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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51 - 651.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431/2,000)

〈 651화 〉 651.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651.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이 세계에는 유랑민이 존재한다.

안전한 도시나 마을에서 쫓겨난 자들. 혹은 저 스스로 뛰쳐나간 자들. 지난 전쟁의 피해로 어쩔 수 없이 살 곳을 잃은 자들 등등.

이 유랑민들은 마을이나 도시에 정착하고 싶어도 정착하지 못했다. 이 세계의 사람들은 유랑민을 일종의 야만인으로 보며 업신여기면서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영주의 입장에서도 유랑민을 영지민으로 받는 걸 꺼린다. 유랑민은 대부분 가난해서 당장 세금을 낼 능력도 없으며, 그 성격도 매우 거칠어 기존의 영지민과 마찰을 일으키니까. 그리고 유랑민은 세금을 내기 싫어 도망치기도 한다.

유랑민은 계속 떠돌아다닌다. 이 세계에서 살만한 곳은 모두 주인이 있는 땅이다. 그 주인이 세금도 내지 않는 유랑민 마을을 자신의 영지에 정착하는 꼴을 두고 볼 리가 없다. 내버려두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영지를 전복하려 들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니까.

‘내 목표는 이 유랑민 놈들이지.’

유랑민을 잡아 강제로 징병한다. 몬스터가 존재하는 이 세계를 돌아다니는 만큼 유랑민의 실력은 최소 기본 이상은 보증되어있다. 병사로 참기에 최적이다.

뿌우우우우우우!

뿔나팔 소리가 들린다. 나는 마차 창문을 통해 플로이를 쳐다봤다.

”먼저 뛰어간 기사들이 불었어?“

“주군. 우리 나팔 소리가 아니다.”

“유랑민 놈들의 나팔이군. 적은 300명이 넘는데 괜찮겠어?”

“우리를 너무 무시하는군. 그 세 배가 있어도 괜찮다.”

플로이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사실 나도 그냥 해본 말이다. 이 세계에서 기사는 초인이다. 하물며 말을 타고 드워프가 만든 갑옷과 무기를 가진 기사다. 마음만 먹으면 기사 10명으로 유랑민 300명은 30분 내로 쓸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느긋하게 달리는 마차 안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시간이 지나자 전투 소리가 내 귀에 들린다.

채앵. 챙. 날붙이가 부딪히는 소리와 인간의 비명 소리가 들린다. 전투 소리는 가까워질수록 점점 줄어들었다. 마침내 마차가 멈춰 섰을 때,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널브러져 있는 메이드들을 두고 마차에서 내렸다.

여기사들에게 포위당한 300명에 달하는 유랑민들이 땅바닥에 무릎 꿇고 나를 올려다본다. 그들의 눈에 서린 적개심과 두려움을 비웃어주고 주위를 둘러봤다.

유랑민답게 언제든지 옮길 수 있는 천막으로 만든 집들이 보인다. 말과 염소를 비롯한 가축도 몇 마리 보였다.

“주군. 의자를 준비했습니다.”

플로이가 공손히 말했다. 평소와 다른 말투는 남들의 시선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가 준비한 화려한 의자에 앉았다. 겉모습은 그럴싸하지만, 막상 앉으니 조금 불편했다.

“유진 프루커스 남작이다.”

내 이름을 밝혔다. 유랑민들의 눈에 동요가 생긴다. 이곳은 넓게 보면 프루커스 가문의 영지였기 때문이다.

“너희들의 대표는 누구냐?”

“접니다.”

내 앞에 무릎 꿇고 있던 덩치 큰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옷은 피로 젖어 있고, 찢어진 옷 틈으로 울긋불긋 솟은 근육이 보였다. 피부는 어둡고 눈은 부리부리했다.

호위를 서던 플로이는 검을 뽑아 남자의 목에 겨누었다.

“무례하군. 누가 일어서라고 했지?”

“…….”

당연하다는 듯이 검날에 맺히는 검기에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식은땀을 흘렸다.

“플로이. 물러나. 어차피 저게 날 해치지 못할 거란 걸 너도 알잖아.”

“네. 주군.”

플로이는 검을 내리고 내 곁으로 다시 다가왔다. 남자는 자신의 목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며 플로이의 눈치를 살폈다. 플로이의 실력을 대충이나마 알아차린 모양이다.

“이름이 뭐지?”

“카퉁의 우두머리인 로크셰르입니다.”

카퉁은 이 유랑민 집단의 이름인 모양이다. 시큰둥했다. 유랑민 마을의 이름 따윈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내게 할 말이 있는 듯한 표정이군. 딱 1분 동안 허락하지. 하고 싶은 말을 해봐라.”

어차피 로크셰르가 해야 할 말은 정해져 있다.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박은 채 나의 작은 자비를 바라며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내 계획은 놈이 구걸하면 자비를 베풀며 놈들을 내 영지민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사지 멀쩡한 남자 놈들을 징병한다. 병력을 얻을 뿐만이 아니라 인구수까지 늘리는 뛰어난 계획이다!

그러나 로크셰르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예상 밖이었다.

“우리 카퉁은 하이테리어 용병단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하이테리어 용병단의 간부, 모우셰르가 저의 형입니다. 그리고 카퉁의 다른 형제들도 하이테리어 용병으로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이테리어 용병단이라면 들은 적 있다. 이 근처에서 활동하는 용병단 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다. 용병단에 속한 인원만 1,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저희를 풀어주십시오. 저희는 이곳이 프루커스 영지란걸 몰랐습니다. 저희는 유랑민. 자비를 베푸시면 지금 당장 이곳에서 물러나겠습니다. 카퉁의 일원이 몇몇 죽긴 했으나, 잘못은 저희가 했음을 인정합니다. 프루커스 가문과 영지에 원한을 갖지 않겠습니다.”

“…….”

입술이 열렸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너무 어이가 없었다. 머리가 띵해지고 손발이 덜덜 떨린다.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리는 것도 나조차도 잘 알 정도였다.

저놈은 지금 내게 목숨을 구걸하는 게 아니라, 나를 협박하고 있었다.

내가 너무 어이없어서 말도 못하고 손발을 덜덜 떨고 있자, 로크셰르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자신의 협박이 내게 먹히는 줄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푸르커스 남작님.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저희는 프루커스 남작님의 자비를 받아들이고, 푸르커스 남작님의 앞길을 축복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 주제도 모르는 것들이!”

쾅!

화를 못이겨 주먹으로 의자를 내려쳤다. 팔받침대가 산산이 조각나 바닥에 떨어졌다.

“푸르커스 남작님. 냉정하게 생각해주십시오.”

“…좋다. 네가 원하는 대로 냉정하게 생각하마.”

냉정하게 생각했다.

유랑민 주제에 이렇게까지 내게 개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이테리어 용병단이 대단하긴 해도 결국 용병단에 불과하다. 프루커스 가문이 나서면 하이테리어 용병단 정도는 없앨 수 있다. 약간 손해는 보겠지만….

‘손해? 이것들이 전쟁이 코앞이라 함부로 병사들이 움직일 수 없고, 용병의 가치가 어느 때보다 높아진 걸 알고 개기는 거군.’

로크셰르의 눈과 마주쳤다. 아까까지 있었던 두려움이 사라졌다. 로크셰르 뿐만이 아니라 일부 다른 놈들까지도.

“유진 프루커스 남작님. 하이테리어 용병단은 라펠리 왕국 용병계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앞으로 전쟁이 일어나면 용병의 도움이 꼭 필요할 때가 올 것입니다. 더군다나 남작님은 전쟁에서 공을 세워야 하시는 분. 부디 냉정히 미래를 생각하십시오.”

나는 혀를 찼다. 프루커스 백작가의 후계자 경쟁에 대한 이야기가 유랑민들에게까지 전해진 모양이다.

“덩치는 곰 같은 게 여우처럼 말하는군.”

“저희는 여우처럼 떠돌아야 합니다.”

“내가 용병단 따위를 겁낼 것 같나?”

“남작님과 프루커스 백작가는 다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내가 프루커스 백작가의 병사와 기사를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유랑민 주제에 정세를 잘 알고 있다. 어쩌면 유랑민이기에 더 신경 쓰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런데 갑자기 저희를 핍박하시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푸르커스 백작 각하의 뜻입니까?”

이제는 아예 내게 이유를 묻고 따진다.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아버지는 너희 같은 것에 흥미 없다.”

“하오면 남작님의 독단입니까?”

“어머니의 허락은 받았다. 앞마당에 돌아다니는 야만인들을 처리해도 좋다는 허락을 말이다.”

야만인이라는 단어에 로크셰르의 미간이 좁혀졌다가 풀어졌다.

“남작님. 냉정하게. 이성을 잃지 말고 냉정하게 생각하시고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나는 냉정하다. 머리는 여느 때보다 차갑다. 따라서 내가 내리는 판단도 그러하다. 그러니 잠자코 받아들여라.”

검지를 들여 로크셰를 가리키며 씹어 뱉듯이 말했다.

“저놈의 팔, 다리를 자르고 그 몸통을 나무 막대에 매달아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플로이가 쏜살같이 움직였다. 로크셰르가 반응하기도 전에 그녀의 검이 로크셰르의 양다리를 베어냈다.

“으아아아아아아악!”

끔찍한 비명이 울린다. 반면에 다른 사람들의 분위기는 바닷속에 가라앉는 것 마냥 조용해졌다.

플로이는 이어서 양팔을 베어내고 다른 여기사가 가져온 나무 막대에 로크셰르를 매달고 지혈을 했다. 그녀의 행위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끄으… 으으… 으으으으….”

로크셰르가 부들부들 떨었다. 다시금 나를 보는 두 눈에 두려움이 서린다.

“냉정하게 생각해봤다. 냉정하게 생각해봤는데 네놈의 무례와 모욕은 도저히 넘어갈 수 없더군. 그리고 나는 화가 덜 풀렸다.”

내 손가락이 로크셰르의 옆에 있는 남자에게 향했다. 30대의 수염을 기른 남자였다.

“죽여.”

“네. 주군.”

플로이는 이번에도 망설임이 없었다. 그녀는 기사가 되고 난 뒤부터 내 명령을 거부한 적이 없었다. 가사로서, 내 좆집으로서도. 암살 같은 더러운 일을 맡겨도 불만 없이 해냈다. 원래 주군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스타일인지, 아니면 유리아에게 영향을 받은 건지 모르겠다.

“저놈도 죽여.”

“네.”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하나씩 죽어 나갔다.

“아아아아아악!”

지목된 놈들 중 하나는 깜짝 놀라 일어나 도망치려고 했으나, 포위하고 있는 여기사에게 붙잡혀 참살당했다.

“살려, 살려 주시십오! 남작님! 로크셰례의 발언은 모두 그의 독단입니다! 저희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로크셰르는 너희의 대표가 아닌가. 로크셰르의 발언이 아니다 싶으면 때려서라도 말렸어야지. 죽어.”

“끄아아아아아아악!”

나는 30명을 죽이고 난 뒤에야 멈췄다. 아무나 죽인 건 아니다. 내게 적대감을 보인 놈들을 위주로 죽였다.

“유진 프루커스…! 넌 후회하게 될 거다!”

“넌 지금 후회하고 있겠지.”

“하이테리어 용병단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사지를 잃은 놈이 목소리도 크군. 그리고 나는 가만히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마차 안에서 메이드들이 우르르 나왔다. 그녀들은 모두 총과 단검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전투 교육은 충분히 받았으니 유랑민들이 저항한다고 해도 저항할 수 있다.

“분류 시작해.”

메이드들이 움직였다. 그녀들은 일단 유랑민들을 두 분류로 나눴다.

남자와 여자.

남자의 경우 너무 어리거나, 어지간한 병신이 아닌 이상 전부 징병한다. 그들의 목에 노예병을 뜻하는 철 목걸이가 채워졌다.

“본래 나는 너희에게 자비를 베풀 생각이었다. 5등 시민으로 내 영지민으로 받아들이려고 했다. 그러나 네놈들의 태도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이제 너희는 준시민이다.”

노예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식 시민은 아닌 신분이다.

“너희는 내가 따로 만들어 둔 마을에서 살게 될 것이다. 공을 세워 5등 시민이 된다면 그 마을을 벗어날 수 있다. 뭐, 지금은 잘 모르겠지.”

원래는 대충 교육 시킨 뒤에 도시에 풀어줄 계획이었다. 허나 이것들의 태도를 보고 생각을 바꿨다.

이놈들은 이제 노예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으면서 정식 시민이 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게 될 것이다.

“주인님. 1차 분류가 끝났습니다.”

유리아가 다가와 말했다. 그녀의 뒤에는 밧줄에 묶인 남자와 여자 6명이 있었다.

“몇 명이야?”

“총 291명 입니다. 이중 남자는 140명으로 병역대상자는 115명입니다. 여자의 경우 세부 분류가 남았습니다.”

“뒤에 있는 놈들은?”

“로크셰르의 가족들입니다.”

입에 재갈을 물려둔 로크셰를 쳐다봤다. 가족을 본 그는 두 눈을 번쩍 뜨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읍! 으으으읍! 읍!”

“난 날 모욕하고 협박한 놈을 살려둘 생각이 없어. 물론 그 가족까지도.”

이 세계에서 귀족에게 대들었다가 가족까지 처형당하는 일은 흔하지는 않지만 있는 일이었다.

나는 직접 검을 들고 로크셰르의 가족들에게 다가갔다. 늙은 여자 1명. 중년 여자 1명. 청년 1명. 남자 애새끼 3명.

로크셰르의 어미로 추정되는 늙은 여자의 목을 베어 발로 찼다.

“큽! 으읍읍! 으읍으으읍!”

로크셰르의 충혈된 두 눈에서 피눈물이 흐른다. 실핏줄이 터진 것이다.

“후회되나?”

“읍! 으으읍!”

“더 후회하게 될 거다.”

나는 로크셰르의 가족들을 전부 죽인 뒤에 로크셰르에게 다가갔다. 로크셰르는 제 자식을 전부 죽는 걸 보고 난 뒤부터 조용해졌다. 다만 두 눈에서는 여전히 피눈물이 흐르고 있다.

“네 그 잘난 동생도 뒤따라 갈 테니 먼저 가있어라.”

로크셰르의 목에 검이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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