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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5 - 635. 신의 아틀란티스 (415/2,000)

〈 635화 〉 635. 신의 아틀란티스

635. 신의 아틀란티스

릴스네는 꼼꼼하게 드레스를 살폈다.

공짜.

그것도 작은 집 한 채를 살 수 있는 값의 명품 드레스를 공짜로 얻을 수 있다. 부담을 느끼더라도 돈에 환장하는 그녀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을 것이다. 비록 이런 드레스는 중고로 팔면 가격은 급락하지만.

“이 드레스는 어떤가요? 아가씨의 녹색 눈동자와 잘 어울릴 것 같지 않나요?”

마담이 릴스네에게 추천한 건 연노랑 색의 드레스였다. 수수하면서도 몸의 굴곡을 드러내는 드레스다. 다리와 팔이 길쭉하고 군살 하나 없이 슬림한 몸매의 릴스네에게 아주 잘 어울릴 것 같다.

“좋은 드레스입니다. 하지만 제 스타일은 아닙니다.”

릴스네가 무표정한 얼굴로 거절했다. 그녀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다른 드레스 쪽이었다.

검은색의 드레스다. 마담이 추천한 청초한 드레스와는 정반대의 분위기를 풍긴다. 가슴과 어깨 부분이 오픈되어 있고, 드레스 옆이 찢어져 입으면 허벅지까지 보일 것이다. 다만 치마와 가슴팍에 커다란 보석이 박혀 있었다.

나는 단번에 이해했다. 릴스네가 저 드레스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보석들 때문이라고.

“마담. 이 드레스의 가격은 어떻게 됩니까?”

릴스네가 묻자 마담은 미소를 잃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가을 별밤이란 이름의 드레스로 제 자신작 이랍니다. 가격은 5,200만 페니에요. 좀 비싸죠?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저 가슴팍에 있는 보석은 ‘루나 나이트’란 보석인데 매우 비싸거든요.”

“루나 나이트….”

릴스네가 작게 중얼거리며 보석을 쳐다봤다. 영롱한 하늘색의 보석이었는데 깊이 들여다보면 보석 안에 작은 빛들이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고 있다. 내가 봐도 신비하고 아름다운 보석이었다.

릴스네가 조용히 내 눈치를 봤다. 저 드레스가 마음에 든 모양인데, 비싼 가격이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5,500만 페니 정도면 평민이 20년 동안 일해도 쉽게 모을 수 없는 돈이었다.

아마 저 드레스에 달린 ‘루나 나이트’란 보석만 따로 떼어내 팔아도 3,000만 페니는 나올 것이다.

“…역시 다른 드레스가 좋겠습니다.”

그녀가 지나치려는 걸 내가 붙잡았다.

“저게 마음에 들면 저걸로 해.”

“아닙니다. 다른 드레스가 낫습니다.”

릴스네는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검은 드레스에 시선을 주지 않았다. 시선을 주면 미련이 생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

“릴스네. 네가 내게 턱시도를 골라줬지. 그럼 이번엔 내가 네 드레스를 골라주는 게 맞지 않아? 난 이 드레스를 추천해. 넌 기본적으로 아름다우니 이 드레스도 잘 어울릴 거야.”

“신사분 말이 맞아요. 아가씨는 피부가 하얗고 몸매도 뛰어나시니 이 드레스도 잘 어울릴 거예요.”

마담까지 날 거들어줬다. 그녀의 입장에서 이 비싼 드레스를 팔고 싶을 것이다.

“하, 하지만….”

“설마 내 주머니 사정을 걱정하는 건 아니지? 난 이 건물 전체를 살 수 있어.”

마담이 놀란 듯 날 쳐다봤다. 허세가 아니었다. 내가 가진 페니는 그만큼 많다. 시스템 상점의 화폐인 AP로 환산할 수 없어서 쓸 곳도 딱히 많이 없었다.

릴스네는 잠시 나를 멍하니 쳐다봤다. 그녀의 하얀 얼굴에 불그스름한 홍조가 생겼다. 내 재력에 압도된 모양이다.

“그, 그럼 유진 씨의 의견을 받아들여 이 드레스로 선택하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어요! 후회 없는 선택이세요. 이번 십년제의 주인공은 여러분이 될 거예요!”

마담이 기뻐하며 박수를 치며 이어 말했다.

“드레스와 턱시도를 여러분의 사이즈에 맞게 잠깐 조정할 필요가 있어요.”

“오래 걸립니까?”

내가 물었다.

“후후. 제 실력을 뭐로 보시고…. 30분이면 돼요. 사람을 통해 보내드릴까요? 아니면 직접 들고 가실 건가요?”

“번거롭게 사람을 쓸 필요는 없죠. 그렇지, 릴스네?”

“네. 들고 가는 건 일도 아닙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마담.”

“우선 아가씨부터 시작할까요? 저쪽에 탈의실이 있으니 한 번 갈아 입어봐요.”

???

가게에서 나온 릴스네는 상자를 소중하게 끌어안았다. 그녀는 도끼눈을 뜬 채로 주위를 획획 돌려봤다. 엄청난 보물 때문에 불안해 미치겠다는 듯한 분위기다. 뭐, 그녀의 입장에선 보물이 맞았다. 상자 안에 든 것은 무려 5,500만 페니 가치의 드레스니까.

“릴스네. 미안한데 들릴 곳이 있어.”

“……바로 돌아가면 안 되겠습니까?”

“옷에 어울리는 구두랑 장신구도 사야지. 상상해봐. 비싼 옷에 허름한 구두. 그게 어울리겠어? 구두도 내가 사줄게.”

“이렇게 받기만 해서는….”

“내가 사주고 싶어서 그래.”

나는 진지한 눈으로 릴스네를 쳐다봤다. 릴스네의 얼굴은 길쭉한 귀까지 붉게 변했다. 역시 그녀에겐 재력을 과시하는 게 정답이었다.

“아, 알겠습니다.”

“그전에 옷은 거추장스러우니 어딘가에 맡기고 가자.”

릴스네가 화들짝 놀랐다.

“네? 이 옷이 얼마짜린데 누군가에게 맡깁니까!”

“얼마 안 하니 다시 사면 돼. 그리고 믿을 만한 곳에 몇 시간만 맡길 생각이야. 그리고 릴스네. 기왕 이렇게 된 거 저녁까지 이곳에서 먹고 가자. 괜찮지?”

“저녁까지 말입니까….”

릴스네는 내키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내가 간절한 눈으로 계속 쳐다보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의 그녀였다면 내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겠지만, 지금 그녀는 커다란 선물을 받고 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돈으로 따지면 집 한 채를 선물 받은 것이나 다름없는데 눈치를 안 볼 수가 있나.

‘평범한 여자였다면 집 한 채를 선물해준 순간부터 가랑이를 벌렸겠지. 크크.’

릴스네는 돈을 좋아하는 수전노지만 선을 지킬 줄 안다. 돈과 관련된 계약은 철썩같이 지키고, 자신의 몸을 돈에 팔지 않는다.

‘그게 릴스네의 매력이지.’

나와 릴스네는 이곳에서 제법 유명한 고급 호텔로 향했다. 잠자러 오면 좋겠지만, 우리의 목적은 물건을 맡기기 위함이다.

나는 호텔 주인에게 말했다.

“이 상자를 밤까지 맡아 주십시오. 저녁 식사를 한 뒤에 바로 찾으러 오겠습니다.”

“곤란합니다. 손님. 저희는 물건을 맡아 주는 곳이 아닙니다.”

“팁으로 3만 페니를 드리겠습니다.”

“저희 호텔의 경비들은 모두 한가락 하던 추방자들입니다. 물건을 맡겨만 주신다면 안전하게 지키겠습니다.”

돈은 대단했다.

고급 호텔에 짐을 맡긴 우리는 구두 가게와 장신구 가게를 돌아다녔다. 그러고도 시간이 좀 남아서 도시 내를 산책하며 이런저런 곳을 돌아다녔다.

저녁 식사는 요즘 부유층들 사이에서 유행이라는 통돼지 구이를 먹었다. 점심에 먹었던 스테이크보다 못했지만, 제법 맛있었다.

“제가 이렇게 받기만 하니 유진 씨에게 죄송한 마음이 자꾸 생깁니다.”

“내가 해주고 싶어서 그러니까 부담 갖지 말고 마음 편히 먹어. 난 너랑 같이 와서 즐거우니까.”

“그래도….”

그때였다.

식당 창문을 통해 급하게 달리는 치안대가 보였다.

“치안대들이 완전 무장을 했습니다.”

“누군가 도시에서 싸움이라도 일으킨 모양이네. 도시 내의 치안대가 알아서 할 테니 우리가 신경 쓸 필요 없어. 식사나 계속하자.”

“네. 아무리 그래도 우리 둘이서 돼지 통구이를 먹는 건 불가능합니다만….”

“억지로 먹을 필요 없어. 맛있는 부위만 먹어. 어차피 버려질 테니.”

“이런 음식들을 버린다니….”

“원래 이 식당은 사치를 위한 식당이야. 가끔 귀족들도 찾아오는 곳이지.”

“사치입니까…. 전 얻어먹는 거니 사치라 할 수 있을지….”

“깊게 생각하지 마. 지금, 이 순간을 즐겨.”

“…네. 그런데 저만 즐기려니 조금 그렇습니다. 서희 씨와 서현 씨가 알게 되면 화내지 않겠습니까.”

그거라면 걱정할 필요 없다. 각각 다른 날에 이 도시에 함께 오기로 약속했으니까.

나는 그녀를 보며 씨익 웃었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라니까.”

“…네.”

저녁 식사를 끝내고 옷을 맡겨두었던 고급 호텔로 돌아왔다. 그러나 우리를 반긴 것은 번듯한 고급 호텔이 아니라 창문이 박살 나고, 벽이 허물어졌으며, 핏자국까지 바닥에 남아 있는 폐허가 되기 직전의 건물이었다.

건물 주위에는 치안대와 사람들이 바글바글 몰려 있었다.

“치, 치안대가 급히 움직인 이유가 설마…!”

릴스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나는 치안대를 지나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릴스네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내 뒤를 따랐다.

가구의 잔해 속에 앉아 있는 호텔 주인을 발견했다. 심하게 얻은 맞은 듯 얼굴에는 시퍼런 멍이 가득했고 깔끔하던 옷은 피가 한가득 묻어 있다. 그는 얻어터진 입술을 열었다. 이빨 몇 개가 사라져 있었다.

“죄송합니다…. 맡겨주신 물건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상대는 누구입니까?”

“알보그 도적단이었습니다…. 저희 호텔의 경비들로 막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다행히 경비들도 목숨은 붙어 있지만…. 죄송합니다.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아닙니다. 도적놈들이 갑자기 호텔을 습격했을 리는 없을 테고…. 저희가 무심하게 움직인 탓도 있겠지요. 호텔이 입은 피해액은 제가 배상하겠습니다.”

호텔 주인이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흐윽….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빠드득. 빠득. 빠드득.

뒤쪽에서 이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와 호텔 주인이 깜짝 놀라 릴스네를 쳐다봤다.

“알보그 도적단…. 그렇군요. 감히 도적단 따위가 저희 물건을 훔친 겁니까. 어지간히 간이 부은 모양입니다.”

“리, 릴스네. 진정해.”

“진정 말입니까? 못합니다. 저희가 잃은 돈이 얼마인데 어떻게 진정합니까.”

“괜찮아. 드레스라면 다른 거로 구해줄게.”

“유진 씨. 전 이대로 넘어갈 수 없습니다. 마침 주위를 둘러보니 흔적이 있습니다. 레인저로서 제 실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오늘 안으로 반드시 드레스를 되찾을 겁니다!”

릴스네의 눈동자가 빛난다. 그녀는 알보그 도적단의 흔적을 찾아 미친 듯이 주위를 돌아다녔다. 이미 나와 호텔 주인은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슬쩍 고개를 돌렸다.

호텔 주인과 두 눈이 마주쳤다.

나는 그를 향해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 또한 엄지를 척 올렸다.

무엇을 숨기랴. 지금 이 상황은 전부 내 계획대로였다.

나는 며칠 전에 호텔 주인을 만나 계약을 했다. 호텔 주인은 계획대로 움직였고 성공했다.

‘이대로 릴스네와 에이플랜 레기온 성으로 돌아갈 순 없지. 기회는 만드는 거야.’

수전노인 릴스네는 예상대로 움직였다. 도적들은 물건을 훔쳐 흔적을 남기며 도망쳤다. 그리고 릴스네는 마침 뛰어난 실력을 갖춘 레인저였다. 수전노인 그녀가 비싼 드레스를 쉽게 포기할 리 없다.

‘호텔 주인은 기뻐 보이는군.’

막대한 돈을 손에 넣을 테니 당연했다. 그는 이제 고급 호텔을 처분하고 다른 대도시로 돌아갈 것이다. 내가 준 돈을 자본 삼아 새로운 사업을 하겠지.

“유진 씨! 흔적을 찾았습니다! 지금 당장 그놈들을 추적해야 합니다!”

5분 만에 릴스네가 날 불렀다. 그녀가 흔적을 찾은 방법은 간단했다. 치안대와 시민들에게 물어본 것이다. 목격자의 진술 만큼이나 확실한 건 없었다.

“알보그 도적단에 대한 정보는?”

릴스네가 치안대를 쳐다봤다. 한 병사가 앞으로 나서며 내게 말했다.

“요즈음에 도시 근처에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도적단입니다. 이 호텔을 덮친 도적은 8명입니다만, 알보그 도적단의 인원은 총 30명이 넘습니다. 치안대에서 토벌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보통 놈들이 아닙니다. 추적하신다면 조심하십시오. 저희도 돌와드리고 싶긴 합니다만, 규율에 어긋나서 움직일 수 없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놈들에게 현상금이 걸려 있습니까?”

“두목인 알보그 마데카스에게 6,200만 페니가 걸려 있습니다.”

금액을 들은 릴스네의 얼굴이 확 굳어졌다. 도적치고는 현상금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다. 5,000만 페니가 넘어가는 현상금이면 결코 우습게 볼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유진 씨. 놈들이 완전히 숨어버리기 전에 빨리 놈들을 추적해야 합니다.”

당장 움직이자는 소리였다.

병사는 손을 들어 오른쪽을 가리켰다.

“놈들은 남쪽으로 도망쳤습니다. 도시를 벗어난 건 확실한데…. 놈들의 아지트가 어디에 있는지는 저희도 모릅니다.”

“전 레인저입니다. 도적들의 흔적이 더듬어 추적하겠습니다.”

릴스네는 본격적인 추적을 하기 전에 무기 점에서 적당한 활과 화살 30개를 구매하고 알보그 도적단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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