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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7 - 717. 아카데미의 구원자 (497/2,000)

〈 717화 〉 717. 아카데미의 구원자

717. 아카데미의 구원자

“저걸 쓰러뜨리면 던전에서 나갈 수 있다는 거잖아. 나쁘지 않네.”

성하리가 강하게 진각을 밟았다. 콰득! 흔들리는 바닥 위에서 하체의 균형을 유지하며 투창의 자세를 취했다. 그녀의 몸에 시퍼런 전류가 흐른다. 성하리는 기계왕을 응시하며 조용히 호흡을 조절했다.

성하리가 드러낸 전력에 나를 비롯한 히어로들이 한순간 압도되었다. 분위기만으로 그녀가 차원이 다른 곳에 위치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거대한 충격파와 함께 번개의 창이 날아갔다. 단순히 속도만으로 허공을 찢으며 눈 깜짝 할 사이에 기계왕의 몸체에 도달했다.

콰아아아앙!

이쪽으로 걸어오던 기계왕의 거대한 몸 일부가 박살 나며 비틀거렸다. 쓰러지지는 않았지만, 창에 공격당한 몸 일부가 무너졌다. 거대한 미사일이라도 날린 것 같은 위력이다.

“우와, 우와, 우와! 저 아줌마 엄청 세!”

마키나가 호들갑을 떨었다. 떨만한 광경이긴 했다. 하지만 일격으로는 부족했다. 기계왕이 워낙 크다 보니 파괴율로만 따지면 대충 5%밖에 되지 않는다.

‘다르게 말하면 같은 공격을 19번 더하면 된다는 뜻이지만….’

성하리는 멀쩡한 척하고 있으나, 가까이에서 보면 호흡이 거칠어졌다는 걸 알 수 있다.

‘정령왕의 주박(SS)에 의해 능력치가 떨어졌고, 지금까지의 전투로 지쳤을 거야. 이 같은 공격을 5번도 못할 것 같은데….’

그렇게 판단을 내린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레이번이 성하리에게 다가와 말했다.

“무식하게 공격하는 건 관둬. 네가 행동 불능에 빠지면 우린 끝장이야.”

“꼭 방법이라도 있다는 것처럼 말하네? 말해 봐.”

성하리가 손을 들었다. 그녀가 투창했던 창이 다시 소환된다. 그녀의 스킬이 아니라 창이 가진 기능이었다. 창은 어디 망가진 곳 없이 멀쩡했다.

“마키나가 말했잖아. 인공지능이 약점이라고. 기계왕은 거대한 움직이는 건물이야. 밖에서 정면으로 상대하는 건 미련한 짓이고, 내부에서부터 인공지능실을 찾아 파괴하는 쪽이 훨씬 낫지.”

“정론이네. 그런데 어떻게 저 안으로 침입할 건데?”

“그건 뾰족한 수단이 없어. 어떻게든 할 수밖에. 대신 인공지능 실의 위치는 파악했어.”

레이번이 노트북의 화면을 성하리에게 보여주었다. 기계왕의 단면도가 그려져 있었다. 아까 열심히 노트북을 두들기더니 설계도를 만들고 있었던 모양이다.

“와. 놀랍도록 정밀하네. 진짜 원래의 설계 도면인 줄 알았어. 너 제법 하는구나?”

“기계왕의 영혼이라면 구조는 알고 있겠지. 틀린 부분은 없지?”

“응. 구조는 대충 맞아. 하지만 인공지능실의 정확한 위치는 나도 몰라.”

“구조가 맞다면 예측하는 건 어렵지 않지. 이 방이 아니면, 여기나, 여기, 여기겠지.”

도면에 붉은 점이 나타났다. 성하리는 도면을 빤히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했어. 가자. 아, 유진이랑 소희, 사라는 뒤쪽으로 가. 이건 명령이야.”

반론을 허락하지 않는 사나운 기세를 내보이며 말했다.

“어, 언니 말대로 할게요.”

“유진 님은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키겠습니다!”

“네, 넷!”

마키나까지 군기든 자세로 대답했다.

성하리는 공략대와 함께 기계왕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하늘을 날고 있는 모카의 눈을 통해 상황을 주시했다. 공략대의 중심은 당연히 성하리였다. 플로라의 축복을 받아 신체 능력이 올라간 그녀는 S급이 왜 최종 병기라고도 불리는지 알 수 있다. 다른 A급 히어로보다 압도적이었다.

기계왕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유도 미사일을 발사하거나, 기계 몬스터를 풀어 그들을 방해한다. 에단이란 놈은 마나 화살로 미사일을 격추했고, 다른 공략대들은 기계 몬스터를 막았다. 최대한 성하리의 힘을 비축하려는 노림수가 보였다.

누군가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마키나가 있었다. 나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너 뭐야. 왜 실체화했어?”

마키나는 나와 연결된 상태였다. 실체화하려면 내 마나가 필요하다. 상급 이상의 정령은 스스로의 힘으로도 실체화할 수 있으나, 효율이 좋지 않고 손해가 크니 가급적 하지 않는다.

“어? 그냥 되던데?”

“……안 힘들어?”

“조금 지치는 것 같긴 한데 문제없어!”

“…….”

힘들이지 않고 스스로 실체화하는 것. 마령의 특징이었다.

‘…마령의 핵을 사용해서 그런가.’

좀 의외이긴 한데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마키나와 나는 이미 계약으로 묶여 있다. 절대복종이란 계약 조건에 의해 마키나는 날 배신하지 못한다.

마키나는 내 눈치가 보였는지 실체화를 풀고 내 옆으로 다가와 귀에 소곤거렸다.

“어떻게 할 거야? 나서지 않고 보기만 할 거야? 네 힘이면 데우스도 쉽게 쓰러뜨릴 수 있잖아. 해킹으로 자멸하라던가, 인공지능을 삭제하라는 명령을 내리던가.”

“…….”

해킹은 기계에 한해 사기 스킬이다. 허나 단점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쿨타임이 3시간으로 길다. 한 번의 전투에 한 번밖에 사용하지 못하기에 신중하게 써야 한다. 그리고 사정거리가 있었다. 현재 내 해킹 레벨은 20. 사정거리는 4km다. 그 이상의 거리에선 해킹이 통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기계가 복잡하고 대단할수록 해킹 유지 시간이 짧아진다. 당장 마키나를 유지했을 때도 15초가 한계였다. 기계왕의 크기를 보면 해킹 유지 시간은 그보다 더 짧을 가능성이 컸다.

‘사정 거리는 괜찮아. 기계왕이 이쪽으로 계속 다가오고 있으니까. 내가 움직이지 않더라도 거리는 곧 좁혀져.’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건 타이밍이었고, 고작 수 초 만에 기계왕을 자멸시킬 자신이 없었다. 차라리 해킹보다 더 확실한 방법을 찾는 게 낫다.

‘마키나. 너, 물건에 빙의할 수 있지 않냐?’

“…어, 그것도 알아?”

마키나의 또 다른 능력은 빙의다. 물건에 빙의해서 기계화할 수 있다. 컴퓨터 같은 기계에 빙의하면 기계를 지배할 수 있다. 단, 오직 물건에만 가능하다.

‘기계왕의 몸에 빙의해서 방해하면 될 텐데?’

“이번에 새로 생긴 능력이라, 나도 잘 몰라. 빙의라고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해킹과 비슷한 능력이라 데우스의 인공지능을 제압해야 하는데…. 데우스의 인공지능은 워낙 고성능이라 좀 힘들 것 같아. 무엇보다 데우스는 덩치가 너무 커. 네 마나가 감당하지 못할걸?”

마나 문제는 깜빡 잊고 있었다. 마키나의 말은 틀린 것 하나 없었다. 마키나는 내 정령이다. 내 마나로 능력을 사용한다.

‘다른 방법은 없나? 성하리가 기계왕을 조질때까지 지켜만 봐야 하나?’

이 세상에 100%는 없다. 기계왕이 숨기고 있는 능력도 있을 수 있고, 성하리가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다. 아니면 공략대가 성하리의 발목을 잡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에는 성하리가 너무 걱정된다.

‘……그거라면.’

한소희와 사라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들은 상황을 지켜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인벤토리에서 물건을 꺼냈다.

언젠가 랜덤 뽑기에서 나온 스티커였다. 절대 최면이랑은 조금 다른 스티커.

[0.3 스케일 스티커].

물건에 붙이면 그 크기를 0.3배로 바꿔 버리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0.3 스케일 스티커

스티커를 부착하면 물건의 크기와 무게를 30%로 만듭니다. 스티커를 떼면 원래대로 돌아옵니다. 스티커는 일회용입니다.

가격: 500 포인트

※주의

작아진 물건은 제대로 된 효과를 발휘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스티커를 뗄 때 공간을 생각하십시오.

살아있는 생물에게는 통하지 않습니다.]

‘…기계왕은 건물이야. 하나의 물건으로 취급되진 않겠지. 성의 전체 크기를 작게 만들 수는 없어.’

하지만 기계왕은 기계였다. 기계는 곧 정밀한 부품의 집합체다.

‘마키나. 기계왕의 구조 중에 가장 중요한 물건이 있지. 인공지능 말고.’

“빠져서는 안 되는 몇 가지 부품이 있긴 해. 가령 아래쪽 중심에 있는 축이라거나. 그게 없으면 데우스의 몸체 30%는 행동불능에 빠질 거야.”

‘그 축은 어떻게 생겼는데?’

“거대한 톱니바퀴처럼 생겼어. 동력을 전달하는 게 역할이니까.”

‘그걸 없애버리면 기계왕을 약화시킬 수 있겠어.’

“불가능해. 바깥에서 공격하기엔 안쪽에 있고, 데우스의 내부에 들어갔다면 차라리 인공지능 실을 찾는 게 더 나아.”

‘그것도 그렇… 아니, 잠깐. 저 아래 쪽. 거대한 판으로 되어 있잖아?’

성 아래쪽, 거대한 다리가 달린 강철판이다. 강철판을 이어붙인 게 아니라 하나의 통째로 만들어져있다.

“흙이나, 생물이 지하에서 들어오면 안 되니까. 아예 틈을 막아버렸어. 근데 그게 왜?”

‘저게 없어지거나 사라지면 안쪽에 있는 부품들이 우르르 쏟아지겠지? 바닥이 사라진 게 되니까.’

“그렇긴 해. 하지만 저긴 데우스의 몸체 중에서도 가장 단단한 부위라구? 어지간한 공격에는 끄떡도 안 할 거야. 아줌마가 아까와 같은 위력의 창을 3번 정도 날리면 뚫을 수 있을지도?”

나는 모카를 불렀다. 모카가 내 앞에 소환되었다. 모카를 실체화시키고 그 발톱에 0.3 스케일 스티커를 쥐여주었다.

나는 성하리의 눈치가 보여 움직일 수 없고, 속도도 느리다. 하지만 모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하늘을 자유자재로 나는 모카는 이곳에 있는 그 누구보다 자유롭게 움직이는 게 가능하다.

마키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나와 모카를 쳐다봤다. 마키나에게 일일이 설명해줄 생각은 없었다.

“꾸우욱! 꾹!”

자기만 믿으라고 말한 모카가 날개를 펼치며 하늘을 날았다. 파직파직. 모카는 내 마나를 아낌없이 사용하며 전속력으로 날아간다.

“유진아! 지금 뭘 한 거니?!”

한소희는 내가 도망가지 못하게 내 팔을 꽉 잡고 물었다.

“모카한테 도와달라고 했어. 마키나에게 좋은 방법이 있다더라고.”

“마키나에게?”

한소희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녀는 나나 성하리와 다르게 영체 상태의 정령을 보지 못한다.

‘마키나를 들먹이면 어떻게 했냐는 질문은 대충 넘길 수 있겠지.’

나는 모카와 시야 공유를 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성하리였다. 그녀는 허공에 발판용 역장을 만들어 말도 안 되는 기동성을 선보이며 기계왕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공략대는 전력으로 서포트했다.

‘아직 기계왕의 내부엔 들어가지 않았군. 딱 좋아.’

모카는 기계왕과 가까워지자 낮게 날았다. 너무 높게 날면 기계왕의 표적이 되기 딱 좋았기 때문이다. 기계왕은 미사일과 총탄을 모카에게 쏘면서 견제했다. 모카는 공중 곡예를 부려 보이며 모조리 회피했다.

‘모카. 너무 깊숙하게 들어갈 필요는 없어. 바깥쪽에…. 그래 그 부분에 스티커를 붙여.’

스티커가 붙여진 순간, 기계왕의 하판이 0.3배로 줄어들었다. 하판을 고정하던 것들이 의미가 없어졌다. 줄어들었음에도 여전히 커다란 하판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한 박자 늦게 기계왕의 내무 부품들이 후두둑 떨어진다.

가장 중요한 부품들은 단단히 고정되어 있어서 멀쩡했으나, 사람으로 따지면 살을 벗겨 가죽을 드러낸 꼴이나 다름없었다. 더 이상 기계왕의 다리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걸로 기계왕의 무기 절반 이상이 무력화되었다.

“맙소사! 대체 어떻게 한 거야?!”

마키나의 감탄을 무시하고 모카를 내 앞으로 재소환한다.

‘거리는 대충 3km 정도인가. 딱 좋군.’

공략대는 갑작스러운 행운에 당황하면서도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때였다. 기계왕의 상부가 쩍 갈라지며 거대한 손이 나타났다. 수천 개의 작은 손가락을 가진 손이었다. 손가락은 대포, 기관총, 칼날, 작살 등등 온갖 위험한 무기들이 붙어 있다.

“데우스의 손이야! 일종의 비장의 수단인데 벌써 꺼내 들 줄이야! 제우스도 궁지에 몰린 것 같네!”

공략대는 당황하지 않았다. 마키나는 데우스에 대한 정보를 공략대에 빠짐없이 미리 제공했다. 그리고 성하리가 드디어 기계왕의 내부에 들어섰다.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압도적이었다.

성하리는 창을 휘두르며 전진했다. 역장이란 발판을 이용해 허공을 자유로이 노닐며 창을 휘둘렀다. 그녀가 창을 휘두를 때마다 천둥소리가 울렸다. 창이 움직일 때마다 번개가 뒤따랐다. 섬뢰가 지나면 기계왕의 손가락들이 파괴되었다.

수천 개의 무기는 성하리의 전진을 조금도 막지 못했다. 성하리는 파괴의 화신처럼 그저 모든 걸 파괴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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