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2화 〉 622. 신의 아틀란티스
622. 신의 아틀란티스
나는 에스토르 남작의 아내와 딸을 쳐다보며 말했다.
“너희들이 살 기회를 주지.”
피 묻은 칼을 휘둘렀다. 에스토르 남작의 왼쪽 다리가 잘려 나갔다. 이건 그녀들에게 보여주는 경고였다.
“벗어.”
주변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녀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다. 나는 그녀들의 이해력을 돕기 위해 칼끝으로 그녀들을 가리켰다.
“내 말이 말처럼 들리지 않나?”
“겨, 경은 에스토르의 영주 자리를 원하시는 겁니까?”
남작의 아내가 내게 물었다.
내가 남작을 죽이고, 그 아내와 결혼하면 에스토르 영지의 주인이 내가 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상식으론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내 뒤에 있는 배경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했다.
“이딴 코딱지만 한 영지에는 관심 없다. 너희들이 살아남는다면 이 영지는 너희들의 것이다.”
“……경. 제발 딸만큼은 봐주세요. 이제 막 성인식을 치렀어요. 경에게 범해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딸의 혼삿길이 막힐 거예요”
“저승길로 가는 것보다 혼삿길이 막히는 게 더 낫지 않나?”
“……하다못해….”
남작 부인의 시선이 집사와 리델라, 그리고 에스토르에게 향했다. 내가 집사에게 손짓하자 집사가 문밖으로 나갔다.
“이 여자는 내 좆집이니 안 내보내도 돼.”
“…….”
남작 부인이 드레스 자락을 꽉 잡았다. 망설이고 있었다. 내버려 두면 한세월이 걸릴 것이 분명하기에 내가 직접 움직이기로 했다.
칼을 휘둘렀다. 남작 부인과 그 딸의 드레스가 찢겨나갔다. 알몸이 된 그녀들이 비명을 지르며 양손으로 몸을 가린다.
“꺄아아악?!”
“아, 안 돼…! 경! 제발 부탁입니다! 아내와 딸만큼은 건들지 말아 주십시오!”
“시끄럽다. 남작.”
에스토르 남작을 발로 찬 나는 알몸의 부인과 딸을 침대 위로 던지고, 나 또한 옷을 벗었다.
“즐겨보자. 크크.”
???
반나절 동안 에스토르 남작의 아내와 딸을 범했다.
에스토르 남작은 범하는 도중에 죽었다.
나는 한동안 도시에 머물며 쉬고 싶었으나, 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그다음날에는 떠나야 했다.
에스토르 남작 부인과 그 딸? 죽이지는 않았다. 죽일 생각도 없었다. 그녀들의 보지는 나름 쫄깃했으니까.
리델라는 사막으로 보냈다. 끝까지 그녀를 데리고 있을 필요는 없으니까.
‘이제 내 임무를 끝낼 때지.’
지금 내 앞에는 성문이 있었다.
에스토르 도시를 감싸고 있던 성문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크고 화려했다.
제 6,101 구역, 아르피스의 영지.
제국오공 중 한 명, 우검공(愚劍公)의 영지다.
성문을 지키는 병사들은 절도 있었고, 내가 걸친 망토를 보자마자 고개를 숙였다.
“발데르트의 기사님이시군요. 아르피스 영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통행증 같은 게 필요하나?”
“예? 일부 도시에서 통행세를 받는다는 말은 들었습니다만, 저희 아르피스 영지는 신분만 확실하다면 무료로 드나들 수 있습니다.”
“그게 정상이겠지. 나는 성유진. 발데르트의 기사다. 아르피스 도시에 온 목적은 발데르트 공작 각하의 서한을 아르피스 공작 각하께 전하기 위해서다. 한시라도 빨리 아르피스 공작 각하를 만나고 싶군. 가능하겠나?”
병사들은 놀라지 않았다. 아까 나를 처음 봤을 때도 놀라지 않았다. 내가 올 것이라는 걸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병사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비킬 줄 알았다. 하지만 병사들은 비켜서지 않았다.
“성유진 경. 죄송합니다. 사실 공작 각하의 명령이 있었습니다.”
“무슨 명령이지?”
“경을 도시로 들여보내지 말고, 이 서한을 건네라는 명령이었습니다.”
“…….”
느낌이 좋지 않았다.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병사가 건네는 서한을 받아 펼쳤다. 서한을 읽는 내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짜증과 분노 때문이다.
와그작.
아르피스 공작의 서한이 구겨진다.
“경?!”
“아, 미안하군. 생각지도 못한 내용에 감정이 잠깐 격해졌다.”
“하하…. 이해합니다.”
“이해한다고?”
“아르피스 공작 각하께선 가끔 사람을 시험할 때가 있습니다. 경에게 준 서한도 아마 경을 시험하려는 내용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맞다. 아르피스 공작 각하께서 내게 검의 무덤을 통과하고 오라는군.”
병사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불쌍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
“검의 무덤 말입니까? 공작 각하께서 어려운 시험을 경계 내리셨군요.”
검의 무덤.
일종의 던전이자 수련장이었다.
아르피스 공작의 허락이 없으면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이기도 했다.
“후. 공작 각하의 명령인데 따르지 않을 수는 없지.”
“경. 나쁜 일만은 아닙니다. 공작 각하께선 평범한 병사나, 기사들에겐 검의 무덤을 허락해주지 않습니다. 경에게 검의 무덤을 허락한 건 그만큼 공작 각하께서 경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자네는 듣기 좋은 말을 하는군.”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갔다 오지.”
“서한을 꼭 챙기십시오. 공작 각하의 인장이 찍힌 서한이니 검의 무덤의 출입증이 될 겁니다.”
“알았다.”
???
「제 6,132 구역, 검의 무덤에 입장했습니다.」
「이곳에선 장비와 소모품의 효과가 제한됩니다.」
「일부 스킬이 제한됩니다.」
「도복과 연습용 검이 주어집니다.」
「검의 무덤에서 도복과 연습용 검을 사용하십시오.」
「허락되지 않은 장비를 입었습니다.」
「페널티가 주어집니다. 모든 능력치가 90% 하락합니다.」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벽돌집이었다. 문은 두 개가 있었다. 뒤에 있는 문은 내가 들어온 문이고, 앞에 있는 문은 내가 걸어가야 하는 문이었다. 오른쪽 벽에는 사물함이 있었다.
내 앞에는 검은색 도복과 연습용 검이 놓여 있었다.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을 듯한 옷과 검이었다.
「도복 (검의 무덤 전용)
검의 무덤 내에서 입는 도복이다.
검의 무덤 내에서 도복은 찢어지지 않는다.
신체를 보호한다.
효과는 검의 무덤에서만 적용된다.
속옷을 전부 벗는 걸 권장한다.
랭크: SS」
「연습용 검 (검의 무덤 전용)
검의 무덤 내에서 사용하는 연습용 검이다.
검의 무덤 내에서 내구도 무한.
랭크: SS」
나는 속옷을 비롯해 옷을 전부 벗어 알몸이 되었다. 그 상태에서 도복을 입는다. 팬티까지 전부 벗은 상태라 불편할 줄 알았는데 엄청나게 편했다. 신기하게도 몸을 움직여도 묵직한 거시기가 덜렁거리지 않는다.
벗은 옷은 사물함에 넣었다.
‘응? 사물함이 하나 닫혀 있군. 나보다 먼저 누군가 검의 무덤에 들어왔나.’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검의 무덤은 경쟁 할 필요가 없으니까.
나는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전에 우검공에 대해 생각했다.
‘날 왜 검의 무덤에 넣은 거지? 우검공의 생각을 모르겠군.’
우검공.
오직 검밖에 모르는 공작. 그렇기에 붙여진 별명이 우검공이다.
‘날 시험하더라도 굳이 검의 무덤으로 보낼 필요가 있나?’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까라면 까야한다.
우검공은 에스토르 남작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권력을 가진 인물이니까. 아직 그와는 척을 져선 안 된다.
끼이이이익.
문을 열었다.
체육관처럼 넓은 공간이 나왔다.
「무거운 검의 방에 입장했습니다.」
「100마리의 오크를 죽이십시오.」
몸이 무거워졌다. 들고 있는 검은 족히 30kg은 나갈 것 같았고, 몸은 중력이 짓누르고 있어서 다리를 움직이는 것도 힘들었다.
그리고 눈앞에 10마리가 넘는 오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검공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좋게 생각하자. 검의 무덤은 나한테도 좋은 기회이니까.’
나는 양손으로 무거워진 검을 꽉 쥐고 오크들을 향해 휘둘렀다.
부우우웅.
검이 무거워지니 생각했던 것보다 속도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속도는 상대적인 것. 오크들의 입장에선 피하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꾸에에엑!”
오크의 몸이 갈라졌다. 주위에 있던 오크들이 분노해서 나를 향해 달려든다. 다시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무거워진 검 때문에 생각했던대로 검이 휘둘러지지 않았다.
“쯧.”
혀를 차고 검자루에서 손을 놓았다. 차라리 검을 놓고 맨손으로 싸우는 게 편하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러나 검은 내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검을 놓을 수 없습니다.」
“뭐?!”
잠깐 당황하는 틈에 오크가 내 몸을 후려쳤다. 뒤로 2걸음 물러난 내가 인상을 썼다.
“이 돼지 새끼들이!”
검을 휘두른다. 영천류를 사용할 수 없었다.
뇌전을 일으켜 오크들을 싸그리 겉바속촉으로 만들어 주려고 했으나, 뇌전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곳에선 뇌전 스킬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아스트라페!’
파지지직.
무기를 강화시키는 스킬이라 할 수 있는 아스트라페는 사용이 가능했다. 다만 검의 무게가 10kg 정도 더 무거워졌다.
‘이래선 그냥 검을 휘두르는 게 더 낫지. 아스트라페 해제.’
검의 무게가 더 가벼워졌다. 나는 양손으로 검을 쥐고 오크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젠장. 검과 몸이 무거워서 영천류를 못 쓰겠어.’
천마신공은 마나 소모가 심하다. 검의 무덤은 이제 시작이다. 마나를 아낄 필요가 있다.
“꾸에에에에에엑!”
오크가 내 머리를 향해 주먹을 내지른다. 나는 고개를 젖혀 주먹을 피하면서 아래에서 위로 검을 휘둘렀다. 오크의 오른팔과 오른 다리가 베인다.
‘다음은 오른쪽!’
오크 10마리를 전부 죽였다.
새로운 오크 10마리가 나타났다. 그리고 내 몸과 검이 더 무거워졌다.
「더 무거워집니다.」
「남은 오크 90마리.」
“이게 뭔 개고생이냐….”
나는 이를 바득 갈고 무거워진 검을 휘둘렀다.
???
“허억! 헉! 헉!”
100마리의 오크를 모두 죽였다. 나는 숨을 내쉬며 팔 끝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마지막 10마리의 오크를 죽일 때는 진짜 지옥이었다. 검의 무게만 100kg이 넘어갔고, 다리가 후들거려 서 있는 것도 힘들었다.
「무거운 검의 방을 통과했습니다.」
「상처와 체력이 회복됩니다.」
「최초 통과 보상으로 체력과 근력이 1씩 상승합니다.」
나는 씨익 웃었다.
힘든 만큼 보람이 있다고 할까. 검의 무덤은 각각의 방을 통과하면 보상으로 능력치를 올려주었다.
‘능력치를 올리는데 검의 무덤만큼 좋은 곳이 없지.’
문제는 아무나 못 들어간다. 제국오공 중 한 명인 우검공의 허락이 반드시 필요하다.
‘체력도 어느 정도 회복했고… 다음 방으로 가자.’
「느린 검의 방에 입장했습니다.」
「10마리의 사슴을 잡으십시오.」
몸이 느려지거나 검이 느려지는 제약 따윈 없었다.
나는 바로 앞에 보이는 사슴에게 달려가 검을 휘둘렀다. 사슴의 목이 베였다. 사슴 시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검의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남은 사슴 10마리.」
‘그렇군. 알아서 검의 속도를 낮추라는 건가.’
아까보다 검의 속도를 대폭 낮춰서 사슴을 죽였다.
「검의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남은 사슴 10마리.」
‘이것도 너무 빠르다고?’
일반인도 피할 수 있을 정도로 느린 속도였다. 이 이상 검의 속도를 내리면 사슴을 죽이지도 못할 것이다.
「검의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시스템이 원하는 대로 검의 속도를 내렸다. 사슴이 여유롭게 검을 피해 도망친다. 나는 표정을 구겼다.
‘대체 어쩌란 거야? 이 속도로 사슴을 어떻게 죽이라고.’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
‘이럴 땐… 유리아 찬스를 써야겠군.’
잠깐 [백환] 세계에 가서 유리아를 만나고 왔다. 섹스를 하고 온 건 덤이다.
‘답을 알아냈어.’
생각보다 간단했다. 내 검으로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사슴의 힘으로 사슴을 죽이는 것이었다. 사슴의 움직임을 잘 볼 필요가 있었다.
처음 2시간 정도는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요령을 깨달은 뒤부터 쉽게 사슴을 죽일 수 있었다.
「느린 검의 방을 통과했습니다.」
「상처와 체력이 회복됩니다.」
「최초 통과 보상으로 민첩과 근력이 1씩 상승합니다.」
???
「반복되는 검의 방에 입장했습니다.」
「완벽하게 똑같은 궤적으로 검을 100번 휘두르십시오.」
방으로 들어온 내 몸이 멈칫했다.
선객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검은색 도복을 입은 여성이었다.
그녀는 나와 키가 비슷할 정도로 컸다.
머리색은 애쉬 그레이로 허리 언저리까지 내려온다. 머리카락은 마치 물결치듯 웨이브 졌다.
그녀가 검은 눈동자로 나를 빤히 쳐다본다.
나는 당황했다. 설마하니 그녀를 이곳에서 만나게 될 줄 몰랐다.
“아르피스 공녀님을 뵙습니다.”
“누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