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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 628. 신의 아틀란티스 (408/2,000)

〈 628화 〉 628. 신의 아틀란티스

628. 신의 아틀란티스

잠든 세이라를 관찰하듯 쳐다봤다.

세이라는 잠든 상태로 몸을 움찔움찔거렸다. 깨어나는가 싶었는데 그건 또 아니었다.

시간이 되었을 때 나는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녀와의 거리가 3M 정도가 되었을 때, 그녀가 두 눈을 번쩍 떴다.

“세이라 공녀님. 교대 시간입니다. 혹시 일어나 계셨습니까?”

“아니…. 방금 일어났다. 경의 기척이 느껴지는 순간 정신이 바짝 들더군.”

“……안색이 썩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더 주무시는 게 좋지 않으시겠습니까?”

“문제는 없다. 감각이 좀 예민해졌을 뿐이지.”

세이라는 몸을 일으켰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몸을 때렸다. 그녀가 몸을 부르르 떨며 눈살을 찌푸렸다.

“경. 혹시 내가 자는 동안 예트 가루를 먹였나?”

마음이 뜨끔했다. 예트 가루를 기체로 만들어서 그녀에게 먹인 것이니 강제로 복용시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제가 그랬다면 세이라 공녀님께서 일어나셨겠지요.”

“그냥 해본 말이다. 경이 내게 예트 가루를 먹일 이유가 없지.”

“혹시 예트 가루를 먹고 난 뒤의 상태입니까?”

“더 심하다. 감각이 너무 예민해서 공기가 몸에 닿는 감촉이 기분 나쁠 정도로 생생하게 느껴진다. 느껴지는 정보가 너무 많아서 머리까지 아플 지경이군. 저녁에 먹은 비상식량에 예트 가루를 대량으로 넣었나?”

“절 그런 놈으로 보십니까? 예트 가루는 먹는 즉시 효과가 나오는 걸 잘 아시지 않습니까. 식량에 예트 가루가 섞여 있었다면 세이라 공녀님이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지요.”

“미안하군. 경. 감각이 지나치게 예민해지더니 신경도 함께 예민해졌다. 대체 내 몸이 왜 이러는지 원인을 모르겠군.”

“견디기 힘드시면 다시 잠드십시오. 제가 보초를 서겠습니다.”

“견디기 힘들 정도는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오겠지. 보초는 내가 설 테니 경은 자라.”

“제 입장에선 세이라 공녀님이 걱정됩니다만….”

“멀리 떨어지지 않을 테니 자라. 명령이다. 이번에도 거부할 생각인가?”

“자겠습니다.”

나는 세이라가 누웠던 위치에 몸을 눕혔다. 아직 세이라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

“별이 잘 보이네요.”

“그래. 별을 보면서 자는 것도 나쁘지 않더군.”

두 눈을 감는 척 하면서 실눈을 떴다. 가늘게 보이는 세상으로 그녀만 집중했다.

“자라.”

세이라가 말했다. 감각이 예민해지다 보니 내 시선을 느낀 모양이다. 이건 주의해야겠다. 그녀의 가슴이나 엉덩이를 괜히 훔쳐보다가 일이 틀어질 수도 있다.

‘몇 시간이 지나도 세이라의 상태는 그대로겠지. 예트 가루는 복용한 양에 따라 효과와 지속 시간이 늘어나니까. 세이라에게 사용한 기체는 가루로 따지면 대충 300g 정도지…. 기체 대부분이 바람에 날아갔다고 해도, 기체는 예트 가루보다 효과가 더 좋다는 것도 감안해야지.’

내일 그녀의 반응이 어떨지 기대하며 두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

뺨에 차가운 물방울이 떨어졌다.

눈을 떴다.

주위는 어느새 짙은 안개로 자욱했고, 하늘에는 먹구름이 그득했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세이라를 찾았다. 어렵지 않게 발견했다. 그녀는 조금 떨어진 곳에 바위에 등을 기대며 앉아 있었다. 찌푸려진 얼굴을 보니 무척이나 기분 나빠 보였다. 그녀의 웨이브 진 애쉬 그레이 머리카락이 습기를 머금어 늘어졌다.

“일어났나? 지금 막 깨우려고 했다.”

“몸 상태는 괜찮으십니까?”

“난 괜찮다. 괜찮지 않은 건 날씨다. 지금도 빗방울이 하나, 둘씩 떨어지고 있다. 얼마 안 가 비가 오겠지. 그리고 비가 오면….”

“예트 슬러그들이 날뛰겠군요.”

습한 환경은 민달팽이들이 활동하기 딱 좋은 날씨다.

“시간이 없다. 조금이라도 빨리 예트 슬러그 퀸을 찾아내 없애야 한다. 그래야 도시의 부담이 줄어들 테니.”

“예. 지금 당장 움직이죠.”

20분도 지나지 않아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안개까지 껴서 길도 찾기 힘들었다. 여러모로 방해하는 게 많았다.

그리고 세이라의 상태가 점점 나빠졌다. 코트에 달린 후드로 비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긴 한데 전부 막을 수는 없었다. 특히나 그녀는 현재 온몸의 감각이 평소보다 몇 배나 민감해진 상황이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빗방울의 감촉, 빗방울의 차가움. 그 모든 것들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정보가 물밀듯이 밀려오니 머릿속도 복잡해지고 정신적으로 빠르게 피곤해질 것이다.

‘비가 내리는 건 오히려 내게 호재군. 예트 슬러그 퀸. 제발 부탁이다. 꼭꼭 숨어 있어라.’

나는 세이라의 한 발짝 뒤에서 그녀를 지긋이 쳐다봤다.

스으으윽. 스으으윽. 스으으윽.

예트 슬러그가 안개 너머에서 우리를 향해 기어 오는 소리가 들렸다. 보이지 않는 안개와 소리만 들으면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세이라가 등에 매단 츠바이헨더를 양손으로 들고 정면을 향해 휘둘렀다. 안개가 갈라지고 커다란 검기가 예트 슬러그 5마리를 단번에 가른다.

세이라는 다시 검을 차고는 묵묵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얼굴에 흐르는 액체가 땀인지 빗방울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무리하고 있군.’

아까 검기를 날릴 때 지나치게 힘이 들어갔다. 평소의 그녀였다면 좀 더 효율적으로 대검을 휘둘렀을 것이다.

나는 내가 직접 나설 수 있음에도 나서지 않았다. 그녀가 지치기를 바라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상태는 점점 안 좋아졌다.

“세이라 공녀님. 잠시 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지.”

우리는 커다란 나무 아래에 앉았다. 나뭇잎 사이로 굵은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긴 하지만 어느 정도 비는 피할 수 있었다.

“아까부터 경의 시선이 내게 못 박혀 있군. 할 말이라도 있나?”

“공녀님의 호흡이 정상이 아닙니다. 호흡도 흐트러져 있습니다. 적당한 곳에 자리 잡은 뒤에 쉬는 게 어떻겠습니까?”

“나는 괜찮다. 감각이 예민해서 숨 쉬는 게 조금 어색할 뿐이다. 그것보다 내가 이렇게 된 원인을 생각해봤다.”

세이라가 일부러 말을 돌렸다. 몸 상태가 정말 괜찮았더라면 그럴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생각하시는 원인은 무엇입니까?”

“예트 슬러그를 죽인 것이 원인이라 생각한다. 나는 평소보다 많은 예트 슬러그를 죽였다. 경이 나서기 전에 내가 먼저 나서서 죽였지. 그 과정에서 예트 슬러그의 무언가가 내게 영향을 끼친 것이다.”

“제가 멀쩡한 것도 말이 되는군요. 그럼 이제 제가 먼저 나서서 예트 슬러그들을 없애겠습니다.”

“경도 나처럼 되면 어쩌려고 그러나? 예트 슬러그는 내가 전담해서 해치우겠다.”

“그러다 공녀님이 잘못될 수도 있습니다.”

“둘 다 잘못 되는 것보다는 낫지. 효율을 생각해라.”

“…….”

나는 말 없이 수긍했다.

둘 다 골골 되는 것보다 만일을 대비해 한 사람이 골골 되는 편이 낫긴 하다. 그리고 내 계획을 위해서라도 세이라의 의견을 받아들여야 했다.

세이라의 상태는 시간이 지나자 더 안 좋아졌다.

이제는 검기를 날리지도 못하고 예트 슬러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대검을 휘둘렀다. 그래도 뛰어난 검술 실력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던지라 예트 슬러그 정도는 가볍게 처리했다.

오후가 되어서 짙은 안개가 약간이지만 맑아졌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예트 슬러그 퀸을 발견했다.

예트 슬러그 퀸은 100마리가 넘는 예트 슬러그 사이에 존재했다. 이름 그대로 여왕처럼 에트 슬러그의 호위를 받고 있다.

퀸은 몸체가 노란색이 아니라 분홍색이라 눈에 확 들어왔다. 거기에 다른 예트 슬러그보다 족히 2배 이상은 큰 몸이며, 미끈한 등에는 화산 분화구 같은 구멍이 파여 있었다.

등에서 노란 액체 같은게 흘러나온다. 나는 정신을 좀 더 집중한 후에야 그게 작은 예트 슬러그란 걸 알 수 있었다.

“……왜 퀸이라 불리는지 알겠군요.”

“예트 슬러그 퀸은 하루에 20마리 이상 예트 슬러그를 낳는다. 예트 슬러그 또한 열흘에 한 번 이상 분열하지. 퀸이 있으면 예트 슬러그들은 흉포해지고 개체수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난다. 퀸이 나타나면 신속하게 처리해야 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지. 사실 그리 큰 임무는 아니었는데… 후우. 여기까지 오면서 변수가 너무 많았군.”

나는 마음속으로 아쉬움을 느꼈다. 예트 슬러그 퀸을 죽이면 도시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세이라를 따먹을 기회를 보고 있었는데…. 퀸. 이 새끼는 어딘가에 박혀 있을 것이지. 왜 기어 나와서는….’

세이라는 어느새 전투 준비를 끝마치고 나를 향해 말했다.

“경. 경이 예트 슬러그 퀸에게 벼락을 떨어뜨릴 수 없나? 예트 슬러그 퀸이 죽으면 주위에 있는 예트 슬러그들은 자연히 흩어질 테니 우린 쓸데없는 싸움을 피할 수 있다.”

“해보겠습니다. 마침 하늘에는 먹구름도 있으니까요.”

세이라가 보는 앞에서 어쭙잖게 할 생각은 없었다.

콰르르르릉.

먹구름 속에서 번개가 꿈틀거린다. 역시 현실보다 지금의 내가 더 강하다.

구름 속의 번개를 한데 뭉치고 예트 슬러그 퀸에게 떨어뜨렸다.

굉음과 함께 섬광탄을 떨어뜨린 것처럼 사방이 번쩍거렸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번개에 땅이 파였다.

그러나 예트 슬러그 퀸은 죽지 않았다. 몸을 꿈틀거리며 땅 구덩이 속에서 기어 나왔다. 더듬이가 빙글빙글 돌더니 우리 쪽을 향해 위협적으로 커다란 입을 벌렸다. 입속에서 수 천 개는 될듯한 이빨이 전기톱처럼 움직인다.

“……멀쩡하군요. 절반 이상의 마나를 소모해 떨어뜨린 벼락이었는데… 충격적이군요.”

벼락을 맞고 멀쩡히 움직이는 예트 슬러그 퀸의 모습에는 어떠한 피해도 없어 보였다. 진짜 충격적이었다.

“상심할 것 없다. 이제 보니 퀸은 점액으로 온몸을 보호하고 있다. 경의 벼락뿐만이 아니라 어지간한 공격은 아예 통하지도 않겠지. 그것보다 성가신 건 퀸이 우리의 위치를 알아냈다는 거다. 이제 기습은 먹히지 않는다. 정면 싸움밖에 없다.”

“물러나서 작전을 짤까요?”

“여기서 퀸을 놓칠 수 없다. 내가 퀸을 상대할 테니, 경은 날 엄호해 예트 슬러그들을 처리해다오.”

“네.”

세이라가 땅을 박차고 일직선으로 달렸다. 나는 그녀의 뒤를 따르며 주위에 있는 예트 슬러그를 향해 연신 벼락을 떨어뜨렸다.

콰아앙! 쾅! 쾅!

천둥소리가 연신 울린다. 감각이 예민해진 세이라는 귀가 괴로울 텐데도 조금도 내색하지 않았다.

퀸의 앞에 예트 슬러그들이 모여들었다.

“제가 길을 열겠습니다.”

화련비도에 푸른 검기와 적뢰가 파지직 거린다.

영천류(影天流) 뇌섬(雷閃).

적뢰를 휘감은 푸른 검기를 날렸다.

수많은 예트 슬러그가 베어지며 바닥에 무너진다.

퀸도 노렸으나, 뇌섬은 퀸의 몸에 닿기 직전에 소멸했다. 설령 닿았다고 하더라도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고맙다.”

세이라가 뛰었다. 나는 그녀를 향해 달려들려는 예트 슬러그 놈들에게 벼락으로 태워 죽였다.

예트 슬러그 퀸의 앞에 당도한 그녀는 츠바이헨더를 양손으로 꽉 쥐었다. 검날에서 푸른 검기가 치솟으며 검강으로 변했다.

세이라가 검을 휘두르기 직전, 예트 슬러그 퀸이 입을 쩌억 벌리더니 점액을 토했다.

세이라가 옆으로 움직였다. 예트 슬러그 퀸의 공격을 확실히 피한 뒤, 다시 접근하여 검을 휘둘렀다. 그녀의 검이 예트 슬러그 퀸의 몸을 절반으로 가른다. 두 쪽 난 예트 슬러그 퀸의 사체가 바닥에 쓰러졌다.

‘끝났다.’

그녀 또한 그렇게 느낀 듯, 몸을 한차례 비틀거리더니 대검을 바닥에 꽂고 기대었다. 그녀는 억지로라도 서 있으려고 했다.

그때였다. 반으로 갈라져 죽은 줄 알았던 예트 슬러그 퀸의 더듬이가 꿈틀거렸다.

“세리아 공녀님!”

세리아가 놀라가 검을 꽉 쥐었다.

늦었다.

예트 슬러그 퀸의 몸이 부풀어 오르더니 그대로 폭발했다. 점액질이 그녀의 몸을 덮인다.

“아아아아아아아악!”

고통스러운 비명이 허공으로 퍼진다. 그녀가 입고 있던 옷들이 전부 순식간에 녹아 사라지고, 알몸이 된 그녀가 비틀거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깜짝 놀라 그녀를 향해 뛰었다. 나를 가로막는 예트 슬러그는 없었다. 예트 슬러그 퀸이 자폭한 순간부터 그것들은 자기 일 아니라는 듯이 우리를 무시하고 제 할 일을 찾듯 흩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세이라의 앞으로 달려온 나는 그녀를 살폈다. 숨은 쉬고 있다. 정신을 잃었을 뿐이다.

‘안 그래도 예민한 상태의 감각에 극심한 고통을 입었으니 기절하는 것도 당연하지.’

그녀가 걸치고 있던 옷은 속옷을 포함해 전부 녹아버렸지만, 그녀의 피부는 빨갛게 변해 있었다.

‘이건 전신 화상이다. 이대로 내버려 둘 순 없어!’

포션을 꺼낸 순간이였다.

스으으윽. 스으으윽. 스으으윽.

예트 슬러그들이 적의를 가지고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 흩어지던 놈들의 태도가 갑자기 바뀐 것이다.

‘씁.’

나는 츠바이헨더를 인벤토리에 넣고, 세이라를 안아 들었다.

‘가속! 찰나!’

그리고 전속력으로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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