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662 - 662.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442/2,000)

〈 662화 〉 662.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662.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끼에에에에에에에엑!

괴상한 소리가 하늘에서 들렸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본다. 날개 달린 붉은색 도마뱀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다. 드래곤에 비해 그 크기는 너무 작았고, 머리에 뿔도 없었다. 그러나 놈은 결코 무시당할 만한 몬스터는 아니었다.

와이번.

하늘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포식자. 놈들은 생명체 대부분을 먹이로 본다. 당연히 인간도 예외는 아니었다.

끼에에에에에에엑!

와이번이 우리를 봤다. 놈이 선회하며 이쪽으로 쇄도한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군.”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에서 놈을 향해 벼락이 떨어졌다.

벼락을 맞은 와이번이 비틀거리며 떨어지다가 다시 자세를 잡고 하늘을 난다. 나는 다시금 놈을 향해 번개를 떨어뜨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시끄러운 천둥소리가 계속 울린다.

와이번은 정확히 8번째의 벼락을 맞고 지상으로 떨어졌다.

플로이가 검기를 일으키며 떨어진 와이번을 향해 달려갔다. 그녀는 와이번을 확인하고는 내게 소리쳤다.

“주군! 와이번은 확실하게 죽었다!”

천천히 와이번의 시체로 다가갔다. 와이번은 사람 4~5명의 크기였다.

‘벼락 8번? 와이번의 악명에 비해 생각보다 쉽게 죽었어.’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와이번은 몬스터 중에서 지능에 높은 측에 속한다.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이점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바위를 들고 적에게 떨어뜨리거나, 하늘에서 적의 체력을 빼앗는 등의 비겁한 전투법을 사용한다.

‘이 세계에서 하늘을 향한 공격 수단은 별로 없지. 와이번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원거리 공격은 기껏해야 마법사들의 공격 마법이 전부지.’

검기를 날린다? 오러 익스퍼트 최상급이 아니면 거의 불가능하다. 화살도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와이번을 맞추는 건 매우 힘든 일이다.

“주인님. 어떻게 할까요?”

유리아의 물음에 정신을 차렸다.

“이놈은 돈이 돼?”

“가진 명성에 비해선 돈이 되지 않습니다. 가죽은 오우거나 트롤보다 질기지 않고, 발톱과 송곳니는 샤벨 타이거보다 약합니다. 고기는 노린내가 심해 수요 자체가 없습니다.”

“챙길 필요는 없을 것같은데…. 아니지.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챙기자. 이 근처에 있는 다른 와이번도 죽이고.”

와이번을 찾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드론을 미끼로 이용해 와이번을 끌어냈다. 와이번 놈들은 하늘을 저들 구역이라고 생각해서 다른 새나 몬스터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꼴을 죽어도 못 봤다.

드론이 하늘을 자유롭게 날고 있으면 5분도 되지 않아 와이번이 나타나 드론을 공격했다.

“멍청한 와이번 놈들!”

나는 이 근처에 있는 와이번을 싸그리 죽이고 그 시체들을 챙겼다.

???

파이테 자작의 저택을 찾아갔다. 파이테 자작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맞이 했다. 그는 콧수염을 기른 노인이었다. 몸은 20대의 청년보다 더 건장했다.

“처음 뵙겠소. 프루커스 남작. 여기까지 오느라 힘들진 않았소?”

나는 정체를 밝히지 않았었다. 나와 유리아는 상인으로 변장했고, 플로이와 여기사들은 우리를 호위하는 용병으로 변장해 주위를 속였다. 단번에 내 정체를 꿰뚫어 보고 언급한 것은 일종의 기선 제압이었다.

‘디오나가 내 정체를 알리는 멍청한 짓을 했을 리는 없을 테고…. 따로 조사했나? 아니면 정보 길드?’

정보 길드를 이용했을 확률이 높다.

“왜 그러시오? 본인이 남작의 정체를 알고 있는 게 그리 놀라운 일이오?”

“놀라운 일이긴 하지. 설마 날 알아볼 줄 몰랐다. 어떻게 알았지?”

“제르딘 히스필드의 일은 본인도 주시하고 있었소. 근처에 있는 대귀족의 일이니 어찌 신경을 안 쓰겠소.”

“히스필드 관문에 사람을 심어 뒀나.”

파이테 자작은 대답 대신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웃었다. 그에게서 여유가 느껴진다. 자신이 나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남작이 본인의 영지에 찾아온 이유는 알고 있소. 와이번이 돌아다니는 이 땅에 나타난 이유는 하나밖에 없지.”

“알고 있다면 이야기가 빨라지겠군. 그놈들을 데려와라. 아니면 그놈들이 있는 곳을 불어라.”

“흐음. 프루커스 남작. 저택 입구에서 이러는 건 좀 아니지 않소? 차를 대접할 테니 안으로 들어오시오.”

“난 너와 차를 마시러 이곳에 온 게 아니다.”

예쁜 귀부인이었다면 몰라도, 늙은 남자와 차를 마시며 시간을 버릴 생각은 없었다.

파이테 자작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에게서 날카로운 기세가 느껴진다.

“큭.”

나는 하체에 힘을 팍 주었다.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기세다. 다시 말해 내 눈앞에 있는 그는 오러 익스퍼트 최상급의 경지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다.

“호오. 대단하오. 그 나이에 그 정도 경지라…. 앞으로가 무서울 정도군.”

“…파이테 자작. 지금 해보자는 건가?”

“아니오. 본인은 단지 남작이 본인을 무시하는 것 같아 스스로를 내보였을 뿐이오. 본인은 남작의 존중을 받고 싶소.”

목을 돌리는 척하면서 옆에 있는 유리아를 확인했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내고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너 따위가 내 존중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우습지도 않군.”

“…프루커스 남작. 본인은 치기어린 혈기와 주제 모르는 패기를 젊은이의 특권이라 생각한다만, 그대는 도를 넘어도 너무 넘고 있군.”

온몸이 저릿해지는 살기가 느껴진다. 나는 플로이가 앞으로 나서려는 걸 손을 들어 막아섰다. 물컹. 내 손바닥에 플로이의 가슴이 닿았다.

“주군?”

“아직 대화중이야. 나서지 마.”

나는 파이테 자작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는 제르딘과 디오나와 다르다. 팔을 자르고 다리를 분질러도 내게 목숨을 구걸 따윈 하지 않을 것이다.

“파이테 자작. 편하게 가자. 한 번 더 기회를 주마. 다만 아까와 다르다. 하이테이어 용병단원을 전부 죽이고, 하이테이어 용병단장을 데려와라. 거절한다면 이 영지내에 있는 모든 사람을 죽이고, 넌 죽는 그 순간까지 고문당할 것이다.”

“하! 피도 마르지 않은 새파란 놈에게 그딴 말을 들을 줄이야…! 본인이 얕보여도 단단히 얕보인 모양이군!”

그가 시종에게 손을 내밀었다. 시종은 벌벌 떨면서 그의 손위에 검을 올렸다. 검을 쥔 그의 기세가 더 흉흉해진다.

나는 그의 기세를 끊듯이 말했다.

“파이테 자작. 수고비는 준비해뒀다.”

“……수고비?”

“유리아.”

“네. 주인님.”

유리아의 그림자가 쭈욱 늘어난다. 그림자 속에서 와이번의 시체가 위로 올라왔다. 30구가 넘는 와이번의 시체를 본 파이테 자작의 기세가 꺾였다.

와이번 30마리. 며칠은 고생해야 잡을 수 있는 숫자다.

“수고비로 부족한가?”

“…….”

파이테 자작의 검이 아래로 내려갔다. 그는 굳어진 안색으로 플로이와 유리아를 쳐다봤다. 특히 유리아를 보는 시간이 꽤 오래걸렸다.

“저 여인은 본인과 비슷한 경지에 있고…. 이 여인은… 깊이 자체가 보이지 않소. 프루커스 남작. 파이테 영지를 없애러 왔소?”

유리아의 경지를 어느 정도 짐작한 것이다.

‘와이번의 시체로 협박할 계획이었는데…. 유리아의 실력을 내보이는 편이 더 나았나.’

나는 파이테 자작의 두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이게 마지막 기회다. 파이테 자작.”

“하….”

많은 것이 담긴 한숨소리였다. 그는 내게 목숨을 구걸하지 않더라도, 쉽게 목숨을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의 목숨과 하이테이어 용병단. 어느 쪽이 더 가치 있는지는 명백했다.

“30분만 기다려주시오. 하인을 시켜 하이테이어 용병단을 부르겠소.”

그리고 30분 후, 하이테이어 용병단은 저택 앞으로 다가왔다.

그들 중심에는 부스스한 파란 머리카락에 처진 눈을 가진 남자가 있었다. 플로이에게 들은 하이테이어 용병단장의 인상착의와 일치한다. 그가 바로 갈테어다.

“자작님. 어쩐 일로 전원 소집을…….”

갈테어는 말을 잇다 말았다. 다가오던 걸음도 멈추었다. 그의 시선은 플로이에게 못 박혀 움직이지 않았다.

“프루커스 남작의 애꾸눈 여기사…? 이런 빌어먹을! 자작님! 저희를 버리시는 겁니까?!”

파이테 자작은 집게손가락으로 자신의 콧수염을 쓰다듬었다.

“어쩔 수 없네. 자네도 내 입장이 되면 이해할 거네.”

“이해 할 거다…? 그게 전부입니까?!”

갈테어가 버럭 소리 질렸다.

“그럼 내게 뭘 바라나? 사과를 바라나? 미안하게 됐군. 그동안 수고 많았네. 마지막까지 날 위해 행동해주게.”

“미친! 그리 쉽게 포기하시는 게 말이 됩니까?! 놈들은 고작 7명입니다! 자작님이 도와주신다면 여기서 놈들을 묻어버릴 수 있습니다.”

파이테 자작은 유리아를 힐끗거렸다.

“자네는 아무것도 모르는군.”

나는 앞으로 나섰다. 갈테어와 마주하고 히죽 웃었다.

“이렇게 보는 건 또 처음이군.”

“……프루커스 남작…!”

“역시 마음에 안 드는군. 죽어라.”

플로이에게 손짓했다. 플로이를 비롯한 여기사들이 검을 손에 쥐고 달려나갔다. 100명이 넘는 하이테이어 용병단은 5명에 불과한 여기사들을 감당하지 못했다.

“유리아. 저 늙은이는 제 할 일을 다 했어. 죽여버려.”

“네. 주인님.”

유리아가 단검을 들었다.

파이테 자작이 주춤거리며 검을 들어 올렸다. 그는 나를 향해 분노의 일갈을 내질렀다.

“프루커스 남작!! 이게 무슨 짓이오! 아까 했던 말과 다르지 않소! 본인에게 기회를 준다고 한 건 바로 그대요!”

“그 말을 믿었나? 보기보단 순진하군.”

“그대에겐 귀족의 명예와 긍지도 없소?!”

“없어서 미안하군. 근데 너한테 꼭 명예와 긍지가 있다는 말로 들리는군.”

나는 턱짓으로 하이테이어 용병단을 가리켰다. 갈테이는 이미 플로이에게 썰려 나갔고, 나머지도 여기사들을 감당하지 못해 죽어 나가고 있었다. 저들은 파이테 자작이 사냥개로 부리던 것들. 파이테 자작의 부정이었다.

“프루커스 남작!!”

그가 나를 불렀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파이테 자작의 뒤에서 나타난 유리아가 너무도 쉽게 파이테 자작의 목을 그어버린 것이다. 파이테 자작이 저지른 실수는 하나. 유리아를 앞에 두고 내게 관심을 둔 것이다. 유리아에게 온전히 집중했다면 10초 정도는 버티지 않았을까.

“아아아아악!”

“사, 살려줘! 크아악!”

바람이 불어왔다. 피냄새가 묻어있는 바람이었다. 나는 무료한 눈으로 허공을 쳐다봤다.

‘돌아가면 섹스 파티를 해야지. 메이드들에게 할로윈 분장을 시키는 거야. 좀비 분장을 한 여자들과 집단 섹스를… 크흐흐.’

상상만으로도 벌써 즐거워진다.

“주군. 끝났다.”

온몸에 피 칠갑을 한 플로이와 여기사들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수고했어. 돌아가자.”

파이테 자작의 영지민들까지 죽일 생각은 없었다. 내 목적은 달성했다. 영지민을 죽이는 건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는 짓거리였다.

“정리는 해야 하지 않나?”

“뭐하러. 내버려둬도 우리 정체를 알아내진 못해. 우린 지금 이 시간엔 공식적으로 내 영지인 테브라에 있으니까.”

나는 인벤토리에서 미러 터널을 꺼내 뜨거운 물을 부어 활성화시켰다. 그녀들을 모두 내 저택으로 이동시킨 뒤에 미러 터널을 챙기고 공간 이동 주문서를 찢었다.

‘이걸로 발트 왕국은 범인이 나라고는 생각도 못 하겠지. 아마 하이테이어 용병단과 파이테 자작이 싸우다가 공멸한 거로 판단 내리겠지.’

일은 끝났다. 병력도 모았고 무기와 갑옷도 쌓여 있으며 자금도 넘친다. 전쟁에 대한 대비는 완벽하다. 이제 남은 건 기다리는 것뿐이다.

???

북쪽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원작의 시기보다 좀 빨랐지만, 전쟁의 시작은 달라지지 않았다.

‘북쪽의 전쟁을 시작으로 한달도 되지 않아 온 대륙은 전쟁의 불길에 휩싸이겠지.’

인류의 수는 줄어들겠지만 멸망하지는 않는다. 승리한 국가는 얻을 것이고 패배한 국가는 빼앗길 것이다. 곧 있으면 라펠리 왕국도 발트 왕국과 전쟁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 전에. 원작대로 흐른다면….’

라펠리 왕국도 발트 왕국과 전쟁을 시작했다. 원인은 국경지대에서 벌어진 작은 전투. 그 전투가 시발점이 되어 전쟁으로 번졌다. 라펠리 왕국의 귀족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병력을 들고 일어서며 발트 왕국을 침략했고, 역으로 침략받기도 했다.

내 형제들, 젠트는 공적에 혈안이 되어 발트 왕국을 침략했다. 카일은 아직 지켜보는 쪽이었다. 그리고 나도 경거망동하지 않고 기다렸다.

“주인님. 왕도에서 정보가 왔습니다. 주인님이 말씀하신 대로 라펠리 국왕이 서거했습니다.”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