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718 - 718. 아카데미의 구원자 (498/2,000)

〈 718화 〉 718. 아카데미의 구원자

718. 아카데미의 구원자

성하리가 일직선으로 파고든다.

나는 그녀가 휘두르는 창의 움직임에 시선을 집중했다. 정령안(S) 덕분에 창의 움직임에는 그럭저럭 따라갈 수 있다. 허나 눈에 보인다고 해서 이해하는 건 아니었다.

‘창이 휘둘러질 때마다 주위 공간이 일그러지잖아. 아무리 힘이 강하다고 해도 말도 안 되는 일이야. 딱히 특별한 기술을 사용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공간이 일그러지는 게 아니라 공기의 흐름이 공간을 일그러뜨리는 것처럼 보이는 건가?’

어느 쪽이든 상식에서 벗어난 무력이라는 점은 같다.

“끝났네. 데우스는 저 아줌마를 못 막아.”

마키나가 말했다. 나 또한 동감이었다. 물론 성하리 혼자서라면 힘들었을 것이다. 공략대가 시간을 벌어주고, 내가 기계왕의 하판을 날린 덕분에 쉽게 기계왕의 내부로 들어가 날뛸 수 있었다.

‘기회는 지금밖에 없어. 해킹.’

[해킹에 성공했습니다.]

[기계왕을 10초 동안 해킹합니다.]

기계왕을 조종했다. 성하리를 노리던 기계왕의 손가락들이 갑자기 방향을 틀어 에단을 공격했다. 느닷없는 일격에 성하리도 빠르게 반응하지 못했다. 에단은 반응하긴 했으나, 그는 성하리처럼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

기계왕의 손가락 30개가 동시에 에단을 공격했다. 에단의 몸이 찢겨 나갔다.

‘일단 저 새끼는 죽였군. 후우.’

성하리가 잠깐 주춤거렸다. 시간으로 따지면 3초도 되지 않는다. 그녀는 다시 전진했다. 성하리는 레이번이 추측한 인공지능 실까지 일직선으로 움직여 모든 것을 박살 냈다.

기계왕은 파괴당했다.

『기계의 나라가 무너졌습니다.』

나는 하늘을 봤다. 저 끝에서부터 세계가 천천히 무너지고 있었다. 아름다우면서도 소름 끼치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던전의 중심. 바깥으로 나가는 통로가 만들어졌다.

“……이걸로 끝났군요. 역시 성하리 님입니다. 성하리 님이 아니었다면 던전을 클리어하지 못했을 겁니다.”

사라는 감격에 찼다.

“역시. 하리 언니네요.”

한소희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서운 아줌마야.”

마키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

성하리의 손을 잡고 던전 밖으로 나왔다.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던전 공략은 외부에 알리지 않은 비공식이니까. 하지만 예상과 달리 족히 백 명은 될 것 같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일반인은 없고 대부분이 히어로 협회 소속의 히어로나 직원들이다.

“돌아왔다!”

“던전 공략에 성공했어!”

“저 꼬마…. 역시 던전으로 떨어진 건가.”

“잠깐. 몇몇 사람이 안 보이는데?”

정면에서 1남1녀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남자는 다부진 체격에 붉은 콧수염의 대머리다. 미국 히어로 협회 시카고 지부장인 올리버다.

여자는 한국인이었다.

하얀 코트를 어깨에 걸치고 있고, 흑갈색의 긴 머리카락을 가졌다. 피부는 하얗고 눈이 무척 날카롭다. 표정도 굉장히 무표정했다.

그녀는 180cm가 넘을 정도로 키가 컸다. 가슴도 성하리와 비견될 정도로 풍만하다. 코트 아래에 입고 있는 옷은 하얀색 스키니진과 검은색 상의다. 여러모로 제복을 연상하게 하는 복장이다.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 안다.

‘…강지영. 대한민국의 S급 히어로.’

그녀는 원작에 나오는 인물로 성하리보다 훨씬 더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 바로 한국의 마루한 아카데미 3대 학장이 바로 그녀이기 때문이다.

강지영의 별명은 ‘지천(地天)의 선구자’. 성하리와 더불어 한국의 오천(五天)중 한 명이다. 달리 던전 파괴자라고도 불린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던전을 공략한 사람이 바로 그녀다.

‘지금은 아카데미 학장이 아니고, 원작대로라면 5년 후에 아카데미 학장으로 취임할 거야.’

우리는 그들을 빤히 쳐다봤다. 올리버가 하하 웃으며 성하리의 눈치를 봤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듣겠네만, 자네가 없었다면 던전을 공략하지 못했겠지. 미국 협회를 대표해서 자네에게 감사를 표하겠네.”

“나중에 얘기하죠. 특히 유진이가 던전에 오게 된 경위에 대해서.”

“……하하.”

올리버가 식은땀을 흘렸다. 필사적으로 변명을 생각하는 게 눈에 보였다. 그는 내게 눈짓을 보냈다. 도와달라는 뜻인 것 같은데, 나는 그의 시선을 피했다. 나도 남을 걱정할 처지가 아니었다. 호텔에 돌아가면 성하리에게 혼날게 분명 했다. 아마 오랜만에 엉덩이를 맞겠지.

성하리는 이내 옆으로 시선을 옮겼다.

“지영아. 네가 여기에 직접 올 줄 몰랐어.”

“한국 협회장이 시끄럽게 굴어서 와봤다. 흥미로운 사고가 발생했다고 들었는데, 결과적으로 잘 해결된 모양이군.”

강지영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왔다. 나와 두 눈이 정확히 마주쳤다. 그녀의 카리스마가 주위 공기를 무겁게 한다.

내겐 익숙한 분위기다. 판타지 세계의 왕이나 대귀족이 그녀같 은 위압감을 내뿜는다.

“이 아이가 네 아들인가?”

“맞아. 직접 보는 건 처음이지? 이름은 성유진이야.”

“안녕하세요. 누나.”

어린아이인 척 배꼽 인사를 해줬다. 강지영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날 쳐다봤다.

“유진아. 엄마 친구야. 누나가 아니라 아줌마라고 해.”

알고 있다. 강지영과 성하리는 아카데미를 함께 다녔던 동기였다. 성하리는 아카데미를 중퇴했지만.

“만나서 반가워요. 아줌마.”

“…….”

강지영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성하리를 잠깐 쳐다보더니 그대로 몸을 뒤로 돌렸다.

“강지영! 어디가?!”

“한국으로 돌아간다. 너희 모자가 무사하다는 걸 내 눈으로 확인했으니 내 일은 끝났다.”

“여전히 딱딱하네. 저녁은 먹고 가!”

“나중에 한국에서.”

나는 강지영의 뒤를 빤히 쳐다봤다. 하얀 코트 때문에 뒷모습은 실망스러웠다.

‘성하리에 버금가는 외모로군. 어떻게 해야 따먹을 수 있을까…. 철벽같은 여자이니 평범한 방법은 안 통하겠지.’

???

“유진. 약속했던 선물이네. 원래는 다른 걸 주려고 했다만…. 이번 일도 사과할 겸 이걸 주도록 하지.”

올리버는 내 앞에서 무릎 꿇었다. 나와 시선을 맞추고 선물을 건넸다. 잘 포장된 선물 상자는 내 흥미와 기대를 끌어내는데 성공했다. 시카고 지부장의 선물인 만큼 쓸모없는 선물은 아닐 것이다.

“안에 뭐 있어요?”

“한 번 풀어보도록.”

“…위험한 선물은 아니겠죠?”

내 옆에 서 있는 성하리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올리버를 쳐다봤다. 올리버는 성하리의 눈치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안전한 물건이니 걱정 말게. 내가 미쳤다고 어린아이에게 위험한 물건을 선물하겠나? 지금 여기서 선물 상자를 열어봐도 상관없네.”

“유진아. 한 번 열어봐.”

성하리가 재촉하지 않더라도 열어볼 생각이었다. 선물 상자의 리본을 잡아당겼다. 끈이 스르륵 풀렸다. 상자를 열자 고급스럽게 포장된 물약이 보였다.

“올리버. 이게 무슨 약이죠? 겉보기엔 굉장히 수상쩍네요.”

“진정하게. 하리. 이건 드루이드의 비약이네. 최고급 영약 중 하나야. 다친 곳이 있으면 후유증 없이 회복시켜주고, 그냥 먹어도 능력치가 오르지. 비상용으로 써도 좋고, 아니면 지금 당장 써서 능력치를 올려도 상관없네.”

『드루이드의 비약

랭크: S

잠재력을 올려준다.

오래된 상처를 회복한다.

자연 회복력을 일시적으로 극대화한다.』

S랭크의 영약.

하지만 난 영 마뜩잖았다.

‘잠재력을 올려준다라….’

난 잠재력 자체가 별로 없다. 당장 복용하면 신체 능력은 약간 오르겠지만 그뿐이다. 나는 잠깐 고민했다가 성하리를 쳐다봤다.

“엄마. 어떻게 할까?”

“유진이가 좋을 대로 해. 이건 유진이의 선물이니까.”

『이름: 성하리

근력: A- (SS) 체력: A- (S+) 민첩: A+ (SS+) 내구: B (S) 마나: A (SS)

특성: 정령 포식자(S), 인드라의 섬뢰(SS)

스킬: 신창합일(SS), 투창(S), 전투감각(S), 정화(D+), 역장(C+)

호감도: 100

심리: 유진이의 상태가 평소랑 다른 것 같아.

※정령왕의 주박(SS)에 의해 능력치가 하락했다.』

『성하리의 심리: 유진이가 좋은 걸 얻었어.』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예전보다 능력치가 떨어진 성하리의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령왕의 주박이 남아 있는 이상 시간이 지날수록 능력치는 더 떨어질 것이다.

나는 드루이드의 비약을 들고 흔들었다. 연보라색 액체가 찰랑찰랑 흔들린다.

“엄마. 이것 좀 봐.”

“응? 보고 있어.”

“좀 더 자세히 봐봐. 신기한 게 있어?”

“신기한 거?”

성하리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여자의 냄새가 훅 느껴졌다. 자지에 반응이 갔다. 참았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색깔은 예쁜데 신기한 건 안 보이는… 읍?!”

찰나를 사용해 재빨리 비약의 입구를 열고 그녀의 입속에 넣었다. 당황한 성하리가 뱉기 전에 손으로 그녀의 목을 꾹 눌렀다. 목울대가 움직이며 약이 넘어갔다. 성하리가 눈에 힘을 주고 내 몸을 꽉 잡았다.

“유진아! 너! 이게 무슨 짓이야?!”

“엄마. 몸 안 좋잖아. 그래서 엄마한테 먹였어. 그냥 주면 안 먹을 게 뻔하니까.”

“……내가 몸이 안 좋다고? 아니, 엄마는 건강해. 이렇게 좋은 약은 유진이가 먹어야지.”

“난 엄마가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어.”

“…유진아.”

성하리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화를 내야 하는데 화가 안 나는 모양이다.

짝짝짝.

박수 소리에 우리 모자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올리버가 눈물을 글썽이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브라보! 유진같은 효자는 본 적이 없어! 하리. 자네는 아들을 아주 잘 키웠어. 내 아들이 자네 아들의 반이라도 닮았으면 좋겠군.”

“……아무튼 유진아, 고마워. 하지만 다음에는 이러지 마. 엄마는 정말 괜찮으니까. 다음에는 꼭 유진이가 먹어. 알겠지?”

성하리가 내 몸을 꽉 끌어안았다. 난 그녀의 눈 끝에 맺힌 눈물을 확인했다. 이걸로 성하리는 적극적으로 내게 보지를 대주겠지.

“응.”

『이름: 성하리

근력: A (SS) 체력: A+ (S+) 민첩: S- (SS+) 내구: B+ (S) 마나: A+ (SS)

특성: 정령 포식자(S), 인드라의 섬뢰(SS)

스킬: 신창합일(SS), 투창(S), 전투감각(S), 정화(D+), 역장(C+)

호감도: 100

심리: 유진이의 상태가 평소랑 다른 것 같아.

※정령왕의 주박(SS)에 의해 능력치가 하락했다.』

『성하리의 심리: 우리 유진이는 너무 착해.』

성하리의 신체 능력이 올랐다. 하지만 이것도 일시적이다. 시간이 지나면 또 내려가겠지.

‘정령왕의 주박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지금으로선 감도 안 잡히는군. 상태 이상이니 엘릭서로 풀리려나?’

성하리에게 엘릭서를 투자할 수 있다. 허나 정령왕이 주박을 또다시 걸어버리면 엘릭서는 바닥에 버린 꼴이 된다.

“유진이에게 선물을 받았는데 엄마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원래는 조금 뒤에 주려고 했지만…. 자, 엄마가 주는 선물이야.”

성하리는 철로 된 팔찌를 내 손목에 걸어주었다.

『강철의 수호자

랭크: S+

위험할 때 자동으로 발동되어 공격을 막아준다.

하루에 3번 뛰어난 내구도를 가진 강철 방패를 허공에 소환할 수 있다.』

이번 S급 던전에서 얻은 물건이리라.

“고마워, 엄마!”

성하리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옆에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올리버가 짜증 났다. 이놈만 없었다면 당장 혀를 움직여 자연스레 섹스하는 분위기로 끌고 갔을 텐데.

‘오늘 밤은 안 재운다. 크크.’

???

한국으로 돌아왔다.

나는 외갓집을 갔다. 성하리에게선 창술을 배우고, 외갓집에선 정령술을 배웠다.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정령술은 거의 없지만….

“우와! 여기 정령 엄청 많다!”

마키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정령들의 시선이 일제히 마키나에게 향했다.

“어, 어, 뭔가 위험한 느낌이 들어. 혹시 나 차별당하는 거야? 특이한 정령이라서?”

“다 좋은 놈들이야. 그리고 쟤들은 널 차별하는 게 아니라 기대하고 있는 거야.”

“기대? 뭐, 뭐를?”

마키나는 불안함을 느끼는 듯 눈동자를 굴렸다. 문득 마키나의 외형이 성하리와 닮은 것 같았다.

텁.

나는 마키나의 머리를 손으로 잡았다.

“어, 어, 유진아?”

“얘들아! 신병 받아라!”

마키나를 정령들에게 내던졌다.

정령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끼얏호! 오랜만의 신병이다!”

나는 정령들을 뒤로했다. 곧이어 마키나의 곡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적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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