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9화 〉 649.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649.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유희 세계에 들어온 나는 이 세계의 주인공인 카일과 독대했다.
카일은 오늘 아침에 프터스에 있는 내 저택으로 찾아왔다. 며칠 전에 미리 예고하고 찾아왔던지라 내 저택은 모두 대비를 끝마친 뒤였다.
“무슨 일이야. 형.”
카일의 방문 목적은 짐작하고 있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날 찾는 귀족들의 목적은 대부분 같기 때문이다.
“그게 유진아….”
카일은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돈 좀 빌릴 수 있을까?”
역시 그럴 줄 알았다. 이번에 일어날 전쟁을 기회를 보는 이들이나, 전쟁이 무서운 귀족들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내게 돈을 빌리러 온다. 나는 내게 도움이 될 것 같은 자들에게만 돈을 빌려주고 있었다.
“군자금 때문이야?”
“응. 가문에서 군자금을 빌려주지 않아서 곤란한 상황이야.”
이번 전쟁에 프루커스 백작가의 후계 자리가 걸렸다. 프루커스 백작은 아들인 우리들에게 어떠한 지원도 하지 않는다. 군자금을 마련하고 병사를 구하는 것도 모두 스스로 해야 한다.
첫째인 젠트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세력이 있고, 아내인 헤올리스의 가문은 왕국내에서도 손꼽히는 부자다. 병력과 군자금. 모두가 충분하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우리 형제 중에 가장 유리한 건 젠트일 것이다.
셋째인 나는 코리아 상단을 통한 풍부한 자금을 가지고 있다. 자금이 있으니 병력을 모으고 유지하는 건 쉬운 일이다. 거기에 이미 예전부터 준비해온 것들도 있고, 여차하면 [뱀파이어 형사] 세계에서 식량을 비롯한 생필품을 가져올 수 있다.
“…형은 병력을 이미 구했지?”
“맞아. 내가 구할 생각은 없었는데… 날 보고 찾아오더라고.”
둘째인 카일은 군자금은 없으나 병력은 있었다. 그와 인연이 있던 모험단들이 찾아오고, 그의 명성을 들은 자유 기사들이 찾아와 충성을 맹세했으며, 그에게 매료된 평민들은 갑옷과 창을 들었다.
카일에겐 병력이 있으나, 병력을 유지할 돈이 없었다. 지금이 전쟁 중이라면 적을 약탈하는 것으로 군자금을 마련하겠지만, 지금은 아직 전쟁 중이 아니었다.
“형. 내가 형의 경쟁자란 건 알고 있지? 이번 전쟁에서 공을 가장 많이 세운 자가 프루커스 가문의 정식 후계자가 되는 거야. 나로선 형의 요청을 무시하는 편이 이득이야.”
“알고 있지만… 어떻게 안 될까? 우린 형제잖아. 지금 상황이 많이 안 좋아. 근처 몬스터를 사냥하면서 어떻게 돈을 모으고 있긴 한데… 몬스터가 확 줄어서 그런지 날이 갈수록 수익이 줄어들고 있어. 이대로 가다간 병사들이 훈련하기는커녕 거리에 나가 구걸을 해야 할 판이야.”
카일은 돈 버는 재주가 없었다. 원작에서는 뛰어난 가신들과 주인공 버프로 그가 돈에 쪼들리는 일이 없었기에 신선하다.
“형도 나한테 빌리는 것보다 다른 사람에게 빌리는 편이 좋을 텐데?”
카일은 멋쩍은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대출을 위해 근처의 다른 상단이나, 마탑을 찾아가 봤지만, 좋은 말은 하나도 듣지 못했어.”
당연했다.
이 일대의 상계는 코리아 상단이 지배하고 있다. 카일에게 돈을 빌려주는 일은 코리아 상단을 적으로 돌리는 행위다. 내 눈치 보기 바쁜이들이 카일에게 돈을 빌려줄 리가.
“후원은? 후원자는 안 나타났어?”
“아무 소식도 없어. 널 찾아온 것도 염치없는 짓이란 걸 알고 있지만…. 정말 돈이 필요해.”
“하아.”
나는 일부러 한숨을 내쉬었다.
돈을 빌려주고 싶지 않지만, 빌려주는 게 더 이득이라는 유리아의 조언이 떠오른다. 유리아의 의견은 이해한다. 카일은 받은 은혜를 잊지 않는 놈이니 나중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형. 플라비트 가문에 연락은 해봤어?”
플라비트.
그 이름이 나오자 카일의 얼굴이 싹 굳어졌다.
“아, 아니. 아직.”
“나한테 빌리는 것보다 약혼녀에게 돈을 빌리는 게 더 좋지 않아? 이자도 없이 대출받을 수 있을걸?”
배리엔 플라비트.
카일의 약혼녀였다. 플라비트는 와인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마탑을 보유한 후작가다. 헤올리스 가문보다는 못하지만 왕국내의 부유한 가문 중 한 곳이다.
“……솔직하게 말할게. 난 플라비트 영애와 이어질 생각이 없어.”
“왜? 플라비트 후작 가문이 눈에 차지 않아서?”
“아니야! 플라비트 후작 가문이 뛰어난 가문인 건 알고 있어. 하지만 난 배리앤을 사랑하지 않아. 억지로 결혼해봤자 서로 불행해질 뿐이야.”
카일이 진지하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배리앤 영애가 못생겨서 그렇다는 것을. 물론 이 말을 해도 카일은 정색하며 아니라고 말하겠지만.
“뭐야. 따로 사랑하는 여자라도 있는 거야?”
“…….”
나는 카일의 시선이 문밖으로 향한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뻔했다. 유리아를 무의식적으로 떠올린 거겠지. 꼴을 보아하니 유리아에 대한 마음을 접기는커녕 더 심각해진 것 같았다.
참고로 현재 유리아는 저택 내에 없었다. 코리아 상단에 생긴 약간의 문제 때문이다.
‘유리아 같은 여자가 없긴 하지.’
유리아 이상의 여자를 찾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됐어. 본론으로 들어가자. 얼마를 원해?”
“300억 네르. 못해도 300억 네르는 반드시 필요해.”
“그렇게나 많이?”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카일을 쳐다봤다. 카일이 흠칫거렸다. 꼴을 보니 카일이 직접 돈을 계산한 건 아닌 것 같고 카일의 부하 중 누군가가 계산한 모양이다.
“나, 나도 많다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어쩔 수 없어. 병사와 기사들의 장비를 맞춰야 하고 곧 겨울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잖아. 식량값으로 많은 돈이 나갈 거야.”
“이자율은? 30%면 빌려줄게.”
“15%! 15%면 안 될까?”
“25%로 하자. 그 이상은 안 돼. 못 빌려줘. 형도 내 입장을 생각해줘.”
“…알았어. 돈은 반드시 갚을게.”
의외로 빠르게 수긍한다. 25%는 예상 내의 범위였던 모양이다.
“유진아. 돈은 언제쯤 받을 수 있을까?”
“…지금 당장은 힘들어. 300억은 내게도 큰돈이야. 여기저기서 돈을 가져와야 하는데 대충 일주일이면 될 거야. 나중에 사람을 시켜 형에게 보내줄게.”
“300억이 작은 돈도 아니고…. 직접 받아 가고 싶어. 그때 동안 저택에 머물러도 될까?”
“……상관없긴 한데. 내 저택이나 영지에는 재밌는 것도 없을 텐데? 형이 이용할 개인 수련장도 없어. 그리고 빈방도 없어서 별채에 머물러야 해. 괜찮아?”
“괜찮아. 돈을 빌리는 입장인데 여기서 뭘 더 바라면 염치가 없는 거지.”
우리는 계약서를 작성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처음 뵙겠습니다. 카일 님. 바네사입니다. 카일 님이 머무시는 동안 전속 메이드로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제게 말씀해주십시오.”
바네사가 치맛자락을 잡고 공손히 인사했다.
카일은 그녀를 보고 잠깐 넋을 잃었다. 부드러운 황금색 머리카락과 새하얀 피부, 뚜렷한 이목구비 등 외모가 뛰어나기도 했지만, 풍겨오는 분위기가 하녀가 아니라 격식 있는 귀족 가문의 영애 같았기 때문이다.
“네. 바네사 씨. 잘 부탁드립니다. 그, 바네사 씨는 귀족 출신이십니까?”
“전 고아 출신의 메이드입니다. 말씀 편히 해주십시오.”
“……평범한 메이드처럼 보이지 않아서 깜짝 놀랐어.”
“고아원에 있을 때부터 교육을 받았고, 저택에서도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다른 메이드도요.”
“유진이 잘해주나 보네.”
“네. 주인님께 받는 것들은 많습니다. 자, 별채는 이쪽입니다.”
카일은 바네사를 따라 별채로 이동하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자세히 보니 저택 내의 구조나 장식 등이 그가 알고 있던 것과 조금 달랐다. 더 세련되게 느껴졌다. 깨끗하기도 깨끗했다.
지나가는 메이드와 마주쳤다. 메이드는 복도 옆에 서며 기품있게 인사했다. 다른 하인들과 마주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저택 크기에 비해 하인이 많네.”
“네. 이곳에서 일하는 하인 대부분은 갈 곳 없는 부랑자 출신이거나, 노예 출신이에요. 모두 주인님의 자비를 받아 이곳에서 일할 수 있게 됐죠.”
“유진이는 잘살고 있구나. 나랑은 비교도 안 되네.”
카일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는 걸으면서 쉬지 않고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다 하인들이 모두 하나같이 미인이란 걸 깨달았다. 집사, 메이드 할 것 없이 뛰어난 미모를 갖추고 있다.
물론 집사의 경우 전원 남장을 한 여성들이었으나, 눈치가 별로 없는 카일은 눈치채지 못했다.
별채의 손님방으로 안내받은 카일은 천장을 가리키며 바네사에게 물었다.
“저 검은 유리도 장식이야? 조금 특이하네.”
카일이 가리킨 것은 천장에 설치된 카메라였다.
바네사는 안색 하나 바꾸지 않고 대답했다.
“장식이에요. 드워프가 만든 고급 유리죠. 장식으로서 아름답지 않나요?”
“예쁘긴 해. 그런데 조금 꺼림칙하다고 할까….”
“그래요? 그런데 어쩌죠…. 별채의 다른 방에도 저 장식이 있어요.”
“그냥 내 기분이 그런 거니까 바꿀 필요는 없어. 이 손님 방도 넓고 좋네.”
“편히 휴식을 취해주세요. 뭔가 필요한 게 있으시면 망설이지 말고 말씀해주세요. 저 말고도 다른 메이드도 카일 님을 도와주실 겁니다.”
“고마워. 바네사.”
바네서가 떠나고 방안에 혼자남게 된 카일은 창가로 움직였다. 창밖을 통해 도시의 풍경이 보였다. 별채는 저택 외곽 쪽에 있어서 그런지 저택 내부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
“아으읏… 앙. 주인님…! 좋아요!”
의자에 앉은 내 위에서 바네사가 허리를 흔들었다. 긴 금발 머리가 흔들리고 지금도 성장 중인 C컵 가슴이 출렁였다.
찔꺽찔꺽.
그녀의 보지와 내 자지가 쉬지 않고 마찰한다.
“바네사. 카일은?”
“하아윽. 방에서 나오지 않고 있어요. 카메라로 계속 감시 중인데…. 바닥에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에요.”
“명상? 아니, 운기조식을 하고 있는 건가. 역시 쉬지 않고 수련하는군. 아, 바네사. 쌀 것 같아.”
“안에, 안에 싸주세요…! 허읏! 저도 곧… 하아아아아앙!”
바네사가 숨을 크게 마시며 허리를 비틀었다. 그녀는 이내 내 상체 위로 무너졌다. 나는 땀으로 미끈한 바네사의 등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카일이 날 찾아와 돈을 빌린 이유는 하나야. 급했기 때문이지.’
앞으로 삼 개월. 그 안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병력을 더 구해야 해. 지금 내가 가진 병력으로도 충분하지만…. 병력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이미 영지 내에서 징병은 끝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추가로 징병하면 영지의 상황이 박살 날 수 있다.
‘용병은 이미 충분히 고용했어. 추가로 고용하는 건 안 내켜.’
용병은 편리하지만 믿기 힘들었다. 돈만 있으면 쉽게 구할 수 있으나, 중요한 순간에 용병에게 배신 당할 수도 있었다. 이 세상에서 용병의 배신은 흔했다.
‘차라리 노예병이 낫지. 하지만 노예로 병력을 충당하면 영 보기 좋지 않아.’
나는 귀족이었다. 그리고 이번 전쟁에 걸린 게 큰 만큼 다른 사람들의 눈도 신경 써야 한다. 최대한 보기 좋게 포장할 필요가 있다.
‘노예병을 일반 병사로 둔갑시키는 건 쉬운 일이지만…. 전쟁이 코앞이라 노예도 귀해졌단 말이지.’
지금 노예가 금값이라도, 전쟁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 값이 내려갈 것이다.
‘전쟁의 여파로 예쁜 여자들도 많이 잡힐 테니 노예 시장을 주시하고 있어야지. 병력은… 그렇지. 그 방법이 있어.’
방법이 떠오른 내가 씨익 웃었다.
“주인님?”
“바네사. 한 번 더 하자. 괜찮지?”
“물론이에요. 아앙.”
???
돈이 준비되었다.
나는 집무실에서 유리아와 함께 카일을 맞이했다.
“유, 유리아?”
유리아를 본 카일이 당황했다.
“아까 유리아가 저택으로 돌아왔어.”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카일 공자님.”
사실 유리아는 사흘 전에 저택으로 돌아왔다. 저택에 돌아오자마자 나랑 침대에서 뒹구느라 카일과 인사할 시간이 없었던 것뿐이다. 유리아도 굳이 카일과 인사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었고.
“오랜만이야. 유리아. 예전에 봤을 때보다 한층 더 아름다워졌네.”
오.
나는 마음속으로 감탄했다.
내가 알기로 카일은 저런 말을 잘 하지 않았다. 카일도 여러 가지로 발전한 것이다.
“감사합니다.”
유리아가 웃으며 대답했다. 반면에 카일은 웃지 못했다. 오히려 그의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다. 유리아의 왼손 약지에 있는 반지를 본 것이다.
“유리아. 그 반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