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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53 - 653.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433/2,000)

〈 653화 〉 653.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653.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마차에서 내려 여기사들과 유리아를 대동한 채 전투가 일어나는 장소로 움직였다. 일단 기척을 숨겼다. 먼저 상황부터 어느 정도 파악하고 끼어들 것이다. 재미없어 보이면 그대로 무시하고 지나치고.

나는 기껏해야 상단과 도적들의 전투라 생각했다. 이 세계에서 가장 흔히 벌어지는 전투 중 하나니까.

하지만 막상 본 전투는 기사와 용병들의 전투였다. 기사 3명이 용병 12명을 상대하고 있다. 주위에는 이미 죽은 기사와 병사들의 시체가 보였다.

기사들의 상태는 좋지 못했다. 안색은 시커멓고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다. 그들의 팔과 다리는 불안한 듯 덜덜 떨리고 있다.

“독에 중독된 것 같습니다.”

유리아가 조용히 말했다.

생각해보면 용병들 따위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기사를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거기에 기사들은 누군가를 지키는 싸움을 하고 있다.

“공자님…. 저희가 놈들의 시간을 벌 테니 도망치십시오.”

“도, 도망치라고? 저놈들에게서 나 혼자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내겐 경들의 호위가 필요하다!”

공자란 놈은 상당히 유약해 보였다. 평범한 체격에 신비한 보라색 머리카락과 붉은 눈을 가졌는데 쥐새끼처럼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공자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죽을 뿐입니다. 그리고 공자님은 이곳에서 죽어선 안 되는 인물입니다. 제가 신호를 보낼 테니 타이밍을 맞춰서 도망가십시오. 최대한 오랫동안 저놈들이 공자님을 쫓지 못하게 막겠습니다.”

기사가 비장하게 말했다.

“베롤 경…!”

공자가 슬금슬금 도망칠 준비를 한다.

나는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호기심이 팍 줄었다. 그림은 저들의 말만으로도 그려졌다. 누군가가 저 공자란 놈을 죽이기 위해 용병을 고용한 것일테지.

“시시하네. 돌아가자.”

가차 없이 몸을 돌렸을 때였다. 플로이가 용병들을 보며 말했다.

“주군. 저 용병들 하이테이어 용병단 소속이다.”

“…진짜?”

“옷에 그려진 송곳니와 단검. 하이테이어 용병단의 상징이다. 일부러 속이려고 하지 않는 이상 하이테이어의 용병이 맞을 거다.”

나는 다시 몸을 돌렸다.

얼굴과 소속도 숨기지 않고 대놓고 습격한다고? 셋 중에 하나다. 저들이 병신이거나, 아니면 몰살할 자신이 있거나. 뒷배가 따로 존재하거나.

“하이테이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마음에 안 드는 놈들이니 방해 좀 해줄까.”

“주군. 이 일에 끼어드는 건가?”

“그래. 싫어?”

“재차 주군의 뜻을 확인했을 뿐이다.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우리 기사들은 그저 주군의 뜻을 따를 뿐이다.”

“절반은 생포하고 절반은 죽여.”

“알겠다.”

플로이와 여기사들이 전투 지역으로 뛰쳐나갔다.

용병들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빌어먹을! 후퇴해!”

용병들이 재빠르게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했다. 옳은 판단이다.

‘그래 봤자 1%가 2%가 되는 정도에 불과하지.’

골든 로즈 기사단은 경험이 거의 없는 여기사들로 구성된 기사단이나, 그 평균 실력은 오러 익스퍼트 중급 이상이다. 내가 제공한 영약과 유리아의 훈련을 받은 그녀들은 어지간한 기사단 이상의 실력을 발휘한다. 용병들 따위가 도망친다고 해서 도망칠 수 있을 리가 없다.

“크아아아아아악!”

죽어가는 용병들의 비명을 들으며 공자의 앞으로 다가갔다. 중독된 기사가 공자의 앞에 막아섰다.

“누구신지 모르겠으나 도움은 감사드립니다.”

“날 모른다고?”

두 눈을 가늘게 떴다. 프루커스 가문의 후계자 경쟁 소문이 퍼지면서 덩달아 나도 유명해졌다. 귀족들뿐만이 아니라 평민들까지 나를 곧장 알아볼 정도다.

“주인님. 저희가 있는 곳은 라펠리의 국경지대입니다.”

내 옆에 있는 유리아가 말했다.

“아.”

이곳은 국경지대였다. 라펠리 왕국과 발트 왕국의 영역이 맞닿은 곳. 유랑민을 사냥하며 오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모양이다.

“발트 왕국의 귀족인가?”

“그렇습니다.”

기사는 나를 경계했다. 발트 왕국과 라펠리 왕국은 가까이 있지만 친하지 않았다. 몇 달 후면 전쟁을 치를 것이다.

“나는 프루커스 백작가의 유진 프루커스 남작이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놈들은 여전히 정체를 밝히지 않고 있었다.

베롤이란 기사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그의 뒤편에 있던 공자가 앞으로 나섰다. 다리를 덜덜 떨면서 겁에 질린 얼굴을 필사적으로 숨기며 내게 말한다.

“바, 발트 왕국의 제르딘 히스필드 입니다! 히스필드 백작가의 장남입니다!”

“히스필드 관문의?”

“그, 그렇습니다.”

히스필드 관문.

발트 왕국의 요새 중 하나다. 산맥과 산맥 사이에 위치한 이 요새는 발트의 왕도와 이어진 대로의 중심을 지키고 있다. 라펠리 왕국이 발트 왕국을 침략한다면 반드시 맞닥뜨리게 되는 요새가 히스필드 관문이다.

“히스필드 관문을 지켜야 할 놈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침략인가?”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침략이 아니란 건 알고 있다.

“그럼 왜 여기에 있는 거지? 하이테이어 용병단에게 쫓기고 있는 이유도 궁금하군.”

내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바닥에 떨어진 금화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이놈들을 여기서 만난 건 행운이었다. 이놈들을 붙잡아 프루커스 백작에게 데려가는 것으로 간단히 공적을 세울 수 있다. 발트 왕국이 라펠리 왕국을 먼저 침략했다고 선동할 수도 있다. 라펠리 왕국에 유리한 명분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건….”

“말하지 않아도 좋다. 다만 그때는 있는 그대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있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발트 왕국의 침략을 받아 들이지.”

“……!”

제르딘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백작가, 그것도 군가(軍家)의 후계자란 놈이 너무도 어리숙하다.

“우선 기사들을 죽이고 난 뒤에 널 심문하겠다. 히스필드 백작가의 장남이라면 후계자겠지. 많은 정보를 토해내게 만들어 주지.”

“공자님! 저희가 막겠습니다!”

베롤이 앞으로 나서며 내게 검을 겨눈 순간 유리아가 움직였다. 어느새 그녀의 손에 든 나이프가 깔끔한 궤적을 그린다. 베롤의 검날이 반토막나 땅바닥에 떨어졌다. 베롤의 표정은 반 박자 늦게 경악으로 물들였다. 유리아의 공격에 반응도 하지 못한 것이다.

“이, 이럴 수가…! 이 정도 실력이라면 최소…!”

베롤의 표정이 절망으로 일그러진다. 그럼에도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만!”

앞으로 나선 건 제르딘이었다. 그는 기사의 앞으로 뛰쳐나와 내 앞에 무릎 꿇고 고개를 숙였다.

“말하겠습니다! 전부 말할 테니 저희를 살려주십시오!”

“일단 들어보고.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우면 죽여 버리겠다.”

그리고 마침 플로이가 하이테이어 용병들을 잡아왔다. 용병들의 얼굴은 피떡이 되어 있었다. 저항하다가 얻어 처맞은 모양이다.

나는 플로이와 유리아에게 명령을 내렸다.

“용병놈들 심문 시작해. 난 이놈을 맡을 테니까.”

내 시선을 마주한 제르딘은 벌벌 떨 뿐이었다.

???

심문은 쉽게 진행되었다. 제르딘은 겁에 질려 있었고, 그를 지키던 기사들은 도중에 독기에 못 이겨 기절했다. 나는 제르딘의 기사들을 내버려뒀다. 독기를 못 이겨 죽든지, 이겨내고 살아나든지 관심 없었다.

“왕도에서 가문으로 귀환하는 도중에 암살자들에게 습격당했다?”

“네. 남작님. 제 호위 병력 절반이 그때 전사했습니다. 그들의 희생 덕분에 어떻게든 도망칠 수 있었으나… 습격은 계속되었습니다.”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너희 가문과 여긴 꽤 떨어져 있을 텐데.”

국경지대라고 해서 다 똑같은 국경지대가 아니었다. 여긴 국경지대의 외곽 중의 외곽이었다.

“암살자들의 배후가 누군지 짐작했기에 가문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가문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매복이 있을 게 분명하리라 생각했습니다.”

“배후가 누군데?”

제르딘은 두 주먹을 쥐고 입술을 깨물었다. 분노가 느껴진다. 그러나 나를 향한 분노는 아니었다.

“…제 여동생입니다.”

“오.”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졌다.

제르딘의 여동생은 가주 자리를 노리고 있다.

이 세계에는 여자 귀족이 존재한다. 다만 여자가 정식으로 후계자 자리를 물려받는 건 드물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귀족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장남이 돌연사해서 장녀가 귀족이 될 수밖에 없다거나.

“히스필드 백작은 뭐하길래 방관하고 있지?”

“…아버지는 병에 걸려 정무를 볼 수 없을 정도로 위독한 상태입니다. 제가 가문으로 귀환하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동생이 야욕을 드러냈다?”

“네. 증거는 없습니다만, 확실합니다.”

디오나 히스필드.

제르딘의 여동생 이름이었다. 연년생이라고 하는데 사이는 어렸을 때부터 좋지 않았다고 한다.

“하이테이어는?”

“네?”

“하이테이어 용병들이 왜 널 쫓은 거지?”

“디오나! 그 악독한 년이 절 죽이라고 의뢰한 게 틀림없습니다!”

“하이테이어 용병단은 라펠리 왕국의 프루커스 영지에서 활동하고 있다. 네 여동생이 구태여 라펠리 왕국의 용병을 고용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하, 하지만 디오나를 제외하고 절 노릴 사람은 없습니다.”

“네가 모르고 있을 뿐일지도 모르지.”

나는 더 이상 제르딘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흥미가 떨어졌다. 제르딘은 프루커스 백작에게 넘겨 공을 인정받고, 하이테이어 용병들은 적당히 엮어서 없애 버릴 생각이었다.

“…….”

내가 입을 다물고 멍하니 허공만 보고 있자, 제르딘이 불안한 듯 안절부절못했다.

“나, 남작님….”

“왜.”

“저, 절 어쩌실 생각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아버지에게 넘길 거다. 네 처우는 알아서 하시겠지. 뭐, 히스필드 가문과 협상하게 될 테고, 협상이 좋게 끝나면 히스필드 가문에 돌아가게 될 거다.”

“아, 안 됩니다!”

제르딘의 얼굴이 다급해졌다.

“그런 식으로 돌아가게 되면 제 입지가 줄어듭니다! 무엇보다 디오나가 수작을 부려 돌아가는 중에 죽을 수도 있습니다!”

“내 알 바 아니다.”

“남작님!”

제르딘이 무릎 걸음으로 내게 다가와 내 다리를 잡았다. 제르딘은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내게 애원했다.

“제발! 제발 도와주십시오! 남작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전 이대로 여동생의 손에 허무하게 죽고 싶지 않습니다! 남작님!”

내 얼굴이 순식간에 썩어들어 갔다.

퍽!

제르딘을 발로 찼다. 제르딘이 바닥을 굴렀다. 코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 나왔다. 그는 다시 무릎 걸음으로 다가와 내 다리에 매달렸다.

“아, 씨발.”

“남작님! 남작님! 제발! 도와주십시오! 남작님! 뭐든지 하겠습니다!”

퍼억!

제르딘이 뒤로 날아가 나무에 부딪혔다. 등에 강한 충격을 받았을 텐데도 나를 향해 기어왔다.

“나, 남작님…! 제, 제발 도와주십시오…!”

“지금 네 모습이 얼마나 추한지 알고 있나?”

“사, 살고 싶습니다. 이대로 돌아가면 디오나에게…! 남작님 도와주십시오!”

아까까지만 해도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던 이놈이 갑자기 왜 급발진을 할까?

‘설마 이놈. 은연중에 내가 도와줄 거라고 생각했었나? 그러다가 손절하려고 하니 이렇게 비는 거고.’

이게 놈의 진짜 모습인 듯 했다.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네! 뭐든지! 남작님이 절 도와주신다면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네 손으로 네 기사들을 죽여라. 그럼 살려주지.”

“……!”

예상하지 못한 말에 제르딘이 두 눈이 커졌다.

“반응이 늦군. 내 말을 못 들었나? 하기 싫다면 됐다. 역시 뭐든지 하겠다는 말은 거짓이었군.”

“아, 아닙니다! 할 수 있습니다! 절 살려만 주신다면…!”

제르딘이 자리에서 일어나 쓰러진 제 기사들에게 다가갔다. 기사들의 품에서 검을 뽑았다. 의외로 검술을 배웠는지 자세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남작님….”

“못하겠다면 됐다.”

“그, 그게 아니오라. 한 명만…. 베롤 경은 살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의외의 말이었다.

“왜?”

“베롤 경은 충성심이 가장 뛰어난 기사입니다….”

“좋다.”

“감사합니다!”

제르딘은 기다릴 것도 없다는 듯이 다른 2명의 기사의 목에 검을 내려박았다.

“커억!”

“컥!”

설마 길게 고민하지도 않고 제 기사들을 죽여버릴 줄 몰랐다.

“남작님이 원하시는 대로 했습니다!”

제르딘은 검을 버리고 내 앞에 무릎 꿇었다. 그는 연신 내 눈치를 살폈다.

제르딘은 내 말을 따랐지만, 그를 도와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래. 도와주지.”

프루커스 백작에게 넘길 생각이었다.

“주인님. 심문이 끝났습니다.”

마침 유리아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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