되지 않는다.
내가 엘레나에게 받은 임무는 제국오공 중 한 명, 우검공에게 서한을 보내는 일이다.
그깟 일을 왜 나를 통해 시키는가.
‘우검공의 구역은 공간 이동 주문서로 갈 수 없는 곳이지. 거기다 위험하고 외진 곳에 있는지라 웬만한 기사나 병사를 보내봤자 죽을 뿐이지.’
무엇보다 현재 엘레나를 사사건건 방해하는 존재가 있었다. 절대권력을 원하는 황태자. 제국오공이 손을 잡는 것만큼은 반드시 피해야 할 것이다.
‘후우. 최소 며칠은 고생할 것 같군. 일이 중요하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자동 진행을 사용하기도 꺼려지고….’
다그닥. 다그닥.
나는 받은 말의 고삐를 휘두르며 땅을 내달렸다.
그러나 반나절 만에 말에서 내려야 했다. 내 의지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말이 나를 버리고 도망친 것이다. 그러나 말이 아무 이유 없이 나를 버린 건 아니었다. 말은 누군가에 의해 마치 세뇌당한 것처럼 행동했다.
“이 빌어먹을 새끼가….”
나는 하늘을 쳐다봤다.
흑마가 있었다. 다리가 8개에 검은 연기를 휘감은 흑마는 나를 보며 입가를 끌어 올린다.
「월드 리프(僞)가 당신을 비웃습니다.」
월드 리프.
슬레이프니르.
나는 예전에 천공의 주인의 재촉으로 놈을 죽이려고 시도했던 적이 있다. 나는 그때 실패했고, 슬레이프니르는 앙심을 품고 날 방해하는 것이다.
“뇌전!”
슬레이프니르를 향해 번개를 떨어뜨렸다. 그러나 놈은 평범한 하늘을 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하늘을 요리조리 달리며 내 벼락들을 모조리 피하며 사라졌다.
“…젠장!”
나는 혀를 찼다.
도망친 말을 따라가서 다시 붙잡는다? 그러고 싶은데 그 말은 평범한 말이 아니었다. 이름은 까먹었지만, 일주일 내내 달려도 지치지 않는다는 말이다. 속도도 빨라서 내가 말을 따라가는 건 불가능하다.
‘오토바이나 헬기를 꺼내버려?’
고민하다가 관뒀다.
안 그래도 요즘 시스템이 날 주시하고 있는게 느껴지는데 눈에 띄는 짓을 하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이상한 소문이라도 나면 귀찮아져.’
나는 터덜터덜 길을 걷기 시작하다가 단순히 걸을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자동 진행을 사용했다.
???
“샌님 혼자 어딜 가시나?”
“…….”
눈앞에 도적 떼가 나타났다.
나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도적들을 쳐다봤다. 꼬질꼬질한 옷을 입은 시커먼 남자 놈들. 15명 정도 되는데 여자는 한 명도 없다.
원래라면 보자마자 문답무용으로 죽여버렸을 것이다.
“야. 누가 날 죽이라고 명령했냐?”
그런데 나는 오늘만 네 번째로 도적 떼와 마주치는 것이다. 처음 세 번째 습격까지는 그러려니 했다. 원래 이 주위는 땅이 척박해서 도적 떼가 많으니까.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반나절만에 4번의 습격을 받으면 나라도 의심이 생긴다.
“누가 감히 우리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나! 우릴 모욕 하지 마라!”
“도적놈들이 모욕 운운하기는. 진짜 날 습격받으란 명령을 받은 건 아니란 거지?”
“네놈이 우릴 구역으로 찾아온 것이다! 죽기 싫어도 목숨을 구걸하지 마라! 널 죽이고 가진 것들을 모조리 털어가겠다!”
“이 머저리 새끼들은 내가 걸친 망토가 뭔지도 모르나.”
내가 짜증스레 중얼거렸다.
현재 나는 하얀 바탕에 푸른 나비가 자수 된 망토를 걸치고 있다. 제국인이라면 동네 꼬마도 푸른 나비가 발데르트 가문을 뜻한다는 걸 안다.
“크크. 너 같은 천박한 놈이 발데르트 가문의 기사라고 주장할 셈이냐? 난 너 같은 놈을 잘 안다고. 넌 결코 기사가 될만한 인물이 아니야. 사기꾼놈아, 발데르트가 널 쫓기 전에 우리가 죽여주는 걸 다행으로 여겨라!”
“……즉, 내가 좆밥으로 보였다는 거군.”
“놈을 죽여라!”
인벤토리에서 최근 연습하고 있는 창을 꺼내 들고 도적 떼 놈들과 전투를 벌였다.
‘편하다.’
창의 긴 사정거리를 이용하니 전투가 쉬웠다. 대부분 검을 차고 있는 도적놈들은 내게 접근하기도 전에 창에 베이거나 찔리며 명을 달리했다.
“허, 허억…! 진, 진짜 발데르트의 기사?!”
1분도 지나지 않아 부하들을 모두 잃은 도적 두목이 경악한다. 그는 내 눈치를 살피더니 이내 몸을 돌려서 전속력으로 달아났다.
‘멍청하긴. 진짜 나한테서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투창 자세를 잡는다. 양산품이라도 드워프가 만든 창이라 그런지 손에 휘감기는 맛이 제법 일품이다.
‘아스트라페.’
창에 뇌전이 서렸다. 나는 허겁지겁 도망치는 도적 두목에게 창을 내던졌다. 천둥소리와 함께 허공을 가르며 벼락처럼 날아간 창은 정확히 두목의 몸을 관통했다.
결과는 생각보다 끔찍했다. 두목의 몸이 산산조각나며 그 육편이 사방으로 튄 것이다.
‘마나를 좀 많이 사용했어도 이 위력은 이건 예상 밖이군. 아스트라페 때문인가?’
나는 터벅터벅 걸어가 창을 회수하고 다시 가던 길을 걸어갔다.
???
제법 큰 마을에 도착했다.
사흘간 걸었기에 오늘은 이 마을에서 쉬다가 내일 다시 출발할 생각이었다.
‘창관은 당연히 있겠지? 없더라도 이 정도 크기의 마을이면 미녀가 제법 있겠지.’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사람들이 나를 쳐다봤다.
“…….”
그들은 조용히 나를 관찰했다. 이방인을 반기는 마을은 아닌 모양이다.
“건방지군.”
나는 망토를 펄럭이며 들으라는 듯이 중얼거렸다. 마을 사람들이 흠칫 놀라며 시선을 아래로 처박았다.
현재 내 신분은 발데르트 공작가의 기사. 평민들보다 높은 신분이다.
“이 몸 께서 이딴 허름한 마을에 방문해주었으니 촌장의 감사 인사를 받는 게 마땅한 도리겠지. 촌장을 불러와라.”
“네. 네. 기사님!”
기껏 발데르트의 기사 신분을 얻었는데 갑질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근엄하게 팔짱을 끼며 촌장을 기다렸다. 그때, 한 남자아이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손에는 꽃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기, 기사님. 꽃이 필요하시지 않으신가요?”
“필요 없다.”
“기사님! 제, 제발 꽃을 사주세요! 사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어요!”
남자아이가 내 왼쪽 다리를 붙잡았다. 화가 치민 내가 왼쪽 다리를 흔들어 남자아이를 발로 찼다.
”아아악!”
남자아이가 나가떨어졌다. 이래 보여도 자비를 보였다. 힘 조절을 하고 발로 찬 것이다.
“죄, 죄송합니다. 살려주세요! 기사님! 살려주세요!”
“과연. 거지라 그런지 머리를 조아리는 실력이 뛰어나군. 살려주마.”
나는 주위를 힐끗 거렸다.
‘지켜보고 있는 마을 여자들도 알았겠지. 나의 이 너그러운 자비심을.’
그러다 한 여자아이를 발견했다. 허름한 옷을 걸쳤으며 손에 꽃바구니 들고 있다. 나와 두 눈이 부딪히자마자 몸을 떨며 뒷걸음질 친다. 나는 여자아이에게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레이디. 마침 꽃이 필요합니다만, 그 꽃을 제게 파시지 않겠습니까?”
“어, 어, 그… 그게….”
여자아이가 당황한다. 가까이서 보니 더욱 확신할 수 있다. 미래에 미녀가 될 여자다.
나는 바구니의 꽃들을 움켜쥐고 대신 돈을 바구니에 넣어주었다.
‘이 꽃들은….’
딱히 필요 없었다.
나는 아직까지 바닥에 엎드리고 있는 남자아이에게 꽃을 뿌렸다.
“꽃을 좋아하는 것 같으니 선물로 주마. 받아라.”
다시 주위를 둘러본다. 나와 두 눈을 마주치려는 마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저 멀리서 늙은 남자가 헐레벌떡 걸어오는 꼴이 보였다. 분위기로 보나 타이밍으로 보나 이 마을의 촌장이다.
“죄, 죄송합니다! 감히 제가 기사님을 기다리게 했습니다!”
“괜찮다. 나는 여기까지 오느라 쉬지 않고 걸었다. 피로가 쌓였으니 이 마을에서 푹 쉬고 싶군.”
“여관을 안내하겠습니다!”
“촌장. 네가 이 마을의 대표자니 가장 좋은 집을 가지고 있겠지? 너의 집에서 신세 좀 지겠다.”
“저희 집은 기사님이 머무시기엔 너무 누추합니다! 마을에서 가장 좋은 여관을 안내하겠습니다! 기사님이 찾아온 것은 정말 오랜만이니 여관주인도 여관비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촌장은 어느 정도 내 성격을 파악한 듯싶었다.
“날 너무 파렴치한으로 보는 것 같군. 숙박비라면 당연히 내겠다.”
돈주머니를 꺼냈다. 주머니 속에선 돈이 반짝반짝거린다. 총 100만 페니. 한화로 약 1,000만 원.
이런 가난한 마을에선 이 돈도 굉장히 큰돈이다. 마을 주민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된다.
“촌장. 네 집에 오늘 하루 머물게 해주면… 이 돈은 모두 네 것이다. 아, 물론 내 시중을 들어줘야겠다만, 추가로 팁을 줄 수도 있다.”
“기사님을 저희 집으로 모시겠습니다!”
“크크. 그럴 줄 알았다.”
나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돈을 아끼려고 번 돈이 아니었다. 모두 사용하기 위해 돈을 버는 거다.
촌장의 집에 도착했다. 근처에 있는 다른 집보다 좋은 집이긴 했다.
“기사님!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바로 아내와 며느리를 시켜 가장 좋은 방을 청소시키겠습니다!”
“흐음. 알겠다.”
나는 실망스레 대답했다. 촌장의 뒤쪽에 보이는 며느리라는 여자는 나이 들고 평범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내 취향이 아니었다.
“촌장.”
“네. 기사님.”
“처녀든, 과부든, 유부녀든 상관없다. 미녀를 데려와라. 그리고 미녀는 많으면 많을수록 더 좋다.”
“그건….”
촌장이 말끝을 흐리고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건장한 남자가 미녀를 찾는 이유는 심플하니 촌장이 모를 리가 없었다.
나는 촌장에게 주머니를 보여주었다. 아까 보여준 돈주머니가 아니다. 찬란한 보석이 가득 든 주머니다.
촌장의 두 눈이 부릅떠진다.
이 정도의 보석이면 이 마을 전체를 사고도 남을 정도의 양이다.
“여자의 아름다움에 따라 보석을 주지. 촌장에게 하나. 미녀에게 하나. 이 보석 1개의 가치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겠지?”
“네. 네. 물론입니다. 기사님.”
촌장의 눈동자에 탐욕이 이글거린다. 늙었다고 해서 현명해지는 것도 아니고 욕심에 초탈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날 만족시키는 미녀라면 보석은 더 줄 수도 있다. 3시간 내로 데려와라. 이 마을에서 오랫동안 군림해온 촌장만 믿고 기다리지.”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겠습니다!”
촌장이 다급하게 집 밖으로 나갔다. 머릿속에 몇 명의 여자들을 떠올린 모양이다.
나는 정리된 침대 위에 앉아서 느긋하게 미녀를 기다렸다.
촌장은 약 1시간 만에 돌아왔다. 그의 옆에는 망토를 뒤집어쓴 여자가 있었다.
“촌장. 내가 말한 조건은 잊은 건 아니지?”
“만족하실 겁니다! 리델라! 기사님의 앞이다! 망토를 벗거라!”
“네.”
나긋하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일단 목소리는 합격.’
망토가 아래로 떨어진다.
찬란히 빛나는 긴 금발과 한 차례 물결친다. 그리고 녹색의 눈동자가 내게 향했다. 피부는 하얗고 이목구비는 뚜렷하다. 눈꼬리가 살짝 쳐져서 그런지 부드러운 분위기를 흘린다.
“…대단하군. 설마 이런 마을에 이 정도의 미녀가 있을 줄이야.”
“예. 예. 마을 최고의 미녀입니다. 설득하느라 무척 힘들었습니다.”
나는 보석 5개를 촌장에게 주고, 나머지 5개를 리델라에게 줬다.
“감사합니다! 기사님!”
“나가라.”
“네! 즐거운 시간 보내십시오!”
촌장이 희희낙락하며 방 밖으로 나갔다. 나는 여자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물었다.
“자기 소개 좀 하지.”
“리델라에요. 얼마 전에 성인식을 치렀어요.”
“처녀인가?”
“……네.”
리델라가 뺨을 살짝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먼저 옷을 벗기 시작하자, 그녀도 망설이더니 옷을 벗었다. 가슴은 B컵 정도고 허리는 잘록했다. 다리가 길어서 모델 같은 느낌을 풍겼다.
속옷에 묻어 있는 물기를 보니 이곳에 오기 전에 샤워를 하고 온 것 같다.
그녀는 속옷을 바로 벗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너 정도 되는 미녀가 찾아올 줄 몰랐다. 돈이 그렇게 필요했나?”
“……전 이 마을을 벗어나서 도시에서 살고 싶어요. 그러려면 돈이 필요해요.”
“하긴. 네 외모로 여기에 썩는 건 아깝지.”
쭈뼛거리며 서 있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내 손이 자연스럽게 그녀의 사타구니에 향했다. 손가락은 부드러운 금색 치모를 쓰다듬으며 더 아래쪽의 은밀한 곳으로 들어갔다. 손가락으로 처녀막을 확인한 내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푸욱!
날카로운 나이프가 내 심장을 찔렀다.
반사적으로 리델라의 얼굴을 쳐다본다. 처녀의 부끄러운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냉혹한 암살자의 눈빛이 날 쳐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