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8화 〉 668.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668.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나는 그에게 검과 갑옷을 건넸다. 드워프 노예들이 만든 최고급 장비다. 70% 이상이 은으로 만들어져 언데드에게 최고의 효과를 발휘한다.
“지, 지금 나보고 언데드와 싸우라고 말하는 건가?”
“네.”
“나, 나는 전문적으로 검술을 익힌 적 없다. 잠깐 교양 삼아 배웠을 뿐이다. 몬스터는커녕 작은 동물도 사냥해본 적 없다! 내, 내가 나갔다간 죽을 뿐이다! 남작도 내가 죽으면 곤란하지 않나!”
“죽지 않도록 저와 기사들이 지켜드릴 겁니다. 왕자님의 명성을 위해서 필요한 일입니다.”
“남작이 하고 나를 칭송하면….”
“제가 그러는 것보다 왕자님이 한 번 나서는 게 더 효과적입니다. 그러니 빨리 입으라고.”
내가 으르렁거리며 말하자 흠칫 놀란 왕자가 갑옷을 입었다. 입는 방법도 몰라서 왕실 기사의 도움을 받아 겨우 입었다. 검을 왕자는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로 마차에서 내렸다.
“나, 남작. 내가 뭘 해야 하지…?”
“언데드와 싸우면 됩니다. 패기를 보여주십시오. 왕자님.”
“저, 저것들과 싸우라고…? 안 된다! 내가 죽고 말 거다!”
왕자는 정면을 바라보고 고개를 획획 저었다. 앞에는 좀비나 스켈레톤처럼 질 낮은 언데드 몬스터부터 시작해서 고스트나 레이스, 듀라한과 데스 나이트 등의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언데드 대군이 있었다.
숫자로 따지면 대충 2 만에 달했다. 물론 대부분이 하급 언데드로 이루어져 있지만.
“저와 기사들을 믿으십시오. 설마 저희를 못 믿는 것입니까?”
이곳에 있는 기사와 병사들은 정예 중의 정예다. 이쪽도 전투 가능한 인원만 따지면 5천 명이 넘는다. 그것도 기사가 많으니 2만이 넘는 언데드라 하더라도 방어에 집중하면 어렵지 않게 이겨낼 수 있다.
“믿는다! 믿는데…. 눈먼 공격에 맞으면 어떡하나? 나는 왕좌를 이어야 하는 숭고한 의무가 있다. 여기서 죽을 수는….”
“왕자님의 한심함에 눈이 멀어 검을 잘못 휘두를 것 같습니다. 제가 눈이 멀기 전에 앞으로 나가서 용맹함을 보이십시오. 빨리!”
“나, 남작! 검이, 검날이 등에 닿았다! 알겠으니 검을 내려라!”
“검이 아니라 오러입니다. 대놓고 왕자님의 등에 검을 겨누겠습니까.”
“…….”
왕자는 창백해진 얼굴로 앞으로 뛰쳐나갔다. 언데드 보다 내가 더 무서운 모양이다. 나는 여기사들과 왕자의 뒤를 따르면서 힐끗 뒤를 봤다.
“당황하지 마십시오! 우린 이겨낼 수 있습니다! 부상자들은 뒤로 물러서고, 멀쩡한 자들은 돌멩이라도 들어 언데드를 공격하십시오! 마차를 이용해 앞을 막고, 필요 없는 짐을 모아 언데드의 상극이라 할 수 있는 불을 피워야 합니다!”
아일린 공주는 쉬지 않고 지시한다. 그녀에겐 사람을 사로잡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아일린 공주만 도와준 꼴이 될 것이다.
나는 입을 크게 벌려 차가운 공기를 들이켜며 소리쳤다.
“왕자님께서 직접 전장에 나서신다! 모두 물러서지마라! 왕자님의 검이 저 죽은 시체들에게 두 번째 죽음을 선사하신다!”
모두의 시선이 에이든 왕자 쪽으로 향했다. 왕자는 시선을 느끼고 검을 들어 올렸다. 가까이에 있는 나는 왕자의 몸이 덜덜 떨리는 걸 알았다. 역시 에이든 왕자는 어딘가 관종 기질이 있다.
“그, 그렇다! 이 썩은내 나는 놈들은 내가 다시 죽여버릴 것이다!”
“와아아아아아!”
기사와 병사들의 사기가 올라갔다. 직접 전장에 나서는 왕자. 뒤에서 지시를 내리는 아일린 공주보다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이야아아아아!”
에이든 왕자가 좀비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드워프가 만든 대 언데드 소드의 효과는 탁월했다. 두부를 베듯이 깔끔하게 좀비의 몸을 갈라버린 것이다.
“내, 내가….”
이곳에 있는 그 누구보다 검을 휘두른 에이든 왕자 스스로가 가장 당황하면서도 기뻐했다.
“내가 언데드를 물리쳤다!”
왕자가 소리쳤다.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는 모양이다. 나는 그를 말리지 않고 주위에 있는 언데드를 묵묵히 처리했다. 좀비가 무섭다고 질질 짜는 것보다 나은 모습이었다.
‘이제 아일린 공주를 치우는 일이지. 공주의 지휘가 끝까지 계속된다면 영광을 차지하는 건 공주가 된다. 공주의 지휘는 지금까지 정확하니까. 유리아는 어디에 있지?’
나는 유리아에게 3가지 명령을 내렸다.
첫 번째는 언데드 던전의 파괴와 언데드 대군의 유인. 이건 성공했다.
두 번째는 혼란한 상황 속에서 선하이츠 공작의 암살. 아무리 생각해봐도 선하이츠 공작은 날 방해할 것만 같았기에 이번 기회에 처리하려고 했다.
세 번째는 아일린 공주의 납치다. 공주를 장례식 대열에서 이탈시킨다. 죽이지는 않는다. 그저 장례식을 끝내지 못하게 한다. 그럼 그녀의 평판이 떨어질 테니까.
콰아아앙! 쾅!
폭발 소리같은 전투 소리가 뒤쪽에서 들렸다. 언데드 군단은 정면에서 밀려오지 뒤쪽에는 적이 없었다. 다시 말해 이 전투 소리는 유리아가 일으킨 것이 된다. 나는 일이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젠장. 북부의 거인. 루크만 페트라스 후작!’
일주일 전, 북부에 들렸을 때 루크만 페트라스 후작이 대열에 합류했다. 선하이츠 공작 근처에 그가 있었던 모양이다.
‘예상했던 최악의 경우군.’
페트라스 후작은 마스터다. 유리아라고 해도 전력을 다하지 않는 이상 좀처럼 쉽게 제압하지 못한다. 지금 유리아는 마법으로 모습을 감추면서 힘을 약간 숨긴 채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페트라스 후작은 지금 여기서 죽으면 안 돼. 나중에 전쟁이 격렬해졌을 때, 그가 없으면 북부가 무너진다.’
페트라스 후작에 관해선 유리아가 직접 말했었다.
‘못해도 아일린 공주는 납치해야 돼. 유리아도 그걸 알고 있을 테니 페트라스 후작을 제압하거나, 떨쳐내겠지. 이제 계획이 시작된 거니 초조함을 느낄 필요는 없어.’
나는 검날에 쥐고 내 일에 집중했다. 에이든 왕자를 지키고 그가 활약하도록 도와야했다.
“이 썩은내 나는 것들! 내가 네놈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겠다! 내가 라펠리의 왕자다!”
에이든 왕자가 소리치며 검을 휘둘렀다. 승리를 맛보면서 잔뜩 흥분했다. 실상은 실력이고 뭐고 템빨에 불과하다. 그리고 위험한 언데드는 나와 플로이가 먼저 발견하고 처리한다. 에이든 왕자의 검에 썰리는 건 좀비와 스켈레톤뿐이다.
“내가, 내가 왕자다!”
어쩌면 에이든 왕자의 열등감이 폭발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
1시간이 지났다.
슬슬 힘들어진다. 에이든 왕자는 이미 지쳐서 기사들 틈에 몸을 숨겨 쉬고 있다. 그리고 뒤쪽에서는….
콰아아앙! 쾅!
유리아와 페트라스 후작이 여전히 싸우고 있다. 나는 페트라스 후작을 떠올렸다. 예전에 페트라스 후작이 영지에 찾아온 적 있다. 그와 난 투창을 겨눴고 내가 졌다. 그는 뛰어난 실력을 갖춘 마스터였다.
“적이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적이 언데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님을 알고 고개를 들었다.
“적이다!”
목소리는 뒤쪽에서 들렸다.
“막아라! 놈들은 뒤에서 오고 있다! 막아!!!”
“으아아아아아악!”
“기사! 나의 기사여! 뭐하느냐! 날 지켜… 끄아아아악!”
“라펠리 왕실 기사단이여! 목숨 바쳐 공주님을 지켜라!”
나는 마차 위로 올라가 대열의 뒤를 확인했다. 갑옷과 검을 무장한 정체불명의 적들이 공주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용병? 아니야. 저새끼들 잘 보면 움직임이 일정하잖아. 손발도 잘 맞고…. 전문적으로 교육받은 놈들이다. 몇몇은 움직임이 일반인을 벗어났어. 기사다.’
내 계획에 없는 놈들이다. 그리고 유리아도 예상하지 못한 놈들이다.
‘몰래 뒤에서 따라왔나? 아니면 근처에 매복하고 있었나? 대체 뭐하는 놈들이지? 설마….’
공주를 노리는 놈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왕실 기사는 바쁘다. 이대로 아일린 공주가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주군?!”
“플로이! 왕자님을 지켜라!”
플로이와 여기사들이라면 내 명령을 완벽히 수행할 것이다.
‘가속.’
스킬을 사용해 속도를 높였다. 마차 위를 뛰면서 아일린 공주 앞에 도착했다. 아일린 공주는 지휘를 위해 마차 위에 올라서 있었다. 나는 아일린 공주를 노리는 적의 심장에 칼을 박고 아일린 공주의 허리를 잡고 마차 아래로 내려갔다. 마차 위보다 아래쪽이 적들을 상대하기 편했다.
“프루커스 남작?!”
“네. 아일린 공주님. 프루커스 남작입니다.”
나는 주위를 살펴봤다. 왕실 기사들이 정신없이 싸우고 있었다. 이미 몇 명은 죽어서 시체가 되어 나자빠졌다.
“남작이… 아니, 남작님이 왜 절 구하러 오신 겁니까?”
“내숭 떨지 않고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왜 나를 구하는 거지? 내가 죽는 편이 남작에게 더 좋은 일이 아닌가?”
“섭섭합니다. 공주님. 전 라펠리의 귀족입니다.”
“나는 남작의 수작인 줄 알았다.”
“제가 공주님의 정적이라도, 이런 짓거리는 하지 않습니다.”
“아일린 공주! 죽어라아아아!”
검을 양손으로 꽉 쥐고 오러를 강하게 일으키며 달려드는 놈의 몸을 갈랐다.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화살이 날아온다. 노리는 건 내가 아니라 아일린 공주다.
‘찰나.’
검을 들어 화살을 모조리 쳐냈다.
“공주님은 인기가 많으신 것 같습니다. 저들이 누군지 아십니까?”
“……그대의 수작이 아니라면, 아마도 비트라세 왕국의 병사들이겠지.”
비트라세 왕국.
라펠리 왕국의 서쪽에 있는 이웃 나라다. 그리고 이웃 나라는 먼 나라라는 말이 있듯이 관계는 발트 왕국 이상으로 좋지 않았다.
“왕자님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공주님만 노리는군요.”
“비트라세 왕국 입장에선 내가 왕이 되어선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지.”
하긴 아일린 공주가 좀 많이 유능하긴 하다.
나는 아일린 공주의 앞에서 검을 휘두르며 철통같이 그녀를 지켰다. 내 손에 죽은 적들의 숫자만 20명이 넘어갔다. 여유를 찾은 아일린 공주는 팔짱을 끼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남작. 그대의 실력은 뛰어나군. 오라버니의 아래에 있기엔 너무 아깝다. 내게 올 생각이 없나?”
“공주님이 제 여자가 된다면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대는 저질스러운 농담으로 거절하는군. 진심으로 한 제안이었는데… 마음이 아프군.”
“농담이 아닙니다만.”
“됐다. 내가 포기하지.”
유리아를 상대하고 있던 페트라스 후작이 전투에 참가했다. 유리아는 진즉에 몸을 빼려고 했으나 페트라스 후작이 집요하게 노려서 쉽게 빠지지 못하다가 이제야 겨우 성공적으로 도망쳤다. 페트라스 후작은 유리아를 놓친 분노를 풀 듯이 적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그의 거대한 창이 휘둘러질 때마다 3명 이상의 적들이 쓸려나갔다.
상황이 반전하자 적들은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일린 공주를 지키는 내가 있고, 여포 뺨치는 무쌍의 무력을 보여주는 페르타스 후작이 있다. 사기가 곤두박질칠 만했다.
나는 왼쪽 어깨를 만지며 지혈했다. 아무리 나라도 상처 없이 완벽하게 적들을 막아낼 수 없었다.
“아일린 공주님. 왜 조용히 있는 겁니까? 지휘라도 하는 게 공주님에게 이득 아닙니까?”
“남작에 대한 내 배려다. 남작은 오라버니는 이 사건의 주역으로 만들 속셈이겠지. 어울려 주겠다. 더 이상 지휘를 하지 않으마.”
나는 검을 내리고 아일린 공주를 쳐다봤다.
“뭐, 감사합니다. 구해준 보람이 있군요.”
“말해두는데 이건 남작에 대한 배려일 뿐이다. 내 목숨을 구해준 빚은 따로 나중에 갚지.”
에이든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남달랐다. 확 덮쳐 버리고 싶을 정도다.
이후에 페트라스 후작이 언데드 군단을 향해 뛰어들었다. 전투는 3시간도 되지 않아 정리 되었다. 대충 2,000명에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했다. 선하이츠 공작은 오른팔을 다쳤을 뿐 생명에는 아무 지장이 없었다.
나는 에이든 왕자가 명성을 떨치기를 바랐으나, 오히려 내 명성이 더 퍼졌다.
“프루커스 남작님이 기사 30명을 상대로 아일린 공주님을 지켰다더군.”
“기사 30명? 난 40명이라 들었어. 내가 아는 왕실기사님이 그 근처에 있었는데 역사 속의 영웅이나 다름없었다면서 얼마나 흥분하던지.”
“과연 프루커스 변경백의 핏줄이다.”
애이든 왕자가 실망하며 마차에 틀어박혔다. 그래도 그의 평판이 조금이나마 좋아진 건 사실이었다.
‘……이건 100% 아일린 공주의 짓이겠지.’
계획과 달랐지만 내 명성이 높아진 건 나쁜 일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