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0화 〉 730. 아카데미의 구원자
730. 아카데미의 구원자
『이름: 윤희정.
근력: D- 체력: E 민첩: E+ 내구: E- 마나: A
특성: 만능 마술사(A)
스킬: 마법(A+), 고속영창(B), 메모라이즈(B-), 인챈트(A)
호감도: 33』
윤희정의 상태창을 보고 있을 때였다. 이시은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유진아. 무기는 모두 골랐어?”
“어. 너는?”
“나도 골랐어. 단검 4개.”
이시은은 단검 4개를 보여줬다. 똑같이 생긴 단검들이다. 나는 이시은이 구색만 갖췄다는 걸 안다. 이시은의 전투 방식은 마법사에 가깝다. 원거리에서 능력을 이용해 공격하니까.
“그리고 네가 시킨 것도 전부 했어.”
내 시선이 이시은의 오른손목에 향했다. 소매에 몰래 숨겨둔 단추 모양의 작은 카메라가 보였다. 이 카메라를 이용해 내가 명령한 대로 여자들의 사진을 찍었으리라.
“잘했어. 시은아.”
“…….”
이시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시은이 뺨을 살짝 붉히며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여자 기숙사에 들어가면 알지? 거기서도 잘 찍어야 해. 그리고 약점 같은 거 포착하면 바로 나한테 보고 하고.”
“나만 믿어. 유진이가 다 따먹을 수 있게 도와줄게. 대신 나도 따먹어 줘야 해.”
“물론이지.”
나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이강후는 손과 무릎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는 고통을 견디는 훈련을 받았다. 다만 말 그대로 견디는 것일 뿐이지, 고통이 안 느껴지는 건 아니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성유진을 찾아 훔쳐 보았다. 파란색 머리의 여학생과 대화하고 있다. 소곤소곤 대화하고 있어 무슨 대화를 하고 있는지는 들리지 않는다. 다만 오늘 처음 본 사이가 아닌 것만은 확실했다.
‘몇 번을 생각해도 저놈은 위험하다.’
미세하게 떨리는 팔과 다리를 고통 때문이라고 애써 부정했다. 그는 자신의 얼굴에 있는 흉터가 욱씬거리는 걸 느꼈다.
‘…저놈의 눈빛은 칼바람과 비슷했다.’
A급 빌런, 칼바람.
이강후는 빌런 중에서도 잔혹하기로 유명한 그 빌런을 2년 전에 만난 적 있었다. 그의 얼굴에 흉터를 남긴 게 칼바람이다. 그를 마주하고 살아남은 건 상사와 함께 있었던 덕분이다. 혼자 있었다면 100% 죽었다.
‘사람을 아무 이유 없이 죽일 수 있는 놈…. 사고방식 자체가 일반 사람과는 아예 궤를 달리하는 놈. 놈이 아가씨를 바라보는 눈이 심상치 않았다. 아가씨가 놈의 표적이 될지도 모른다.’
놈이 죽어야 하는 이유는 완벽히 충족했다. 하지만 이강후는 자신의 실력이 놈에 비해 한참 못 미친다는 걸 알고 있다.
‘혼자서 죽일 수 없다면… 동료를 부르면 된다.’
성유진은 밤에 자신을 보자고 했다. 아마도 자신을 죽이려거나, 팔이나 다리를 뽑으려는 등 고문하려고 하겠지.
‘기회다. 놈을 오늘 반드시 죽인다. 설령 그로 인해 협회에 붙잡히게 되더라도… 아가씨를 위해서라면…!’
이강후는 조용히 각오를 다졌다.
그에게 최다연이 다가왔다. 그녀의 손에는 활이 쥐여 있었다. 이강후는 주머니에서 손을 빼 뒷짐을 지고 등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손가락은 아직 회복되지 않아 여전히 부러진 상태였다. 이 손을 최다연에게 보일 수 없다.
“무슨 일이야?”
최다연의 목소리는 아름다웠으나 차가웠다.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았다.
“아무 일도 아닙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
호박색 눈동자가 잠시 이강후를 응시했다. 그녀의 다리가 다시 움직여 이강후의 옆을 지나쳤다. 이강후는 다시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아가씨는 나와 성유진 사이에 일이 생겼다는 걸 알고 있겠지.’
알면서도 아무런 발언도 하지 않는다. 알아서 처리하라는 뜻이겠지. 이강후는 조용히 최다연의 등을 지켜봤다. 가까이 다가갈 수 없더라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게 자신의 의무다.
잠시 후, 그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성유진이 메시지를 보냈다. 오후 10시까지 아카데미 근처에 있는 산으로 오라는 내용이었다. 산 근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을 죽이고 시체를 파묻기에 딱 좋은 산이었다.
‘그 오만이 너를 죽일 거다. 성유진…!’
???
무기를 선택한 뒤 교실로 돌아가 교과서를 받고 윤희정의 주의사항을 들었다. 일정은 그걸로 끝이었다. 본격적인 교육은 내일부터 시작이다.
나는 기숙사로 돌아갔다.
입학 순위의 높아서 좋은 점은 기숙사에 있었다. 최고급 호텔이라 해도 믿을 정도의 고급 건물을 기숙사로 사용할 수 있다. 물론 건물은 남녀 따로다. 방의 크기는 30평에 달한다.
하위권 기숙사도 나쁘지 않다. 10평 정도의 괜찮은 원룸이다. 그러나 하위권은 좀처럼 만족하지 못한다. 휘황찬란한 상위권 학생들의 건물이 바로 옆에 있으니까.
‘학생들의 경쟁심을 자극하는 아카데미의 노림수지.’
입학 시작부터 학생들에게 순위를 매기는 걸 보면 알 수 있듯이 마루한 아카데미를 경쟁을 추구한다.
나는 도어락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응?”
방안의 불이 켜져 있었다.
“어서 와. 유진아!”
성하리가 달려와 내 몸을 다짜고짜 끌어안았다. 나는 당황하면서도 그녀를 마주 안았다.
“엄마? 엄마가 왜 여깄어?”
“당연히 우리 아들 보려고 왔지. 아들이 어디서 생활하는지 엄마로서 확인해봐야지. 음. 나쁘지 않은 곳이더라. 그래도 유진이 혼자만 생활하는 건 걱정이니 가끔씩 찾아올 거야.”
“난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어. 그리고 엄마라도 아카데미에는 마음대로 못 들어오지 않아?”
성하리는 자신만만하게 씨익 웃었다.
“엄마가 해결했지.”
“…해결? 어떻게?”
“지영이랑 담판을 지었어. 이제부터 엄마는 마루한 아카데미 학부모회 회장이야.”
“……오.”
학부모회는 원작에 존재하지 않았다. 나로 인해. 정확하게는 성하리로 인해 바뀌게 된 부분이다. 성하리가 강지영에게 떼를 쓴 모양인데, 성하리가 내 가까운 곳에 있다며 나로서도 나쁠 건 하나도 없었다.
“아카데미에서 엄마를 매일 볼 수 있는 거야? 좋네.”
“매일은 힘들어. 그래도 자주 보는 건 맞아.”
상의를 들추고 왼손은 성하리 가슴을, 오른손은 성하리의 팬티 속으로 들어갔다.
“아응, 자, 잠깐 유진아. 점심부터 먹어야지.”
“점심으로 엄마를 먹고 싶은데.”
“안 돼. 점심은 이미 준비해놨어. 점심 먹고 해도 늦지 않으니까 점심부터 먹자. 응?”
“알았어.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는 거지?”
“으음…. 지영이가 뭐라 할 것 같긴 한데…. 하루 정도는 괜찮겠지.”
쪼옥.
가볍게 키스하고 떨어진 우리는 식탁에서 점심을 먹었다. 성하리의 요리는 엄청나게 맛있다고 할 수준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먹을 만 했다.
점심을 먹은 뒤에는 굶주린 짐승처럼 서로의 몸을 갈구했다.
“아, 아아아앙…!”
???
오후 9시.
약속 장소에 1시간 전에 나온 이강후는 주위를 확인했다. 가로등 하나 없는 산속은 무척이나 어두웠다. 당연히 이 산 근처에는 사람도 없었다.
이강후는 당연히 혼자 오지 않았다. 그의 주위에는 복면을 뒤집어쓰고 온갖 무기로 무장한 남자들로 가득했다.
하수구 3팀.
이강후가 속해있는 팀이다. 팀원은 전부 15명인데 오늘은 이강후 포함 8명밖에 모이지 못했다. 7명은 다른 임무가 있기 때문이다.
“이강후. 그렇게 그놈이 위험하나? 우리 3팀이 나서야 할 정도로?”
복면을 뒤집어쓴 팀장이 음산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 아주 위험한 놈입니다. 놈은 아가씨를 노리고 있습니다. 당장 오늘 처리해야 합니다.”
“…어쩐지 느낌이 안 좋군. 성유진이란 놈의 자료가 부족하다. 다른 날을 잡으면 안 되나?”
“……팀장. 오전에 놈이 제게 보낸 문자입니다. 놈이 절 여기로 불러냈습니다. 그게 뭘 의미하는지는 아시지 않습니까.”
“널 죽이려 한단 말이지…. 흐음. 대체 뭐하는 놈이길래 이렇게 거침없이 행동하는 거지?”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정보팀에게 연락해서 놈의 정보를 알아내 달라고 부탁은 했지만… 소식이 없습니다.”
“정보팀은 회장님 직속 명령을 받아 바쁘다. 지하 경매의 정보를 얻느라 혈안이 되어있지. 아마 이틀 후에나 네가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다.”
그들은 능숙하게 준비를 시작했다. 함정을 파고 몸을 숨긴다. 이곳에 오는 놈을 죽이고 뒤처리까지 완벽하게 할 것이다.
30분이 지났다.
이강후는 약속 장소에 모습을 대놓고 드러냈다. 그는 미끼였다. 반면에 그의 다른 팀원들은 모두 완벽하게 은신했다. 숨소리마저 조절하며 목표물이 나타나길 기다렸다. 그러나 놈은 오지 않았다.
20분이 더 지나 9시 50분이 지났다. 여전히 성유진은 오지 않았다.
귀에 착용한 작은 무전기를 통해 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약속 시간이 오후 10시가 맞나?”
“맞습니다. 그놈은 빌런 같은 놈입니다. 약속 시간을 칼같이 지킬 리 없습니다. 아마 10시 이후에 올 겁니다.”
“음. 원래 엿같은 놈들이 약속 시간을 잘 안 지키지.”
10시 정각.
산은 고요했다.
이강후는 초조함을 애써 숨겼다. 성유진은 딱 보기에도 불성실해 보이는 놈이었다. 약속 시간에 늦는 건 계산 내다.
10시 20분.
“…왜 안 오는 거냐.”
팀장의 목소리에 짜증이 섞였다. 이강후의 이마에 땀이 삐질 맺혔다. 자신 때문에 모인 팀원들이다. 그들의 눈치가 슬슬 보이기 시작했다.
“혹시 놈이 이미 찾아와 숨어 있는 건….”
“입구에 보낸 부하에게 물어 확인했다. 그 누구도 산에 들어오지 않았더군.”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3월 초의 밤 날씨는 무척 추웠다.
“미리 알고서 찾아오지 않는 건….”
“우리 중에 누군가가 정보를 흘렸다는 말이냐?”
말투에 언짢음이 가득했다. 이강후는 서둘러 말을 정정했다.
“실언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놈에게 연락해보겠습니다.”
성유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2번을 전화 시도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으득.
이강후는 이를 갈며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이강후 ? 네놈. 어디냐? 약속 시간이 이미 훨씬 지났다. 언제 나올 거냐!
답장은 1분 뒤에 왔다.
성유진 ? 11시.
이강후는 하마터면 스마트폰을 던질 뻔했다. 그는 초인적인 인내로 분노를 참으며 입을 열었다.
“……11시에 온답니다.”
“…쯧.”
팀장의 혀 차는 소리가 귓가에 머물러 떠나지 않았다.
11시.
성유진이 올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이강후는 팀장의 입이 떨어지기 전에 성유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엔 성유진이 전화를 받았다.
“너 이 새끼…! 대체 언제 올 생각이냐!”
“12시.”
뚝.
전화가 끊겼다. 이강후의 얼굴이 구겨졌다.
‘방금 여자의 신음 소리가 들린 것 같았는데…. 이 새끼 설마 여자랑 자고 있는 건가?!’
여자랑 뒹굴거리느라 약속 시간을 미룬다고? 짜증이 확 치솟았다. 성질 같아선 아카데미 기숙사로 쳐들어가고 싶을 지경이다.
‘아니, 애초에 아카데미 기숙사에 있는 건가? 그놈이랑 같이 잘 여자가 있을 리 없다. 분명 창녀랑 뒹굴고 있겠지.’
작은 무전기를 통해 팀장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놈은 언제 오나?”
“12시에 온답니다.”
“골때리는 군. 이번엔 확실한 정보겠지.”
“그게… 모르겠습니다.”
“…….”
성유진의 더러운 성격을 생각하면 확언할 수 없었다. 어쩌면 이 모든 게 성유진의 농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12시가 되었다.
성유진은 오지 않았다. 이강후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아앙! 앙! 하아아아앙!”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흥분한 여자의 교성이 들렸다. 어떤 여자인지 몰라도 목소리 하나만큼은 엄청 음란했다.
“아이 씻팔. 야, 자꾸 전화 걸래? 진짜 뒈지고 싶냐?!”
숨결이 거칠어진 성유진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이강후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약속한 12시다! 대체 언제 나올 거냐!”
“이 인내심 좆도 없는 새끼야! 좀 기다려. 곧 갈 테니까. 새벽 2시까지는 간다. 거기 꼼짝 말고 있어라!”
뚝.
전화가 끊겼다.
“…어이가 없군.”
팀장은 이강후의 바로 옆에 있었다.
“죄송합니다. 이 새끼가 이럴 줄은….”
“후우. 이번이 마지막이다. 딱 새벽 2시까지만 기다린다.”
새벽 2시 10분.
성유진은 오지 않았다.
이강후는 팀원들에게 둘러싸였다. 팀원들의 눈초리는 곱지 않았다. 성유진이 오지 않으니 팀원들의 분노와 짜증은 모두 이강후에게 향했다.
이강후의 스마트폰에서 감정 없는 목소리가 울렸다.
-고객님의 전화가 꺼져있어…….
“이강후. 뭔가 할 말 없나?”
“이, 이 새끼가 저희를 농락하는 겁니다…!”
“우리가 아니라 널 농락하는 거겠지. 후우. 강후야. 성유진에 대한 조사는 내가 하마. 당분간 사리고 있어라. 지금까지 내가 어린 널 너무 믿었던 것 같다.”
이강후는 눈을 질끈 감았다. 팀원들이 해산했다. 이강후는 산에서 기다렸다. 이게 모두 다 성유진의 계획으로, 혼자 있으면 성유진이 나타날 거라 생각했다.
성유진은 해가 떠도 나타나지 않았다.