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636 - 636. 신의 아틀란티스 (416/2,000)

〈 636화 〉 636. 신의 아틀란티스

636. 신의 아틀란티스

우리는 도시를 벗어나 숲속에 들어갔다.

“여기서 도적들이 흔적을 지웠습니다.”

릴스네가 바닥을 가리켰다. 나뭇잎과 흙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내게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으니 탐색 전문 레인저인 그녀의 눈에는 다른 게 보이는 모양이다.

“여기서 흔적이 끊긴 거야?”

“아닙니다. 흔적을 완벽히 지우는 일은 전문가도 힘듭니다. 그리고 이 도적들의 실력은 형편없습니다. 나름 페이크를 심어두긴 했는데 결국 향한 곳은 서쪽 방향입니다.”

“움직이자.”

릴스네가 달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도중에 몇 번 방향을 바꿨다.

“알보그 도적단의 아지트에 도착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데?”

“전방 50M 앞에 결계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치안대가 번번이 토벌을 실패한 이유가 이 결계 때문에 도적단의 아지트를 찾지 못했기 때문일 겁니다.”

“아직 적들은 우릴 발견하지 못했지?”

“네. 알아차렸다면 가만히 있지 않고 결계 밖으로 뛰쳐나왔을 겁니다.”

“하긴 도적들이니 작전이고 뭐고 없겠지. 우리에겐 잘된 일이야. 도시로 돌아가서 치안대를 불러오자.”

“…….”

릴스네는 대답이 없었다.

“릴스네?”

“유진 씨. 도적단 두목의 목에는 6,200만 페니가 걸려 있습니다. 생포해서 데려가거나, 죽여서 그 머리를 치안대에 가져가면 현상금을 전부 받을 수 있습니다.”

나는 안심했다. 그녀가 내 말대로 순순히 치안대를 부르자고 하면 어쩌나 싶었다. 그녀는 내 계획대로 현상금에 눈이 멀었다.

“유진 씨는 도적단 따위는 쉽게 처리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지 않습니까?”

“……난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강하지 않아.”

“언젠가 마스터는 말했습니다. 유진 씨는 자신 만큼 강하다고. 유진 씨와 저, 둘이서 충분히 알보그 도적단을 토벌할 수 있습니다.”

“……느낌이 좋지 않아. 안전하게 가자.”

“이런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습니다. 유진 씨. 직접 잡지 않고 치안대에 신고하면 신고 보상으로 얼마 받는지 아십니까?”

“현상금 일을 해본 적 없어서. 신고 보상으로 얼마 주는데?”

“천만 이상의 현상금이 걸려 있으면 신고 보상은 0.5%입니다. 저희는 신고해봤자 31만 페니밖에 못 받습니다. 고작 31만 페니입니다!”

생각보다 적긴 했다.

나는 고민하는 척했다. 무턱대고 그녀의 제안을 받을 순 없었다. 지금부터 연기가 중요했다. 레인저인 그녀를 완벽하게 속여야 한다.

“유진 씨. 부탁드립니다. 현상금의 6할은 유진 씨가 가져도 좋습니다. 그러니…!”

“……반반으로 나누자. 전투는 내가 맡을지 몰라도 여길 찾은 건 네 능력이야.”

“감사합니다!”

릴스네의 얼굴의 밝아졌다.

그녀의 입장에서 오늘은 운수 좋은 날이다. 공짜로 집 한 채 값의 드레스를 받고 추가로 현상금까지 타간다. 하지만 끝까지 운수가 좋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이대로 바로 쳐들어갈까?”

“치안대의 말을 들어보면 알보그 도적단의 수는 30명이 넘습니다. 저는 천천히 사냥하는 방식을 추천합니다.”

“사냥하는 방식이라면?”

“도적들이 스스로 나오기를 진을 치고 기다립니다. 그리고 도적들이 나왔을 때… 차근차근 사냥합니다.”

“놈들이 낌새를 눈치채고 다른 방향으로 도망칠 수 있어. 한 번에 흩어지면 잡기도 힘들어.”

“우리 목적은 도적들이 가져간 옷을 되찾는 것과 도적단의 두목입니다. 목적만 달성한다면 잔챙이들은 놓쳐도 상관없습니다.”

“놈들이 우리에게 한 번에 달려들 수도 있어. 차라리 우리가 몰래 결계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한 방법이야.”

“대부분의 결계는 침입자가 발생하면 알려줍니다. 몰래 들어가는 건 힘듭니다.”

“아주 놀러 왔구먼? 엉?”

낯선 목소리에 의견을 나누던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뽀글뽀글한 검은색 머리카락에 입가에 흉터가 있는 40대 중년인이 나타났다. 알보그 마데카스. 현상금 수배지의 초상화와 똑같이 생겼다.

이어서 그의 부하들이 나와 릴스네를 포위한다. 알보그를 제외한 도적들 전원이 얼굴에 복면을 썼다.

나는 화련비도를 뽑아 들고 릴스네는 시위에 화살을 메겼다.

“잃어버린 물건을 찾으러 오셨나 보군. 멍청한 놈들.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는 거냐.”

“…….”

릴스네가 먼저 시위를 놓았다. 마나가 담긴 화살이 허공을 가르며 알보그의 머리로 날아간다. 알보그는 손을 들어 올려 맨손으로 막아냈다. 릴스네의 안색이 싹 굳어진다.

내가 릴스네 앞에 나섰다. 칼날에 푸르스름한 검기와 붉은 뇌전이 번쩍였다.

“경고하지. 못해도 난 너희들 절반을 데려갈 수 있다.”

“에이플랜 레기온의 뇌절사시군. 아이구 무서워라. 그런데 어쩌나?”

알보그가 손바닥으로 허공을 향해 부채질했다.

“우리가 멍청이도 아니고 그냥 나왔을 리 없잖냐? 슬슬 효과가 올 때 됐는데? 안 어지럽나?”

“어지럽기는 퍽이나… 헛!?”

나는 다리를 비틀거렸다. 자세가 무너진다.

“대, 대체….”

“욕 나올 정도로 비싼 수면 가스다. 비싼 만큼 확실한 성능을 자랑하지. 흐흐. 뇌절사랑 엘프라… 오늘 얻는 게 많군.”

털썩.

쓰러지는 소리에 고개를 살짝 돌려 뒤를 쳐다봤다. 릴스네는 이미 바닥에 쓰러졌다. 녹색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린다. 곧 그녀는 잠에 빠져드리라.

나도 바닥에 쓰러졌다.

“크하하하하하하!”

알보그가 호탕하게 웃는 소리가 귀에 들렸다.

그 상태로 약 1분 정도가 흐른 후, 알보그가 말했다.

“일어나쇼. 엘프는 완전히 뻗었쓰.”

몸을 일으킨다.

내가 며칠 전에 알보그에게 건넨 수면 가스의 성능은 확실했다. 마나를 이용해 입과 코를 막지 않았다면 나도 잠들었을 것이다.

‘마나를 이용해 성공적으로 수면 가스를 막아서 다행이지.’

물론 실패했다면 완전 회복을 써서 계획이고 나발이고 다 날려버렸을 거다. 눈앞에 도적들을 믿을 수 없으니까.

“오. 저 엘프 최상급인데?”

“팔면 돈 좀 되겠어.”

“팔기 전에 한번 먹고 싶군.”

도적들이 릴스네를 보고 낄낄거렸다. 내가 살기를 내뿜으며 몸에서 뇌전을 일으키자 도적들이 기겁해 뒤로 물러났다.

“내 거다. 털끝 하나 건들면 전부 죽는다.”

릴스네가 착각한 게 있다. 그녀는 내가 강명진과 비슷한 실력이라고 판단한 모양이지만, 진짜 내 실력은 강명진 이상이다. 전력을 다하면 눈앞에 있는 도적들 정도는 5분 내로 처리 할 수 있다.

“진정하쇼. 애들이 겁먹었잖수”

“애들 같은 소리하고 있군.”

나는 바닥에 쓰러진 릴스네를 안아 들었다. 가벼웠다.

“형씨. 계약은 잊지 않았지?”

“너야말로 계약은 확실히 이행해라. 나는 선금을 지불했다.”

“선금보다 중요한 게 있지 않수?”

“계약대로 일주일 뒤에 주겠다.”

“계약 어기면 내 직접 그 골통을 부숴버릴 테니 잊지 마쇼.”

“내가 할 말이다.”

나는 릴스네를 안아 들고 숲속을 움직였다. 목적지는 미리 준비해둔 비밀 장소다.

‘순조롭군.’

???

‘슬슬 시간이군.’

나는 읽고 있던 만화책을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정면에 거울이 있었다. 미러 터널이다.

‘우선 옷부터 갈아입자.’

도적 옷으로 바꿨다. 마음에 안 들지만 완벽하게 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고유 특성인 ‘기만(SS)’을 사용한다.

내 얼굴이 변하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변하는 게 아니라 기만(SS) 고유 특성으로 덧씌우는 느낌이지.’

변한 얼굴은 알보그와 비슷한 얼굴의 남자였다. 피부를 좀 더 진하게 만들고 목과 이마에 검에 베인 듯한 흉터를 만들어냈다. 누가 봐도 험악한 얼굴이 되었다.

‘다음은 체격도 바꿔야지.’

본래 내 체격보다 조금 더 크게 만들었고, 몸의 근육도 조금 내렸다. 중요한 성기 부분도 바꿨다.

거울 속의 나는 성유진이 아닌 아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게 기만이다.

오른손으로 내 얼굴을 쓰다듬는다. 내 본래 이목구비의 감촉이 느껴졌다.

‘여기서 기만(SS)을 사용하면.’

손바닥을 통해 느껴지는 내 얼굴 감촉까지 변한다. 아니, 속인다.

예전에는 마나 능력치가 부족해 잘 활용하지 못한 능력이다.

‘유지할 수 있는 건 길어 봤자 2시간인가. 마나 포션을 먹으면 3시간 정도는 가능하겠지.’

자신의 몸을 직접 만지며 모습과 감촉을 꼼꼼히 확인한 나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창문 없는 복도를 걷는다. 무척 어두웠다.

끼이이이익.

복도 끝의 철문을 열었다. 벽 촛대에서 조용히 타오르는 촛불 하나가 흔들리며 주위를 밝힌다.

넓으면서도 음산한 공간이었다. 뒤쪽에는 벽으로 가려진 공간이 있었고, 오른쪽에는 살벌한 고문 기구들이 있었다. 그리고 방의 중심에는 금발 엘프녀, 릴스네가 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녀의 양 손목은 등 뒤로 향한 채로 밧줄에 묶여 있었다. 밧줄은 천장과 이어져 있었기에 그녀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는 매우 한정되어 있다.

조금 지나자 그녀의 몸이 꿈틀거렸다. 그녀의 무거운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열렸다.

“일어났네. 잠자리는 달콤하셨나? 응?”

“……!!”

릴스네가 깜짝 놀라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여긴 어디고, 넌 누구야?”

릴스네는 차분함을 유지했다. 허세다.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다. 지금 이 상황에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이는 얼마 없다.

“여기? 노예 교육장이지. 요즘 여자 노예들은 팔기 전에 어느 정도 교육을 해둬야 값을 비싸게 얻을 수 있단 말이지.”

“……알보그랑 무슨 관계야?”

“알보그? 내 형이야. 형이 노예를 데려오고, 내가 그 노예를 교육하는 역할을 하지. 넌 오랜만에 들어온 상등품이라 매우 기대 돼. 교육 하고 팔면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그는 어디에 있어?”

“아, 그놈? 엘프 여자 만큼의 가치는 없어서 부하 놈들에게 적당히 처박아두라고 시켰지. 강한 놈이라고 하니 며칠 굶겨서 기어 오르지 못하도록 기부터 죽여 놔야지.”

“…….”

릴스네는 조용히 무언가를 했다가 실패했는지 안색이 어두워졌다.

“마나 일으키려고 했나? 킬킬. 소용없어. 너한텐 특별한 약물을 먹여 뒀으니까. 앞으로 며칠 동안은 마나를 사용하지도, 느끼지도 못할 거다. 크크.”

거짓말이다. 약물 대신 점혈을 짚었다. 릴스네는 혈도는커녕 점혈도 모르니 낚일 수밖에 없다.

“나, 날 어쩔 셈이지?”

“교육한다고 말했잖아. 그리고 기억해둬라. 내 이름은 알보쥬다. 네 이름은 뭐지?”

“너 따위에게 가르쳐줄 이름은 없어.”

“오우. 그러세요?”

나는 주머니에서 나이프를 꺼냈다. 시퍼렇게 날이 선 칼날로 그녀의 뺨을 가리킨다.

“하나 경고해두지. 여기서 네가 어떤 비명을 내지르든, 널 구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

“나, 날 노예 상인에게 팔려는 거 아니었어? 내가 상품이라면 누가 흠이 있는 상품을 비싼 값을 주고 살까?!”

“맞는 말이야. 근데 이 세계에는 포션이라는 아주 좋은 약이 있단 말이지. 피부 가죽을 벗기고 그 부위에 포션을 부으면 순식간에 피부 가죽이 회복되는 신비한 물건이 말이야.”

“…….”

차가운 칼날로 그녀의 뺨을 툭툭 때렸다. 릴스네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나도 포션은 쓰기 싫어. 포션은 비싸니까. 그러니 엘프 노예야. 우리 잘 지내보자. 그리고… 네 이름은 뭐지?”

“리… 릴스네….”

릴스네의 목소리에 공포심이 실려 있었다. 기만(SS)과 [연기]가 제대로 발휘하고 있었다.

“그래. 릴스네. 우선 네 몸 상태부터 알아보자.”

릴스네의 양 손목을 묶고 있는 밧줄을 당겼다. 밧줄이 당겨지며 그녀는 강제로 일어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나는 그녀의 밧줄을 다르게 묶었다. 팔을 등 뒤로 묶는 것 보다 양손을 위로 올린 자세가 시각적으로 더 보기 좋았다.

나이프가 릴스네의 목 부분에서 아래로 움직여 가죽 상의를 천천히 베어냈다. 가슴 부위로 내려오자 분홍색 속옷이 보였다. 가슴 크기는 대충 B컵. 내 손아귀에 딱 좋게 들어올 크기다.

“뭐, 뭐 하는 짓이야?!”

“방금 말했을 텐데. 네 몸 상태를 확인해보겠다고.”

위이이이이이이이잉!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쯧! 결계가 작동해? 경비서는 새끼들은 뭐 하는 거냐. 넌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무슨 일인지 확인해보고 올 테니.”

“뭐…?”

문을 열고 복도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내 방으로 들어가서 기만(SS)를 해제하고 원래의 내 몸으로 돌아왔다. 옷을 전부 벗은 나는 기만(SS)을 통해 몸에 상처를 만들고 릴스네이 있는 감금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묶여 있는 릴스네를 보며 경악한 듯 연기한다.

“릴스네! 다행이다! 무사했구나!”

“유, 유진 씨?! 그 모습은?!”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