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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1 - 621. 신의 아틀란티스 (401/2,000)

〈 621화 〉 621. 신의 아틀란티스

621. 신의 아틀란티스

“지금이다! 결계를 쳐라!!”

놈의 외침에 따라 암살자들이 묘한 움직임을 보였다. 나를 포위하는 듯하더니 갑자기 흩어진 것이다. 그리고 주위가 갑자기 어두워졌다. 결계에 갇힌 것이다.

‘암살자들 주제에 결계라.’

놀랍지는 않았다. 오히려 암살자 주제에 이런 결계를 사용한다는 점이 감탄스럽다.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리델라가 몸을 덜덜 떨며 불안에 떨고 있었다.

“왜 그렇게 떨어?”

“겨, 결계에 대해서 들은 적 있어요. 갈증의 정예 암살자들이 펼치는 결계는 상대가 누가 됐든 반드시 죽인다고….”

“과장이 심하군. 그게 아니면 어중간한 놈들에게만 지금 이 수법을 사용했거나.”

나는 왼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잡아 내 품 안으로 잡아당겼다. 왼쪽에서 그녀를 노렸던 암살자의 단검이 허공을 가른다.

“아…!”

저들이 노리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갈증 레기온의 입장에서 리델라는 배신자였다.

‘내 좆집을 저딴 놈들한테서 빼앗길 수 없지.’

칼을 휘둘러 리델라를 노렸던 암살자의 몸을 찔렀다. 피가 튀며 시체가 바닥에 쓰러진다.

‘이건 그리 대단한 결계가 아니야. 그냥 눈만 속이는 결계지. 그리고 암살자들은 단순히 기척을 숨기고 틈을 보고 있을 뿐.’

이 결계를 깨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예전의 나였다면 모 만화에 나오는 전기쥐처럼 사방팔방으로 뇌전을 내뿜어 숨어 있는 암살자들을 감전시켰을 것이다. 그게 나쁜 방법이란 건 아니다. 단지, 마나 소모가 너무 큰 비효율적인 일이라는 거지.

나는 오른발을 위로 들어 올렸다. 몸속의 천마기가 요동친다. 이 이상 했다가는 내상을 입을 것이다.

‘이게 지금의 내 한계인가. 천마신공이 SSS 랭크가 되었는데도 부족하군.’

그래도 한 발짝 정도라면 내디딜 수 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쿵.

진각을 밟는 순간 사방으로 압력이 가해지고 결계가 깨져나간다. 주위가 밝아지고 수 십 명의 암살자들이 피를 토하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본래라면 천마군림보를 펼친 순간부터 이 공간 전체를 지배해야 하지만, 그러기엔 내 역량이 부족하다.

“무슨 수를 쓴 거냐…!”

갈증 레기온의 마스터가 이를 악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입과 코, 귀에서 피가 줄줄 나오고 있었다.

“보면 모르나. 보법을 썼다.”

“웃기지 마라…! 고작 보법 따위에 결계가 박살 날 것 같으냐!”

“수준 낮은 결계니까 그렇지.”

더이상 놈을 살려둘 이유가 없었다. 칼을 휘둘러 놈의 머리를 베어냈다.

‘그리고 남은 것들도 처리해야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암살자 놈들을 하나, 하나 죽여갔다. 날 죽이려 한 것들이니 자비를 베풀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암살자를 모조리 죽인 나는 고개를 위로 올렸다.

언덕 위에 지어진 작은 성이 보였다. 저 성안에 에스토르 남작이 있을 것이다.

“가자. 리델라.”

“어, 어디를 말인가요?”

“어디긴. 저 성이지.”

“정말로 에스토르 남작까지 죽일 생각이신가요…?!”

“날 죽이기 위해 암살자를 고용한 놈이야. 살려둘 수 없지.”

“에스토르 남작이 의뢰주가 아닐 수도 있잖아요.”

“십중팔구 그놈이야.”

성문에서 나를 막아서는 반응만 봐도 알 수 있다.

일개 남작이 같잖은 이유로 발데르트의 기사를 막아선다? 찔리는 일이 없다면 시도조차 하지 않을 일이다.

성으로 가는 길은 조용하지 않았다.

호기심 많은 시민이 나를 주목하며,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닌 것이다. 나는 그들을 내버려 두었다. 내 길을 가로막는 것도 아니니 전부 죽일 이유는 없었다.

리델라는 내 옆에서 걸어가면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얼굴을 보니 생각이 보인다. 자신의 인생이 꼬일 대로 꼬였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성 입구에서 기사와 병사들이 있었다.

5명의 기사들은 갑옷과 검을 차고 당장이라도 내게 달려들 분위기를 흘리고 있고, 그 뒤쪽에 500명이 넘는 병사들이 도열해있다.

나는 화련비도를 꺼내 들었다. 내가 칼을 손에 쥐자 분위기는 살벌해지며 일촉즉발의 순간만을 기다린다.

“본인은 에스토르 남작님의 기사인 골베르라 하오. 경의 이름은 무엇이오?”

한 기사가 앞으로 나섰다. 나이는 대략 40대로 보이는 중년인이었다. 내 기감이 말하고 있다. 저들 중에서 가장 강한 인물이 바로 그라고.

“엘레나 발데르트 공작 각하의 기사인 성유진이다.”

“성유진 경.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돌아가시오.”

“음? 돌아가라?”

뜻밖이었다.

나는 성문을 박살 내고 병사를 죽였다. 에스토르 남작 입장에서 자신의 영지를 침략당한 것이다. 그리고 침략자에게 마땅한 응징을 내리는 것도 영주의 일이다.

“에스토르 남작님께선 이번 일을 불문에 부치기로 했소.”

정상적인 판단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판단을 내리는 이유는 딱 하나.

‘에스토르 남작이 겁에 질렸군.’

어떻게 보면 현명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대로 물러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에스토르 남작은 안에 있나? 직접 만나고 싶다. 독대를 청한다.”

“불가하오. 현재 에스토르 남작님은 병환으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요. 에스토르 남작님에겐 안정이 필요하오.”

“그 말을 내가 믿으라고?”

“경이 에스토르 남작님에게 독대를 청하는 이유를 본인이 모를 것 같소?”

나와 골베르는 서로를 노려봤다.

“경. 돌아가시오. 에스토르 남작님께선 이번 일을 불문에 부치기로 했으니, 경에게 문제가 될 일은 아무것도 없지 않소.”

“나는 이번 일을 넘어갈 생각이 없다.”

“보상을 하겠소. 2,000만 페니를 지금 당장 드리겠소.”

한화로 2억.

허나 내 눈동자는 싸늘하기만 하다. 날 죽이려고 했으면서 고작 2,000만 페니? 에스토르 남작이나 눈앞의 기사나 정신을 못 차린 게 분명했다.

“나를 모욕하는군. 내가 돈에 눈이 먼 기사로 보이나?”

“여자에 눈이 먼 기사라는 말은 들었소.”

“…….”

사실이라 부정할 수가 없었다.

“2,000만 페니면 도시 내의 미녀를 마음껏 품에 안을 수 있을 것이오. 그리고 경. 경이 여기까지 오면서 죽인 병사들은 생각하시오. 에스토르 남작님은 경에게 많은 것을 양보하고 있소.”

“양보? 웃기는군. 내 눈에는 죽기 싫어서 발악하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는군!”

“경! 에스토르 남작님을 모욕하지 마시오!”

“에스토르 남작은 오늘 내 손에 죽을 거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검(天魔劍).

검은색 검강이 칼신 위에 나타났다.

검강을 본 골베르의 안색이 딱딱하게 변한다. 그는 이내 검을 뽑아 들고 푸른 검기를 짜냈다.

“상대는 단장급의 무력을 가지고 있다! 방심하지 마라! 그리고 물러서지 마라! 우리의 주군은 에스토르 남작님이시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에스토르 남작님을 지켜라!”

골베르가 외친다. 어떻게든 병사들의 사기를 끌어 올리려고 한다. 그러나 효과는 별로 없었다. 그들의 주군은 겁에 성안에 처박혀 있는데 사기가 오를 리가 있나.

나는 칼을 내세우며 골베르를 향해 달려들었다. 적들의 사기가 낮으니 우두머리만 해치운다면 나머지를 상대하기 쉬워질 것이다.

골베르의 검과 내 칼이 부딪쳤다. 골베르의 검이 튕겨 나간다. 자세히 보면 검신의 절반이 잘려 나간 뒤였다. 검강을 받아내기엔 그의 검기로는 부족했다. 검의 품질이라도 좋아야 하는데 골베르의 검은 아무리 좋게 봐줘도 양산품에 불과했다.

‘그래도 실력만큼은 제법이군.’

다른 기사들이 합공한다곤 하나 골베르는 내 공격을 연신 막아냈다.

‘그것도 이제 한계지만.’

골베르의 검이 부서진다.

‘찰나.’

양옆에서 달려드는 기사 2명의 몸을 갑옷과 함께 베어내고, 골베르의 복부에 검을 찔러 넣었다.

“못 간다…!”

골베르는 죽어가면서 양팔로 내 몸을 꽉 붙잡았다. 내 미간이 찌푸려졌다. 팔에 실린 힘이 보통이 아니다. 떨쳐내는 게 쉽지 않다.

“지금이다! 날 신경 쓰지 말고 놈을 죽여라!”

“예! 골베르 님!”

기사와 병사들이 당장 나를 향해 달려든다. 망설임 없는 움직임을 보면 사전에 계획된 것 같았다.

천마신공(天魔神功) 금강마룡(金剛魔龍).

숨을 들이마시며 호신기를 일으켜 적들의 공격을 버텨냈다. 병사들의 창은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쉽게 막아냈지만, 기사들의 검기는 호신기를 뚫어냈다.

‘그래봤자 살짝 베인 수준이지.’

천마신공(天魔神功) 금강마룡(金剛魔龍).

축적된 데미지를 칼끝에 담아 원을 그리듯 칼을 휘둘렀다. 검은 검기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며 적들을 베어낸다.

기사를 포함해 수십 명의 병사들이 죽어 나갔다.

“으아아아아악!”

“이, 이건 미친 짓이야!”

병사들을 통솔하는 기사들이 전멸하자 병사들은 더는 전투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병사들은 바닥에 무기를 내팽개치고 사방팔방으로 도망쳤다.

나는 굳이 그들을 쫓지 않았다. 병사들을 쫓아가 죽이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었으니까.

성안으로 들어갔다.

벌벌 떨고 있던 집사가 나를 보자마자 바닥에 엎드렸다.

“바, 발데르트의 기사님을 뵙습니다! 부디 자비를 내려주십시오!”

“에스토르 남작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라. 에스토르 남작이 있다면 살려주지.”

“바로 안내하겠습니다!”

집사는 현명하게 행동했다. 나는 리델라의 젖가슴을 만지면서 집사의 뒤를 따라갔다.

집사는 화려한 문양이 음각된 커다란 나무문을 열었다.

에스토르 남작의 침실이었다.

남작은 내가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바닥에 무릎 꿇은 채로 날 맞이했다.

“어, 어서 오십시오. 제가 에스토르 남작입니다. 제가 모두 잘못했습니다. 부디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나는 피식 웃으며 리델라의 가슴을 주무르던 손을 내리고 칼을 뽑아 들었다. 스르릉. 칼집에서 뽑히는 칼의 소리가 유독 차갑다.

“어처구니가 없군. 에스토르 남작. 잘못을 빌고 목숨을 구걸하기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나?”

“죄, 죄송합니다! 저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경을 죽이라고 황태자가 제게 압박했습니다! 모든 건 황태자의 명령 때문입니다! 이 일의 원흉은 황태자입니다! 전 황태자에게 놀아났을 뿐입니다!”

“내가 황태자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데.”

칼이 에스토르 남작의 어깨에 닿았다. 힘을 살짝 그의 어깨에 천천히 파고들기 시작했다.

“아아악! 아아아아악!”

성이 떠나가라 비명을 내지른다. 팔을 휘젓고 다리를 꾸물거리지만 내 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나는 놈이 죽지 않게 집중하면서 칼자루에 힘을 주었다.

“황태자는 충성심이 없는 자들을 부릴 때 이득을 약속하지. 너는 아무리 봐도 황태자에 대한 충성심이 없어.”

“끄으으으…. 살려… 살려 주십시오….”

“날 죽이면 돈을 받기로 했나? 영지를 받기로 했나? 특별한 물건을 받기로 했나?”

“자, 자작의 작위와 영지를 받기로 했습니다…! 끄으으윽!”

“겨우? 황태자도 날 어지간히 얕보고 있군.”

나는 에스토르 남작을 보면서 고민했다.

귀찮은데 그냥 지금 죽일까?

하지만 그건 너무 쉽다. 날 죽이려고 암살자들에게 의뢰한 놈이다. 쉽게 죽이기엔 너무 괘씸했다.

“……집사.”

“네!”

“에스토르 남작의 가족들을 데려와라. 설마 독신이라고 말하진 않겠지?”

“당장 데려오겠습니다!”

“도망쳐도 상관없다. 쫓아가서 죽이면 되니까. 단, 그때는 편히 죽을 생각은 하지 마라.”

“그, 그럴 리 없을 겁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집사가 방 밖으로 달려 나갔다. 나는 여전히 놈의 몸에 박은 칼을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잠시 후 에스토르 남작의 가족을 데려왔다. 5분도 걸리지 않고, 가족들의 상태가 영 좋지 않은 걸 보면 강압적인 수단을 쓴 모양이다.

‘내 알 바 아니지.’

놈의 어깨에서 칼을 뽑아 들고 가족들을 훑어봤다.

갈색 머리 중년 여자. 미모 관리에 돈을 퍼부었는지 30대 초중반의 외모로 보인다. 귀족의 아내답게 미색이 뛰어났다.

마찬가지로 갈색 머리의 젊은 여자. 외모가 출중하다. 가슴도 크고 파란 눈동자도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젊은 청년. 에스토르 남작의 후계자가 틀림없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젊은 청년의 목을 베었다. 청년의 머리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아, 아아…!”

중년의 여자가 기절할 것처럼 바닥에 쓰러지고, 에스토르 남작은 아들이 죽었음에도 내 눈치만 살폈다.

나는 에스토르 남작의 아내와 딸을 쳐다보며 말했다.

“너희들이 살 기회를 주지.”

피 묻은 칼을 휘둘렀다. 에스토르 남작의 왼쪽 다리가 잘려 나갔다. 이건 그녀들에게 보여주는 경고였다.

“벗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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