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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4 - 704. 아카데미의 구원자 (484/2,000)

〈 704화 〉 704. 아카데미의 구원자

704. 아카데미의 구원자

나는 두 눈을 더 집중했다.

바람이 보인다. 시카고의 도시 바람은 어느 한 곳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뭐야.’

바람의 움직임이 이상했다. 아무리 여기가 고층 빌딩이 많은 도시라고 하더라도 바람의 움직임이 너무 작위적이다. 마치 무언가가 바람을 끌어들이는 것 같았다.

‘저기에 뭐가 있나?’

눈을 더 집중해보지만, 고층 빌딩이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 내 정령안은 먼 곳을 내다볼 수는 있어도 투시는 불가능했다.

“모카.”

나와 계약한 정령, 천둥부엉이를 소환했다.

“꾸욱!”

하얀 부엉이가 허공에 나타나 내 주위를 돌았다. 실체화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호텔 방안이 어질러지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모카. 저쪽으로 날아가서 한 번 확인하고 와.”

“꾸욱. 꾹!”

모카가 창문을 통과해 밖으로 나갔다. 힘차게 날갯짓하며 시카고의 하늘을 날았다. 나는 계약으로 이어진 모카의 움직임을 조종하며 정령안의 능력을 발동했다.

시야 공유.

나는 계약한 정령과 시야를 공유할 수 있었다. 이 능력만 잘 이용하면 앉아서 천 리 밖을 내다보는 게 가능하다.

‘모카. 더 높이 날아. 거기서 오른쪽으로 가.’

시야가 획획 바뀐다. 처음에는 이질적인 감각에 머리가 어지럽기도 했는데 지금은 익숙해져서 아무렇지도 않다.

‘그래. 거기야.’

외곽 지역에 있는 한 호텔이었다. 사람도 별로 없어 보이는 동네에 낡은 호텔 건물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호텔은 3층 크기다. 영업은 하는 모양인데 아무리 숙박비가 싸더라도 이 호텔에 머물고 싶진 않을 것이다.

‘바람이 이 건물 쪽으로 모이고 있군. 정확히 말하면 바람에 실리는 미세한 마나라고 해야 하나.’

내 눈에는 바람에 실려서 움직이는 마나가 보였다. 마나의 양은 그리 많지 않다. S급 히어로라 하더라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양이다.

하지만 그 마나가 바람에 실려 한곳에 모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저건 인위적으로 만든 용혈이나 다름없어.’

용혈(龍穴).

다른 곳에 비해 마나 밀도가 30% 이상인 곳. 용혈은 무언가 특수한 일을 하거나, 수련하기에 최적인 곳으로 꼽히기도 했다.

‘정확한 밀도는 모르겠지만, 저 정도면 50% 이상이겠지. 인위적인 건 틀림 없는데…. 미국 히어로 협회의 짓인가?’

아닐 것이다.

미국 히어로 협회가 굳이 인위적으로 용혈을 만들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땅덩어리가 넓은 미국. 적당히 괜찮은 용혈을 넘치고 넘칠 테니까. 여러 부작용을 낳는 방법을 선택할 필요가 없다.

‘뭐하는 짓이지.’

호기심이 생겼다. 미국에서 이 정도의 일을 벌일 정도면 평범한 놈들일 리가 없다.

‘모카. 안으로 들어가 봐.’

모카가 영체 상태를 계속 유지하면 평범한 히어로들은 그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나처럼 특별한 특성이 있거나, 아니면 정령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없는 이상은.

모카는 내 명령에 충실히 따랐다. 호텔 3층 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 내부를 살핀다. 침대, 옷장, 책상 등 삭막한 방안이 보였다. 가구 위에 쌓여 있는 먼지가 숙박업은 이미 예전에 때려치웠다는 걸 알려준다.

나는 모카를 시켜 3층의 다른 방들도 확인했다. 평범한 벽 따위로는 모카의 이동을 막을 수 없었기에 오래 걸리지 않았다.

‘3층은 전부 평범하군. 2층으로 내려가.’

2층도 3층과 마찬가지였다.

‘1층은 사람이 머문 흔적이 있군.’

그러나 정작 사람은 없었다. 밖에서 바람을 타고 모여든 마나도 보이지 않는다. 이러면 답은 하나뿐이다.

‘결계인가?’

나는 혹시나 싶어 모카에게 명령해 지하를 살피게 했다. 지하 공간은 있었지만, 창고로 사용하는 듯 낡은 물건들밖에 없었다.

‘결계가 확실하군.’

혀를 찼다. 결계는 그 종류가 한 두 가지가 아니란 걸 알뿐이지, 자세한 건 나도 잘 모른다.

‘건물 밖으로 나가.’

모카의 눈으로 좀 더 자세히 건물과 바람을 관찰했다. 바람에 실린 마나는 건물 벽에 흡수되듯 사라진다. 마나만 가져가는 결계가 있다는 것이다.

‘벼락을 떨궈서 결계를 찢어 버릴까?’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작정하고 펼친 결계의 내구도가 그리 약할 리 없으니까.

‘……잠깐.’

가만히 보고 있으니 마나가 사라질 때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보였다. 나는 좀 더 정령안에 집중했다.

‘결계를 본다. 결계를 본다.’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이 집중한다. 그러자 결계의 형태가 점점 보이기 시작했다.

‘역시 S랭크의 정령안. 뛰어나군. 모카. 너도 보이지?’

꾸욱. 꾹.

모카의 대답이 들어왔다. 시야 공유의 효과로 모카도 내가 보는 시야를 볼 수 있다.

‘결계를 인식했으니 들어가는 건 문제도 아니겠지. 들어가.’

모카가 결계 속으로 쑤욱 들어갔다.

결계 안은 어두운 공간이었다. 허나 내 정령안은 어둠 속도 문제없이 꿰뚫어 본다. 벽 여기저기에 부적 같은 것이 붙어 있다. 전체적으로 음산한 분위기다. 직접 가보지 않더라도 저곳이 차가운 곳이라는 걸 알고 있다.

바닥에는 물이 있었다. 어떠한 움직임도 없이 고여 있는 물이었다. 물속에는 물고기 대신 사람이 들어가 있었다.

‘시체잖아.’

한두 개가 아니다. 바닥 전체에 시체가 널려 있었다. 어림잡아 본 것만으로도 100구는 넘어 보였다.

그리고 공간의 중심 무언가가 붙잡혀 있었다.

‘…정령?’

그것은 끊임없이 절규를 내지르고 있었다.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중급 이상의 바람의 정령으로 보이는데…. 억지로 타락시키고 있는 건가?’

정령은 형상을 온전히 유지하지 못하고 찢기고 구겨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때, 모카의 시선이 뒤로 돌아갔다.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안경을 쓴 검은 머리의 아시아인이었다. 그는 정확하게 모카를 보고 입을 열었다. 무언가를 말한다.

나는 계약을 통해 모카를 내 앞으로 소환했다. 허나 소환은 막혔다. 무언가가 나와 모카의 사이를 막은 것이다. 짐작하기로 모카가 들어가 있는 결계 때문이 틀림없다.

‘모카! 당장 도망쳐!’

꾸우우!

모카가 위로 솟구쳤다. 빠른 속도로 날아 결계 밖으로 뛰쳐나간다.

갑자기 시야가 뒤집힌다. 모카가 무언가에 맞은 듯 바닥에 떨어진 것이다.

‘영체 상태의 모카를 공격했다고? 빌어먹을. 역시 평범한 놈이 아니었군.’

다행히 모카는 그대로 쓰려져 있지만 않았다. 다시 날개를 펼쳐 날아올라 결계 밖으로 도망쳤다.

나는 모카가 결게밖으로 나오자마자 내 앞으로 소환했다.

“모카!”

“꾸….”

바닥으로 쓰러지는 모카를 양손으로 잡았다. 모카의 등에 상처가 남아 있었다. 영체인지라 피는 나지 않았지만, 불안정하게 일그러져있다.

“당분간은 휴식이 필요하겠네. 정령계에 가 있을래?”

모카는 고개를 저었다. 중하급의 정령들은 정령계에 잘 가려고 하지 않는다. 중하급 정령들의 힘으로는 정령계에서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 이거라도 먹어라.”

인벤토리에서 꺼낸 정령옥 하나를 모카에게 주었다. 모카가 기뻐하며 정령옥을 받아먹는다.

나는 모카를 주시했다. 상처 입은 정령이 정령옥을 먹으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했다.

‘역시.’

모카의 상처는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회복되었다. 인간이 상처 부위에 포션을 사용한 것과 같다.

‘정령옥은 정령에게 힘을 줄 뿐만이 아니라 상처도 회복시키는군.’

좋은 걸 알았다. 나는 모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원작은 한국게임이라 한국 중심이었지. 해외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전부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미국 히어로 협회의 일이다.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니 관심 끄면 된다.

‘아니지. 저 새끼 딱 봐도 나쁜 새끼잖아. 만약 내가 저 새끼를 조지면 선 카르마 수치를 얻을 수 있지 않나?’

이번 기회에 선 카르마 수치를 올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

결계 밖으로 나온 왕시엔은 안경테를 잡고 주위를 꼼꼼하게 둘러봤다. 그의 안경, 영안경(靈眼鏡)은 영체 상태의 정령을 볼 수 있게 해주는 특수한 물건이다.

‘천둥부엉이가 사라졌다. 아무리 천둥 부엉이가 빨라도 날아서 사라졌을 리는 없을 테고…. 남은 건 한 가지뿐이지. 계약한 정령사의 소환.’

왕시엔은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몇 가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소환이 너무 절묘하다는 것. 마치 멀리 떨어져서 상황을 보고 있었던 것 마냥.

‘결계 안을 꿰뚫어 봤나? 아니면 이 근처에서 주시하고 있다가 천둥부엉이가 나오자마자 소환한 건가.’

주위에 있는 건물들을 한 번 둘러보던 그는 이내 몸을 돌려 결계 안으로 들어갔다.

‘히어로 협회 시카고 지부에 사람을 심어 놨으니 일이 터지면 내게 보고하겠지.’

굉장히 찝찝하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거처를 옮기기엔 매우 중요한 순간이었다. 정 안 된다면 몇 가지를 포기하고 옮겨야겠으나, 될 수 있는 한 최대한 버텨야 한다.

찰박찰박.

물에 잠긴 시체를 밟고 중심으로 향한 왕시엔은 무감정한 눈으로 타락 중인 바람의 정령을 쳐다봤다.

“오래 버티는군. 버티면 버틸수록 너만 괴로울 뿐이다. 미래는 정해져 있으니 그만 포기하고 떨어져라.”

“……!!”

바람의 정령은 영혼의 비명을 내지른다. 왕시엔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느끼면서 붙잡힌 바람의 정령을 지켜봤다.

“미련한 놈.”

왕시엔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그려졌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심되는군. 쉽게 굴복하지 않는 너라면 다른 것들과 다르게 성공할 테니.”

왕시엔은 바람의 정령이 완전한 추락을 기대하며 기다렸다.

???

시카고에 온 지 4일이 지났다.

처음 이틀은 성하리와 함께 관광으로 시간을 보냈다. 성하리는 그 다음 날부터 미국 히어로 협회 시카고 지부에 들어가 일을 했다. 던전의 브리핑을 살피고 함께 들어갈 히어로들과 손발을 맞췄다.

그리고 오늘 오후. 성하리는 던전 공략을 시작한다. 히어로 협회가 생각한 던전 공략 시간은 3일. 성하리는 3일 뒤에 돌아올 것이다.

성하리는 호텔을 떠나기 전에 내 몸을 양팔로 꽉 끌어안았다.

“유진아. 엄마가 금방 갔다 올게. 얌전히 있어야 해. 알았지? 응?”

“응. 소희 누나랑 있을게. 빨리 갔다 와.”

성하리는 나를 2번 더 끌어안고 뽀뽀까지 하고 난 뒤에야 호텔 밖으로 걸어나갔다. 그녀는 히어로 협회가 준비한 리무진을 타고 던전으로 향했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소희와 사라를 불렀다.

“소희 누나! 사라 누나! 엄마 갔어! 섹스하자!”

당장 현관에서 옷을 벗어 던지고 알몸으로 침실로 향했다. 한국 미녀와 미국 미녀를 동시에 맛볼 시간이었다.

“섹스!”

???

마음 같아선 밤새도록 섹스하고 싶으나, 해야 할 일이 있어 밤 10시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소희 누나는 방에 있고, 사라 누나는 나랑 잠깐 밖에 나가자.”

“네. 유진 님. 5분만 시간을 주십시오. 샤워 좀 하고 오겠습니다….”

“급한 건 아니니 천천히 해.”

사라는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바닥에 섯다. 그녀의 몸은 정액이 가득했다. 특히 보지는 새빨갛게 부어서 구멍 속에서 나온 끈적한 정액을 대롱대롱 달고 있다. 그녀가 걸을 때마다 정액이 시계추처럼 흔들린다.

“어디, 어딜 가는 거니?”

한소희가 침대에서 스스로의 허리를 붙잡으며 말했다. 사라보다 심하면 심했지 못한 꼴은 결코 아니었다.

“잠깐 산책.”

“그래… 나도 갈까?”

그녀의 입에서 내 정액 냄새가 난다.

“누나는 여기 있어. 피곤하잖아.”

“하지만….”

“솔직히 말해. 누나는 움직이지도 못하겠지?”

“…….”

한소희는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베개에 머리를 눕혔다. 그녀는 A급 히어로지만, 순수 신체 능력으로 따지면 C~D급 수준에 불과했다. 반면에 사라는 B급 히어로 수준이다.

나는 침대에서 내려와 욕실로 향했다. 씻어야 하는 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욕실에서 사라와 한 번 더 떡을 치고 20분 뒤에 옷을 입고 호텔 밖으로 나왔다.

자동차 운전석에 앉은 사라가 내게 물었다.

“유진 님. 어디에 가시고 싶습니까? 늦은 밤인지라 가게 대부분 문을 닫았습니다. 근처를 한 바퀴 돌면 되겠습니까?”

“외곽 쪽으로 가자. 무기는 잘 챙겼지?”

“네? 네. 무기는 챙겼습니다만…….”

나는 자동차 백미러를 확인했다. 백미러에 황금빛으로 변한 내 눈동자가 보였다.

“저번에 지나가다가 이상한 걸 발견했어. 좀 불안하긴 한데 사라 누나의 실력에 내가 도와주면 괜찮을 거야.”

손가락으로 가야 할 방향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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