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4화 〉 694. 뱅가드 - 외계침공
694. 뱅가드 ? 외계침공
혼자서 움직이지 않고 이들을 챙긴 것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브락타시아인의 평균 신체 능력은 지구인보다 아래다. 그들이 지구인보다 전쟁의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건 고등의 과학 기술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혼란을 틈타 브락타시아의 무기를 빼앗는다면 내 뒤에 있는 자들도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다.
끼이이이익. 끼익.
깡통 로봇이 우리의 앞길을 막아섰다. 길거리의 쓰레기통처럼 생긴 놈의 센서가 푸른색에서 붉은색으로 빛난다. 놈의 몸 곳곳이 갈라지며 총과 비슷한 무기가 튀어나온다.
나는 마법 주머니에서 검을 꺼냈다. 저 로봇에겐 평범한 총알은 통하지 않을 테니까.
‘찰나.’
스킬을 쓰고 순식간에 접근해 검을 깡통 로봇의 중심에 찔러넣었다. 조금 빡빡하긴 했지만 , 로드 세이버의 검답게 깡통 로봇의 몸을 꿰뚫었다.
파지지직, 파직!
검을 통해 전기가 내 몸 안으로 흘려 들어왔다. 뇌전 특성을 가진 나다. 이 정도 전류는 간지럽지도 않았다.
깡통 로봇의 기능이 멈췄다. 무기를 뜯어냈는데 애석하게도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종류의 무기가 아니었다.
“…자네. 특수 요원이 아니라 히어로였나? 움직임이 보이지도 않았군.”
레이시의 아버지가 감탄하며 말했다.
“능력이 있긴 합니다만, 히어로에게 비빌 정도는 아닙니다. 곧 놈들이 몰려올 테니 빨리 움직여야 합니다.”
“놈들이 몰려오면 우린 다 죽은 목숨일 테지. 빨리 움직일세.”
“이쪽입니다.”
갈림길이 나오자 오른쪽으로 꺾었다.
“자넨 길을 어떻게 그리 잘 아나? 막다른 길은 나오지 않고 목적지를 알고 있는 것처럼 움직이는군.”
“일종의 감입니다.”
내 움직임에는 거침이 없었다.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멍하니 앉아만 있던 게 아니었다. 시간이 될 때마다 해킹을 사용해 이곳의 시스템을 몰래 들여다봤다.
‘어떻게 보면 운이 좋았어. 설마 여기가 브락타시아 행성의 중심인 수도 일 줄이야.’
건물의 구조를 파악하고 정보를 확인했다. 지구의 문명보다 더 발달했기에 더욱 기계적인 문명이었다. 내가 가진 해킹 스킬이야말로 브락타시아에겐 최악의 능력이었다.
코너 부분에서 적들의 기척이 느껴진다. 손을 들어 사인을 보냈다. 수신호를 알아들은 그들은 숨소리까지 없애며 몸을 긴장시켰다.
브락타시아인 2명이 이쪽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카를가가그르 고그룩.”
“도드리다그 카르라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지껄인다. 원래 브락타시아인의 언어다. 그들이 뛰어오는 방향은 우리가 갇혀 있던 감옥이다. 놈들은 감옥의 이변을 알아차리고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꼴랑 두 명? 지금 브락타시아 전체가 혼란스러운 것도 있겠지만 역시 우리를 무시하고 있군.’
나는 놈들이 코너에 오기까지 차분히 기다렸다. 코너에 오는 순간 맹수처럼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검날이 천장의 불빛을 받아 번쩍거리며 적들의 머리를 잘라냈다.
데구르르르. 바닥을 구르는 놈들의 머리를 본 사람들이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무기는 당연하고, 착용할 수 있는 장비는 모두 착용하십시오.”
브락타시아 병사들이 사용하는 총은 레이저빔이 나가는 최첨단 무기였다. 나는 주위를 돌아다니며 브락타시아 병사를 죽이고 무기고를 찾아 사람들을 무장시켰다. 그럴싸하게 장비한 사람들은 이제 브락타시아 입장에서도 쉽게 볼 수 없게 되었다.
“이제 어쩔 건가?”
“아까 놈들의 컴퓨터로 정보를 빼낸 결과, 좋은 위치를 얻었습니다.”
“좋은 위치?”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사령관실 말입니다.”
“……거기까지 갈 수는 있겠나? 사령관실이라면 필시 경계가 삼엄할 텐데….”
“예. 브락타시아의 병사들 대부분은 대침공에 가담했지만, 사령관실을 지키는 병사들은 평소 이상입니다. 하지만 제게 방법이 있습니다.”
“그 방법이 뭔가?”
“왕족 전용의 비밀 통로를 이용해 사령관실로 이동하는 겁니다. 이 통로라면 적들 모르게 사령관실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사령관실을 점령하면 놈들과 협상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들의 공적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고요.”
레이시의 아버지는 불신이 섞인 눈으로 날 쳐다봤다.
“…그걸 방금 놈들의 컴퓨터를 보고 알아차렸다고? 자네는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그리고 지금까지 힘을 숨기고 있던 것도 이상하군.”
분위기가 삐거덕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 눈치만 보던 이들도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니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어설프게 둘러댔다가는 일만 커진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사실대로 말했다.
“사실 전 오플의 요원으로서 임무를 받았습니다. 브락타시아 행성 내부에서 파괴 공작을 하는 임무입니다. 그를 위해 철저하게 준비해왔습니다. 제가 왕족 전용의 비밀 통로를 알고 있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럴 거라 생각했네.”
의외로 레이시의 아버지는 차분하게 받아들였다.
“…….”
“얼굴을 보니 내 반응이 의외인 모양이군.”
“네.”
“우리는 인류를 배신했네. 브락타시아에게 협력하는 게 더 안전하고, 더 성공적인 인생을 누릴 방법이라 생각했지. 하지만 우리 생각은 틀렸어. 브락타시아 놈들은 애초에 우리를 대우해줄 생각이 없었어. 한 번 인류를 배신했다는 과거는 사라지지 않겠지만…, 자네를 도와 공을 세우면 어느 정도 정상참작은 가능하겠지. 난 여기서 죽고 싶지 않네. 자네들은 안 그렇나?”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그의 말에 동조했다.
“젠장. 떵떵거리며 살 줄 알았는데….”
“어차피 죽을 거라면 지구에서 죽고 싶습니다. 이 빌어먹을 외계행성이 아니라.”
“백인, 흑인, 아시아인을 전부 노예로 부리며 사는 게 제 꿈이었습니다만…. 이젠 불가능한 꿈이죠. 전 이제 자유를 원합니다.”
이미 나를 따르기로 한순간부터 그들의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말일세. 일이 성공하면 우린 배신자가 아니라 영웅이 될 수 있지 않겠나. 자네가, 내 사위가 잘 말한다면 말이야.”
“음.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나는 말끝을 흐렸다. 본부는 이미 배반자들을 알고 있었다. 나와 레이시를 제외한 이들은 지구에 돌아가자마자 체포될 운명이다.
“사위. 부탁하네.”
“어, 그게….”
“자네가 유부남인 건 일찍이 알고 있었네. 하지만 영웅호색이라. 영웅이 많은 여자를 거느리는 건 당연하지. 여기 있는 자들 모두 생각하고 있네. 그렇지 않나?”
“맞습니다. 저도 애인만 10명이 넘습니다.”
“전 30명이 넘지요.”
“권력, 부, 여자. 모두 영웅의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그 세 가지를 모두 가졌던 우리는 인류의 영웅이었지요.”
“…….”
정상인은 유일하게 레이시였다.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를 포함한 13명을 경멸 어린 시선으로 쳐다봤다.
생각해보면 이들은 모두 사회의 고위층이었다. 당장 레이시의 아버지만 해도 미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손꼽히는 권력자였다.
‘제약 회사 회장도 있고, 유통 업계를 꽉 쥐고 있는 사람과 금융계의 지배자….’
한 명, 한 명이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이다. 지금은 인류의 배반자일 뿐이지만.
“사위. 우리의 기반은 아직 지구에 상당수 남아 있네. 무사히 돌아가서 그것들을 추스를 수만 있다면…. 우리의 권력은 여전히 얻을 수 있는 거지. 물론 지구가 무사하다는 조건도 붙네만….”
“대단하시군요. 하지만 정부는….”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내게 향했다. 저들에게서 이유 모를 친숙함이 느껴졌다.
“내게 방법이 있네. 우리의 활약을 영상으로 남기는 걸세. 영상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면, 우린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영웅이 될 수 있네. 정부를 감히 우릴 배반자로 대우하지 못할 테지.”
“그건 내가 맡지. 내가 가진 방송국 2개를 이용하면 개돼지들을 선동하는 것쯤은 쉬운 일이지.”
“…오. 제라딘. 자네가 나서준다면 든든하지. 근데 이때까지 물어보지 않았네만, 자넨 왜 인류를 배반했나?”
“내가 그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건 브락타시아의 기술력 덕분이기도 했지. 그 기술력을 직접 봤는데 배반을 어떻게 안 하겠나? 지구는 끝장이라고 생각했네만, 여기에 오고 나서 내가 끝장난 걸 알았지.”
이들은 본래 서로 안면이 없던 이들이었다. 브락타시아는 배반자들이 뭉치는 걸 막기 위해 전부 따로따로 만났다.
“그래서 말인데. 나도 자네에게 부탁이 있네.”
“어떤 부탁입니까?”
“브락타시아의 기술. 그걸 갖고 싶네. 놈들은 내게 기술 전부를 알려주지 않았어. 브락타시아의 기술만 있다면… 지구를 몇백년 동안 지배하는 건 일도 아니겠지.”
“잠깐. 저도 브락타시아의 기술을 원합니다.”
“설마 브락타시아의 기술을 독점하려는 속셈은 아니겠지요?”
가만히 있던 사람들이 나섰다. 그들은 내가 나서기도 전에 저들끼리 합의를 끝마쳤다.
“크흠. 가장 중요한 건 자네일세. 자네가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계획은 모두 물거품이 되겠지.”
모두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제가 계획에 동참한다면 뭘 얻을 수 있습니까?”
“우선은 명성이겠지. 지구의 모든 이들이 자네는 칭송할 거라네.”
“명성은 곧 사람들의 지지로 이어지고, 지지는 곧 권력이 되지.”
“자네가 브락타시아의 기술을 전부 얻고, 우리에게 베푼다면 부도 얻을 수 있을 걸세. 우리도 염치도 있지 공짜로 기술을 달라곤 하지 않나.”
“권력과 돈이 있으면 자연히 여자도 따라오는 법이지요. 우리는 여기서 동맹을 할 겁니다. 지구에 돌아가도 끊어지지 않는 동맹을. 동맹의 중심에는 당신이 있을 겁니다.”
거부할 수 없는 달콤한 제안들이었다.
나는 그들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네.”
모두가 손을 모았다. 레이시는 굉장히 떨떠름한 얼굴로 우리를 보다가 나와 장인어른이 눈치를 주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손을 모았다.
“우리의 결의를 여기에.”
“우리의 결의를 여기에.”
내가 선창하자 저들도 선창했다.
“결의는 인류를 위하여.”
“결의는 인류를 위하여.”
지금 이곳에 인류 결사대가 만들어졌다.
진정한 뱅가드의 탄생이었다.
우리는 모두 비슷한 미소를 지었다. 탐욕이 형상화된 듯한 웃음을.
‘권력… 돈… 권력… 돈… 여자… 여자… 여자… 여자….’
임무를 성공한 후가 무척 기대된다.
‘…아니 잠깐. 일이 끝나면 난 현실로 강제로 돌아가야 하잖아? 이런 시발.’
그래도 해피 엔딩을 위하여 열심히 일할 것이다.
???
모든 무장을 한 우리는 비밀 통로 앞에 섰다.
지하. 그것도 꾸릿꾸릿한 냄새가 나는 하수가 흐르는 통로.
“사위. 여기가 정말 왕족 전용의 비밀 통로가 있나?”
“있습니다. 왕궁 탈출을 위한 비밀 통로입니다.”
나는 벽 앞에 섰다. 겉으로 봤을 때는 특별할 것 없는 벽이었다. 보통의 방법으로는 이 비밀 통로를 이용하지 못한다. 이 비밀 통로 또한 브락타시아의 최첨단 기술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내게는 다르지.’
[해킹에 성공했습니다.]
[비밀 통로를 3분 동안 해킹 할 수 있습니다.]
벽이 양옆으로 열리며 통로가 나타났다. 통로는 하나가 아니라 세 개였다. 하나는 사령관실, 다른 하나는 워프 게이트, 다른 하나는 브락타시아 왕의 거처로 이어져 있다.
“이 바닥 위에 서십시오. 바로 사령관실로 이동할 겁니다.”
모두가 긴장하며 올라탔다.
위이이이잉.
바닥에서 엔진 소리가 들리며 바람이 불었다. 바닥이 허공으로 살짝 떠오르고 손잡이가 아래에서 튀어나왔다. 정면에는 바람막이용 벽이 세워졌다. 사람들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허리를 숙이고 손잡이를 꽉 잡았다.
“아마 30초면 도착할 겁니다. 장교는 살려두고 병사는 전부 죽이십시오. 놈들은 저희가 비밀통로를 사용하리란 걸 꿈에도 모를 테고, 대침공 때문에 정신이 없을 테니 효과적으로 제압할 수 있을 겁니다.”
“알겠네.”
모두가 긴장했다.
바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느릿했지만, 점점 빨라지더니 생생 치고나갔다. 몇십 초 만에 바닥은 멈춰 섰다. 벽이 활짝 열린다. 사령관실이었다.
브락타시아인들이 우리를 보고 놀라 무기를 들어 올린다. 하지만 미리 준비하고 있던 우리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찰나.’
나는 가장 먼저 뛰쳐나가 적들에게 검을 휘둘렀다. 가장 늙고 가장 많은 훈장을 군복에 달고 있는 브락타시아인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진다.
다음으로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브락타시아인의 다리를 잘라 머리를 한 손으로 잡아 목에 검을 들이밀었다. 그가 바로 브락타시아 왕자인 쿠쿠카락이다.
“영어 할 줄 알지? 뒈지기 싫으면 가만히 있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