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706 - 706. 아카데미의 구원자 (486/2,000)

〈 706화 〉 706. 아카데미의 구원자

706. 아카데미의 구원자

“맙소사….”

사라가 경악했다. 마령에게서 느껴지는 힘이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내 앞에서 레이피어를 들었으나 몸이 덜덜 떨리고 있다.

마령은 내 쪽을 쳐다봤다. 그러나 말을 걸지도, 달려들지도 않았다. 마령은 하늘 위로 솟구쳤다.

-죽여버리겠다! 왕시엔!!

마령은 왕시엔을 찾아 시카고의 하늘을 날았다.

나는 하늘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내 눈에는 마령이 지나가면 남긴 흔적이 보였다. 마령은 지금 자신의 영체를 태우면서 복수심 하나로 움직이고 있었다.

‘완전히 마령으로 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군. 정령옥은 타락한 정령을 정화하진 못하지만, 마령의 힘도 끌어올려 주는군.’

저 바람의 정령은 내버려두면 알아서 자멸할 것이다. 스스로가 존재를 포기했으니.

“유진 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사라가 진지한 얼굴로 내게 묻는다. 저 멀리서 이쪽으로 오는 경찰과 히어로들이 보인다.

“그래. 아는 대로 말해줄게.”

오늘 시카고의 밤은 길 것이다.

???

강시의 등을 타고 자신의 거처에 돌아온 왕시엔은 방 안의 물건들을 이리저리 던지며 짐을 싸기 사직했다. 쓸모없는 것들은 전부 버리고 가장 필요한 것들만 챙긴다.

이 도시에 성공적으로 탈출 가능한 건 100 마리가 넘는 강시들이 히어로 협회 시카고 지부의 시선을 끌어주는 오늘 밤 밖에 없다.

왕시엔은 방안 깊숙이 숨겨 두었던 붉은색 부채를 꺼내 손에 쥐었다. 마력 대신 생명력을 사용하지만, 그만큼 강력한 힘을 사용할 수 있는 무기다.

‘이미 바람의 정령의 마령화는 거의 끝났다. 설령 결계를 해제하더라도 마령화가 멈추는 일은 없다. 이미 강제 계약의 베이스는 새겨 낫다. 사흘 정도 뒤에 소환하여 계약을 끝내면 바람의 마령을 얻을 수 있다.’

왕시엔은 사흘 뒤를 기대하며 집안에 휘발유를 뿌리고 성냥을 태웠다. 불길이 확 치솟으며 자료들을 없앤다.

‘이 자료들은 절대로 히어로 협회에 넘길 수 없다.’

밖으로 나온 그는 다시 강시의 등을 타고 시카고를 벗어나기 위해 움직였다.

잠시 후, 시카고를 벗어나 한적한 도로에 선 그는 이질적인 바람을 느끼고 고래를 옆으로 돌렸다. 바람의 마령이 그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왜 여기에 있는 거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계가 없다고 하더라도 마령화가 저 정도로 진행된 중급의 바람의 정령이 제 의지로 자신을 찾아오는 건 불가능하다.

-왕시엔!! 날 이렇게 만들어 놓고도 내가 가만히 있을 것 같나! 내가 소멸하더라도! 너 만큼은! 너 만큼은 반드시 죽이겠다!

“허어억!”

마령의 기백에 놀란 왕시엔은 주먹으로 강시의 머리를 두들겼다.

“빨리 달려라! 더 빨리 달려!”

그러나 강시의 속도는 그대로였다. 이미 최고의 속도로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람이 불었다. 소용돌이치는 시커먼 바람의 칼날이 강시의 양다리를 잘랐다. 강시가 앞으로 고꾸라지고 왕시엔이 흙바닥을 굴렸다.

그는 똑똑히 봤다. 소용돌이치는 바람에 떨어진 도자기처럼 부서지는 강시를.

콰드드득! 콰득!

-다음은 너다. 평범하게 죽이지는 않는다. 내가 당했던 고통만큼, 너도 당해라!

“지, 지금 네 몸은 소멸되고 있는 상태란 걸 알고 있나?! 내가 널 구할 수 있다! 나와 정식으로 계약해라! 소멸하는 것보다 그게 훨씬 더 낫지 않나!”

-마령이 될 바엔 죽는게 나아.

“이 개같은…!”

왕시엔은 붉은 부채를 꺼냈다. 활짝 퍼진 부채의 끝이 붉게 빛나며 왕시엔의 생명력을 빨아들였다. 왕시엔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다만 자신의 중요한 내장들이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 나쁜 감각이 느껴진다.

-다리를 자를까. 팔부터 자를까. …아니야. 손가락부터 차근차근 갈아버리는 게 좋겠지.

“이 주제도 모르는 실패작이!”

붉은 부채로부터 붉은 기운이 마령을 향해 뻗어 나갔다. 마령이 바람을 일으켰다. 검은 바람이 붉은 기운을 찢어발기며 붉은 부채를 박살 냈다.

“……!!”

왕시엔은 절망에 가득 찬 얼굴로 바닥에 꿇어앉았다. 있어선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왕시엔은 도망가려고 했으나 보이지 않는 바람이 그의 팔다리를 붙잡았다. 꼼짝도 할 수 없게 된 왕시엔이 소리쳤다.

“제가! 제가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십시오!”

-나도 너한테 그런 말을 했었지. 하지만 넌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어. 나도 들어주지 않을 생각이다.

마령이 지독한 악의를 내비쳤다.

키이이이이이이이잉.

마령이 일으키는 바람이 소름 끼치는 소리를 냈다.

-인간은 오래 살지 못한다는데…. 왕시엔. 넌 부디 오래 살아라.

???

『카르마: 선(善)이 2 상승합니다.』

미국 협회 시카고 지부에 상황을 설명하고 있던 내 눈앞에 갑자기 알림창이 떠올랐다.

‘왕시엔이 죽었나?’

정령옥으로 바람의 마령을 보다 강하게 만들었다. 마령은 제 힘으로 결계를 부수고 왕시엔을 죽이러 갔다. 내가 직접 왕시엔을 죽인 건 아니다. 허나 내가 없었다면 왕시엔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반대로 마령이 왕시엔에게 죽을 수도 있지. …뭐, 왕시엔의 실력을 보면 그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아무튼, 내겐 개이득이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악!”

“살려줘! 히어로! 도와줘요!”

“좀비가! 좀비가 사람을 죽이고 있다!”

도시 곳곳에서 무언가가 박살 나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울린다. 사방으로 흩어진 강시들이 마구잡이로 사람들을 습격하고 있었다.

나는 검지로 콧구멍을 후볐다. 강시가 날뛰는 건 내 알 바 아니었다.

“사라 누나. 호텔로 돌아가자. 나 졸려.”

“그, 그게….”

사라는 당황하며 주변의 눈치를 봤다. 상황은 심각했다. 이미 시카고에는 비상 계엄령이 떨어진 상태였다.

히어로 협회의 대표자로 보이는 히어로가 나를 보며 말했다.

“뇌성(雷聲)의 아들이 아닌가. 귀빈 중의 귀빈이다. 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간 뇌성이 날뛰겠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군. 사라. 히어로들 몇몇을 붙여주지. 호텔로 데려가서 철통같이 경비하도록.”

“네.”

“이 일에 관해선 나중에 다시 묻겠다.”

호텔 방으로 돌아온 나는 바로 옷을 벗고 침대에 누웠다. 내가 올 때까지 계속 자고 있던 한소희가 비몽사몽 한 눈으로 내게 물었다.

“유진아. 산책은 잘했어?”

“응. 재밌었어.”

나는 한소희의 팔을 들고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가슴은 B컵이나, 따뜻하고 탄력적이라 감촉이 좋다. 다만 그녀의 몸에서 내 정액 냄새가 난다는 게 좀 문제였다.

???

다음 날 아침.

시카고는 비상 계엄령을 풀었다. 도시 곳곳으로 흩어진 강시들을 모두 처리한 것이다.

피해자는 2,170명. 그중 1,055명이 사망했다. 시카고 시민들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했고, 히어로 협회 시카고 지부장은 오후에 기자회견을 하기로 했다.

시카고 지부장은 시민들에게 귀락곡에 대해 밝힐 것이다. 그래야 시민들의 분노를 히어로 협회가 아닌 귀락곡에 넘길 수 있으니까.

‘귀락곡이면 시민들도 히어로 협회를 크게 탓하지 않겠지. 귀락곡의 무시무시함은 시민들도 잘 알고 있으니까.’

귀락곡.

사령술사, 마령사, 네크로맨서, 강시술사 등등 죽음과 관련된 힘을 사용하는 자들이 모인 음습한 세력.

사람들은 귀락곡이 미쳤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귀락곡에 들어가는 사람 중 절반 이상은 평범한 사람인 경우가 많다.

죽은 애인, 죽은 부모, 죽은 형제 등 소중한 사람을 되살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귀락곡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귀락곡은 자신들의 목적인 세상의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무는 것을 교묘하게 말하면서 그들을 이용한다.

‘죽음을 연구하고 극복한다. 귀락곡의 행동에 이끌린 거부들도 적지 않지.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은 언젠가 다가올, 돈과 권력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죽음을 없애버리고 싶어하니까.’

나는 호텔에서 제공해준 샐러드를 포크로 찍어 입안에 넣었다. 신선한 야채가 아삭아삭 십히고 톡 쏘는 드레싱이 매력적이다.

‘생각해보니 귀락곡주의 이름이 왕웨이였지. 어제 그놈과 같은 성씨를 공유하는 걸 보면 직계일 가능성도 있겠군.’

확신할 수는 없다.

중국에서 왕씨는 한국의 김씨처럼 흔한 성씨였으니까.

‘귀락곡에 나에 대해 알렸나? 직계면 그래도 복수하러 오지 않을까?’

머리가 조금 복잡해졌다.

“저, 유진 님.”

“응?”

“어제 본 히어로 협회 시카고 지부장이 유진 님과 대화하고 싶어 합니다.”

“무슨 일로?”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흐음.”

의자에 앉아 있던 나는 바지를 벗고 자지를 까딱였다. 사라는 당황한 듯 내 눈치를 보다가 결국 내 앞에 무릎 꿇고 내 자지를 애무했다.

“사라 누나가 이렇게까지 해주니 한 번 만나 볼게. 언제 어디서 만나면 돼?”

“한 시간 뒤에 오신다고 합니다.”

“한 시간이면 아직 시간 많이 남았네. 자지 좀 제대로 빨아줘.”

“…네. 쪽.”

사라가 귀두에 입을 맞추고 빨기 시작했다.

‘지부장이 날 보러온다라…. 책임을 묻기 위해선 아니겠지.’

오히려 감사 인사를 받아도 모자를 판이다. 내가 아니었다면 왕시엔은 시카고의 마나를 끊임없이 빨아먹고 마령을 탄생시켰을 테니까. 그 강시들도 도시를 떠나기 전에 풀어버렸겠지.

‘지부장이 뭘 원하는지 대충 알겠군.’

???

미국 히어로 협회 시카고 지부장, 올리버 데이비스는 정확히 1시간 후에 찾아왔다. 그는 40대 초반의 붉은 콧수염을 기른 대머리였다. 어제 늦은 밤에 사라에게 날 호텔로 데려가라고 말한 그 사람이다.

“어젯밤을 잘 잤나. 유진 성.”

그는 내게 천천히 인사했다. 특이한 점은 다른 사람과 다르게 날 평범한 어린아이로 보지 않았다. 사라가 나에 대해 어느 정도 보고한 것 같았다. 그게 아니면 사람 보는 눈이 뛰어난 남자거나.

“에. 만나서 반가워요. 지부장님.”

“올리버라고 불러주게. 그리고 옆에 있는 레이디는 소희 양이군.”

“네. 유진이에게 무슨 볼일인지 모르지만, 유진이는 어린 아이예요.”

“알고 있네. 위험한 일을 부탁하려는 건 아니라네.”

올리버는 나를 쳐다봤다. 그의 눈은 묵직했다. 눈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올리버는 바위 같은 사람이다.

“유진. 자네는 정령뿐만이 아니라 바람까지 볼 수 있다고 들었네.”

“예. 보려고 하면 볼 수 있어요.”

“과연 대단하군. 그 눈으로 어제 그곳을 알아내는 건 당연한 일이었군.”

“딱 보니 보이던데요.”

“자네 덕분에 미국 전역에 새로운 검사를 하고 있지. 몇몇 도시에 이상한 기운을 발견하기도 했고.”

미국의 다른 도시에 왕시엔 같은 놈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거 때문에 왔어요?”

“…자네에겐 부끄러운 말이지만, 우린 마령을 놓쳤네. 그 흔적도 찾지 못하고 있지. 자네의 도움이 필요하네. 자네의 그 눈으로 마령을 추적해주게.”

내 옆에 있던 한소희가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올리버 지부장. 지금 장난 하시나요? 유진은 아직 어려요. 이 사실을 성하리 씨가 알게 되면 가만히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지 말게, 소희. 어디까지나 추적만 도움받을 뿐이라네. 유진의 안전은 내가 보증하지.”

“그래도 안 됩니다!”

“마령을 이대로 내버려두면 피해가 어떻게 날지 모르네. 수천 명… 혹은 수만 명이 죽을 수도 있네. 시카고 시민을 지켜야 하는 내 입장을 이해해주지 않겠나?”

한소희가 뭐라 하기 전에 내가 앞으로 나섰다.

“좋아요. 도와드릴게요.”

“유진아! 지금 무슨 소리야! 하리 언니가 알면 어떻게 하려고?!”

“괜찮아요. 누나. 도움이 필요하다잖아요. 전 이후에 히어로가 될 거예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하고 싶지 않아요.”

“유진아….”

한소희는 불안한 눈으로 날 쳐다봤다. 올리버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빠르게 말했다.

“유진. 자네의 도움에 감사하네. 자네는 마령이 있는 곳의 대략적인 방향만 말해주면 되네.”

“네. 근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잘 안 보여요.”

거짓말이었다. 난 이미 마령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고 있다.

“그렇군. 히어로들을 붙여주지. 마음 같아선 나도 함께하고 싶으나… 잠시 후에 기자 회견이 있어서 시간이 안 나는군.”

나는 웃었다. 이건 좋은 기회였다. 내가 히어로들과 함께 마령을 죽인다면 선 카르마를 얻을 가능성이 크니까.

“공짜로 부려 먹는 건 아니죠?”

“물론 아니지. 자네에게 줄 좋은 선물이 있지. 기대해도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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