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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61 - 661.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441/2,000)

〈 661화 〉 661.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661.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제르딘이 내게 검을 겨누었다. 검을 쥔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제르딘은 지나치게 악마를 믿고 있다.

“선 넘네.”

천천히 제르딘에게 다가갔다. 제르딘은 검을 들고 있고 나는 맨손이었다. 그러나 내가 제르딘에게 질 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제르딘은 마나도 느끼지 못하는 놈이었다.

“오, 오지 마!”

“나라면 당장 검부터 버리고 내 발밑에 납작 엎드렸을 거다.”

“나, 남작님. 죽이시면 안 돼요.”

뒤에서 디오나가 말했다.

제르딘이 살해당하면 용의 선상에 오르는 건 디오나다. 설령 그녀가 백작위를 물러 받더라도 가신들의 지지를 받진 못할 것이다.

“안 죽여. 쉽게 죽일 수는 없지.”

주먹을 들어올리자 기겁한 제르딘이 나를 향해 칼을 휘두른다.

“멍청이가. 검의 길이도 생각하지 못하고 휘두르는군.”

가볍게 몸을 옆으로 젖혀 검을 피하려고 할 때였다. 검에서 갑자기 불길이 치솟더니 나를 향해 달려든다. 깜짝 놀란 난 옆으로 펄쩍 뛰어 불길을 피했다.

“마법검?”

“저 검을 손에 쥐면 불을 부릴 수 있어요!”

“귀족 가문에 적합한 가보로군,”

좀 의외이긴 하나 날 죽이거나 쓰러뜨리기엔 부족하다.

“허억. 헉! 허억!”

제르딘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마법검이라고 해서 아무 조건 없이 사용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제르딘의 상태를 보자면 마법검은 그의 체력을 소모하는 모양이다.

“죽어! 죽어! 죽으란 말이다! 너희만 없으면 나는…!”

제르딘이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른다. 불덩어리가 나를 향해 날아오지만, 너무 느리고 정직해서 하품이 나올 정도로 쉽게 피했다.

“꺄아아악! 불! 불이 벽에 붙잖아!”

“아가씨 물을 가져오겠습니다!”

디오나와 카티아가 호들갑을 떨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팔을 휘둘렀다. 강력한 바람이 불길을 순식간에 제압하고 사라졌다.

“허억! 헉!”

몇 번 검을 휘두르던 제르딘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안색이 시퍼런 게 토할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놈의 하찮은 체력에 실소가 흘러나왔다.

“고작 이 정도인 주제에 배신을 해?”

“나, 남작님. 전 배신한 적 없습니다!”

퍼억!

제르딘의 상체를 발로 찼다. 제르딘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바닥을 굴렀다. 디오나는 그의 손에서 떨어져나간 마법검을 황급히 주어 품에 끌어안고 제르딘을 노려봤다.

“디오나와 대화하던 도중에 저주가 나타났다. 내가 잘 대처하지 않았다면 저주에 걸려 히스필드 백작처럼 되었겠지.”

“아닙…. 쿨록! 아닙니다!”

제르딘이 바닥에 무릎 꿇었다. 그는 처음 나와 만났을 때처럼 내 다리를 양손으로 붙잡았다.

“그게 아닙니다. 남작님! 전 디오나에게 저주를 걸려고 했습니다! 남작님이 디오나와 함께 계신 줄 몰랐습니다!”

“의도치 않은 사고였다?”

“네! 사고였습니다!”

“네가 악마와 계약하고 멋대로 디오나를 죽이려 한 건 어떻게 설명할 거냐?”

“그, 그게….”

제르딘의 눈동자가 데구르르 구른다.

“오, 오늘은 늦었기에 내일 보고할 생각이었습니다! 디오나를 당장 죽일 생각도 없었습니다. 저주에 걸린다고 해서 당장 죽는 건 아닙니다!”

“악마와 계약한 걸 내일 보고 한다? 그 중요한 걸? 그리고 감히 허락도 없이 멋대로 움직여? 무엇보다 디오나는 내게 주기로 약속했을 텐데…. 저주를 걸려고 해?”

“잘못 했습니다! 한 번만! 한 번만 자비를 내려주십시오! 프루커스 남작님!”

“아까 말했을 텐데. 넌 이미 선을 넘었다고. 당장 죽으면 곤란하니 다리부터 뭉개주마.”

제르딘의 명치를 발로 차 넘어뜨리고 무릎 위에 발을 올렸다. 양쪽 무릎을 밟아 박살 낼 생각이었다. 내 성격을 아는 제르딘의 얼굴은 식은땀으로 번질거린다.

“디오나! 디오나를 가지고 싶지 않으십니까! 지금 당장 디오나를 데려가십시오! 나머진 제가 다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미친 새끼. 자기 가족을 대놓고 팔아?”

디오나가 팔짱을 끼고 제르딘을 경멸했다. 파란색 드레스에 감싸인 풍만한 가슴이 강조되어 잠깐 시선이 팔렸다. 제르딘은 그걸 기회라 여긴 모양이다.

“남작님! 전 남작님을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어서 디오나를 차지하시고… 크아아아아아악!”

꽈드드득.

짓밟힌 오른쪽 무릎이 박살 났다. 커다란 비명이 울린다. 디오나는 카티아를 시켜 병사와 기사들이 오지 않도록 명령했다. 가신들은 내일 아침이나 되어서야 상황을 알게 되겠지.

“아까 디오나와 얘기해봤지. 너보다 말이 잘 통하더라고. 몸의 대화도 말이야.”

내 발은 제르딘의 왼쪽 무릎으로 향했다.

“이, 이 미친 새끼! 문두두! 당장 나와서 저놈을 죽여! 문두두!”

그의 오른쪽 어깨에서 악마의 힘이 느껴졌다. 강제로 손을 뻗어 놈의 상의를 뜯었다. 오른쪽 어깨에 그려진 마법진이 활성화한다.

‘디오나의 왼쪽 겨드랑이 아래에 있던 마법진…. 악마는 디오나를 버리고 제르딘으로 갈아탔군.’

나한테 범해진 디오나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디오나는 악마를 소환해 나와 싸우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 악마를 직접 부르는 것에도 대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긴장했다. 문두두는 상급 악마. 상급 쯤 되면 육체에 검기도 박히지 않는 놈이다. 상대하려면 못해도 최상급 이상의 실력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난 아직 최상급이 이상의 실력이 아니다.

“문두두!!!”

제르딘이 악마의 이름을 처절하게 외친다. 마법진에서 나오는 검은빛이 더욱 강렬해진다. 허나 10초가 지나고 30초가 지났음에도 문두두는커녕 쥐새끼 하나 나타나지 않았다.

“뭐, 뭐냐! 문두두! 문두두! 왜 안 나타나는 거냐! 문두두!!”

마법진은 활성화되다가 말았다.

‘유리아다. 유리아가 내 명령대로 악마를 잡았어.’

나는 씨익 웃었다.

“악마한테 버림받은 모양이군.”

“사, 살려… 살려주십… 아아아아아아악!”

나는 제르딘의 왼쪽 무릎까지 작살냈다.

???

제르딘은 계단에서 굴러 반병신이 되어 시름시름 앓았다. 실상은 내가 놈의 양다리를 부러뜨리고, 유리아가 제르딘에게 저주와 제약을 걸었다. 제르딘은 한 달 동안 고통스러워하다가 죽게 될 것이다.

시간을 들여 제르딘을 죽이는 이유는 가신들을 납득 시키기 위해서다. 너무 급진적으로 죽이면 가신들도 의심할 것이다.

한 달이 지나면 디오나는 히스필드 백작이 될 것이다. 그녀를 제외하고 후계자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남작님. 이건… 뭐죠?”

디오나는 자신의 목에 찬 은색 목걸이를 쓰다듬었다. 겉모습은 괜찮은 액세서리로 보인다. 물론 카티아의 목에도 다른 디자인의 목걸이를 걸었다.

“목줄이다. 네가 제르딘처럼 날 배신하지 않도록 대비는 해둬야 하지 않겠나?”

“나, 남작님! 전 제르단과 달라요! 남작님을 배신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

“지금은 그렇겠지. 하지만 나중에는? 기회가 되면 배신하려고 하겠지. 제르딘이 그랬던 것처럼.”

디오나는 손을 덜덜 떨며 목걸이를 억지로 벗으려고 했다. 목걸이가 찰그락 거렸으나 얼굴 위로 올라가지 않았다. 그녀가 힘껏 당겼으나 뜯기지도 않았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너무 강하게 잡아당기면 목걸이 보다 네 목이 먼저 뜯길 거다. 목걸이를 자르려면 오러 블레이드 정도는 되어야 하지. 마법을 해제하려면 아크 메이지급의 마법사여야 하고. 아, 너무 억지로 벗기려 하면 폭발할 거다. 네 몸과 머리는 수천 조각이 되겠지.”

디오나와 카티아는 굳은 얼굴로 손을 내렸다.

“물론 내가 신호를 보내면 폭발할 거다. 안 믿긴다고? 한 번 터트려 볼까?”

“믿어요! 남작님의 말인데 믿어야죠!”

디오나의 시선은 내 옆에 공손히 서 있는 유리아에게 향한다. 그녀는 어제 새벽에 문두두를 잡아 온 유리아를 보았다. 나는 그녀에게 유리아의 실력을 알려줬다. 경고의 의미였다.

“디오나. 네가 그 자리에 있고, 숨 쉬고 있는 건 전부 내 허락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걸 알아라.”

나는 디오나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디오나가 반사적으로 얼굴을 찡그렸다. 이 정도는 허락해줄 수 있었다. 미색이 뛰어나니 찡그린 얼굴도 나름대로 매력적이었다.

“아, 알고 있어요. 남작님은 저의 주인님이에요.”

“알고 있으니 길게 말하지 않으마. 몇 달 뒤에 발트 왕국과 라펠리 왕국 사이에 전쟁이 일어 날거다.”

“요즘 대륙의 정세가 흉흉하긴 하지만 반드시 양국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리란 법은….”

“일어난다.”

그녀를 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전쟁은 반드시 일어난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내가 일으킬 거다.”

“…….”

몇 달 뒤에 히스필드 백작이 될 그녀의 입술이 바짝 말라갔다.

히스필드 관문은 최전선이다. 발트 왕국을 침략하기 위해선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이 히스필드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그래야 수월하게 침략 전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히스필드 관문의 책임자는 디오나가 될 것이다.

“디오나. 전쟁이 일어나면 내 명령에 따라라. 내가 히스필드 관문을 버리라고 명령하면 버려라.”

“마, 말도 안 돼요…! 왕국을 배신하는 일이에요. 그랬다간 가신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 테고…. 기껏 얻은 백작위가 쓸모없어지잖아요…!”

“네 작위는 내가 보장해주마. 어차피 발트 왕국은 사라지게 될 거다. 그게 아니면 나를 막을 자신이라도 있나?”

디오나의 시선이 유리아에게 향했다. 오러 마스터이자 아크 메이지. 유리아를 상대로 일주일은 고사하고 사흘도 버티지 못할 것이 자명하다.

무엇보다 그녀의 목엔 폭탄 목걸이가 있었다. 그녀는 이미 나의 노예였다.

“…정말 제 작위를 보장해주시는 건가요?”

“나를 의심하나? 네 신분을 바꿔서라도 귀족으로 만들어 줄 테니 걱정 마라. 그게 싫다면 히스필드 가문과 함께 죽던가.”

“프루커스 남작님을 믿고 따를게요.”

“가끔씩 찾아올 테니 헛된 생각은 하지도 말도록.”

“하아…. 그때까지 제가 뭘 해야 하나요?”

“우선…. 하이테이어 용병단이 어디에 있는지 말해라. 그놈들이 발트 왕국으로 도망친 건 알고 있다.”

“하이테이어 용병단…? 그것들이 왜요?”

나는 자세히 말하지 않고 씩 웃어주기만 했다. 디오나는 잠깐 몸을 떨더니 말했다.

“저도 하이테이어 용병단이 어디에 있는지는 몰라요. 연락해볼까요?”

“하이테이어 용병단을 지원하고 있는 건 네가 아닌가? 네가 부르면 그놈들이 여기에 오지 않나?”

“하이테이어 용병단을 지원한건 맞지만 저만 한 게 아니에요. 다른 귀족들 여럿이 함께 용병단을 지원했죠. 용병단 전체가 제 말에 휘둘리진 않아요.”

“발트 왕국에 들어온 놈들이 어디에 있는지 짐작 가는 곳은 없나?”

“있어요.”

“좋군. 말해라.”

“그, 그래도 진짜 거기에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어요.”

“그곳에 없더라도 책임을 묻진 않을 테니 말해라.”

“파이테 자작령이에요.”

“파이테 자작? 뭐하는 놈이지?”

유리아가 지도를 꺼내 테이블 위에 펼쳤다. 파이테 자작령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용병 출신의 귀족이에요. 하이테이어 용병단은 그의 주장으로 만들어졌어요. 하이테이어 용병단을 가장 많이 지원 한것도 파이테 자작이고요.”

“기사도 아닌 용병출신이라. 특이하군. 어떤 업적을 이룬 거지?”

“파이테 자작령은 원래 와이번이 기승을 부리는 곳이었어요. 파이테 자작은 왕가의 의뢰를 받아 용병을 이끌고 와이번들을 사냥해 영지를 안정화 시켰죠. 왕가는 그 업적을 칭송하며 그에게 자작의 작위와 파이테 자작령을 하사했어요.”

“겨우 그걸로 귀족이 되었다고? 다른 귀족들이 반발했을 텐데.”

“와이번이 전부 사라진 건 아니니까요. 왕가는 파이테 자작에게 관리가 힘든 영지를 떠넘긴거예요. 다른 귀족들도 그걸 알고 있기에 반발하지 않은 거고요.”

“파이테 자작령…. 알았다. 짐작가는 다른 곳은 어디지?”

디오나는 손가락으로 지도 여러 군데를 가리켰다.

허나 내 시선은 자꾸만 파이테 자작령에만 향했다. 파이테 자작령에 놈들이 있을 거라고 직감했다.

???

끼에에에에에에에엑!

괴상한 소리가 하늘에서 들렸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본다. 날개 달린 붉은색 도마뱀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다. 드래곤에 비해 그 크기는 너무 작았고, 머리에 뿔도 없었다. 그러나 놈은 결코 무시당할 만한 몬스터는 아니었다.

와이번.

하늘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포식자. 놈들은 생명체 대부분을 먹이로 본다. 당연히 인간도 예외는 아니었다.

끼에에에에에에엑!

와이번이 우리를 봤다. 놈이 선회하며 이쪽으로 쇄도한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군.”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에서 놈을 향해 번개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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