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8화 〉 728. 아카데미의 구원자
728. 아카데미의 구원자
입학식을 끝내고 아카데미 학장실로 돌아온 강지영은 쉴 틈도 없이 두 명의 손님을 맞이해야 했다.
성하리와 최정화.
어느 쪽이든 쉽게 무시하기 힘든 그녀들은 당당하게 학장실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무슨 일이지?”
“너도 바쁜 것 같으니 돌리지 않고 말할게. 나와 정화는 학부모회를 만들기로 했어.”
“아, 그렇군. ……설마 마루한 아카데미의 학부모회를 말하는 건 아닐 테지?”
“맞아. 제대로 들었어.”
“…….”
강지영의 미간이 좁혀졌다.
마루한 아카데미가 창립된 지 어언 37년. 그동안 학부모회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마루한 아카데미는 다른 일반 학교와 다르다. 학부모회는 필요 없다. 허락할 생각도, 이유도 없으니 돌아가라.”
강지영은 아카데미의 학장이다. 학부모회가 생기면 행동에 제약이 생기는 거나 다름없게 된다.
“지금까지 없었다고, 앞으로도 없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아카데미의 커리큘럼을 방해할 생각은 없어.”
“뭐가 목적이지?”
성하리의 목적은 하나였다. 성유진. 오직 아들인 성유진을 위해 학부모회라는 걸 생각했다. 학부모회란 게 생기면 기숙사에 들어간 성유진과 만날 기회가 늘어날 테고, 최악의 사태에도 대비할 수 있다.
“솔직하게 말할게. 난 아카데미에 100% 신뢰하지 않아. 강지영, 네가 학장으로 있다고 해도 말이야.”
강지영은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최정화. 너는?”
“마찬가지야. 내가 아카데미에 재학할 때, 더러운 비리가 있었지.”
촌지.
교사가 학부모에게 돈을 받고 성적을 조작한 것이다. 뿐만이 아니라 몇몇 클랜과 연계하여 유망한 학생들을 속여 빼돌리는 일도 있었다. 거기에 2대 학장은 정치권과 관련된 비리를 저질러 감옥에 갇힌 상태다.
“내가 학장에 취임하고 가장 먼저 한 게 정리다. 비리 교사는 협회에 넘기고, 불합리는 최대한 털어냈다. 너희가 걱정하는 하는 일은 더는 일어나지 않을 거다.”
최정화는 기도 차지 않다는 듯이 코웃음을 흘렸다.
“그건 네 생각에 불과해. 네가 보지 않는 곳에서 비리는 일어나고 있을 거야. 당장 내가 회유한 교사가 몇 명인지 알아?”
“……회유했다고?”
강지영에게서 무시무시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흠칫 놀란 최정화는 서둘러 말을 이었다.
“성적 조작 같은 건 안 하니까 걱정하지 마. 아카데미 내의 정보를 얻기 위한 거야. 나 말고도 다른 클랜장들은 다 하고 있다는 걸 알잖아. 그리고 협회도.”
“…….”
“강지영 학장. 네가 뭘 염려하는지 알아. 학부모회의 등장은 네 영향력을 떨어뜨리니까.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우리가 네 힘이 되어줄 수도 있어.”
“내 힘이 되어 준다라…. 아카데미 내의 상황을 알고 있는 건가?”
아카데미에서 가장 큰 권한을 가진 학장이지만,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다는 뜻은 아니었다. 강지영은 부학장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본래 아카데미 학장 자리는 부학장이 승진하며 얻을 자리였다. 그러나 강지영이 덜컥 학장으로 취임하면서 부학장은 부학장의 자리에 남게 되었다.
“약속할게. 네가 일을 잘한다면, 학생들에게 아무 문제 없다면 우린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야. 계약서를 작성해도 좋아. 그렇지?”
“어, 응. 정화 말이 맞아.”
“…….”
강지영은 두 눈을 감았다.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성하리와 최정화. 두 사람 모두 평범하지 않다. 자신의 힘이 된다면 여러 가지로 엄청난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들이 자신을 배신한다면? 그것만큼 성가신 경우는 없을 것이다.
“……계약서를 작성해도 좋다는 그 말. 확실한가?”
“그런 거로 거짓말할 이유는 없잖아.”
“알았다. 계약서는 이쪽이 준비하지. 너희는 자세한 계획서를 제출해라. 그리고 나도 조건을 걸거다.”
“무슨 조건인데?”
최정화가 두 눈을 날카롭게 빛냈다.
“별건 아니다. 내가 요청하면 너희들이 도와주는 거다.”
“터무니없는 부탁만 아니면 들어줄게. 계획서는… 정화, 네가 작성해. 너 이런 거 잘하잖아?”
성하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학부모회의 세세한 내용은 관심 없었다.
“넌 어떻게 몇십 년이 지나도 안 변하니?”
“안 변하는 게 좋은 거야. 수고해. 아, 회장은 나니까 잊지 말고.”
“왜 회장을 네가 하는 건데?! 계획서를 작성하는 내가 회장인 게 맞잖아!”
“학부모회의 시작은 나야. 정 불만이라면… 옛날 방식으로 정할까?”
성하리가 주먹을 들었다. 최정화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식한 미친년….”
성하리가 떠났다. 학장실에는 강지영과 최정화 둘만 남게 되었다.
“쟤 대체 왜 저러는 거야? 학부모회 같은 걸 할 년이 아닌 거 너도 알잖아.”
“…음. 성하리는 아들과 관련된 일에는 극성이다. 이번 일도 아들과 관련됐기 때문이겠지.”
“팔불출이라 그렇다고? 흐응…. 얼마나 잘난 아드님이신지 궁금해서라도 한번 만나보고 싶네.”
“꼬리 치지 마라.”
“……너희들. 대체 날 어떻게 생각하는 거야?”
???
마루한 아카데미 1학년 1반.
내가 속한 반이었다. 아쉽게도 류하나는 4반이다. 그래도 소꿉친구인 이시은은 나와 같은 반이었다.
내 시선이 향한 곳은 교실 앞자리에 앉은 남자였다.
차석. 김천우.
깔끔한 외모의 남학생이다. 성격도 매우 성실하고 친절하다.
원작에선 김천우도 플레이어블 캐릭터다. 하지만 그 가치는 류하나와 달랐다. 류하나가 이 세계의 히로인 중 한 명이라면, 김천우는 사실상 이 세계의 주인공에 가깝다.
’아카데미 구원자. 새삼스레 그 이름이 떠오르는군. 뭐, 아카데미 구원자라는 건 캐릭터가 아니라 게임을 즐기는 플레이어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나는 김천우의 뒤통수를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1반에서 눈에 들어오는 인물은 많았다. 특히 절반은 여학생들이었는데 모두 하나같이 미모가 뛰어난 편이었다. 그리고 내 목표는 이 반의 여학생들은 모조리 따먹는 것이다. 물론 다른 반의 여학생도.
‘최다연.’
뒤쪽에 앉은 여학생이 보였다. 일어서면 허벅지까지 내려올 듯한 긴 검은색 머리카락, 차갑게 굳어 있는 도도한 얼굴. 황금 나무 클랜장의 딸이자, 금화 그룹 회장의 손녀. 재벌 3세.
‘크크. 류하나도 그렇고 따먹을 보람이 있는 여자가 아카데미에 많구만.’
적의가 느껴졌다.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나를 맹렬히 노려보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인상이 더러운 놈이었다. 빡빡머리에 얼굴에 칼로 베인 듯한 흉터까지 있었다. 안 그래도 더러운 인상이 두 눈까지 부라리니 토가 쏠릴 정도였다.
‘이놈은 원작에도 나왔던 놈이지. 이름이… 이강후였나?’
최다연의 똘마니였다.
더 정확한 정체도 안다. 이강후는 금화 그룹의 하수구 소속이다.
하수구.
이름답게 더러운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검은 조직이다. 오직 금화 그룹 회장의 명령에만 움직인다.
‘다른 캐릭터로 최다연을 공략하거나, 최다연으로 플레이하면 여러 가지고 귀찮은 문제를 일으키는 놈이지.’
이강후는 내가 눈을 피하지 않자 노골적인 살기를 내비쳤다. 이미 몇 번 살인을 경험한 놈다운 살기였다. 내 주위에 있는 학생들은 이유 모를 오한을 느끼고 몸을 떨었다.
그러나 내게는 그의 살의가 같잖기만 했다.
‘귀찮은 놈. 최다연을 공략하는 데 방해만 될 뿐이지. 적당할 때 치워버려야겠어.’
이강후를 무시하고 최다연의 얼굴과 가슴을 구경했다. 군더더기 없는 몸매. 가슴은 D컵. 몸매도 몸매지만 얼굴이 뛰어났다. 재벌 3세라 그런지 현실의 하승희와 제법 비슷한 분위기였다.
“…….”
너무 노골적으로 쳐다봤는지 최다연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나는 바로 시선을 돌렸다. 여기서 눈싸움을 해봤자 내가 얻는 건 없었다.
드르르륵.
앞문이 열리고 한 여자가 들어왔다.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검은 머리의 여자였다. 또각또각 걸어 교탁에 섰다. 흥분하지도 않고, 긴장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냉정하게 느껴질 정도로 차분했다.
“1학년 1반 담임인 윤희정이야. 맡고 있는 과목은 히어로의 역사와 원소 마법. 앞으로 1년간 잘 부탁해.”
그 후에는 질문 시간에 이어졌다. 그녀는 담담하게 학생들의 질문을 받았다. 다른 학생들은 대부분 아카데미에서 할 일들에 대해 물었다. 그들이 얼마나 진지하게 임하고 있는지 느껴졌다.
나는 손을 위로 들었다.
“창가 쪽에 앉은 너. 질문이 뭐니?”
“선생님. 애인 있어요?”
“…내 애인의 유무가 중요한 게 아닐 텐데?”
“제가 선생님의 애인이 될지도 모르죠.”
“…….”
윤희정은 어이없다는 듯이 날 보더니 말했다.
“앞으로 그런 질문은 하지 마. 다른 사람은 질문 없니?”
윤희정은 그대로 넘어갔다. 질문은 없었다. 그녀는 학생들에게 자기소개를 시켰다. 자기소개가 끝난 뒤, 윤희정은 학생들에게 말했다.
“이제 너희가 아카데미에 재학하는 동안 사용할 무기를 가지러 갈 거야. 아카데미 내에선 지정한 무기를 제외한 그 어떤 무기도 사용할 수 없어. 다른 아티펙트도 마찬가지야. 무기 선택은 자유롭지만 신중하게 선택해. 한 번 선택하면 3개월 뒤에 다시 선택할 수 있으니까. 자, 이동하자. 모두 일어나서 날 따라와.”
학생들이 우르르 일어났다. 윤희정이 천천히 걸어 바깥으로 나갔다.
“시은아. 먼저 가 있어.”
“응? 유진아. 뭐하게?”
나는 내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윤희정이 들어오고 나서 살의는 사라졌지만, 시선은 계속 느껴졌다.
“따로 나랑 이야기하고 싶은 놈이 있는 것 같아서. 곧 뒤따라갈게.”
“알았어.”
이시은이 나갔다. 교실에 나와 이강후만 남았다. 이강후가 살기를 내뿜으며 성큼성큼 내게 다가온다.
『이름: 이강후
근력: D+ 체력: C- 민첩: E+ 내구: D 마나: E-
특성: 타고난 육체(B), 신체개조(C)
스킬: 둔기술(C), 야성(B),
호감도: 0』
능력치는 고만고만했다. 타고난 육체(B)는 신체 능력을 올려주고 재생력이 크게 늘어나는 특성이다. 신체개조(C)는 후천적 특성이다.
“야. 미리 경고해두지. 죽고 싶지 않으면 아가씨에게 찝쩍거릴 생각은 하지 마라.”
“최다연 말이지? 난 아무것도 안 했어.”
“너 같은 놈이 많았지. 자기 주제도 모르고 아가씨께 들러붙는 버러지 같은 것들. 내 임무가 너 같은 버러지가 아가씨께 달라붙기 전에 쳐내는 거다.”
이강후가 손바닥을 펼쳤다. 그가 손가락에 힘을 주자 손가락이 마치 칼날처럼 변했다. 신체 개조(C) 특성의 효과다. 그는 손가락으로 내 목을 가리켰다.
“이게 말로 하는 마지막 경고다. 지금 이 순간부터 아가씨의 그림자도 보지 마라. 알아들었나?”
“지금은 대충 넘어가려 했는데… 안 되겠다.”
“머리가 안 돌아가나? 넌… 끄악?!”
퍼억.
그의 무릎을 마나를 담은 발로 찼다. 무릎이 박살 나며 이강후가 앞으로 고꾸라진다. 이강후는 비명을 내지르면서도 내 목을 향해 손을 뻗었다. 특수한 훈련을 받은 태가 났다.
고개를 까딱여 이강후의 공격을 피하고 다시 발로 다른 무릎을 발로 찼다. 놈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 자식이…!”
이강후가 손을 휘두른다. 가볍게 점프해서 공격을 피하며 어깨를 밟아 부서뜨렸다.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팔뚝, 팔꿈치, 손목을 밟아 부러뜨렸다.
“……!!”
“자기 주제도 모르는 건 내가 아니라 너야. 그리고 지금부터 목소리가 새어 나오면 지금 당장 네 아가씨에게 뛰어가서 그 모가지를 비틀어 뜯어버린다.”
손가락 하나, 하나를 전부 밟아 으스러뜨렸다.
“……!!”
놈의 눈동자에 두려움이 서렸다.
“시간이 없으니 여기까지 하고….”
이강후의 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내 스마트폰으로 문자 하나를 보내 놈의 전화번호를 알아내고 이강후의 머리 위에 스마트폰을 떨궜다.
“오늘 밤에 전화할 테니 나와라. 안 나오면 찾아간다. 그리고 넌 걸어가다가 넘어진 거다. 그렇게 알고.”
“너, 넌 대체 뭐냐…. 어, 어디 조직 소속이냐…?!”
뒤에서 들리는 이강후의 말은 무시했다.
‘마음 같아선 바로 죽여서 처리하고 싶은데…. 이강후랑 내가 교실에 남았다는 걸 몇 명이 알고 있어.’
???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학생들은 저마다 자기가 원하는 무기들을 받고 있었다. 온갖 종류의 무기가 있었는데 죄다 비슷한 무기들을 선택했다. 검, 창, 도, 활.
나는 가장 사람이 없는 쪽으로 향했다. 시선들이 점점 내게 모이며 학생들이 웅성거린다.
내가 향한 곳에는 총기가 있었다.
“어, 어떤 총을 드릴까요?”
고개를 꾸벅이며 졸고 있던 총기 관리 직원이 화들짝 놀라 내게 물었다.
“로켓 런처 하나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