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627 - 627. 신의 아틀란티스 (407/2,000)

〈 627화 〉 627. 신의 아틀란티스

627. 신의 아틀란티스

바위산을 오르는 세이라는 굉장히 빨랐다. 눈앞에 예트 슬러그가 나타나면 숨 돌릴 틈도 없이 바로 검기를 날려 예트를 죽였다. 예트의 시체는 수습하지 않고 지나친다.

내가 아닌 다른 평범한 기사였다면 세이라의 뒤를 따라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세이라는 바위산을 직선으로 올라가다가 갑자기 방향을 틀기도 했다. 처음에는 돌아다니는 예트 슬러그를 처리하기 위해서인 줄 알았다. 그러나 조금 시간이 지나자 세이라가 길을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

‘본래 예트 슬러그 퀸을 죽이는 건 우검공이 직접 나서서 처리해왔다고 했던가.’

세이라는 처음 일 테니 길을 헤매는 것도 당연했다.

‘저 꼴을 보니 예트 슬러그 퀸이 어디 있는지 짐작도 못 하는 것 같고.’

물론 나도 예트 슬러그 퀸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건 오히려 내게 잘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녀가 순식간에 예트 슬러그 퀸을 찾아내 죽인다면 기껏 내가 따라온 의미가 사라지니까.

예트 산은 멀리서 봤을 때 지리산 정도의 크기를 가진 산으로 보였다. 하루 이틀 만에 예트 산을 전부 수색하는 건 불가능하다.

기세 좋게 도시에서 나왔지만, 막상 일을 해결하려 하니 쉽지 않게 된 것이다.

나는 그녀의 뒤를 조용히 따르면서 예트 슬러그의 사체로 다가갔다. 커다란 노란 민달팽이가 점액질을 흘리며 죽어 있는 모습은 상당히 역겨웠다.

내가 예트 슬러그에게 다가간 건 예트 가루 때문이다. 예트 가루를 한 번 만들어볼 생각이다. 만드는 방법은 이전에 대충 들었다.

‘예트 가루가 마약보다 비싼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지.’

하나는 예트 슬러그가 이 예트 산에만 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소금이다. 옛날 중세시대만큼 소금이 비싼 건 아니지만, 현대랑 비교하면 무척이나 비싼 게 소금이다.

‘난 현실에서 소금을 가져오면 되니까 펑펑 쓸 수 있어.’

우선은 예트 슬러그의 시체가 마르길 기다려야 한다. 시체가 마르면 50cm 정도로 쪼그라든다.

‘말릴 시간은 없어.’

지금 세이라는 짧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녀의 뒤를 따라가야 하니 내게 주어진 여유 시간은 대충 15분 정도가 전부다.

‘뇌전.’

손바닥에 푸른 뇌전이 파지직 튀었다. 전기 줄기가 예트 슬러그의 사체로 이동한다. 전열을 이용해 말릴 생각이었는데, 내 상상만큼 잘 되지 않았다. 예트 슬러그의 사체가 부글부글 끓기 시작한 것이다.

‘……이게 아닌가? 헤어 드라이어로 말리는 편이 더 나았나?’

나는 뇌전을 멈추고 잠시 우두커니 섰다. 예상 밖의 반응에 조금 당황했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꺼낸 소금 포대를 부글부글 끓는 예트 슬러그의 사체에 뿌렸다. 사체와 소금이 닿자마자 이상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러나 냄새는 곧바로 사라지고 부글부글 끓던 시체가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자 예트 슬러그가 있던 자리에는 하얀 소금 입자가 남았다. 좀 굵긴 하지만 예트 가루였다. 전부 긁어모아도 20g도 되지 않을 듯한 양이었다.

‘……뭐야, 성공이야?’

소금을 왕창 뿌린 게 도움이 된 것 같았다. 그게 아니면 전기가 내가 알 수 없는 작용을 했거나.

‘소금으로 예트 슬러그를 녹이고, 태우는 걸 반복해서 고운 예트 가루를 만들어낸다지?’

성공한 건지 확신할 수 없었다. 영 찝찝했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다시 손바닥에 뇌전을 일으켰다. 전기 줄기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굵은 예트 가루를 태우기 시작한다.

예트 가루는 허공에 증발하듯 사라졌다.

‘이런. 이게 아니었… 음?’

갑자기 몸의 감각이 예민해졌다. 예트 가루를 복용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지금 감각이 보다 날카로워졌다는 것. 들려오는 바람 소리가 커지고, 피부에 닿는 바람은 흡사 작은 돌멩이 같았다.

나는 시선을 멀리 던졌다. 마나를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시력이 두 배 이상 많아진 것 같았다.

‘예트 가루가 기화되면 기관지를 통해 들어온 건가?’

무심코 턱을 만지다가 깜짝 놀랐다. 감촉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감각이 너무 예민해진 탓이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감각이 너무 예민해지다 보니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았다. 숨 쉬는 것조차 어색하니 정신적으로 빠르게 피곤해지는 게 느껴졌다.

‘잠깐. 이걸 잘만 이용하면….’

나는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세이라를 보며 머리를 굴렸다.

???

“경. 슬슬 앞으로 나오는 게 어떤가?”

나는 바위 뒤에서 나와 모습을 드러내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당황하지 않았다. 세이라가 이미 내 기척을 눈치채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세이라 공녀님.”

“경은 내 명령을 아무렇지 않게 어겼군.”

“전 아르피스의 기사가 아닙니다.”

“맞는 말이군. 한 대 때려도 되나?”

세이라가 주먹을 쥐었다. 주먹에 푸르스름한 기운이 맺힌다. 저건 맞으면 어디 하나 부러질 것이 분명했다.

“사양하겠습니다. 그리고 세이라 공녀님은 기세 좋게 나가신 것 치고 고생하고 계시는 것 같군요.”

세이라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자신 있게 일을 해결했다고 도시를 나섰는데 헤매고 있으니 본인도 쪽팔리겠지.

“예트 슬러그 퀸을 금방 찾을 줄 알았다. 일반적인 예트 슬러그와 다른 특별한 몬스터니, 기척이 다를 테니까.”

“기감을 이용해 예트 슬러그 퀸을 찾으려 했습니까?”

세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할 줄 알았다. 기감에는 자신 있었으니까.”

“설마 그것만 믿고 나선 것입니까?”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예트 슬러그가 잔뜩 몰려 있는 곳에 예트 슬러그 퀸이 있다고 했다. 예트 슬러그 무리만 잘 찾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패하셨군요.”

“면목이 없군. 예트 슬러그 무리는 몇 번 찾았지만 예트 슬러그 퀸은 없었다. 지금 이 예트 산에는 예트 슬러그의 수가 비이상적으로 많다.”

“예트 슬러그 퀸은 산의 정상 쪽에 있지 않겠습니까? 보통 특별한 몬스터는 산의 정상 쪽에 자리 잡지 않습니까.”

“경의 말대로다. 그래서 예트 산의 정상으로 올라가 볼까 한다. 시간은 제법 걸리겠다만….”

예트 산은 험하고 높았다. 등산로 따위는 당연히 없다. 그리고 바위산이라고 해서 바위만 덩그러니 있는 것도 아니다. 산 곳곳에 예트 슬러그의 먹이가 되는 초목이 있었다.

“따라가겠습니다.”

“경은 내 명령을 듣지 않겠지. 경은 발데르트의 기사니까.”

세이라의 말에는 가시가 돋쳐 있었다. 내가 그녀의 명령을 간단히 어긴 것이 기분 나쁜 모양이다.

나는 실실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세이라 공녀님. 식량은 가지고 계십니까?”

“…….”

세이라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일이 쉽게 끝날 줄 알고 식량을 챙기지 않았다. 그녀가 도시를 나설 때 챙긴 것이라곤 대검, 츠바이헨더 뿐이다.

“전 혹시 몰라 일주일 분의 비상식량을 챙겨왔습니다.”

나는 등에 메고 있던 배낭을 세이라에게 자랑하듯 보여줬다. 내겐 인벤토리가 있지만 알려줄 생각은 없다. 인벤토리는 너무 편리하다. 때로는 고생할 필요가 있다.

“경이 따라와 주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세이라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이미 정오가 지났다. 그녀는 새벽부터 물조차 먹지 못했다.

“여기서 늦은 점심을 해결하죠.”

“그러지.”

그녀에게 비상식량을 건넸다.

“이게 식량인가?”

“제가 살던 세계의 비상식량입니다. 군대에서 사용하던 전투 식량을 조금 개선한 겁니다. 맛은 없지만 열량은 높습니다.”

세이라는 나를 따라 비상식량을 먹고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정도면 충분히 맛있지 않나?”

“……이게 맛있다고요?”

“이 정도면 충분히 맛있다. 처음 느껴보는 맛이기도 하고 신기하군. 이 요리의 이름은 뭐지?”

“그냥 볶음밥입니다. 저는 다시 먹어봐도 맛없군요.”

“경은 저택에 있을 때도 맛있다는 말을 잘 하지 않았지.”

“그랬습니까? 아르피스 공작가의 요리는 그럭저럭 먹을 만 했습니다.”

“그럭저럭인가. 경의 입맛은 나보다 훨씬 고급이군.”

세이라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웬만한 음식은 맛없게 느껴진다. 공복일 때 먹으면 맛있게 느껴지긴 하지만, 평상시에는 전부 거기서 거기다.

짐작 가는 이유는 하나다.

[백환] 세계의 유리아의 요리. 그리고 유리아에게 가르침을 받은 키친 메이드의 요리들.

미슐랭 가이드가 내 저택에 오면 100% 확률로 별 3개를 주리라는 걸 확신할 수 있다.

“경 덕분에 살았다.”

“도움이 되셨다면 다행입니다.”

“빈말이 아니다. 식량이 없어서 귀환을 고민했었다. 경이 식량을 가지고 따라와 준 덕분에 내 체면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도시에 있는 기사들의 입장에선 제가 원망스럽겠군요.”

“그럴 일은 없었을 거다. 식량을 챙기고 바로 예트 산으로 떠났을 테니.”

식사를 끝마친 우리는 나란히 걸어 산의 정상으로 향했다. 예트 슬러그 무리는 우리 앞에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내가 나설 필요도 없이 그녀가 검기를 날리면 슬러그는 그대로 죽어 나갔다.

나는 예트 슬러그의 사체를 아쉬움이 담긴 눈으로 쳐다봤다. 예트 가루를 얻고 싶으나, 세이라의 눈치가 보였다. 예트 슬러그는 아르피스 가문의 재산이다.

우리는 해가 지기 시작한 무렵에 산 정상에 도착했다. 손을 뻗으면 하늘의 구름이 닿을 것 같았다.

“모르겠군.”

“네?”

“예트 슬러그 퀸의 위치 말이다. 정상 근처에 있을 줄 알았는데 예트 슬러그 퀸은커녕 일반 예트 슬러그도 전혀 보이지 않는군.”

“예트 슬러그 퀸의 특징 같은 건 모르십니까?”

“예트 슬러그 퀸의 주위에 수많은 예트 슬러그들이 있다는 것 말고는 모른다.”

“음….”

나는 바위산 아래를 내려다봤다. 시력에 마나를 집중해서 내려다보면 예트 슬러그 무리가 몇 개 보였다. 허나 예트 슬러그 퀸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트 슬러그는 민달팽이 답게 그늘진 곳을 좋아하는군요.”

“그렇지.”

“예트 슬러그 퀸도 동굴 같은 음습한 곳에 박혀 있을 가능성이 높지 않겠습니까?”

“경의 말도 일리가 있군. 그러나 난 예트 산의 지리를 모른다.”

“저도 모릅니다.”

“…….”

“…….”

우리는 직감했다. 고생길이 활짝 열렸다는 것을.

저녁이 되었다. 바람을 피할 수 있는 바위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아쉽게도 텐트나 담요는 없었기에 코트에 의지하며 잠들어야 했다. 그나마 우리의 신체가 평범하지 않다는 게 다행이었다.

세이라는 꽤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경과 나 정도의 실력이면 밤에 움직여도 아무 문제 없을 텐데? 굳이 수면을 취할 필요가 있나?”

“저도 공녀님도 사람입니다. 어두운 밤은 사람을 빠르게 지치게 만들고 피로를 쌓이게 합니다. 어두워서 예트 슬러그 퀸을 찾기도 힘들고요. 차라리 푹 쉬고 낮에 활발하게 움직이는 편이 좋습니다.”

“경. 한시라도 빨리 예트 슬러그 퀸을 죽여야 도시가 안전해진다.”

“도시에는 기사와 병사들이 있습니다. 세이라 공녀님은 그들을 믿지 못하십니까?”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군.”

“세이라 공녀님. 저는 이 방면의 전문가입니다. 제 말을 믿고 따라주십시오.”

“…알겠다. 4시간 뒤에 확실히 깨우도록. 내가 공녀라고 해서 쓸데없는 배려를 한다면 용서하지 않겠다.”

“칼같이 깨울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전 자는 걸 좋아합니다.”

여자랑 같이 자는 건 더 좋아하지만요. 라는 말은 입안으로 삼켰다.

세이라는 밤하늘을 보다가 두 눈을 감았다.

나는 그녀가 완전히 잠들기까지 기다렸다. 물론 완벽히 무방비해지지는 않는다. 몸을 건드는 건 말도 안 되고,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눈을 번쩍 뜰 것이다.

‘1시간이 지났다. 슬슬 깊게 잠들었겠군. 이때만을 기다렸지.’

인벤토리에서 병을 꺼냈다.

투명한 병.

그러나 이 안에는 예트 가루를 기화시킨 물질이 들어 있다.

이어서 인벤토리에서 방독면을 꺼내 얼굴에 썼다.

「정화 방독면

공기를 정화한다.

랭크: C」

바람의 방향을 가늠하며 유리병 입구를 열었다. 무색무취의 예트 연기는 바람을 타고 세이라에게 향했다. 1분도 지나지 않아 그녀의 몸이 꿈틀거렸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다른 병을 꺼내 입구를 열었다.

‘잠에서 깨어나면 아주 민감해지겠지. 크크.’

유리병 5개를 전부 사용한 나는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근처에 예트 슬러그를 사냥하기 위해 움직였다. 예트 연기를 보충해둘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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